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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에 과연 그들은 어떤 사랑을 하고 헤어졌을까? 달콤 쌉싸름한 청춘 연애소설을 연상시키는 제목 때문에 오해하실 분들도 많겠지만 연애소설은 절대 아닙니다. 본격 미스터리소설이지만 내용이나 형식이 조금은 파격적입니다. 미치오 슈스케는 항상 이런 파격과 충격을 즐기는 것 같아요. 이 달콤 쌉싸름한 제목의 소설은 설명하는 것 자체가 스포일러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힘들고 애매한 작품입니다. 『섀도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그냥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리고 틀에 박힌 미스터리가 아닌 새로운 미스터리를 접하고 싶으신 분들에게도 역시나 일독을 권합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2007년 제7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 『섀도우』에는 초등학교 5학년 소년이 보는 남녀의 섹스 장면과 그를 누군가 지켜보는 아이, 그리고 병을 들고 이들을 지켜보는 또 다른 누군가가 등장합니다. 환상일까? 현실일까? 도대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불가해 한 장면과 이야기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서서히 밝혀지는 감추어진 비밀과 진실들.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에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이번 작품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도 그런 불가해 한 장면과 이야기들이 넘쳐납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읽고 있는 것일까?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지만 책장은 계속 넘기게 됩니다.
주인공인 초등학교 4학년 미치오는 부모님과 여동생 미카와 함께 생활합니다. 미치오는 여름 방학을 앞둔 종업식 날, 친구 S의 결석 때문에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S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S의 집에 있는 것은 S의 시체 뿐. 선생님에게 알리려고 학교에 왔다 다시 찾아갔으나 시체는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동네에서 발생하는 고양이와 개의 연속 살해 사건. 주인공 미치오는 동생 미카와 ‘그것’과 함께 범인을 찾기 시작합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참으로 쉽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문장들. 작가가 독자를 데리고 장난을 치는 것일까요? 세 살 아이가 너무 똑똑합니다. 그리고 거미가 말을 합니다. ‘환생’이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인정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미치오의 어머니는 미치오에게(자기 자식에게) “너는 몹시 기분 나쁘고 음침하다.”고 말을 합니다. 제 정신이 박힌 어머니라면 자기 자식에게 기분 나쁘고 음침하다는 말은 안 하죠? 뭔가 어긋나 있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무척 어긋나 있어요. 그런데 어긋난 이야기 속에서 거미로 환생한 친구 S를 죽인 실제 범인을 잡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이야기는 재미있어지기 시작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 속에 있잖아요. 자신만의 이야기 속에요.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항상 뭔가를 숨기려고 하고 또 잊으려고 하잖아요.”
사이코서스펜스, 판타지소설, 공포소설, 본격 미스터리가 뒤죽박죽. 장르 자체가 애매하고 불투명합니다(물론 본격 미스터리로 분류할 수는 있겠네요). 범인을 잡아야 합니다. 사건의 동기와 트릭도 밝혀야 하고요. 그런데 부조리하거나 이해 불가한 상황 설정과 그것들에 의해서 이끌려가는 이야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건이 과연 해결되는 할까요? 선배 미스터리 작가들의 능력을 흡수하면서도 비틀고, 재해석하면서 전혀 의외의 결과를 내 놓습니다. 따라서 논란의 여지가 조금 있을 수도 있습니다(일반 독자들보다는 추리소설 매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그런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추리소설 매니아들도 이런 소설은 당황스럽거든요. 사실『섀도우』도 약간은 그런 작품이었죠). 이 소설은 친구 S를 죽인 범인을 잡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범인은 결국 잡힙니다. 그 과정은 부조리하고 이해 불가할지 모르나 결말은 깔끔합니다. “뭐야?”로 시작했다가 “아하!”로 끝나는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결말은 쓸쓸합니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인간과 이야기에 관한 추리소설입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 자체만으로 이 소설은 충분히 감동을 주고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등장인물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것이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와 매력 아닐까 싶네요. 주인공 미치오는 이야기를 만들었다가 해체하고 파괴합니다. 아니 사람 죽인 범인을 잡는 추리소설에 웬 뚱딴지같은 '이야기' 소리냐? 하실 분들이 있겠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제가 말한 것이 아마 이해가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 이 소설은 ‘이야기’의 진실과 허구성을 진지하게 들여다 본 이색 미스터리가 아닐까 싶네요. 읽을거리도 재미있는 요소들도 많고 던지는 메시지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독특하고 파괴적인 추리소설을 읽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살짝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