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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에서 1 ㅣ 미도리의 책장 6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시작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기시 유스케의 전작 <검은집>이나 <유리망치>를 읽으신 분들에게는 무척 색다른 분위기의 작품이자 기존 SF소설과도 느낌이 무척 다르게 느껴지는 독특한 모험/성장 SF소설이 아닐까 싶네요(참고로 2008 일본 SF대상 수상작입니다). 신세계를 배경으로 주력(magical power)을 사용하는 어린 소년/소녀들이 모험을 통해 신인류의 감추어진 비밀과 진실을 알게 되면서 펼쳐지는 황홀하면서 때로는 소름끼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기시 유스케의 작품 치고는(물론 <천사의 속삭임>도 스케일이 작지는 않지만) 스케일이 무척 큽니다. 내용뿐만 아니라 장르적인 면에서도요. 기시 유스케의 작품을 집대성한 느낌을 주더군요. 특히 (하)권에서의 도쿄의 지하동굴 묘사(특히 희귀 벌레들이나 동물, 곤충들의 행동)는 소름이 돋습니다. <검은집>에서 느끼셨던 그 소름을 다시 한 번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적으로 벌레를 무척 싫어하는데, 엄청난 크기의 벌레들이 몸을 에워싼다고 생각하면 정말 소름이 돋더군요. 개인적으로 도쿄의 지하 동굴 이야기는 가장 좋아합니다.
이 소설은 천년 후의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구 문명(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멸망 후 초능력(사이코키네시스; 의식만으로 물건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능력)이라 불리는 주력을 가진 인간이 등장하면서 이를 갖지 못한 인간들과의 전쟁으로 인해 또 다시 멸망의 위기를 느끼고, 과학 문명을 배제한 원시시대로 회귀한 새로운 문명을 시작합니다. 인터넷 및 핸드폰 등의 통신수단이 없어지고 자동차, 헬기 등의 운송수단도 제한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도 없습니다. 모두가 꿈꾸었던 낙원이죠(낙원에 대한 세부 묘사는 생략합니다. 무엇보다 자유로운 성관계가 마음에 들더군요). 그러나 이러한 낙원도 오래 가지를 않습니다. 아이들이 팔정표식 밖을 넘어 금지된 영역에서 유사미노시로(정체는 국립국회도서관 쓰쿠바관)를 만나게 되면서 평화로운 지상낙원도 위협을 받게 됩니다. 인간의 노예인 요괴쥐는 반란을 일으키고, 악귀와 업마가 현실에 등장합니다. <신세계에서>는 500페이지 분량의 소설 2권입니다. 그리고 SF소설입니다. 기시 유스케가 그린 신세계를 묘사하면서 느낌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껴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렵니다. 사실 이 글을 읽는 분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를 것 같고요. 기시 유스케가 창조한 신세계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책을 읽는 것이 가장 빠를 듯 하네요. 기시 유스케의 전작 퀼리티를 생각하면 결코 실망하지는 않으실거에요. 사실 외적인 내용보다는 내적인 내용이 더 뛰어난 작품이거든요. 물론 인간과 요괴쥐의 전쟁신, 해리포터 시리즈의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연상시키는 전인학급에서의 다양한 에피소드(카드 집 쌓기나 공굴리기 토너먼트 경기 등), 도쿄 지하 동굴에서의 추격신, 이성/동성 간의 애정행각(?), 움직이는 도서관 유사미노시로의 방대한 지식, 가스미 66초 마을의 조직도, 그리고 열등 학생을 잡아가는 부정고양이 등 매력적인 이야기와 캐릭터가 무궁무진합니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진실과 거짓, 지배와 피지배, 시스템과 권력, 그리고 모순. '지금 당신은 행복합니까?, 지금의 국가 시스템은 국민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행복은 무엇일까요? 신세계의 낙원(시기도 미움도 전쟁도 없고, 육체적인 노동이 필요 없고, 성별을 초월한 다수 대 다수의 사랑이 가능하고, 외부로부터 안전한 그런 세계)은 정말 낙원일까요? 우리가 희망하는 미래는 정말 행복한 미래일까요? <신세계에서>는 10년 전에 겪었던 인간과 요괴쥐의 끔찍한 전쟁 후를 '나(사키)'가 수기 형식으로 전하는 글입니다. 과연 지금 그녀의 곁에는 누가 남았을까요? 친구와 부모, 그리고 이제는 사라진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 그러한 것을 간직하고 추억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요? 기시 유스케가 그린 신세계는 그래서 안타깝고 씁쓸합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날에 대한 기억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