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라비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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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의 제목을 "사랑의 경계를 허무는 소설"이라고 했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그의 소설이 '사랑'의 경계를 허무는 것인지, 그의 사랑이 지금껏 '소설'이라 불리는 것의 경계를 허무는 것인지에 대해 나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고, 그것이 꽤 슬프고 반갑다는 것이다.

 박형서의 소설집 『끄라비』에는 자전소설 「어떤 고요」를 포함한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내가 박형서 작가를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자전소설 때문이다. 아마 이 작품을 읽어본다면 그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었던 사람도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될 것이다. 지나치게 작가론적인 작품 해석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자기 자신을 의도적으로 지우려는 고도의 계산이 아닌 이상 글 속에 작가의 삶과 세계관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의 삶은 한 편의 소설만큼 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나는 그의 자전소설을 다시 읽은 후에, 이번 소설집의 대표작인 「끄라비」를 읽어보았다. 작품의 표지에 금박으로 이집트 분위기가 나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서 나는 끄라비가 이집트에 사는 사람의 이름일 거라고 기대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소설을 중반쯤 읽었을 때,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찾아보니 '끄라비'는 태국의 휴양지 이름이었다.

 내가 사람일 거라고 오해한 것이 무리가 아닌 것은, 지명이라는 이 '끄라비'가 주는 묘한 이름 같은 느낌 때문이기도 하지만 끄라비가 화자를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젠가 끄라비를 혼자 여행했던 화자는 어머니가 등장하는 꿈을 꾼 후, 자신의 상실감, 결핍을 깨닫고 끄라비를 다시 방문한다. 다시 찾은 끄라비는 자신이 미화해놓은 기억보다 아름다웠고, 그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 즉각 그 욕구가 충족되는 장소였다. 그곳에서 화자는 "끄라비가 나를 좋아하고 내 일정을 보살펴주며, 사소한 느낌에도 주의를 기울여주는 느낌"을 받는다.

 주인공이 떠나려고 하자, 비를 뿌리고 연인과 재방문했을 때는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숙소에 모기떼가 들끓고 호텔 직원이 강도로 돌변하는 등) 끄라비는 확실히 사람 같다. 연인을 데리고 온 화자에 대한 집착과 질투를 폭우로 표현하는 끄라비 때문에 화자의 연인은 폭풍우에 쓸려갈 뻔했다. 그 상황에서 화자는 연인을 산 채로 데리고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그녀의 손을 놓아주지 않는다. 후에 가까스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깔끔하게 이별한다. 남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결혼 생활 후에 열대의 바다와 암녹색 환영들을 보게 된 화자는 자신도 모르게 끄라비를 다시 찾는다. "저 먼 인도차이나 반도에 자신의 마음과 공명하는 어떤 인간적인 의지가 도시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가 끄라비의 사랑을 모른 체하는 그 사이에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끄라비에서 화자는 석회암 언덕의 냄새를 맡으며 그곳의 풍경을 보고 만진다. 다시 비가 퍼붓고 오토바이 사고로 화자의 몸이 떠올랐다 다시 가라앉으면서 그는 '끄라비'를 이루는 한 부분으로 존재하다가 마침내 '끄라비'가 된다. 소설은 "그랬다. 나는 끄라비가 되었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그가 그를 사랑하는 대상이 되는 모습, 즉 경계를 허무는 모습은 육신이 서서히 부패하고 죽어가는 모습과 나란히 놓이게 되면서 기묘한 슬픔과 감동을 자아낸다.

 일반적으로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소설의 중심 인물로 내세운 것은 박형서만이 할 수 있는 시도일 것이다. 현실과 단절되지 않고 현실에 기반하여 가능한 멀리 달아나고 마구 뻗어나가는 그의 상상력은 역시나 이번 소설집에서도 돋보인다. 아직 모든 단편을 읽어보지 않아서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확실히 독서를 즐겁게 해주는 몇 안 되는 작가다. 이상한 슬픔을 선사하는 '농담의 악마'이기도 하고.

(다른 작품들은 좋아하는 과자를 아껴먹는 심정으로 조금씩 읽어볼 생각이다. 또 할 말이 있으면 덧붙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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