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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볼라 ㅣ 밀리언셀러 클럽 107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기리노 나쓰오는 처음 사회파 미스터리 계열의 작가로 알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다마모에』나 『메타볼라』까지 읽은 지금, 그녀를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로 묶기에는 너무 좁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사실 그녀의 수상 내역을 보면 호러/미스터리 쪽 상보다는 순수문학상이 더 많지요). 그녀의 소설 대부분이 여성이 주인공이고 남성은 들러리 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작품 『메타볼라』는 남자들이 주인공이더군요.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는 청춘들의 삶을 잔인하지만 안타깝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느껴져서 무척 공감하면서 읽은 작품입니다. 단, 미스터리적인 요소는 거의 배제한 채 짙은 패배와 허무주의에 빠진 청년들의 삶을 무미건조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리고 있어 다소의 지루함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제목의 ‘메타볼라’는 건축용어 '메타볼리즘(Metabolism)'에서 착안하여 작가가 만든 조어라고 하네요. 도시 사회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바라보는 건축학적 관점으로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며 하류 인생을 사는 청춘군상들의 문제의 원인이 환경(사회)에 있다는 작가의 주제 의식을 무척 잘 표현하는 제목 같아서 무척 마음에 듭니다. 사회가 20대 젊은이들의 삶을 어떻게 잡아먹고, 질식시켜 죽이는지 끔찍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기억상실인 채 오키타아의 밀림에서 헤매던 20대 중반의 긴지(사실 이름은 없습니다)와 부유하고 성공한 가족(특히 부모님)의 기대와 시선의 부담으로 벗어나려는 10대 후반의 아키미쓰의 잔인하고 무서운 사회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야기입니다. 프리터, 니트, 가족폭력, 자살 충동, 호스트, 야쿠자 등의 사회 문제가 도시 곳곳에서 그들을 잡아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어 좌절, 실패, 도망, 폭력, 이유 없는 분노 등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벽에 부딪치면서 계속 추락합니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는 곳에 발견하는 진실도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현재 절망적이지만 않을 뿐, 희망은 그 어디에서도 그들을 기다리지는 않습니다.
이야기는 기억상실인 채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긴지와 여자를 좋아하고 자유를 갈구하지만 결코 가족으로 벗어날 수 없는 무책임한 아키미쓰의 삶을 교차로 오가며 전개됩니다. 어둠과 밝음의 대조가 아닌 어둡고 더 어두운 삶을 비교하며 보여주어서 그 절망의 깊이는 오히려 깊습니다. 보통 어른들은 그러죠. “도대체 왜 그렇게 사냐?”, “제발 좀 인간답게 살아라!” 젊은이들도 누구나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겠죠. 과연 그렇다면 젊은이들의 삶의 방식이 문제인 것일까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요? 일류대를 나와서 대기업을 다니지 않는 이상은 낙오자로 찍하고, 니트족이나 프리터족은 아예 인간 취급을 안 하죠. 특히나 대학 멀쩡하게 졸업해서 그렇게 살고 있으면 주변의 인식은 무척 차갑습니다. 그럼에도 마땅한 해결책은 없죠. 나오는 대답은 “그냥 아무 회사나 들어가서 다녀라.”(이건 다른 얘기지만 정부에서의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대책도 주먹구구식, 조삼모사식이죠. 인턴이나 비정규직을 비약적으로 늘리는 것을 해결책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죠.) 사실 그래서 저는 읽는 내내 무척 답답했습니다.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라는 체념에 깊은 한 숨만 나오더군요.
제가 읽은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 내에서는 『다마 모에(2005)』부터 그녀의 작풍이 조금 변한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현대 사회의 문제에 들이대는 날카로운 메스는 여전합니다. 그러나 20-30대 여성 문제에서 40-50대 이상의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문제까지 그 대상이 확대되었고, 주로 대사나 상황으로 주인공들의 심리(와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표현하던 것에서 심리 묘사나 서사(설명) 중심으로 바뀌었더군요.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많이 줄고, 문학적인 비유가 많아졌다고 할까요?(제1장의 ‘타인의 꿈속에서’부터 그런 점이 보이더군요). 따라서 『아웃』이나 『그로테스크』 등의 작품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스토리 전개의 늘어짐과 600페이지의 많은 분량이 많이 지치게 만들거든요(내용의 암울함도 그렇고요). 그리고 소재 자체의 신선함보다는(사실 뉴스 기사를 통해 자주 접하는 내용들이죠)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의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작품인지라 반전이나 충격적인 내용도 당연히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잔잔합니다. 20-30대 청년들은 일독하면 좋을 듯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