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죽지못한 파랑
오츠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개처럼 울부짖으며 선생님의 머리를 노려 벽돌로 내리쳤다.

양은 조용히 잡아먹히는 먹이가 된다.

하지만 그래서는 끝장이다. 왜냐하면 그보다 분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벽돌을 쳐들었다.

초등학교에 갓 부임한 젊은 남자선생. 캠프를 좋아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어디에서나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그런 건장한 젊은 선생입니다. 선생은 교육자라는 사고방식은 선생들(또는 그들에게 전염된 부모들)이 강제로 주입한 의식일 뿐 그들은 그냥 돈과 진급에 목마른 월급쟁이일 뿐입니다(물론 아닌 선생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츠이치의 이번 작품 <미처 죽지 못한 파랑>은 그런 선생에 대한 노골적인 증오를 드러냅니다(초등학교 5학년 소년이 벽돌로 내리치고 싶을 정도면 말 다했죠). 또한 추한 동정심도 살짝 보입니다. 갓 부임한 젊은 선생 하네다는 마사오라는 어린 소년을 왜 그렇게 괴롭혔을까요? 가사실에 끌고 가서 싸대기를 때리고, 욕실에 감금시켜 놓고 구타를 하며, 심지어 수면제를 먹이고 죽이려고까지. 이거 선생 맞습니까?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나 '한국교총' 뭐 암튼 이런 곳에서 또 비도덕적이다, 반윤리적이다라는 이유로 또 19금 금서를 때리지는 않을까 심히 걱정스럽네요. 사실 소설은 허구입니다(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기는 하지만). 스스로 당당하다면 이런 소설 가볍게 넘길 수 있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심하게 때리는 선생도 많이 봤고, 부모들에게 돈 받아 처먹으면서 그런 부모의 자식들에게 특혜를 주는 선생도 많이 봤고, 승진을 위해 교장과 교감에게 아부를 위해 학생들을 희생양 삼은 선생들도 많이 봤고, 기타 등등 정말 인간 이하의 선생을 많이 봤습니다. 선생도 인간입니다. 그리고 국가(회사로 치면 사장)로부터 돈을 받고 일을 하는 노동자고요. 그렇더라도 학생들에게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런데도 스스로는 교육자이며 인격자라고 생각을 한다는 것이죠. 암튼 좋은 선생도 많습니다. 선생에 대한 비판은 그만하죠. 암튼 <미처 죽지 못한 파랑>에서 선생은 참으로 악랄하게 그려집니다. 그 점은 집고 넘어가고 싶네요.

그렇다면 다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하네다 선생은 왜 마사오라는 어린 소년을 그렇게 괴롭혔을까요?

"……왜 저만 혼내셨던 거에요?"

"누구라도 상관없었어……."

"하지만, 해서는 안 될 일이었잖아요?"

"무서웠거든……."

교장이나 교감에게 인정받고 싶고, 학부모들에게도 인정을 받고 싶고, 학생들에게도 인정을 받고 싶은 그런 선생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교사, 학부모, 학생은 어쩔 수 없이 의견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죠. 하네다라는 선생이 택한 방법은 바로 왕따 소년을 한 명 만들어서 선생의 불만과 욕구, 그리고 학생들의 불만과 욕구를 해소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미사오라는 소년은 학교로부터, 선생으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학교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오츠이치의 소설 중에서는 아이들이 나오는 소설이 많은 것 같아요. 단편집 <ZOO>나 <GOTH>에서도 그렇고, <여름과 불꽃과 나의 시체>도 역시나 아이들이 나오죠. 아이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해맑은 웃음이 그의 (아이들이 주인공인) 소설에는 없습니다. 아이들은 고통스러워하고, 우울해 합니다. 그런데도 아이 답지 않게 정신연령은 높습니다(사실 소설의 주인공은 아이인데, 생각하는 것은 어른이에요. 조금 언발란스하죠. 저거 애 맞아? 싶을 정도로 언어 구사력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가끔은 이게 아이들이 주인공인 소설인지 헷갈리기도 해요. 이건 뭐 그냥 넘어가죠). 오츠이치의 장편소설의 제목 <암흑동화>가 떠오르더군요. 어린 아이가 등장하지만 무척 우울한 동화. 이번 느낌이 딱 그랬습니다.

사실 내용 자체는 조금 식상하기도 해요. 교사와 학생의 대립은 항상 있어 왔고, 또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환상) 이겨낸다는 것도 익숙한 이야기이고요. 극단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아이는 자신을 괴롭히는 선생에게 똑같은 폭력으로 대항함으로써 한 뼘 정도 성장합니다. 이런 식의 성장소설은 뭐랄까? 조금 악취미 같기도 해요. 그러한 점이 오츠이치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아동성장소설도 오츠이치가 그리면 이렇게 어두워지는 것 같아요. 암튼 재미있는 작가 같아요. 개인적으로 <GOTH>나 <암흑동화>, <ZOO>를 무척 좋아합니다. 위의 작품들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부분 부분의 느낌은 비슷하기도 합니다. 단편소설에서는 반전의 묘미가 조금 많이 보이는데, 그런 반전은 없습니다. 그래도 역시나 아이가 선생을 벽돌로 내리치는 장면은 반전보다도 충격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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