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집밥 - 9인 9색 엄마의 밥상 같은36가지 집밥
권혁희 외 지음 / 스토리닷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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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닷 신간 <우리들의 집밥>은 권혁희, 김경민, 김부선, 김은경, 신지현, 유재숙, 유정임, 이현이, 정인숙 아홉 명의 저자가 의기투합해 펴낸 요리 에세이다. 9년 전 양주행 1호선 전철을 타고 닿은 도서관 강의실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오며 각자의 삶이 녹아든 36가지 집밥 레시피와 따뜻한 추억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이 책은 단순한 실용 요리책을 넘어 엄마의 품처럼 포근한 위로를 전하는 힐링 에세이로 잔잔한 호평을 받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어 많은 이들의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아홉 명의 공동 저자가 참여한 만큼 책 속에 등장하는 레시피와 에피소드는 다채롭고 특색이 넘친다. 누군가의 엄마, 아내, 딸로 살아온 저자들은 매일 식구들을 위해 밥을 짓듯 정성스럽게 자신의 글을 지어 올렸다. 쓴 인생에도 살아갈 맛이 난다며 삶의 질곡을 덤덤히 담아낸 두릅숙회 이야기부터 할머니의 시원한 보루였던 미역 오이냉채, 잊힌 오빠의 계절을 가슴 아프게 떠올리게 하는 짜장면, 갑작스러운 위기가 만들어낸 뜻밖의 돼지갈비찜까지 각자의 희로애락이 식탁 위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화려하고 세련된 고급 식당 메뉴가 아닌 투박하지만 깊은 맛을 내는 우리네 엄마들의 진짜 밥상 이야기가 독자들의 미각과 감성을 동시에 강력하게 자극한다.


사계절의 흐름에 따라 치밀하게 구성된 목차는 이 책의 문학적 묘미를 한층 살려준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는 쌉싸름한 돌나물김치와 쑥전으로 삶의 생기를 불어넣고 무더운 여름에는 토마토 달걀 볶음과 호박만두로 잃어버린 일상의 입맛을 되찾아준다. 가을 챕터의 고구마 줄기볶음과 엄마의 손길이 닿은 송편은 풍성한 수확의 기쁨과 진한 가족의 그리움을 전하고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장식하는 뜨끈한 손칼국수와 황태달걀국은 꽁꽁 언 몸과 마음을 든든하게 데워준다. 계절의 변화에 발맞춰 제철 식재료로 차려낸 36가지의 밥상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와 인생의 순환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읽는 내내 계절 특유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우리들의 집밥>을 마지막 장까지 꼼꼼히 읽고 나면 자연스레 부엌으로 향해 냉장고를 열고 싶어진다.

수많은 요리 중에서도 여름 메뉴에 정성스레 소개된 미역 오이냉채를 꼭 한번 따라 해보고 싶다. 오이, 양파, 홍고추에 건미역을 더해 새콤달콤한 냉국을 부어 완성하는 이 간단하면서도 매력적인 레시피는 무더위에 지친 심신을 단번에 달래주기에 제격이다. 얼음이 녹으며 국물이 맹맹하게 싱거워질 것을 대비해 처음 간을 볼 때 조금 진하다 싶을 정도로 맞추라는 저자의 세심한 팁은 실제 주방에서 수십 년간 쌓은 흔들리지 않는 내공을 엿보게 한다. 할머니의 내리사랑이 듬뿍 담긴 시원한 보루 같은 미역 오이냉채 한 그릇을 직접 만들어 먹으며 책이 온전히 전하는 다정한 온기를 입안 가득 느껴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마음속 깊이 각인되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있다.


"매일 거르지 않아야 하고, 지극히 정성을 들여야 하며, 결국에는 소중한 누군가를 위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글쓰기와 밥 짓기의 숭고한 공통점을 날카롭게 포착한 프롤로그의 이 문장은 삶을 대하는 저자들의 진지하고 따뜻한 철학을 온전히 보여준다. 책 뒷면에 단정하게 적힌


"어쩌면 집밥이란 음식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라는 문장은 우리가 매일 무심코 먹는 집밥이 지닌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뭉클하게 일깨워 준다.

