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라비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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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의 제목을 "사랑의 경계를 허무는 소설"이라고 했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그의 소설이 '사랑'의 경계를 허무는 것인지, 그의 사랑이 지금껏 '소설'이라 불리는 것의 경계를 허무는 것인지에 대해 나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고, 그것이 꽤 슬프고 반갑다는 것이다.

 박형서의 소설집 『끄라비』에는 자전소설 「어떤 고요」를 포함한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내가 박형서 작가를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자전소설 때문이다. 아마 이 작품을 읽어본다면 그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었던 사람도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될 것이다. 지나치게 작가론적인 작품 해석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자기 자신을 의도적으로 지우려는 고도의 계산이 아닌 이상 글 속에 작가의 삶과 세계관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삶은 한 편의 소설만큼 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나는 그의 자전소설을 다시 읽은 후에, 이번 소설집의 대표작인 「끄라비」를 읽어보았다. 작품의 표지에 금박으로 이집트 분위기가 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서 나는 끄라비가 이집트에 사는 사람의 이름일 거라고 기대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소설을 중반쯤 읽었을 때,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찾아보니 '끄라비'는 태국의 휴양지 이름이었다.

 내가 사람일 거라고 오해한 것이 무리가 아닌 것은, 지명이라는 이 '끄라비'가 주는 묘한 이름 같은 느낌 때문이기도 하지만 끄라비가 화자를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젠가 끄라비를 혼자 여행했던 화자는 어머니가 등장하는 꿈을 꾼 후, 자신의 상실감, 결핍을 깨닫고 끄라비를 다시 방문한다. 다시 찾은 끄라비는 자신이 미화해놓은 기억보다 아름다웠고, 그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즉각 그 욕구가 충족되는 장소였다. 그곳에서 화자는 "끄라비가 나를 좋아하고 내 일정을 보살펴주며, 사소한 느낌에도 주의를 기울여주는 느낌"을 받는다.

 주인공이 떠나려고 하자, 비를 뿌리고 연인과 재방문했을 때는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숙소에 모기떼가 들끓고 호텔 직원이 강도로 돌변하는 등) 끄라비는 확실히 사람 같다. 연인을 데리고 온 화자에 대한 집착과 질투를 폭우로 표현하는 끄라비 때문에 화자의 연인은 폭풍우에 쓸려갈 뻔했다. 그 상황에서 화자는 연인을 산 채로 데리고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그녀의 손을 놓아주지 않는다. 후에 가까스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깔끔하게 이별한다. 남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결혼 생활 후에 열대의 바다와 암녹색 환영들을 보게 된 화자는 자신도 모르게 끄라비를 다시 찾는다. "저 먼 인도차이나 반도에 자신의 마음과 공명하는 어떤 인간적인 의지가 도시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가 끄라비의 사랑을 모른 체하는 그 사이에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끄라비에서 화자는 석회암 언덕의 냄새를 맡으며 그곳의 풍경을 보고 만진다. 다시 비가 퍼붓고 오토바이 사고로 화자의 몸이 떠올랐다 다시 가라앉으면서 그는 '끄라비'를 이루는 한 부분으로 존재하다가 마침내 '끄라비'가 된다. 소설은 "그랬다. 나는 끄라비가 되었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그가 그를 사랑하는 대상이 되는 모습, 즉 경계를 허무는 모습은 육신이 서서히 부패하고 죽어가는 모습과 나란히 놓이게 되면서 기묘한 슬픔과 감동을 자아낸다.

 일반적으로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소설의 중심 인물로 내세운 것은 박형서만이 할 수 있는 시도일 것이다. 현실과 단절되지 않고 현실에 기반하여 가능한 멀리 달아나고 마구 뻗어나가는 그의 상상력은 역시나 이번 소설집에서도 돋보인다. 아직 모든 단편을 읽어보지 않아서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확실히 독서를 즐겁게 해주는 몇 안 되는 작가다. 이상한 슬픔을 선사하는 '농담의 악마'이기도 하고.

(다른 작품들은 좋아하는 과자를 아껴먹는 심정으로 조금씩 읽어볼 생각이다. 또 할 말이 있으면 덧붙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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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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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나는 토마스 핀천의 대표적인 장편소설 <제49호 품목의 경매>라는 책을 읽으려다 포기한 적이 있었다. 재미있다는 주변의 평가와 달리, 조금의 난해함과 복잡함을 견뎌낼 수 없었던 나는 그의 책을 책장 한쪽 귀퉁이에 밀어놓고 한동안 그를 잊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핀천의 초기 단편이 수록된 <느리게 배우는 사람>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나에게 일종의 도전 같은 것을 불러일으켰다.

