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터드 카본 1 밀리언셀러 클럽 88
리처드 K. 모건 지음, 유소영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런 멍청이들, 자기 머리로는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서 신념 체계를 통째로 삼켜 버린 저런 멍청이들도 언제나 있을 거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프로그램대로 착착 돈을 벌어들이는 가와하라나 뱅크로프트 같은 사람들도 있을 거야. 게임이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지, 규칙을 너무 자주 깨뜨리는 건 아닌지 감시하는 당신 같은 사람도 언제나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을 깨뜨리고 싶을 때, 메트족들은 트렙이나 나 같은 사람을 보내서 대신 시킬거야. 그게 진실이야, 크리스틴. 내가 150년 전에 태어났을 때도 그랬고, 역사책에서 읽은 내용을 보면 과거에도 그리 다르지 않았어. 이런 진실에 익숙해지는 게 좋아."

* 메트족: 가와하라, 뱅크로프트 모두 메트족입니다. 메트족은 엄청난 경제력과 권력으로 몸을 계속 갈아입으며 불로불사를 누리는 소수의 지배자를 뜻합니다.

 

* 트렙(이나 주인공 '나) : 살인청부업자나 메트족에 명령(또는 돈, 권력)에 의해서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윤리나 도덕, 책임의식은 없습니다. 돈을 받고 명령에 따라 사람을 죽일 뿐.

마지막 코바치(소설 속 주인공, 특파부대 요원 출신)의 이 마지막 말은 굉장히 시사 하는 바가 큽니다. 장르를 굳이 구분하자면 SF소설인데, 소설 속에 묘사되어 있는 모습은 현재의 우리나라(또는 다른 나라)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가 않습니다. 소수의 지배자와 그에 빌붙은 기생충 같은 인간들이 사회를 지배하고 죽지도 않으면서(끈질기게 대를 이으면서 그 생명력을 유지하죠) 계속 되풀이되죠. 그래서 코바치의 마지막 대사 "이런 진실에 익숙해지는 게 좋아."는 무척 슬프게 들립니다. 진실을 외면해야만 하는 현실이 슬프더군요.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그리고 역사책에도 달라지지 않는 진실이죠. 코바치는 특파부대 요원입니다. 잔인한 인간이고, 무수하게 많은 인간들을 죽였습니다. 전쟁이라는 허울뿐인 명분 앞에서 말이죠. 그렇다면 그런 코바치가 메트족을 처단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닙니다(개인적인 이유로 아무런 해도 없는 인간들을 무참히 살해하기도 하거든요). 그러나 스스로 각성하고 반성하는 모습은 보입니다. 물론 마지막에는 좋은 일도 하고요("뭔가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암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소설은 꽤나 통쾌한 소설입니다. 공고한 기득권 세력(메트족)이 한 사이코패스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되어질 때의 그 쾌감, 꽤나 짜릿합니다. 반체제, 혁명 소설치고는 꽤나 흥미롭습니다. 꽤나 정치적입니다. 역시 SF소설은 이런 주제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얼터드 카본>이 혁명 소설이라고? 물론 고리타분한 소설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제가 인상 깊었던 내용이 그런 내용일 뿐, 이 소설은 SF, 고어, 하드보일드, 느와르, 미스터리, 사이버펑크 등 다양한 장르의 잡종 교배입니다. 탐정은 아니지만 (탐정의 임무를 부여 받은) 까칠한 코바치가 메트족 뱅크로프트의 자살 원인을 밝히는 것이 기본적인 스토리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흡혈귀 같은 뱅크로프트가 자살을? 말이 안 되죠. 암튼 그 자살 원인을 밝히는 도중 의문의 존재들에게 죽음의 위협을 느낍니다.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이죠. 그런데 사건을 추리하는 도중에 겪게 되는 상황들은 SF적입니다. 코바치라는 인간 자체가 그렇거든요. 의식만 코바치일 뿐 몸뚱이는 악질경찰(?)이자 파트너인 여자경찰 오르테가의 남자 친구입니다. 그리고 300년이나 산 할머니는 20대 초반 여성의 몸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가상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고문들과 섹스들. 암튼 SF소설이나 영화에서 봤음직한 익숙한 설정들도 보이지만 좀 더 변태적이고 자극적입니다(이건 뭐 개인적인 취향입니다. <데몰리션맨>에서도 육체가 아닌 의식으로 섹스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조금 얌전하죠).

과연 뱅크로프트는 스스로 자살을 한 것일까요? 만약 자살이라면 그 이유는 엄청난 것이겠죠? 그들의 사고방식은 확실히 기득권자의 사고방식과 비슷한 것 같아요. 돈으로 육체를 사고, 인간들을 장난감 다루듯이 가지고 놀다 필요 없으면 그냥 버리죠. 암튼 나중에 밝혀지는 진실은 몹시 씁쓸합니다. 그나저나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브이 포 벤데타>)에 의해 영화화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브이 포 벤데타>를 재미있게 봐서 영화도 무척 기대가 됩니다. 가상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장면이 쉽게 상상이 안 되어서 영상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하드보일드 탐정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색다른 재미를 안겨주지 않을까 싶네요. 그나저나 메트족 부럽기는 부럽더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