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횡단 특급
이영수(듀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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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오프라이에서 정말 엄청나게 활동하고 있음에도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작가(영화평론가?)는 정말 드문데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듀나가 아닐까 싶네요.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복수설(듀나는 여러 명이다)도 나오고 있죠. 듀나의 글을 가장 처음 접한 것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씨네21이라는 영화잡지의 듀나의 영화게시판을 통해서입니다. 씨네21에서 굉장히 좋아하는 코너였는데, 오타쿠 기질이 보이는 매이나적 영화 감성과 특유의 시니컬함이 무척 마음에 들더군요. 특히 마이너한 SF, 공포영화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정말 감탄사가 나오더군요(대중문화에 애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암튼 뒤늦게 접한 듀나의 SF소설 무척 만족스럽네요. 국내에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몇 안 되는 SF작가 중의 한 분이라 그 가치는 정말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재미있습니다.

《태평양 횡단 특급》은 <태평양 횡단 특급>을 포함한 총 12개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입니다.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재미있고 예술(?)이더군요. 복수, 윤리, 이성, 자유의지, 기계, 문명 등에 대한 소재 등이 다양한 이야기로 펼쳐집니다. 예술에 대한 지식(예전에는 과시욕으로 봤는데, 이런 식의 과시라면 나쁠 것도 없죠)과 영화에 대한 애정도 많이 보이고, 공포적인 분위기가 보이는 SF작품들도 많네요(<허깨비 사냥>이나 <스퀘어 댄스>, <대리 살인자> 등의 작품. 스스로 <스퀘어 댄스>는 에도가 앨런 포를 모방하려는 시도였다고 하네요). 인간과 기계의 대립, 시간 여행 등의 SF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작품들도 당연히 많고요(개인적으로는 <꼭두각시들>, <기생>이라는 작품이 재밌더군요). 그리고 기계 문명에 대한 인간의 뒤늦은 후회, 반성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시니컬함이라는 표현은 왠지 부족하지만 역시나 그런 느낌과 분위기 때문에 그의 단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적이다.'라는 말의 허위의식을 까발리고, 국가(전체)주의에 대한 비판(물론 작가는 그런 의도는 없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보입니다, 제게는), 지배자에 대한 은근한 조롱과 비판(<꼭두각시들>이라는 작품이 그렇습니다. 조종하는 자와 조종 받는 자의 거미줄 같은 관계에 대한 고찰), 기계 문명과 인간의 본성(이성)에 대한 가볍지만 진지한 토론 등 버릴 작품, 내용이 하나도 없는 정말 괜찮은 SF소설들입니다. 논란 중심의 듀나가 아닌 정말 작가로서의 그의 새로운 면모를 이번 작품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었네요. 앞으로 듀나의 작품을 찾아 읽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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