 한번 포기했던 전력이 있는 작가의 작품이어서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지만, 우려했던 것과 달리 나는 그의 단편들을 모두 읽어냈다. 사실 그의 단편들을 읽기 이전에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제법 긴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작가의 서문이었다. 이십년 전에 쓴 자신의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엄청난 충격이었음을 고백하면서, 그래도 그 어린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처럼 행세하기로 했다는 작가의 말은 솔직함과 진정성이 묻어났다.

 이 소설집에 실린 5편의 단편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로우랜드>이다. 가장 좋아한다는 것은 아마 가장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공과대학을 다니다 영문학으로 전과를 한 이력과 항공기 회사인 보잉사에서 근무를 한 경험 탓에 그의 작품 곳곳에는 과학과 인문학이 마구 넘나들고 있는데, 과학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과학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작품일수록 읽기가 힘들었다.

 <로우랜드>에는 플랜지와 씬디 부부가 등장한다. 플랜지는 변호사 사무실에 출근도 하지 않고 청소부인 친구 로코와 하루종일 포도주를 마시면서 보낸다. 씬디는 플랜지가 아마도 동물애호협회 회원일 거라면서 남편의 친구들을 죄다 동물에 비유하며 싫어한다. 마침 그때 피그 보딘(씬디와 결혼하기 전에 총각파티를 열어주겠다면서 몇 잔의 술을 마시게 하고 플랜지를 몇 주 동안 연락두절 상태로 만들었던 친구)이 등장하면서 씬디의 인내심은 폭발하고 만다. 모두 다 나가라는 말을 듣고 친구들과 함께 집을 나온 플랜지는 청소부인 로코의 친구가 있는 쓰레기 폐차장으로 간다.

 폐차장에서 매트리스를 주워서 잠을 자려던 플랜지는 어린 소녀가 부르는 소리에 밖으로 나가 그녀를 따라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당도하게 된다. 예전에 테러리스트들이 파 놓은 굴들을 통과해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곳에서 어린 소녀는 점쟁이가 앵글로 남자가 자신이 남편이 될 거라고 했다면서, 아내가 있다고 말하는 프랜지에게 계속해서 자신과 살자고 한다. 바닷속 같고 자궁 속 같은 그 방에서 난감해하는 플랜지의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한 가정의 성실한 남편이 되길 거부하는 욕망이 드러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은밀한 통합>은 인종주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동네 친구들과 흑인 알코올중독자를 도와주려고 하는 에피소드나 흑인이 이사오면 그들을 괴롭히는 부모님들을 보면서 드는 감정들에서 인종주의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인식이 드러나 있었다. intergration이라는 단어에는 흑인과 백인 아이들이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뜻도 있어서, 제목과 이야기가 잘 연결된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사실, 이번에도 핀천의 작품을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읽어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할아버지 작가를 사랑해줘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은 약력의 이 부분에서였다. 나는 그가 신비주의를 고수하고 자기 노출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검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사진은 그의 청소년기 사진 두 장 정도가 전부이다. 그런 그가 만화 <심슨네 가족들>에 얼굴을 가리고 까메오로 두 번이나 출현했다는 사실은 어딘지 모르게 귀여운 구석이 있다.

 대가이자 위대한 작가라고 칭송받는 토마스 핀천의 풋풋한 청년시절의 사유들을 엿보고 싶은 독자들은 주저하지 말고 이 소설집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내 생각에 그는 꽤 귀엽고 재미있는 할아버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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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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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만치 않은 분량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비로소 이 책의 제목인 자유로운 삶의 가장자리에 닿은 듯한 기분이었다.

  이 책은 이민 1세대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 우 부부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대학에서 공부할 전공까지 국가에서 정해주었던 시기에 중국인 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이후에 아내 핑핑도 미국으로 건너오지만 중국 정부는 그들 부부가 미국에 정착할 것을 염려해 아들인 타오타오는 중국에 놔두고 가도록 했는데, 소설은 타오타오를 미국으로 데려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후 부부는 아들과 함께 미국에서 생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학생운동에 참가하던 가 반체제 인물로 감시를 당하게 되면서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임을 직감하게 된다. 그 결과, ‘는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서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온갖 일을 하기 시작한다. 학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삶이 이리저리 요동치면서 한 인간으로 그저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해나가는 모습이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돈과 명예를 위해 체제에 순응하는 인물이나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내면서 스스로를 기만하는 인물 등 '우'의 주변 인물들은 그의 삶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일 뿐이다. 그런 주변 인물들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글을 쓰기 위해 애쓰는 의 삶을 부각시켜준다.