팍팍하고 고단한 일상 속에서 누군가의 따뜻한 위안이 절실하게 필요한 날 정성껏 차려준 온기 가득한 밥상 같은 이 책, <우리들의 집밥>을 반드시 펼쳐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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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의 진화 - 진화가 알려 주는 암 극복의 새로운 아이디어
아테나 액티피스 지음, 김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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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 액티피스 지음, 김정은 번역, 열린책들 신간 <암세포의 진화>는 암을 무조건 박멸해야 할 외부의 적이 아니라 다세포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내재적 결함이자 얌체 행동으로 규정하며 의학계와 독자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암이라는 질병이 단순한 돌연변이의 불운한 축적이 아니라 우리 몸이라는 거대한 생태계 내부에서 자원과 생존을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자연선택의 결과물임을 촘촘히 논증한다. 질병의 기원을 진화생물학적 렌즈로 파헤치며 인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암 관리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저자 아테나 액티피스는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 심리학과 부교수이자 진화 및 의학 센터의 핵심 연구원이다. 진화 생태 암 학회를 공동 설립하며 암 연구에 진화생물학을 접목한 선구적인 학자로 꼽힌다. 세포 간의 협력과 갈등 구조를 분석하는 데 탁월한 식견을 지녔으며 인간의 협력적 본성과 그 이면에 숨겨진 얌체 행동을 교차 분석해 왔다.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암과의 전쟁이라는 호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메타포를 버려야 한다고 강변했다. 극단적인 약물로 암을 몰아붙이는 대신 암의 진화적 경로를 예측하고 조율해 통제 가능한 만성 질환으로 다루는 적응 요법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역설하며 학계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책의 서사를 관통하는 핵심은 암을 대하는 인류의 올드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전복하는 것이다. 인류는 지난 반세기 동안 암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하고 융단폭격과 같은 독성 항암 치료를 퍼부어 왔다. 독한 약물은 가장 취약한 암세포를 일시적으로 죽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내성이 강하고 악독한 암세포 클론만 살아남게 만드는 치명적인 진화적 토양을 제공했다. 저자는 현재 인류가 지닌 의학적 능력으로 암을 완벽하게 절멸하는 것은 생물학적 불가능에 가깝다고 단언한다. 암은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가 아니라 생존과 증식이라는 생명체의 원초적인 본능에 가장 충실하게 진화한 우리 자신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진화의 속도를 늦추고 종양 생태계를 교란해 암을 길들이는 통제 방식만이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다. 철저한 박멸이 아닌 '적(분신?)과의 동침'을 받아들이는 과학적 통찰이 책 전반에 서늘하게 빛난다.


책의 서문을 여는 첫 페이지에는 "우리보다 앞서 나타났던 모든 아름다운 괴물에게"라는 짧고 강렬한 헌사가 적혀 있다. 오랜 시간 질병과 생명의 기원을 탐구해 온 저자 고유의 철학적 선언이다. 진화생물학의 렌즈로 바라볼 때 질병과 돌연변이는 박멸해야 할 악마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기이한 형태로 변모하며 진화의 계통수를 풍성하게 채워온 지적 생명체의 또 다른 모습이다. 생존과 증식이라는 본능에 지나치게 충실해 기형적으로 일그러진 암세포조차 생물학적 궤적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괴물'로 껴안는 태도다. 질병을 타자화하고 혐오하는 기존의 시선을 거두고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치명적인 변이의 역사에 바치는 묵직한 경의를 담고 있다.


이러한 거시적인 생명관의 이면에는 암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고 떠나보낸 수많은 이들의 깊은 상실과 애도가 짙게 깔려 있다. 그동안 우리는 암에 걸린 환자를 끔찍한 전쟁에서 패배한 나약한 희생자로 취급하며 남은 자들의 애도 방식마저 폭력적으로 왜곡하곤 했다. 저자의 따뜻한 시선은 암이 결코 투지의 부족이나 삶의 실패로 찾아온 개인적 형벌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수십억 년 전 단세포가 뭉쳐 거대한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며 감수해야만 했던 숭고하고도 비극적인 진화적 계약의 대가일 뿐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결코 투쟁의 실패가 아니라 다세포 생명체로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생물학적 숙명에 의한 것이다. 질병을 은유하는 낡은 방식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우리는 상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 책의 말미에 다다르면 암과의 싸움에서 상처 입은 모든 이들에게 깊고 묵직한 위로가 밀려온다.



