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한 사냥꾼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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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란 언젠가 망가져 버릴 수레 같은 겁니다. 망가져 버린 뒤에 등짐을 져 나르기보다는 차라리 처음부터 스스로 지는 게 낫죠."(<일그러진 거울>)

 

 

"우리는 모두 쓸쓸한 사냥꾼이다. 돌가 갈 집도 없이, 거친 들판에 내던져진 외톨이다. 이따금 휘파람을 불어도 대답하는 것은 바람 소리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사람의 따스한 온기를 그리워한다."(<쓸쓸한 사냥꾼>)


작년에 출간된 <판타스틱> 창간호에 실린 미야메 미유키의 단편 <유월은 이름뿐인 달>에서 헌책 전문 서점인 '다나베 서점'의 주인장 이와 노인과 그의 손자 미노루를 처음 만났습니다. 헌책 전문 서점을 배경으로 이와 씨와 미노루가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연작 형태인 줄은 몰랐네요. 암튼 <유월은 이름뿐인 달>을 읽고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마지막 단편 <쓸쓸한 사냥꾼>을 읽은 지금 그러한 기분이 말끔히 해소된 느낌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연작소설 <쓸쓸한 사냥꾼>은 표제작 <쓸쓸한 사냥꾼>을 포함하여 <유월은 이름뿐인 달>, <말없이 죽다>, <무정한 세월>, <거짓말쟁이 나팔>, <일그러진 거울>의 총 6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헌책 서점이 배경인 소설이라(이와 씨와 미노루가 항상 등장하는) 6편의 단편소설에는 "책"이 등장합니다. 물론 그냥 아무 책이나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소설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책이 등장합니다. 처음 <유월은 이름뿐인 달>을 읽었을 때는 사실 이 소설 속의 <이와 손톱>이라는 책이 실제 존재하는 책인 줄은 몰랐습니다. <이와 손톱>을 읽고 나서 <유월은 이름뿐인 달>을 읽으니 좀 더 내용 이해가 쉽고(물론 <이와 손톱>을 몰라도 내용 이해에는 큰 상관이 없지만요.), 한층 재미가 있네요. 왜 살인자가 책에다가 붉은 글씨로 '이와 손톱'을 적었는지 책의 내용과 연관 지어 생각하니 좀 더 쉽게 이해가 되더군요. 책 이야기가 나와서 소설 속의 책 한권을 더 언급하자면 바로 <일그러진 거울>에 등장하는 야마모토 슈고로의 소설집 <붉은 수염 진료담>의 마지막에 실린 '얼음 아래서 돋아나는 새싹'입니다(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를 읽었을 때와 느낌이 조금 비슷했는데, 미야베 미유키가 <화차>란 작품으로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받았더군요. 묘한 인연입니다.). 암튼 '얼음 아래서 돋아나는 새싹'이라는 소설 속 책의 내용과 <일그러진 거울>이라는 소설의 제목, 그리고 <일그러진 거울>에 등장하는 유키코의 삶이 묘하게 일치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스스로를 거울에 가둬 놓고 살아가는 유키고, 우연히 발견한 (너무나 자신의 현재의 마음 상태를 잘 그린) '얼음 아래서 돋아나는 새싹'이라는 소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묘한 울림이 전해지더군요. 개인적으로 <쓸쓸한 사냥꾼>과 함께 이번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여담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중에서 <모방범>과 <화차>를 가장 좋아합니다.

 

 

<일그러진 거울>이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네요. 사실은 모든 작품들에 대한 느낌을 말하고 싶지만,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직접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쓸쓸한 사냥꾼>에 대해서만 살짝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모방범>의 원형이 된 작품이라는 출판사의 홍보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모방범죄를 다루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모방범죄를 저지르는 살인자, '잔인한 살인자의 뒤에서도 고독한 휘파람 소리와 공허한 바람소리가 들리지 않을까?'라는 이와 노인의 마지막 생각이 이 작품을 가장 잘 설명해 주지 않을까 싶네요. 사이코킬러? 아니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고독해서? 원한이나 복수에 의한 살인은 사실 그다지 쓸쓸하거나 고독하지는 않죠. 무언가 그래도 목적이 분명하니까요. 그러나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사람들, 따스한 사람들의 온기를 그리고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범죄를 통해 그러한 것들을 표출하는 사람들? 결국 그들 모두 쓸쓸한 사냥꾼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암튼 이번 작품은 여러 가지로 흥미 있는 요소가 많습니다. 우선 소설 속 책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노인과 손자 미노루가 사건을 해결하면서 또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 그리고 거창하지는 않지만 소소한 미스터리한 사건들. 사건 해결 뒤에 다가오는 왠지 모를 씁쓸함, 허탈함, 공허감, 그리고 따스함. 미야베 미유키는 인간에 대한 관찰력과 이해심이 정말 뛰어난 작가가 아닐까 싶어요. 그가 전달하는 주제는 언제나 저로 하여금 무언가를 생각하게끔 해 주는 것 같아요. 단순히 추리소설이라는 흥미적인 요소를 뛰어넘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와 사랑. 뭐 이렇게 느낌을 전달하면 유치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미야베 미유키는 그런 유치하다면 유치한 주제를 아주 흥미롭게 그리고 받아들이기 쉽게 전달하는 것 같아요. 암튼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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