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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평점 :
만만치 않은 분량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비로소 이 책의 제목인 ‘자유로운 삶’의 가장자리에 닿은 듯한 기분이었다.
이 책은 이민 1세대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 우 부부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대학에서 공부할 전공까지 국가에서 정해주었던 시기에 중국인 ‘우’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이후에 아내 핑핑도 미국으로 건너오지만 중국 정부는 그들 부부가 미국에 정착할 것을 염려해 아들인 ‘타오타오’는 중국에 놔두고 가도록 했는데, 소설은 ‘타오타오’를 미국으로 데려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후 ‘우’ 부부는 아들과 함께 미국에서 생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학생운동에 참가하던 ‘우’가 반체제 인물로 감시를 당하게 되면서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임을 직감하게 된다. 그 결과, ‘우’는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서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온갖 일을 하기 시작한다. 학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삶이 이리저리 요동치면서 한 인간으로 그저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해나가는 모습이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돈과 명예를 위해 체제에 순응하는 인물이나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내면서 스스로를 기만하는 인물 등 '우'의 주변 인물들은 그의 삶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일 뿐이다. 그런 주변 인물들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글을 쓰기 위해 애쓰는 ‘우’의 삶을 부각시켜준다.
사실 소설의 내용은 단순하다고 할 수 있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나열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만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개인과 국가’, ‘자유’와 같은 거대 담론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한 개인이 그의 뿌리가 되는 국가를 버릴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은, 내 경우에 요즘 자주 드는 물음이어서 더욱 흥미로웠다.
이 소설에서 ‘우’는 ‘파시즘’이 국가가 개인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국가를 다른 모든 것에 선행하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과연 그 개인은 그 ‘국가’의 일원으로 살기를 거부할 수 있을까.
불편함과 쏟아지는 비난을 감내하면서도, 주인공 ‘우’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몸소 찾아나간다. 내가 보기에 그는 미국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했고, 아플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싶어 했을 뿐이다.
동시에 그는 줄곧 ‘시인’이 되길 원했다. 식당에서 서빙을 하면서도, 건물의 경비원을 하면서도, 자신의 식당을 갖게 되어 요리사로 일하면서도 그가 일관되게 원했던 것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빚을 갚는 등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활의 조건들이 마련되자, ‘시’를 쓸 수 없는 또 다른 핑계거리를 찾기 시작한다. 새로 생긴 딸아이의 출산에 온갖 희망을 걸어 보는가하면 영감을 불어넣어줄 첫사랑을 다시 만나러 가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는 유산되고 다시 만난 첫사랑은 예전의 그녀가 아니다.
어찌 보면 한 인간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주변 환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이 드는 대목이었다.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해소되었음에도 자신이 진정 원하던 것을 하지 않고 다른 장애물을 애써 찾으려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나 결국 ‘우’는 또 다른 핑계거리를 찾는 일을 멈추고 식당을 처분한 후 모텔에서 일을 하며 ‘시’를 쓰기 시작한다. ‘우’가 시인이 되었을지, 그의 시가 사람들로 사랑을 받았을지는 알 수 없다. 소설은 ‘우’가 그러한 생활을 구축하는 데에서 끝이 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확실히 그가 그동안 그를 얽어맸던 주변 상황들에서 벗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는 그가 그 자신으로부터도 벗어나 비로소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건 아마 그가 더 이상 새로운 핑계를 찾으려 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그냥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 아닐까. 읽는 이에게도 자유로움을 선사하면서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게 하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또한 개인은 사회에 속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음에도, '우'의 삶을 통해서 사회를 능가하는 한 개인의 가능성을 엿본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고 위로가 되는 소설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