"우리가 암에 걸리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우리 몸속에서 살아남아서 더 빨리 증식하는 세포들이 더 많은 세포 자손을 남기는 자연선택의 과정이 몸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서늘하고도 명징한 문장은 역설적으로 환자와 가족의 어깨를 짓누르던 질병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고, 죽음을 담담히 수용하게 돕는다. 우리는 암을 영원히 정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생명의 기원을 이해하고, 격변하는 자연에 적응하려는 진화의 섭리를 겸허히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죄책감 없이 상실을 애도하고 우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암세포의 진화>는 단순한 의학적 제언을 넘어 상처받은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숭고한 철학적 치유서, 길잡이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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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사람을 위한 것
슬론 크로슬리 지음, 송섬별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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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신간, 슬론 크로슬리 <슬픔은 사람을 위한 것>은 도난당한 보석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장 친한 친구라는 두 가지 상실을 겪으며 슬픔의 본질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회고록이다.

2019년 6월 27일 오후 5시 15분 저자의 뉴욕 아파트 침실에 도둑이 들어 할머니의 유품을 포함한 소중한 보석을 전부 훔쳐 가는 사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자가 빈티지북스 출판사에서 홍보 담당자로 일하던 시절 직장 상사이자 영혼을 나누던 절친한 친구 러셀 페로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책은 이 두 가지 비극적 사건을 교차하며 우정과 상실의 의미를 세밀하고도 치열하게 파헤친다. 이 작품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타임 논픽션 톱 10, 리터러리허브 최고의 논픽션 1위를 차지했다. 타임, 워싱턴 포스트, 보그, 엘르, 오프라 데일리 등 수많은 유력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뛰어난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저자 슬론 크로슬리는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뉴욕의 삶과 인간관계의 미묘한 결을 그려내는 저명한 작가다. <이 번호는 어떻게 얻었나요>, <케이크가 나온다고 들었는데>, <룩 얼라이브 아웃 데어> 등의 에세이와 <컬트 클래식>, <더 클래스프> 등 장편소설을 출간하며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미국 유머 문학상인 서버상 최종 후보에 두 차례나 올랐으며 구겐하임 재단과 예도 펠로를 지내는 등 작가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컬럼비아대학교와 뉴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뉴욕타임스, 뉴요커, 보그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작가는 이 책이 단순한 추모록을 넘어 누군가를 상실한 이후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그 거대한 빈자리를 안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처절한 생존기임을 밝혔다.


슬픔은 정해진 공식대로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저자는 할머니의 유품이 사라진 물리적 상실을 시작으로 러셀 페로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정신적 상실의 심연으로 나아간다. 뉴욕 아파트라는 가장 내밀하고 안전한 공간을 침범당한 충격은 영혼의 안식처였던 오랜 우정의 파괴로 이어진다. 저자는 잃어버린 보석을 되찾기 위해 이베이와 전당포를 뒤지며 집착에 가까운 추적을 벌인다. 이것은 러셀의 죽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든 통제하고 되돌려 보려는 무의식적이고 처절한 몸부림이다.


'부정, 협상, 분노, 우울, 이후'로 이어지는 책의 목차는 퀴블러 로스의 보편적인 애도 단계를 차용하고 있다. 저자의 감정은 그 정해진 틀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질서하고 맹렬하게 요동친다. 빈티지북스 시절 러셀과 함께했던 치열하고 찬란했던 출판계의 추억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상실의 고통과 극명하게 대비되며 독자에게 깊은 먹먹함을 안긴다.


엔딩에 이르러 저자는 잃어버린 보석을 완벽하게 되찾거나 깊은 슬픔을 극복하는 식의 작위적인 해피엔딩을 제시하지 않는다. 슬픔을 억지로 밀어내거나 서둘러 잊으려 하는 대신.. 그 거칠고 날것인 감정 자체를 곁에 두고 고요히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해야 할 무거운 짐이나 숙제가 아니다. 상실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영원히 머무는 고결한 영토임을 저자는 깨닫는다. 떠난 이의 자리를 다른 무엇으로 무리하게 지우거나 채우려 하지 않고 그 서늘한 공백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길을 묵묵히 선택한다. 


슬론 크로슬리는 러셀 페로라는 대체 불가능한 친구이자 멘토를 잃은 지극히 개인적인 비극을 통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보편적인 상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잃어버린 물건은 포기하면 그만이지만 잃어버린 사람은 우리 내면에 지워지지 않는 영구적인 흔적을 남긴다. 작가는 그 흔적을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직시함으로써 애도가 곧 삶을 향한 강력한 의지임을 증명해 낸다. 상실 이후의 삶이 여전히 가치 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묵직한 서사는 남겨진 자의 슬픔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역설한다.


