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골짜기의 5월 미도리의 책장 4
후나도 요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시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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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현대사(정확하게는 1986년 필리핀 2월 혁명 이후)를 13세 소년 도시오(일본인 아버지와 에이즈로 죽은 필리핀 어머니(매춘부) 사이에 태어난 아이로 필리핀에서는 '자피노'로 불립니다. 소설 외적으로는 일본인의 시각)의 시점으로 바라본 무척 독특하고 이상야릇한 모험소설이자 성장소설, 역사소설입니다. 1998년 5월부터 2000년 5월까지(각 해의 5월의 사건만 다루고 있습니다) 필리핀의 세부섬의 가르소본가 지구를 중심으로 소년 도시오과 어른들의 멸시와 곱지 않은 시선, 조롱, 그리고 무능하고 비열하며 악랄한 정부(특히 경찰, 국가경찰군이나 국가통합결찰 모두 권력에만 눈이 멀었지 치안이나 국민의 안위에는 관심조차 없습니다)를 상대로 힘겹게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식민지문화가 남아있는 모든 아시아 국가들의 진통이지 않을까 싶네요.

세부섬의 가르소본가 지구는 무척 작은 산골 마을입니다. 메르난가산의 신인민군 게릴라는 정부를 상대로 투쟁은 하지 않은 채 동네 주민들에게 ‘혁명세’라는 이름으로 돈을 갈취합니다. 그리고 무능하고 부패한 경찰들은 푼돈을 받고 법을 어깁니다. 지구 대표 선거는 돈으로 치러지고, 주민들은 그런 돈에 매수되어 자신의 신념과 긍지를 팔아버립니다. 어른들은 자피노(혼혈인)이라는 이유로 도시오를 때리고 겁을 주며 놀립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평온한 일상, 평온한 마을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자세하게 들어보면 썩을 때로 썩어버린 거죠. 마을도 사람도 모두.

암튼 이 소설은 그런 시대와 정부와 어른들에 맞서 싸우는 한 소년의 처절한 투쟁기입니다(물론 그의 뒤에는 무지개 골짜기에서 홀로 싸우는 게릴라 호세 만가하스, 전 항일인민군 병사였던 할아버지, 그리고 마을에서 그나마 정신이 제대로 박힌 라몬과 메그 남매가 있습니다). 13세 소년으로서는 겪어서는 안 되는 그런 사건들에 휘말려 헤쳐 나가는 이야기가 몹시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13세 소년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라 큰 부담감은 없습니다. 이야기의 밑그림은 무척 거대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사실 정치적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중요한 소설도 아니고요. 물론 그러한 의미도 함께 이해하면 더욱 좋지만, 그냥 13세 소년 도시오가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물론 마음 아프기는 하지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정치적인 것 그 이상의 감동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느 쪽이 수놈이고 어느 쪽이 암놈인지 모르지만 호세는 한 마리는 아사무, 또 한 마리는 다간이라고 불렀다. 타갈로그어로 아사무는 희망, 다간은 긍지를 의미한다."

후나도 요이치의 <무지개 골짜기의 5월>은 희망과 긍지를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희망과 긍지를 잃는 순간, 살아 있음에도 그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좀비)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무지개 골짜기에서 홀로 싸우는 게릴라 호세 만가하스. 사람들은 그를 미련하고 멍청하다며 욕을 하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반면 부정부패와 돈으로 얼룩진 지구 대표 차페스 앞에서는 꼬리를 흔들면서 아부를 하고요. 희망과 긍지를 잃어버린 인간은 돈과 권력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약자들의 피를 빨아먹는 악한 인간들은 언젠가는 그 대가를 받는다는 것. 그리고 희망과 긍지를 잃어버린 인간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는 것. 특히나 국가의 미래는. 그들은 결코 무지개 골짜기에 뜨는 동그란 무지개를 볼 수 없을거에요. 아름다운 동그란 무지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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