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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기다림
오츠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오츠이치의 작품하면 크게 잔인한 공포 추리소설과 감성적인 슬픈 로맨스 추리소설로 나뉘는 것 같아요. <GOTH>, <ZOO> 등의 단편집에도 슬프고 감성적인 작품과 잔인하고 무서운 작품이 뒤섞여 있죠. 암튼 이번 작품 <어둠 속의 기다림>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으로 무척 잔잔하고 슬픈 분위기를 풍기는 이야기입니다. 시력을 잃고 어두컴컴한 방에서 혼자 고립되어 살아가는 미치루라는 여성과 타인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어 혼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아키히로라는 남성, 이들의 기이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둘 다 고독에 몸부림을 치면서도 타인과의 소통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인간들이죠. 이들이 서로의 모습을 통해 점차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이 소설만의 재미가 아닐까 싶네요.
시력을 잃고 어두컴컴한 방에서 혼자 고독하게 생활하는 미치루의 방으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쫓기는 인쇄공장에서 일하는 아키히로가 침입합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아키히로는 자신의 존재감을 죽인 채 방구석에서 조용하게 (미치루가 눈치 채지 못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런 희미한 존재감을 눈치 채는 미치루는 아무리 그가 살인자라도 사람이 그리워서 그냥 모른 척 그의 기이한 동거를 받아들입니다. 이야기는 무척 정적으로 조용하게 진행됩니다. 무척 기이한 동거 이야기로 오츠이치는 이 작품에서 슬픔, 고독감, 소통,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츠이치의 작품 세계는 바로 이 슬픔, 고독감, 타인과의 소통에 있지 않나 싶네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쓸쓸하고 고독한 것 같아요. 또한 타인과의 소통에도 실패해 점점 더 고립되게 살아가는 것 같고요.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어둠도 밝음도 아닌 회색인 것 같아요. 세상에 없어도 될 듯한(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 자신과의 또는 타인과 힘겹게 싸움을 벌이거든요. 죄는 지었지만 악인은 아닌 그들의 그런 죄를 용서하고픈 이상한 기분이 들죠.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끝없는 관심, 그래서 그의 작품은 항상 (잔인한 이야기에서도) 따뜻함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특이하게도 대사가 별로 없습니다(당연하게도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모르면서 지내야 하기 때문에). 미치루와 아키히로의 심리 묘사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시점이 교차되는 이야기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미치루가 생각하는 아키히로, 아키히로가 생각하는 미치루, 또한 미치루가 생각하는 자기 자신, 아키히로가 생각하는 자기 자신. 그리고 기이한 동거를 시작하면서 점차 변화되는 그들의 모습과 자시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남의 방에 숨어들어서 남을 관찰하는 이야기가 다소 변태스러울 수도 있는데, 그런 오해는 가볍게 벗어납니다. '슬픈 서스펜스'라는 출판사의 홍보 문구가 정말 잘 어울리는 소설이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추리소설로서의 매력도 있습니다. 사건의 동기와 범인, 그리고 반전. 물론 반전이 약하기는 하지만요. 지루하지 않게 장난은 살짝 부렸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