결국 슬픔이란 갈 곳을 잃어버린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소중한 사람을 잃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이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삶이 기적인 건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 매일 잠에서 깨어나 삶을 지키고자 싸우기로 한다는 사실, 꿈틀거리며 빠져나가려는 삶을 품에 꼭 끌어안는다는 사실이다. 그 정반대의 일이 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기적, 순전한 기적이다."



책 속의 이 문장은 상실이라는 거대한 절망 앞에서도 기어코 삶을 껴안고 나아가야 하는 인간의 숭고한 의지를 서늘하면서도 아름답게 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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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이라는 세계 -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양필성 옮김 / 클랩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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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의 지성인이자 밀리언셀러 작가 시라토리 하루히코 신작 <독학이라는 세계>는 AI 시대에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깊이 있는 인문학 실용서다. 클랩북스에서 2026년 4월 출간된 이 책은 인문교양 분야의 큰 주목을 받았다. 정답이 즉각적으로 쏟아지는 효율의 시대에 사유의 과정을 복원하라는 저자의 일침이 뼈아프게 다가온다는 평이 눈에 띈다. 책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을 넘어 스스로 질문하고 탐구하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진정한 공부의 의미를 추적한다.


저자 시라토리 하루히코는 <니체의 말>, <지성만이 무기다>, <죽은 철학자의 살아있는 인생수업> 등을 통해 대중에게 철학적 통찰을 전해 온 저명한 사상가다. 40여 년간 철학과 문학을 연구해 온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사고의 깊이는 오히려 얕아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단편적이고 획일화된 디지털 콘텐츠를 무비판적으로 소비하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의지로 끝까지 파고드는 독학만이 정신적 빈곤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임을 거듭 강조한다.

인공지능이 모든 질문에 단숨에 완벽해 보이는 답을 내놓는 시대에 스스로 학습하고 탐구하는 자세는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스마트폰 클릭, 프롬프트 한 번으로 얻은 정보는 결코 온전한 나의 지식이 될 수 없다. 기계가 도출한 결론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면 인간의 인지 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은 필연적으로 퇴화한다. 저자는 끈질기게 질문을 붙들고 사유를 지속하는 느린 사고의 과정이야말로 얄팍한 정보를 지혜로 바꾸고, 어떠한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자아를 형성하는 핵심 동력이라고 역설한다.


<독학이라는 세계>는 총 다섯 가지 세계를 탐험하며 진정한 어른의 공부법을 안내한다.

1. 독학의 세계에서는 모르는 채로 나아가는 기쁨을 배운다. 총명했던 아이가 얄팍한 어른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쏟아지는 정보와 진짜 지식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고독한 신독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2. 책의 세계는 어려운 텍스트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쾌감을 다룬다. 문자를 눈으로 훑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저자의 논리 전개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오리지널 고전을 읽어낼 때 낡고 협소한 세계관은 전복된다.

3. 교양의 세계는 파편화된 지식을 삶의 융합적 지혜로 승화하는 훈련이다. 인류의 근원적 사유가 담긴 성서, 세계 3대 종교 등을 탐독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더 넓고 깊게 확장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4. 언어의 세계에서는 외국어를 익히고 사유하는 감각을 살핀다. 모국어의 깊이가 곧 외국어 습득의 한계선임을 직시하고, 낯선 언어 특유의 논리 패턴을 독파하며 다차원적인 사고 체계를 구축할 것을 권한다.

마지막 질문의 세계는 자신만의 생각을 완성하는 고차원적인 사고법을 제시한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학자의 이론조차 하나의 가설로 여기는 비판적, 능동적인 태도를 요구한다. 항상 프리 노트를 지참하여 직접 조사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단편적인 옳고 그름을 넘어선 본질적인 사고방식을 정립하는 것이 독학이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다.


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다음과 같다.


"AI에게 물으면 금방 답이 나오는 문제를 일부러 시간을 들여 생각하고, 책을 읽고, 며칠이고 몇 주고 탐구해 볼 것."


이 문장은 무비판적인 효율성 추구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린 사유의 본질을 날카롭게 찌르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책은 시시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면 직접 읽고 느끼고 생각하라는 묵직한 경고장이자 친절한 안내서다. AI가 일상 깊숙이 자리 잡은 현대 사회에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것은 곧 주체성을 내어주는 일과 같다. <독학이라는 세계>는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 이러한 지적 종속에서 벗어나는 실천적인 길을 제시한다. 누군가 떠먹여 주는 매끈한 정답에 취해 사유의 근력을 잃어가는 지적 게으름을 타파하고. 오직 나만의 고유한 세계관을 직조하라고 독려한다.


