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맛을 차차 알아간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맨발인 

다 싫고 냉수나 한 사발 마시고 싶은 때  
잦다  

오르막 끝나 땀 훔치고 이제 
내리닫이, 그 언덕 보리밭 바람 같은, 

손뼉 치며 캄탄할 것 없이 그저 
속에서 휜칠하게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그 걸음걸이 

내 것으로 몰래 익혀서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랑에도 죽음에도  
써먹어야 할 

훤칠한 
물맛 

     <유심, 2010년 5.6월호>

................................................................................................................... 

   아무런 냄새도 맛도 나지 않는 물맛을 알아간다고 말하는 시인, 그 무슨 경지인가? 그 언덕 보리밭 바람 같은 물맛을 느끼지까지 오래 살고 볼일이다. 하지만 나이가 든다고 해서 절로 깨달아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내 것이었던 것들과, 내것이 되고자 했던 것들로부터 손을 놓아 버리고, 그 마음을 놓아 버릴 때 담박하고, 훤칠하게,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그 걸음걸이의 물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돌아가지 않고 직선으로 내리 꽂히며 가슴을 뻥 뚫리게 해주는 냉수 한 잔. 

세상은 너무 달짝한 것들로 넘쳐난다. 담백하고 우직한 맛은 설 자리가 없다. 오래도록 깊이 음미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을 밀쳐두고 당장 혀끝에 감기는 맛과 향에 취해서 산다. 우리는.
그래서 이 시는 비단 맛에 관한 것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1-06-01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당장 혀 끝에 감기는 맛에 취해서
물 맛을 잃어버렸네요. 시원하게 호흡할 수 있는 페이퍼, 넘 좋아요.

저는 요즘 상념을 멈출 수 있는 페이퍼가 젤 좋아요.
상념이 하루종일 머리 터지게 떠다니고 있거든요. ㅠㅠ

꽃도둑 2011-06-02 12:52   좋아요 0 | URL
머리 터지면 그 파편 제가 다 주워담을 거에요...ㅋㅋ
신호로 알려줘요~

저도 이제 조금씩 페이퍼에 재미를 좀 붙여볼까 싶은데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뭐 딱히 할 말도 없고.... 그래서 시를 앞세워,,,,^^

굿바이 2011-06-0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훤칠한 물맛! 오만가지 기억을 다 끄집어내 그런 물맛을 내가 알고 있는지 생각해봤어요.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찌되었건 사랑에도 죽음에도 써먹어야 할 담박하고, 훤칠하고,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그 뭔가를 저도 열심히 익혀야겠습니다. 몰골은 허름해도 꽤 근사해지지 않을까 싶네요.^^

꽃도둑 2011-06-02 16:25   좋아요 0 | URL
그쵸? 사람도 훤칠한 물맛 같은 사람이 있어요. 씹으면 씹을 수록 맛이 나는 사람.
우리 그런 물맛 같은 사람 되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