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 상 - 스티븐 킹 단편집 밀리언셀러 클럽 100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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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근원의 공포를 집요하게 파헤쳐 온 공포소설의 거장 스티븐 킹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7개의 단편소설이 수록된 작품집(상)으로 오 헨리 문학상 수상작 <검은 정장의 악마>, 《다크타워》의 외전인 <엘루리아의 어린 수녀들>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괴물이나 유령(흡혈귀) 등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외형적인 공포보다는 내면적인 공포를 묘사한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작품의 밑바탕에 흐르는 기본 정서는 공포이지만 판타지, SF, 미스터리, 공포, 범죄(갱스터), 드라마 등의 다양한 장르로 담아내고 있어 나름 골라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스토리텔러로서의 스티븐 킹의 진가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어디서 이렇게 공포적인 상황을 다룬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지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집에서는 극한의 공포 뒤에 좌절이나 절망이 아닌 작은 희망에 대해 말하고 있어 스티븐 킹의 어떤 심적 변화가 느껴지지도 했습니다.

<제4호 부검실>은 생매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많죠. 죽지도 않았는데 죽었다고 판단하고 시체를 부검하거나 매장한다는 이야기.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아닌 1인칭 시점으로 묘사를 하고 있어, 날것 그대로의 생생한 공포를 전해줍니다. 뱀의 독에 의한 일시적인 마비 현상인데, 의사들은 사망으로 진단하고 부검을 하려고 합니다. 말은 나오지 않고 몸도 움직일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아주 재치 있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검은 정장의 악마>는 오 헨리 문학상 수상작으로 제목 그대로 검은 정장을 입은 붉은 눈의 악마가 등장하는 공포소설입니다. 한 노인이 아주 오래 전 악마에게 유린을 당했던 끔찍한 과거를 회고형식으로 말하는 소설인데, 한 소년이 어린 시절 비일상적인 공포체험으로부터 벗어났음에도 기억의 지배로부터는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며 81년을 보내야만 했던 상황 자체가 무척 악몽스럽게 다가온 작품입니다. 붉은 눈의 검은 정장을 입은 악마가 날카로운 이빨로 물고기를 어그적어그적 씹어 먹는 장면이 나오는 이런 소설도 문학상을 수상하는군요. 상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조금 아이러니 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는 낙서를 기록하는 한 중년 남성의 자살 시도 및 과정을 다룬 이야기로 올드 팝송을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도로 주변의 한 모텔에서 공책에 낙서를 적는 남자를 보면 조금은 궁상맞아 보입니다. 자살을 하려다 자신의 공책(저질스러운 낙서들이 기록되어 있는)을 경찰이 본다면 미친놈의 짓거리로 생각할까봐 초조해하는 모습을 봐도 역시나 궁상맞아 보입니다. 사실 모텔에서 자살을 하고, 낙서가 기록된 공책이 발견된다고 해도 세상은 그(의 죽음)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을 텐데, 저렇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니 살아가는 것도 죽는다는 것도 한 편의 코미디 같더군요. 슬픈 코미디. <잭 해밀턴의 죽음>은 걸작 갱스터무비들에 대한 스티븐 킹의 헌사가 아닐까 싶네요. 실존 인물과 실존 사건(물론 허구인 이야기도 있지만)이 등장하는 소설로 실로 파리를 잡는 호머와 우스꽝스러운 물구나무를 조니, 그리고 그 옆에서 총에 맞은 곪은 상처를 움켜쥐고 웃으면서 죽어가는 잭의 모습은 정말 영화적이면서 감동적이었습니다.

<죽음의 방>은 남미의 어느 취조실(죽음의 방)에서 전기 고문으로부터 죽을 위기에 처한 한 남자가 극적으로 탈출하는 이야기로, 스티븐 킹의 작품치고는 조금 평범한 작품이었습니다. 스티븐 킹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엘루리아의 어린 수녀들>은 《다크타워》의 외전으로 엄청나게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다크타워》의 2부 <세 개의 문>이 SF/판타지의 느낌이었다면, <엘루리아의 어린 수녀들>은 정통 호러입니다. 흡혈귀 유령들과 녹색인간 돌연변이, 예수-개, 의사-벌레들이 나오고, 롤랜드가 처한 상황 자체도 무척 안 좋습니다. 엘루리아의 어린 수녀들이라 불리는 할머니들의 수다도 좋고요. 또한 흡혈귀들이 인간들을 흡혈하는 장면도(쪽쪽 빨아서라는 표현을 쓰더군요. 이런 표현 너무 좋습니다) 좋았고요. 작품 해설에 이 작품을 쓰기가 무척 힘들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앞으로도 이런 재미있는 《다크타워》 외전 써 주었으면 좋겠네요. 참고로 이번 작품은 《다크타워》1부 <최후의 총잡이> 앞부분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다크타워》를 읽지 않고 읽어도 상관은 없습니다(총잡이 롤랜드의 매력이 아직 드러나기 전입니다).

마지막은 표제작인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로 초능력을 다룬 SF소설입니다. 초능력이라면 <엑스맨>이나 <슈퍼맨>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시각적으로 멋있는 활약을 펼쳐야 하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초능력자 딩크(이름부터가 뭔가 찌질 해 보이기는 하지만)는 방구석에서 영웅 짓을 합니다. 어떻게? 그리고 이런 찌질이를 선택하여 훈련시킨 기관의 정체는?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지지만, 진실을 알게 된 딩크가 선택하게 되는 미래는? 배수구에 잔돈을 버리는 단순한 행위를 떠올리고, 이런 음모를 떠올릴 수 있다니, 역시나 스티븐 킹은 천부적인 스토리텔러입니다. 초능력자가 나와서 악당들을 물리치니 이 소설도 분명 SF영웅물이겠죠?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지게 마련입니다. 이 말이 이렇게 무섭게 들리기도 하는군요.

"……처음부터 걱정 따위는 없었으니까요."

"그래,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지."

"결국 모든 일은 벌어지게 마련이죠."

"그래, 네 말이 맞다, 딩크.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지게 마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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