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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TH 고스 - 리스트 컷 사건
오츠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100명이 있으면 살아가는 방식도 100가지가 있고, 아마 사람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순수한 재미를 추구하는 오츠이치의 미스터리 호러 연작 소설집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어디로 갈지 정말 예측 불허의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추리소설의 느낌보다는 공포소설의 느낌이 많이 나는 소설이었습니다. 그리고 연작소설이기는 하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완결성을 갖추고 있네요. 그리고 꽤 잔인하면서 슬프고 아름답습니다. 첫 번째 스타트를 끊은 작품은 <암흑계(GOTH)>입니다. 이 작품은 가볍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캐릭터를 소개하는 장이라고 할까요? 또는 이제부터 마음 단단히 먹고 오츠이치가 안내하는 암흑세계로의 초대라고 할까요? 소설의 화자인 고등학생 소년 '나'와 이상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힘을 가진(물론 마술을 부린다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검은 옷의 검은 구두 등 온통 암흑(GOTH) 취향의 고등학생 소녀 '모리노'의 취향이나 성격을 알 수 있는 짤막한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주인공 소년 '나'는 살인사건이나 기이한 사건을 관찰하거나 조사하는 것이 취미입니다. 사람이 죽어도 도와 줄 생각을 하는 착한 소년은 절대 아닙니다. 죽을 때 어떤 반응을 하나 지켜보는 것을 즐기는 취향이라고 할까요?
"모리노와 나는 둘 다 일반적인 범주에서 벗어난 특수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서로 손에 넣은 시체 사진을 보여 주며 살아가고 있다."
<리스트 컷 사건>은 주인공 '나'의 성격의 일부분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이자 현대인의 이상 병리현상(원인을 알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증후군들)을 파헤친 작품입니다. 리스크 컷 증후군(Wristcut syndrome)이라고 있죠. 만성적으로 손목을 긋는 등 자해행위를 반복하는 증후군. 암튼 손만 보면 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형이나 고양이, 사람 등의 손목을 잘라서 냉장고에 수집을 하고 보면서 흐뭇해합니다. 정신이상자라고 단순하게 말하기는 애매한 것이 이런 행위를 하는 당사자들도 왜 자신이 이런 일을 하는지 이해를 못합니다. 그런데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르죠(5번째 작품 <흙>에서도 그런 인물이 나옵니다. 주인공 '나'도 그런 인물이고요). 그러니까 손목 수집가는 살인자는 아닙니다. 손목만 자르지 죽이지는 않거든요. 미리 밝혀두지만 모든 사건에는 주인공 '나'가 얽혀 있습니다. <리스트 컷 사건>에서도 주인공은 범인을 만나기 위해(잡으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사실 범인을 잡는 것에는 흥미가 없어요) 작은 음모를 꾸밉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비밀, 주인공의 성격을 정말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입니다.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 치고는 오히려 살인자보다 더 무섭습니다.
<기억>이라는 작품은 주인공 '나'의 여자 친구(?) '모리노'라는 소녀의 쌍둥이 자매이야기입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이들이 그렇게 순수하지는 않더군요. 사건을 숨기는 짓도 잘하고요(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면 거짓말로 선생들을 속이는 학생들이 많았거든요. 교모하게 슬픈 표정을 지은 채 말이죠). 사이코 살인마의 이야기에서 개의 이야기, 이제는 자매 이야기. 앞서 얘기했듯이 정말 예측 불허입니다. 이 자매에게는 독특한 놀이가 있습니다. 시체 장난이라고 할까요? 거짓 자살로 어른들을 놀래키는 재미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그런데 우연한 장난으로 인해 '모리노'의 쌍둥이 여동생이 죽습니다. 어두컴컴한 성격의 주인공 '나'는 또 모리노의 죽은 쌍둥이 여동생의 집을 구경하러 갑니다. 이 녀석의 취미는 사람 죽은 장소에 가는 것이거든요. 이 작품은 모리노를 위한 작품입니다.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모리노라는 한 인간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는 작품이에요. 주인공 '나'의 집 방문을 통해 감춰 두었던 비밀이 밝혀지는데, 신선함 면에서는 조금 부족했습니다. 조금 익숙한 설정이기도 했고요.
<흙>이라는 작품은 오츠이치의 단편소설 <세븐룸>와 느낌이 많이 비슷했습니다. 물론 감금과 살인이라는 설정뿐만 아니라 느낌도 많이 비슷하더군요. 단, 이번 작품 <흙>은 <세븐룸>과는 다르게 감금시켜서 살인을 저지르는 자에 대한 묘사가 무척 풍부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트릭도 많고요. 동네 주민들에게는 친절한 아저씨로 통하는 살인자, 그에게는 자기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이상한 마음이 있습니다. 관을 만들고 땅을 파서 사람을 매장시켜서 죽이고 싶은 충동을 매일매일 억누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 충동을 억제할 수 없어 사람을 죽이기 시작합니다. 중간 중간의 반전과 마지막의 조금은 충격적인 결말까지 꽤나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보통 추리나 공포소설은 범인이 잡히면 끝인데, 조금은 당황스러운(물론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을 준비했더군요.
<목소리>는 재미있는 트릭이 등장하는데, 역시나 예측 불허였습니다. 그리고 추리력이 떨어지는 역시나 속았고요. 앞의 작품들과 전혀 다른 스타일과 결말을 준비했더군요. 온라인서점의 책 소개에는 이 트릭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네요(되도록이면 온라인서점의 책 소개는 안 보시는 게 좋을 듯싶네요). 마지막 작품으로 정말 좋았습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