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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키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오근영 옮김 / 창해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에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라는 SF적인 소재와 내용으로 가족의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작품으로 돌아왔네요.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는 가족애(부성애, 모성애, 자식애 등등)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미스터리적인 이야기 구조에 그런 감성을 듬뿍 담아서 독자들이 머리로는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게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그런 감성적인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러한 감성 자체가 고루하고, 식상하고, 조금은 촌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나쁘지는 않죠. 본격 추리소설도 사회파 미스터리소설도 확실히 이런 감성을 자극하는 추리소설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장점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비밀>, <아내를 사랑한 여자>, <용의자 X의 헌신>, <변신> 등 그의 대표작인 대부분 이런 부류이지 않나 싶어요.
17살의 도키오가 죽는 순간 23살의 철없는 아버지를 만나러 과거로 옵니다. 물론 도키오가 아닌 그의 아버지가 원해서 미래에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한 것이지만요. 사실 시간여행을 다룬 소설은 많죠. 그런데 부성애와 자식애를 시간여행의 소재로 이용해서 신파로 자극하는 그런 SF소설은 조금 드물지 않나 생각해요. 사실 시간여행과 자식애(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닌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는 조금 언발란스 하기도 하잖아요. 시간여행이라는 정말 무궁무진한 소재를 이제는 정말 진부하다 못해 식상하기도 한(그만큼 보편적인 주제이기도 하지만) 가족애라니.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 열광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그의 뻔뻔함에는 정말 열광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앞서 언급한 그의 대표작들도 사실 조금 뻔하잖아요. 그런 뻔한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 생각을 할까? 그런데 그게 뻔하고 식상함에도 재미가 있어요. 알고 속으면서도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게끔 만드는 재주(비록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기발함이나 참신성은 없더라도), 그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계속 읽게끔 만드는 것 같아요.
SF적인 설정, 그리고 자식과 부모의 애증, 그리고 연인에 대한 질투와 연민. 무엇보다 과거의 철없는 아버지가 미래의 아들을 만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심리적 변화와 성장. 이러한 소설의 대략적인 내용을 보고 읽어보고 싶습니까? 사실 저는 아니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식상하잖아요. 진부하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읽고 싶습니다. 걸작은 아니더라도 우선 그의 소설은 재미가 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미스터리소설은 아니지만 미스터리적인 요소는 많습니다. 그의 모든 소설에서는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있지 않나 싶어요. 바로 궁금증. 진부하다면 진부한 이야기임에도 그런 미스터적인 요소 때문에 다음 장을 읽어보고 싶은 게 아닌가 싶어요. 우선 도키오의 아버지 다쿠미의 이제는 헤어진 여자 친구 치즈루의 얽힌 내막이 계속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그녀를 쫒는 인간들은 누구이며, 왜 그녀는 그(아버지)를 버렸을까? 그리고 도키오의 아버지의 부모님들은 왜 그(아버지)를 버린 것일까? 무슨 사연이 있어서? 암튼 요런 소소한 궁금증, 예측은 가능하지만, 반전이 아닌 인간의 내면에 얽혀 있는 사연이라 아무래도 궁금해지더군요. 그리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이 맞물리면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런 이야기 구조도 나름대로 괜찮더군요. 식상한 감동일 수도 있지만, 잘 읽히고, 나름대로 미스터리적인 요소도 있어 긴장감도 유지되면서 재미도 있습니다. 부모의 자식 사랑, 그리고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애틋함, 그리움), 이런 가을에 한번 쯤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