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를 치는 듯한 씁쓸한 웃음

흑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8월

총 13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히가시노 게이고의 블랙 유머 소설집. '최종심사', '불꽃놀이', '과거의 사람', '심사위원' 이렇게 4편의 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설마)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출판사의 문학상을 둘러싼 작가와 편집자의 허풍과 속임수, 배신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4개의 단편소설은 연작 형태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같습니다. 문학상 후보에 다섯 번이나 올랐음에도 수상은 한 번도 하지 못한 이제는 한 물 간 작가, 그런 작가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출판사 편집장. 작가는 스스로의 위안인지 허풍인지 자신이 상을 못 받은 것은 자신의 작품의 질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심사위원들의 농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조금은 바보스러운 작가를 편집장은 자신들의 회사에 유리하도록 이용하고요. 암튼 비단 출판계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라면 다 이렇겠죠? 속고 속이며, 허풍을 떨고, 배신을 하고, 아부를 하고, 거짓 웃음을 짓고.

'거대유방 망상증후군'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두, 컵라면 용기, 심지어 사람의 머리까지 모두 거대한 유방으로 보이는 이상한 병을 앓고 있는 한 남자의 괴로움(?)을 표현한 이야기입니다. 경비 아저씨의 머리가 순간 거대 유방으로 보여 쓰윽 주물렀더니 이상하게 쳐다보는 경비 아저씨. 정신과 친구의 도움으로 치료를 하기는 하는데, 과연? '임포그라'는 정력에 목숨 건 남자들을 위한 것은 아니고, 그 반대의 약입니다. 남자들의 성욕을 감퇴시키는 약. 이런 약이 필요할까? 이런 약을 팔 수 있을까? 우려와는 달리 이 약은 불티나게 팔립니다. 아내들의 남편 바람 방지용으로 말이죠. 남편에게 커피에 이 약을 탔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죠? 아내 말고 남편이 밖에서 힘을 쓸 이유는 없잖아요. 물론 이 약을 먹지 않는다면, 그건 바로 밤의 아내와 정열적으로 불타오른다는 뜻이겠죠? 암튼 골 때리는 상황입니다. '사랑가득스프레이'는 얼굴 그럭저럭, 회사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남자가 이상하게 여자에게는 매력이 없습니다. 여자에게 매력을 줄 수 있는 '사랑가득스트레이'라는 약을 어느 박사가 개발하고, 남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사랑을 얻습니다. 그런데……. 웃음의 포인트는 여기입니다. 그 외 자신의 남자에게 헤어지자고 얘기한 후 자신을 스토커 달라는 여자의 이야기 '스토커 입문', 신데렐라 이야기를 비꼰 '신데렐라 백야행'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소설들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역시나 <독소소설>만큼 재미있습니다. 뭔가 뒤통수를 치는 듯한 씁쓸한 웃음도 역시나 있고요. 블랙 유머 소설의 마지막 <괴소소설>도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