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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재미 탐구 - 재미없는 영국 남자의 재미 고찰
마이클 폴리 지음, 김잔디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마이클 폴리는 그의 전작 《행복할 권리》에서 행복은 부조리한 삶을 살아가고 견뎌나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우연한 산물이라고 말했다. 현재 주어진 것에서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단서와 방법을 찾아내는 삶의 태도와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이번 책 《본격재미탐구》는 현대인들이 열광적으로 찾아다니는 재미가 무엇이고 어떻게 즐기는지에 관하여 문화사적, 현상적으로 살펴 본 만만치 않은 책이다.
근대 이전에는 영혼 구원이, 현대에는 돈벌이가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였다면 포스트모던 세대에는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심지어 전쟁마저도 재미를 느끼고 싶어 한다. 재미는 의미가 모호하고 의식적으로 추구하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행복과 비슷하다. 특이한 점은 재미가 최근에 나타난 현상으로 개인적이기보다는 공동체적 성격을 띠고 있고 현재는 종교까지도 대체하는 양상이다. 사실 재미의 개념은 완전히 현대적이지만 좀 더 조사해 보면 선사시대부터 치러 온 의식과 연결되어있다는 점에서 복잡하고 역설적이다.
저자는 의식, 초월, 집단, 권태, 불안, 진자, 놀이, 일탈, 쾌락주의를 통해 재미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이교도에서 시작된 핼러원 의식은 기독교를 거쳐 일반 대중이 좋아하는 놀이가 되었다. 최근 문신이 인기를 얻는 것은 고대 예술의 부활을 의미하는데 어린이 행사장에서 페인트 페인팅을 자주 접하게 된다. 키에르 케고르는 “신은 지루했기 때문에 인류를 창조했다”고 말한 바 있는데 그러한 권태가 현대에 와서 극심해졌기 때문에 재미를 추구하는 현상이 심화된 부분이 있다. 저자는 현실에 대해서 비관주의자들이 더 잘 이해한다해도 독자들은 낙관주의를 선택하는 편이 낫다고 독려한다. 놀이는 다양한 방법으로 불안과 권태를 잠재우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안 하느니 성인용 컬러링북과 점 잇기 책이라도 사러 나가는 것이 낫다고.
저자는 춤, 익살, 성, 휴가, 게임, 종교, 정치의 분야에서 재미 즐기기를 문화사적이고 역사적이며 현상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고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춤을 배우고 유람선을 타고 크루즈 여행을 하며 신앙이 없는 종교를 원하며 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보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최근의 재미를 추구하는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재미는 자아도취와는 거리가 멀고 개인주의를 거부하며 집단 소속감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재미를 단순히 쾌락주의로 무시하기 보다는 현대의 결핍과 필요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모던의 시대를 지나면 전근대의 문화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한다. 확실히 먹고 움직이고 자고 노는 방식이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주위에 부부가 함께 스포츠 클럽에 가입하거나 드럼, 합창, 악기연주 등을 배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왜 바쁜 시간을 쪼개서 그런 일을 하냐고 물으며 ‘그냥 재미있어서’라고 대답하면서 뭘 그런 걸 묻나, 하는 표정을 짓는다. 사실 철저히 개인적인 행위였던 독서가 소집단 모임으로 바뀌는 현재의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성경책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들었던 근대 이전의 문화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건 확실히 우리는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관계에 능한 호모 사피엔스라는 사실과 사람의 본능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영국 남자인 마이클 폴리의 약간은 보수적이며 시니컬한 태도가 오히려 책을 읽는 재미와 믿음을 더해 준다. 소확행은 첫발은 자신만의 재미를 만들어나가는 것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