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순간
빌 밸린저 지음, 이다혜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한 남자가 목이 거의 잘려진 상태로 간신히 목숨을 구한 후 기억을 잃어버린 채 병원에서 눈을 뜨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사는지, 왜 목은 잘렸는지 기억이 전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제부터 빅터 퍼시픽이라 불리는 이 남자의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똑같은 시간과 똑같은 장소에서 '빅터 퍼시픽'이라는 남자가 시체로 발견되어 경찰의 시체안치소로 옮겨집니다. 동일인물인데 어떻게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시체로 발견되기도 할까요? 도대체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는 누구이고, 시체로 발견된 남자는 누구인가? 암튼 이제부터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교차 서술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추리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에게는 아마 신선하고 충격적인 반전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미야베 미유키 <레벨 7>이 이런 이야기 구조를 띄고 있죠(미야베 미유키가 빌 S. 밸린저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더군요. <쓸쓸한 사냥꾼>에서는 <이와 손톱>에 대한 노골적인 작품 홍보도 하거든요^^). 그리고 <기나긴 순간> 이전에 소개된 <이와 손톱>도 그렇고요. 그 외에도 빌 S. 밸린저에게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교차 서술 미스터리의 최초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참고로 이 작품은 1957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암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교차 서술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는 분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소설만의 매력이 있거든요. 물론 이 소설의 이런 충격적인 반전을 알고 있는 분들에게도 역시 재미있습니다. 교차 서술 미스터리가 이 소설의 전부는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이 소설만의 매력은? 우선 읽기 편한 문장이 좋더군요. 분명히 이야기 구조는 복잡한데,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은 무척 단순명료합니다. 그냥 작가가 쓴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 깔끔한 문장이 저는 무척 좋더군요. 그리고 빅터 퍼시픽이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가 참 좋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한 남자가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세계를 알게 되는 그 장면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정말 그 남자에게는 기나긴 순간이고, 또한 환상의 세계가 아닌 남자와 여자의 세계를 최초로 경험하게 되니까요. 그런 빅터 퍼시픽이라는 인간의 내면의 황폐함이 무언가로 점점 채워지는 그런 과정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들. 그리고 마지막의 묵직한 한방!! 깔끔하게 이야기를 마무리 짓습니다. 암튼 소설 전체가 군더더기가 없고, 박진감도 넘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도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무엇보다 기억을 잃어버린 한 인간에 대한 빌 S. 밸린저옹의 깊은 이해가 마음에 와 닿아서 좋더군요. 회환의 감정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쓱 빠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