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추리소설계의 마스터피스

이누가미 일족 ㅣ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명품', '걸작', '최고'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 <이누가미 일족>. 국내에 소개된 <혼진 살인사건>, <팔묘촌>, <옥문도>, <악마의 공놀이 노래> 모두 정말 제게는 최고의 작품이었습니다. 추리소설을 가장한 공포소설이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들도 많이 죽고, 죽는 방법도 끔찍하고(개인적으로는 아트라 생각하지만), 엽기적이며, 때로는 비윤리적이기까지 합니다. 칼로 무조건 난도질을 하는 품격이 낮은 싸구려 공포소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그의 소설에 묘사되는 살인은 정말 기이하며 아름답습니다. 시체를 전시하며 즐기는 고약한 취미일 수도 있지만요. 이런 시체를 이용한 트릭은 정말 높게 평가해 주고 싶네요.

긴다이치 코스케가 심심할 때 쯤 역시나 엄청난 사건이 터집니다. 사건을 의뢰한 변호사를 자신의 방에서 시체로 만나다니, 최고의 명탐정 무척 자존심이 상합니다. 재벌 이누가미 사헤, 이 할아버지도 참 고약합니다. 이누가미 일족의 피를 부르는 유언장을 남기고 죽습니다. 암튼 역시나 돈이 문제이죠. 돈 앞에는 성인군자 따로 없잖아요.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릴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죽여야 나에게 이익이 많이 돌아올까? 암튼 이누가미 가의 엄청난 피바람을 예고합니다. 전쟁에서 돌아 온 첫째 손자는 얼굴이 망가져서 하얀 가면을 쓰고 나타나고, 둘째와 셋째는 유산 상속의 주요 인물인 이누가미 사헤의 은인의 손녀인 '다마요'에게 잘 보이려고 억지스러운 급만남(?)을 가집니다. 아, 안타깝게도 손자들의 어머니는 모두 다릅니다. 이누가미 가문의 상징인 '요키(도끼', '고토(거문고)', '기쿠(국화)'의 모양으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동기는 확실합니다. 이누가미 가문의 재산이죠.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일까? 알리바이도 확실하고, 내부 사람은 아닌데, 범인은 잡히지를 않고, 사건이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일본 추리소설에는 은근히 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살인을 다룬 소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가족관계도 조금 일그러져 있고요.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도 그렇고요. 흔히들 우리나라 사람은 그러한 것을 변태, 엽기라고 부르죠. 스포일러일 수 있으니 소설 말고 영화를 예로 들면, 미이케 다카시의 <비지터 Q>를 봐도 가족관계가 이상하죠. 왕따 당하고 친구들에게 맞는 자식을 카메라로 찍는 아버지, 딸(창녀)에게 돈을 주고 관계를 갖는 아버지, 어머니와 (다 큰) 자식이 서로 젖을 주고 먹는 장면이라 던지 암튼 '변태'라고 생각 될 정도로 가족관계가 이상합니다. 추리소설에도 그런 이해가 가지 않는 가족관계를 다룬 소설들이 많죠. 암튼 그 이유야 모르겠지만, 정서적인 면에서의 충격은 확실히 큰 것 같아요<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역시 그렇죠). 사실 이런 기이한 가족관계(유언장만 봐도 그렇고 차후에 엄청난 비밀들이 차례로 밝혀집니다)는 요코미조 세이의 작품에서는 그다지 새롭지는 않죠(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가족이라던 지 마을이라던 지 대부분 작은 공동체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지죠. 임권택 감독의 <안개마을>이 갑자기 생각나는군요. 여담으로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 좋아한다면 임권택 감독의 <안개마을>은 꼭 보세요). 그리고 시체를 전시하는 악취미도 역시나 새롭지 않고요. 물론 새롭지 않다고 나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이런 기존의 작품과 비슷한 부분도 역시나 재미있습니다.

<이누가미 일족>이 국내에 소개된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과 차별되는 점은 바로 범행 과정과 범인입니다. 이누가미 가문에 연쇄적으로 벌어졌던 살인사건의 의문들이 마지막 긴다이치 코스케의 추리에 의해 하나 둘씩 밝혀질 때의 그 충격, 한편으로 플롯의 완벽함, 정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리고 그러한 사건 뒤에 조용하게 꽈리를 틀고 있는 인간의 탐욕과 사악함, 추악함.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사건 시작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그것. 정말 완벽하다고 생각합니다. 1950년대에 발표된 소설임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트릭이나 반전 등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야기 자체가 무척 흡입력이 있습니다. 역시 요코미조 세이시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것 같아요.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