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금 미도리의 책장 11
쓰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시작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일본의 ‘에드거 앨런 포’ 쓰하라 야스미의 작품은 <아시야 가의 전설>을 통해서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기이하고 소름끼치는 환상적인 기담, 그리고 아름다운 문체에 흠뻑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 작가의 잔혹한 러브스토리라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러브스토리 맞습니다. 서른 초반의 악기 장인 남자와 서른 중반의 그래픽디자이너 여자의 무미건조하고 잔인한 사랑이야기입니다. 사실 사랑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되는 중년의 여인들이 손조차 잡지를 않으니, 이런 이야기를 사랑이야기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더군요(물론 마지막에 키스를 하기는 하지만 격정적이기 보다는 안타깝고 씁쓸합니다). 개인적으로 감우성, 손예진 주연의 드라마「연애시대」를 쓰하라 야스미의 스타일로 표현하면 바로 이 작품 <붉은 수금>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그냥 중년의 남녀가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그러나 쓰하라 야스미의 환상적인 묘사와 문체, 분위기를 빼고서는 이 작품을 설명할 수 없겠죠. 만약 그렇다면 정말 진부하고 식상한 사랑이야기가 되었을 테니까요.

  사실 연애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언제 연애소설을 읽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네요. 그러나 드라마「연애시대」같은 연애 이야기는 무척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일상에 허무함을 느끼는 남녀가 만나서 격정적이지 않게, 육체적이지 않게, 그냥 무미건조하고 담담하게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끼는 그런 연애 이야기는 좋아합니다. <붉은 수금>이 바로 그러한 작품이었습니다. 그냥 헤어져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연인, 그러나 막상 헤어지고 나면 찢어진 가슴을 부여안고 통곡할 것 같은 연인. 사실 보통의 연애소설을 기대하고 이 작품을 읽는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들의 연애가 무미건조한 이유는 여주인공 이리에 사토루코 때문이기도 합니다. 서른 중반의 노처녀, 꿈도 희망도 없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살아갈 뿐. 사랑의 감정조차 잃어버리고 살아간 세월. 그녀에게 악기 장인 사무카와 고스케의 호의적인 감정은 조금 불편할 뿐입니다. 쓰하라 야스미는 보통 여성 작가로 많이들 오인하는데 사실 이 소설만 읽어봐도 남성 작가가 썼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무척 섬세합니다. 사실 여성 독자들이 이리에 사토루코에게 얼마나 많은 공감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참으로 많은 공감이 되더군요.

  사토루코와 고스케의 사랑 이야기와 함께 과거 사토루코의 외할머니 ‘구니’와 고스케의 할아버지이자 에드거 앨런 포의 시를 사랑했던 천재 시인 ‘겐지’의 사랑 이야기도 함께 펼쳐집니다. 과거 구니와 겐지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천재 시인 겐지의 일기가 그의 연인으로 짐작되는 구니(사토루코의 외할머니)의 집에서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한층 더 복잡하고 미묘하게 전개됩니다. 과연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그들의 사랑은 어떻게 결말이 날까? 겐지의 일기와 붉은 수금은 이 소설에서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그러한 의미들을 차분히 곱씹어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중년 여인들의 격정적이지 않은 잔잔한 사랑 이야기를 쓰하라 야스미의 섬세하고 환상적인 문체로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추천합니다. 그 외의 독자들에게는 다소 따분하고 재미없게 느껴지실 수도 있으니 알아서들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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