  사실 소설의 내용은 단순하다고 할 수 있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나열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만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개인과 국가’, ‘자유와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한 개인이 그의 뿌리가 되는 국가를 버릴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내 경우에 요즘 자주 드는 물음이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이 소설에서 파시즘이 국가가 개인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국가를 다른 모든 것에 선행하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국가개인자유로운 삶을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과연 그 개인은 그 국가의 일원으로 살기를 거부할 수 있을까.

  불편함과 쏟아지는 비난을 감내하면서도, 주인공 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몸소 찾아나간다. 내가 보기에 그는 미국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했고, 아플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싶어 했을 뿐이다.

  동시에 그는 줄곧 시인이 되길 원했다. 식당에서 서빙을 하면서도, 건물의 경비원을 하면서도, 자신의 식당을 갖게 되어 요리사로 일하면서도 그가 일관되게 원했던 것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빚을 갚는 등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활의 조건들이 마련되자, ‘를 쓸 수 없는 또 다른 핑계거리를 찾기 시작한다. 새로 생긴 딸아이의 출산에 온갖 희망을 걸어 보는가하면 영감을 불어넣어줄 첫사랑을 다시 만나러 가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는 유산되고 다시 만난 첫사랑은 예전의 그녀가 아니다.

  어찌 보면 한 인간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주변 환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 드는 대목이었다.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해소되었음에도 자신이 진정 원하던 것을 하지 않고 다른 장애물을 애써 찾으려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나 결국 는 또 다른 핑계거리를 찾는 일을 멈추고 식당을 처분한 후 모텔에서 일을 하며 를 쓰기 시작한다. ‘가 시인이 되었을지, 그의 시가 사람들로 사랑을 받았을지는 알 수 없다. 소설은 가 그러한 생활을 구축하는 데에서 끝이 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확실히 그가 그동안 그를 얽어맸던 주변 상황들에서 벗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그가 그 자신으로부터도 벗어나 비로소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건 아마 그가 더 이상 새로운 핑계를 찾으려 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그냥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 아닐까. 읽는 이에게도 자유로움을 선사하면서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게 하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또한 개인은 사회에 속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음에도, '우'의 삶을 통해서 사회를 능가하는 한 개인의 가능성을 엿본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고 위로가 되는 소설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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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한강, <소년이 온다>

 

  절묘한 시기에 출간된 한강의 여섯번째 장편소설. 여리여리한 문체 속에 강한 씨앗을 품고 있었던 그녀의 소설들은 읽는 이에게 확실한 위로를 주곤 했다. 그런 그녀가 쓴 광주에 대한 이야기. 작가와 소재 모두 매력적이어서 거부할 수가 없다. 신형철의 평론처럼 "한강을 뛰어넘는 한강의 소설"이 될 것만 같은 작품이다. 그녀가 소설을 쓰는 동기라고 말했던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끈질긴 물음의 대답이 될 것 같기도 하다. 단지 과거에만 머무르는 광주이야기가 아닌, 지금 현재의 이야기가 되게 하는 서술방식도 무척 기대된다.

 

 

 2. 손홍규, <서울>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래서 나만 사랑해주고 싶은 작가, 손홍규의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니 반가운 마음이다. 이번 소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동생과 함께 살아남은 소년의 이야기라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울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기대된다. 어떤 이유로 우리의 서울은 폐허가 되었을까. 사실 작가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서울 모습을 그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주변의 소박한 인물들을 우직하게 사랑해주고 있는 작가의 시선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번 소설 역시 기대가 된다.

 

 

3. 박형서, <끄라비>

 

 소설집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던 작가 박형서의 소설집. 5월엔 내게 좋은 책, 내가 기다리던 책이 많이 나와서 한동안 잠잠했던 독서 욕구가 부글부글 끓는 듯하다. 기이하고 독특한 상상력으로 서늘한 재미를 주었던  그의 이번 소설집은 오랜만이어서 더욱 반갑다. 이 소설집에 실린 7편의 단편들은 과연 어떤 설정과 상상력, 농담들로 놀라움을 선사할까.

 

 

 

 

 4. 로맹가리, <밤은 고요하리라>

 

 로맹가리 탄생 100주년에 맞춰 출간된, 로맹가리가 말한 로맹가리 자신에 대한 책. 죽마고우와 나눈 거의 모든 분야에 관한 대담을 읽다보면 그와 그의 작품 모두를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가명으로 발표했으나 사후에 로맹가리의 소설로 밝혀진 <자기 앞의 생>을 읽고 그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던 차에 이런 책이 출간되었다니 어서 빨리 읽어보고 싶다. 영화 같았던 그의 삶, 모든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이는 데 성공한 그의 삶에 다가서는 데 도움이 될 것만 같은 책이다.

