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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증인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300
김성종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올해 초에 이두용 감독의 걸작 《최후의 증인》이 검열 시 잘려나갔던 장면을 복원하여 154분의 오리지널 완전판 DVD로 출시가 되었죠. 사실 원작 <최후의 증인>을 영화화 한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에 너무 실망을 해서(개인적으로 <흑수선>은 배창호 감독의 최대의 실패작이 아닐까 싶네요. 우선 캐스팅부터가 마음에 안 듭니다), 원작을 읽기까지 조금 망설였는데, 주변에 좋다는 평이 많아서 1년 전 쯤에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최후의 증인>을 구입했습니다(지금은 절판이네요). 600페이지의 압박과 신간 러시에 정신이 없어서 독서를 미루고 있었는데 DVD로 감상하기 전에 그래도 원작을 먼저 읽어야하지 않을까 싶어 이틀 전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600페이지의 압박에 전혀 기죽을 필요가 없더군요. 가독성이 너무 좋습니다. 사실 장르 구분 자체가 조금 무의미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조금 이해를 돕기 위해 말하자면 사회파 미스터리계열의 작품입니다. 한국전쟁의 비극사가 작품 전체에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미스터리한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꽤 파격적이었을) 반전도 있거든요. 무엇보다 이 소설이 뛰어난 점은 바로 오병호라는 형사 캐릭터입니다. 영미권이나 일본 추리소설에서는 접할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토속적인 형사 캐릭터입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이나 《공공의적》의 강철중 형사 저리가라 할 정도의 끈기, 집념, 인내가 정말 대단하더군요. 극한의 상황에서도 끈질기고 집요하게 사건을 추적하는 근성이 정말 대단하더군요.
<최후의 증인>은 한국일보 1974년 장편소설 당선작입니다. 박정희 정권 때죠. 1970년대 초반이면 빨갱이 사냥이 한창 때였죠. 좌익이라는 말이 귀신보다 무섭던 시대였기도 하고, '막걸리보안법'이 활개를 치던 시기였기도 했죠. 사실 소설을 읽고 많이 놀랐습니다. 물론 공비들에 대한 일방적인 묘사가 없지 않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척 객관적이게 묘사하고 있더군요(공비들의 집단 강간 장면은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장면을 보고 반공이라 보기에는 조금 무리죠). 특히나 검사, 신문사, 청년단장 등에 대한 비판은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더군요. 사실 뭐 이런 내용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큰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눈물로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숨죽이며 살아 온 그 시대의 인간들을 보노라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살인혐의로 억울하게 20여 년의 옥살이를 한 황바우 노인, 한 시대의 비극의 한 집약이 아닐까 싶네요. 그냥 평범하게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싶어 했던 황바우 노인은 왜 그런 일을 겪어야만 했을까요?
절망적이고 안타깝고, 암울한 분위기만으로도 이 소설은 훌륭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흐르는 어둡고 비극전인 분위기가 일품인 명품 추리소설입니다. 사상이니 이념을 뛰어넘는 비극미는 정말 최고더군요. 그리고 20년 전의 비극적인 사건을 추적하는 한 형사의 집요한 집념, 적절한 긴장감과 반전, 그리고 책장을 덮는 순간 베어 나오는 깊은 한 숨까지 무척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정말 묵직하고 재미있는 추리소설을 읽었네요. 쓸데없는 잡담만 늘어놓은 것 같네요. 암튼 꼭 읽어보세요.
사족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 비디오 자켓을 보니 재미있는 헤드카피가 있네요.
'사랑의 향기는 당신을 황홀하게 한다!'
'이 여자에게 돌 대신 사랑을 던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