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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함의 주파수
오츠 이치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쓸쓸함의 주파수>는 <GOTH> 이후 가도카와 쇼텐에서 출판한 단편집입니다. 보통 취미생활로 글을 쓴다는 오츠이치가 그 이전에 정해진 주제를 받아서(돈 때문에) 쓴 글로 조금은 억지로 쓴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GOTH>나 <ZOO>, <암흑동화> 같은 작품에 비해 미스터리소설(이나 공포소설)로서의 재미는 다소 부족합니다. 그래도 워낙 좋아하는 작가라서(요즘에는 오츠이치가 일본작가 베스트 3에 들어갈 정도로 좋더군요)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래도 역시나 오츠이치는 취미로 글을 쓰셨으면 좋겠네요. 뭐든지 자유롭게 쓰는 글이 좋은 글이 되는 것 같아요.
<쓸쓸함의 주파수>에는 '미래예보', '손을 잡은 도둑', '필름 속 그녀', '잃어버린 이야기' 이렇게 4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쓸쓸함의 주파수>의 주제는 소통, 쓸쓸함, 애절함이 아닐까 싶어요. 무서운 이야기보다는 조금은 슬프고, 아련한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니까 공포스럽고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기대하신 분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물론 저 같이 오츠이치를 좋아하는 팬 분들에게는 이번 작품집이 오츠이치의 또 다른 면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작품일 수도 있고요. 그러나 역시 마지막의 짧고 강렬한 반전이 없는 것은 다소 아쉽네요(특히나 '잃어버린 이야기'라는 작품은 마지막에 뭔가 있을 것 같았는데, 쓸쓸하면서도 조금은 감동적이게 이야기가 마무리되네요).
'미래예보'는 미래를 예보할 수 있다는 한 친구에 의해서 원래부터 친하지는 않았지만 더 어색한 관계로 되어버린 남녀의 애잔한 러브스토리입니다. 한 친구의 미래예보에 의하면 이 둘은 부부가 되거나 아니면 둘 중 한명이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로에게 호감이 있음에도 그들은 서로에게 다가가지는 못합니다. 결국 현실에서의 그들의 사랑은 미완성으로 끝나지만, 그 이후에도 그들은 항상 함께하지 않을까 싶어요. 암튼 이런 애잔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오츠이치의 경험이 반영된 이야기가 나오는데, 바로 남자 주인공(고이즈미)의 성격이나 프리터로 살아가는 삶,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이 작품 속에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부유하는 젊은이들의 쓸쓸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제게는) 많이 전해지더군요. 오히려 잔잔한 러브스토리라는 기둥 줄기보다는 이런 곁가지 이야기가 제게는 더 많이 와 닿더군요.
'손을 잡은 도둑'은 가장 ‘오츠이치’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우선 상황 자체가 그렇습니다. 구멍 뚫린 벽을 사이에 두고 주인과 도둑이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도둑은 방에 있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찾아야 하고, 여자 아이는 신고를 하거나 그 도둑에게서 벗어나야 합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저는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오츠이치의 재능이 가장 빛을 발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그런데 역시나 마지막 반전은 없습니다(보통 마지막은 앞의 상황을 뒤집는 반전이 나오는 것이 그의 매력인데, 그 점은 아쉽더군요). 그냥 흐뭇하게 웃으면서 책장을 덮을 수 있는 그런 결말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런 흐뭇함도 뭐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필름 속 소녀'는 호러소설입니다. 오츠이치는 미스터리소설 뿐만 아니라 호러소설에도 재능이 참 많은 작가죠. 물론 따로따로가 아니라 미스터리와 호러장르가 뒤섞인 그런 이야기들이 많죠. 무언가 말하고 싶은. 억울하게 죽은 소녀가 필름을 돌릴 때마다 필름 속에서 점점 몸을 틉니다. 과연 그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요? 7년 전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일까요? 암튼 나름대로 끔찍하면서 애잔한 이야기입니다.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잃어버린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작품이었습니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남편)이 교토사고로 오른팔만 남긴 채 모든 몸의 기능이 마비가 됩니다. 그러나 의식만은 살아남습니다. 청각, 시각, 촉각 등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오른팔의 촉각의 기능만 남긴 채 말이죠. 정말 엄청나게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이죠. 시간의 흐름도, 사랑하는 딸의 얼굴도, 창가 사이로 비치는 햇살도, 식욕도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의식은 깨어 있어 그런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계속 상기시킵니다. 의식은 깨어 있으나 자신의 의사는 전달할 수 없고, 또한 상대방의 말도 들을 수 없는 그런 극한 상황. 아내의 병문안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이 성장해서 말을 하고 자신의 오른팔에서 피아노를 치는 것도 느끼게 됩니다. 긴 시간이 흐른 후 아내와 딸은 더 이상 방문하지 않습니다. 이미 죽었는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나의 의식은 계속 깨어 있습니다. 10년, 아니 100년 후에도 그는 살아남을까요? 개인적으로는 무척 무서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공포의 감정이 부부 사이의 정, 부녀간의 정으로 희석되는 느낌이라 강렬하지는 않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