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성의 인연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반가운 신간. <유성의 인연>은 개인적으로 무척 기다린 작품입니다. 2008년 일본 드라마로 만들어져 시청률 1위에 오르기도 한 작품이죠.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답게 군더더기 없고 쉬운 문장들은 여전합니다. 가독성과 흡입력에 있어서는 (일본 추리소설 작가 중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를 따를 작가가 없지 않을까 싶어요. 세 남매의 부모님을 살해한 범인에 대한 복수극이 주요 내용인데, 적당한 추리적인 요소와 복선, 반전, 그리고 감동까지 기존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회파 미스터리계열의 추리소설과 비슷한 공식을 따라가더군요. 따라서 새로움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작품이 더 재미있고, 더 잘 읽혔습니다.
진부하고 식상한 소재. 세 남매의 부모님을 살해한 범인에 대한 복수극. 진부하고 식상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그만큼 감동을 끌어내기가 쉽죠.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는 무척 대중적인 소재가 아닐까 싶어요. 진부하고 식상한 이야기임에도 지루하지는 않습니다(물론 개인적으로는 조금 덜어냈으면 하는 부분도 있지만). 바로 그 힘은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자 결과인 즉, '부모님을 살해한 범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긴장감을 끝까지 놓지 않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력이 아닐까 싶어요. 능구렁이처럼, 일본 미스터리계의 일인자답게 보여줄 것은 보여주고, 감출 것은 감추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궁금하다 못 참겠다 싶으면 단서를 살짝 하나 던져주고, 범인에게 점점 다가갑니다. 문장력은 떨어지지만 확실히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재능은 뛰어난 것 같아요.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진부하고 식상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지겹거나 재미없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히야시라이스의 맛과 비닐우산. 부모님 살해 14년 뒤,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세 남매 앞으로 우연치고는 기가 막히게도 범인이 나타납니다. 사실 뜬금없는 우연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세 남매가 벌이는 사기행각을 꽤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것 같더군요(개인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조금 지루하기는 하더군요. 어차피 필연성은 별로 없어 보였거든요. 히야시라이스라는 음식의 맛으로 인해 언젠가는 마주칠 것 같았는데. 물론 세 남매의 사기행각은 무척 중요합니다. 사건이 해결된 뒤에도 말이죠. 히가시노 게이고는 대체로 쓸데없는 문장을 남발하는 작가는 아니니까요). 유일한 범인의 증거품 비닐우산과 아버님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한 듯한 히야시라이스의 맛. 사소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후에 엄청난 결과를 불러옵니다. 이것들을 물적 증거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죠. 게다가 14년 전의 살인사건의 증거로 채택하기에는 더더욱 힘들죠. 그런 불확실한 증거를 확실한 증거로 만들기 위한 세 남매의 노력이 이 소설의 재미이지 않을까 싶어요.
증거 조작과 감동. 히야시라이스의 맛과 범인을 봤다는 가족의 증언으로는 14년 전 살인사건의 범인을 체포하기에는 한계가 있죠. <유성의 인연>이 기존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 다른 점이자 재미라면 바로 이 점입니다. 증거 부족. 따라서 증거를 조작합니다. 세 남매의 증거를 조작하기 위한 사기 행각이 숨 가쁘게 전개됩니다. 이들의 행위가 범죄 행위임에도 응원을 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됩니다(대체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가족의 사랑과 감동적이면서 행복한 결말. 물론 고리타분하게(조금 그렇기는 하지만) 감동적인 결말로 이야기를 끝맺지는 않습니다. 반전과 트릭, 빼놓을 수 없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확실히 재미있는 것 같아요. 단 이번 작품은 조금 긴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트릭과 복선이 있는 (잔인하지 않은) 추리적인 재미와 함께 감동을 느끼고 싶으신 분들에게는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