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랑정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임경화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마지막 반전의 소소한 충격과 함께 스산한 느낌이 물씬 풍겼던 작품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는 이런 스산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자수성가형 재벌 이치하가라의 의문의 화재사고. 우연찮게 그 사고 현장에 같이 있다가 사랑하는 남자 친구를 잃은 얼굴이 못 생겨서 능력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기리유 에리코'의 복수극. 소설이 출간된 지 10년이 넘게 흘렀지만 미모지상주의는 아직까지도 유효하죠. 여자의 미모와 남자의 능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 점점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암튼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자사원의 여자사원에 대한 성격과 미모를 순위 매기는 이벤트) 미모가 형편없다는 소리를 간접적으로 듣게 될 때의 그 충격과 고통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겠죠. 자신의 형편없는 미모 때문에 제대로 된 연애조차 꿈꿀 수 없었던 그녀에게 따뜻하게 다가왔던 사랑하는 남자친구. 복수를 꿈꾸지 않을 수 없겠죠.

 

<회랑정 살인사건>은 바로 미모를 중시하는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한 여자의 복수극입니다. 이치하가라의 유산 상속 문제를 앞두고 이치가하라 가(家)의 사람들이 회랑정으로 모입니다. 복수를 꿈꾸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화재사건의 원인이었고, 또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범인이 아니었다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기리유 에리코'가 노파로 변장을 하고, 반년 전 화재사고(자신의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죽인)의 범인을 밝히기 위해 회랑정으로 찾아갑니다. 이치가하라 가(家)의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불만을 표출합니다. 과연 재산 분배는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똑같은 자식이라도 어머니가 누구냐에 따라서 상속 받을 수 있는 유산에는 차이가 생깁니다. '저 자식만 죽는다면 나에게 좀 더 많은 돈이 들어 올 텐데…….' 1-2만원이 아닌 어마어마한 돈 앞에서 인간의 돈에 대한 이기심과 욕망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 오르죠. 과연 반년 전 화재사건의 범인은 누구인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답게(이런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지만) 가독성 하나는 엄청 좋습니다. 추리소설임에도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렵지가 않고(등장인물이 여러 명이 등장하더라도), 당연히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10여명의 사람이 모인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은 언제 읽어도 흥미롭죠. 노파로 변장한 '기리유 에리코'의 아슬아슬한 연기력도 긴장감을 주고요. 그리고 이치가하라 가(家) 사람들이 아무 의미 없이 말하는 듯한 말 속에 숨은 힌트, 그리고 경찰의 투입으로 인해 더더욱 긴장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엉뚱한 사람의 등장으로 인해 점점 꼬이는 사건들, 충격적인 반전과 스산한 결말. 암튼 추리소설로서 매력적인 요소들이 가득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무엇일까요?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런 소중함을 배신당하는데서 오는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죠. 가장 잔인한 짓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거짓 감정으로 남을 속이는 행위, 그로 인한 상처는 결코 치유되기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결말에서 미스터리한 사건이 속 시원하게 풀렸음에도 잔인한 상처는 마음속에서 지워지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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