 

 

 

5. 오에 겐자부로,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오에겐자부로가 23세 때 발표한 첫 장편소설이라는 것과 어른이라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드는 요즘, 아이와 소년을 내세운 소설이라는 것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이 소설은 전쟁 말기 광기의 시대에 어른들 없이 감화원 소년들로만 이루어진 마을에서 그들만의 세계를 꾸려나가는 이야기라고 한다. 사회로부터 철저히 버려진 이들이 굶주림, 절망, 공포 속에서 그들의 세계를 꾸려가는 과정과 결말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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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조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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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라는 단어가 지닌 의미가 변화하기 시작하고, 친구라는 하나의 단어가 무수한 갈래로 나눠지는 경험을 하고 있을 무렵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밥을 함께 먹고 옆자리에 앉아주고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의 차원에서 서로 욕을 하고 바닥을 함께 뒹구는 특이한 개념의 친구로 넘어오기까지 나는 무수히 많은 친구를 만났다. 우정이라는 단어의 스펙트럼 역시 사랑 못지않게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그의 자전적 소설로, 그는 폐병으로 빌헬미네 산 병원에 입원했을 시기에 정신병으로 함께 입원했던 파울 비트겐슈타인과 우정이 깊어졌다고 회고하고 있다. 파울은 태어날 때부터 정신적으로 아픈 갓난아기였다. 그러나 그는 제대로 진단받지 못했고, 그에게 붙여지는 모든 병명들이 오류였음을 밝히는 병을 앓고 있었다. 파울은 자신을 지배하는 압도적인 광기에 스스로를 온전히 내맡겼다. 그 결과 그는 광기와 완전히 하나가 된 채로 살았다. 다른 사람들이 정신병이 없는 상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 반면, 파울은 자신의 정신병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평생을 그렇게 산 셈이었다.

  그러나 베른하르트에게 있어 파울은 미친 사람이 아니었고 오히려 정상인들보다 더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하나의 예로, 베른하르트가 오스트리아 빈의 학술원에서 상을 받을 때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그날 그는 새로 정장을 사 입고 매우 고조된 기분으로 상을 받으러 간다. 베른하르트는 그동안 자신을 무시하고 비난하던 오스트리아인들이 자신에게 최고의 상을 수상한다고 하니 기쁜 마음으로 이전의 시상식과는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고 시상식장에 가지만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자신을 알아보는 이는 없었고 객석의 중앙에 앉아 상 받기를 기다리는 그를 뒤늦게 찾아내서 왜 그곳에 앉아있느냐고 비난하는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파울은 크게 폭소를 터트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너는 저자들에게 이용당하기만 했어! 저자들이 너에게 똥물을 끼얹은 거라고!”

  다른 친구들이라면 어땠을까. 축 처진 베른하르트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어쩔 줄 몰라 하거나 거짓말으로라도 좋은 말을 건네서 베른하르트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파울의 한마디는 날카로웠지만 정확했다.

  파울의 정확함을 드러내주는 일화가 또 하나 있다. 베른하르트는 자신의 희곡 사냥클럽을 부르크 극장에서 초연하기로 한다. 그러나 부르크 극장의 배우들은 작가의 작품이 너무 어려워서 관객들이 조금만 이해하지 못한다 싶으면 그 즉시 작품을 쓴 작가의 뒤통수를 후려갈겨버렸다. 그날도 역시 배우들은 자신들이 공연을 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드러내면서 베른하르트의 작품과 연출을 묵사발로 만들어버렸다. 참을 수 없었던 베른하르트는 극이 진행되는 중간에 밖으로 나가버린다. 공연이 끝나고 나자 사람들은 공연이 성공적이었으며 엄청난 박수갈채를 받았다면서 베른하르트를 칭찬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파울은 너도 역시 부르크 극장의 멍청함과 교활함, 그리고 음험함의 희생양이 된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이 일이 큰 교훈이 될 거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베른하르트에게 있어서 파울은 언제나 진실을 말해주는 자였고, 그래서 그는 파울 덕분에 자신이 오스트리아의 문단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 러나 베른하르트는 파울의 장례식장에도 가지 못했고 그의 무덤을 찾지도 않았다. 어쩌면 파울을 쓸쓸하게 죽어가게 내버려두었던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베른하르트는 이 책을 쓴 것인지도 모른다. 기이하게 보이는 두 사람의 우정은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파울 같은 친구를 갖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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