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사랑을 담아 아토다 다카시 총서 1
아토다 다카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결국 공포라는 것은 상상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공포의 연구> p.431)

마지막에 실려 있는 단편소설 <공포의 연구>는 바로 위의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아토다 다카시가 추구하는 문학이 바로 저 짧은 문장에 가장 잘 드러난 것 같아요. 일상적이고 평온한 상황에서 시작되던 이야기는 마지막의 반전으로 서늘하고 오싹한 공포를 주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둔갑을 해 버립니다. 둔갑이라고 하면 조금 오버일까요? 1970년대 후반에 발표된 소설임에도 아토다 다카시의 이야기는 현대에도 유효합니다.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무서울 수는 있다는 것은 진리 아닌 진리이잖아요. 옆집에 살고 있는 친근한 아저씨가 어느 날 추운데 고생한다면서 따뜻한 커피에 독을 타서 줄 수도 있잖아요? 또는 옆집 할머니가 바쁜 주부를 위해 아기를 봐준다고 하면서 죽일 수도 있고요. 현대사회의 공포는 바로 선한 얼굴 뒤에 숨은 악의가 아닐까 싶어요. 선과 악은 하나다. 그런 뫼비우스의 띠 같은 잔잔한 이야기와 충격적인 반전이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정신없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암튼 일본의 많은 단편소설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마지막의 한 문장을 통해 서늘하고 오싹한 공포감을 안겨주는 단편소설 작가로는 최고이지 않나 생각해요. 정말 그 짧은 소설에 이런 반전을 숨길 수가 있는 건지. 물론 현대사회의 공포를 담고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하나, 마지막의 반전이 신선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네요. 여기저기서 조금 들어본 이야기일 수도 있고,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예측이 가능하기도 하거든요. 그 당시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요즘처럼 반전소설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조금 촌스럽기는 합니다. 사실 반전도 나름대로 재미있지만, 이 소설은 반전보다는 그 반전에 숨겨진 서늘한 공포를 즐기는 것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네요.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는 표제작입니다. 사실 표지와 제목만 보면 사랑 이야기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분홍빛 냉장고에 있는 작은 물건을 자세하게 보지 않으면 정말 사랑 이야기로 속겠더군요. 암튼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는 (반전이 있는 소설이라 뭐라 말하기가 힘든데) 마지막이 정말 소름 돋더군요. 사업에 실패하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며 그런 자신의 무능력으로 아내를 의심하는 한 초라한 남성의 어긋나버린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작품인데, 그럴 수도 있겠다는 현실감에서 오는 서늘한 공포가 아주 잘 녹아들어 간 작품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행복통신>은 조금 따뜻한 이야기인데, 그러한 결말에 다다르기 까지 작가가 깔아놓은 복선이 아주 재미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사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초자연적인 공포를 다룬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조금 우연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인과관계가 뚜렷한 이야기이네요. <취미를 가진 여자> 이 작품도 아주 걸작입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하는 예상을 뒤집는다고 할까요? <기묘한 나무>는 오히려 요즘 현대사회와 더 잘 어울리는 소설이 아닐까 싶어요. <최후의 배달인>은 어디선가 보거나 들은 이야기 같아서 신선함은 조금 떨어졌습니다(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 이야기는 들은 기억이 나거든요). <나는 먹는 사람>은 결말이 예상 가능한 작품이지만, 결말 그 자체보다는 인간의 기이한 욕망이 주는 서늘한 공포가 무척 소름 돋게 다가 온 작품입니다. 사랑해야 할 대상인 인간을 기이한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결말 자체가 저는 참으로 불쾌하고 기분이 나쁘더군요. 사실 그건 소설 속의 그가 아닌 제 자신일 수도 있거든요.

아토다 다카시의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에는 총 18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일이 언급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네요. 반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고 해서 느낌 자체를 말하는 것도 역시나 그렇고요. 제목과 표지에 속지 마세요. 말랑말랑한 소설은 절대 아니거든요. 블랙유머라고 해야 할까요? 암튼 서늘한 공포와 웃음이 함께 떠오르는 작품입니다. 18편의 단편 하나하나 재미있습니다.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을뿐더러 마지막의 반전과 그리고 그 반전에 숨겨져 있는 서늘한 공포, 그리고 독자 스스로 그 결말을 상상하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또 다른 공포. 상상하는 것의 즐거움을 주는 단편소설들이지 않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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