타인의 시선이나 세상의 기준에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은 치열한 독학의 과정을 통해서만 벼려진다.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질문의 끈을 놓지 않으며, 끝없이 진리를 탐닉하는 과정 자체가 어른의 삶을 경이롭게 의미 있게 만든다. 시라토리 하루히코가 강조한 독학의 본질을 일상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흔들리는 격변의 시대 속에서도 기계에 종속되지 않고, AI를 도구로 부리며 비로소 진정한 정신적 해방감을 쟁취할 수 있다. 삶의 매 순간을 배움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모든 '순수 휴먼'들에게 이 책을 강력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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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갓김치! - K-콘텐츠 번역가로 일하는 법
재스민 리 지음 / 샘터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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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장벽을 부수고 한국 문화를 세계로 실어 나르는 이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샘터 신간, 재스민 리 에세이 <오 마이 갓김치!>는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유쾌하고도 짠 내 나는 해답이다. 2024년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에서 목표액을 200% 이상 초과 달성하며 돌풍을 일으킨 이 독립출판물은 독자들의 입소문을 등에 업고 정식 상업 출판의 궤도에 안착했다. 책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저자가 즐겨보는 유튜브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입버릇에서 따온 이 기발한 감탄사는 톡 쏘는 갓김치처럼 맵싸한 프리랜서의 현실과 마감의 압박 속에서 터져 나오는 '오 마이 갓'의 비명을 절묘하게 융합한다.


저자 재스민 리, 본명 이지민은 자신을 장르에 맞춰 보호색을 바꾸는 카멜레온 번역가라 부른다.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부와 통번역대학원 한영 번역과를 거친 엘리트지만, 저자의 일상은 미디어 속 우아함과 거리가 멀다. 글로벌 명품 그룹 마케팅 부서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서 일했던 화려한 과거를 뒤로한 채 지금은 노트북 한 대와 명랑한 반려견 하이디에게 의지해 골방에서 텍스트와 사투를 벌인다.


그녀는 2019년 김세희 작가의 <가만한 나날> 영역본으로 제50회 코리아타임스 현대 한국문학번역상 우수상을 꿰차고 하버드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문예지 아젤리아에 박민정 작가의 <아내들의 학교> 영역본을 수록한 탄탄한 이력의 소유자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전기 <하우스 오브 드림>을 번역하고 2025년 영국 문학번역센터 창작 워크숍에 참가하며 세계적 감각을 벼리면서도 예술가처럼 배고픈 직업 아니냐는 주변의 시선에 속앓이를 하는 뼈저린 현실을 가감 없이 폭로한다.


이 책의 독보적인 성취는 텍스트 뒤에 숨어 투명 인간 취급을 받던 번역가를 무대 중앙으로 끌어올렸다는 데 있다. K-콘텐츠가 세계를 휩쓰는 시대지만 정작 한국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영어로 깎고 다듬는 이들의 수고는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 저자는 찰나의 환희와 짙은 좌절이 교차하는 번역의 최전선을 직접 그린 귀여운 일러스트와 실무 꿀팁으로 맛깔나게 버무려낸다. 예비 번역가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훌륭한 실전 지침서이며 일반 독자에게는 미지의 세계를 엿보는 흥미로운 관찰 카메라다. 


굳이 아쉬운 점을 찾자면 일상 에세이의 경쾌한 리듬을 유지하려다 보니 번역학의 심오한 학술적 담론이나 오역을 교정하는 치열한 학구적 과정은 다소 얕게 스쳐 지나간다는 것이다. 심층적인 텍스트 해부가 조금 더 더해졌다면 완벽한 장르의 교본이 되었을 것이지만.. 언젠가 세상에 나올 다음 출간작에서 저자의 내공이 발휘되리라 믿는다.


기계 번역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번역가의 설자리가 위협받는 시대에 AI와 협업하는 노하우를 다룬 대목은 무척 시의적절하며 통찰력이 빛난다. 저자는 AI를 경계해야 할 적이 아니라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는 유능한 조수로 영리하게 활용한다. 초벌 번역의 물리적인 수고는 AI에게 맡기고 기계가 결코 포착할 수 없는 행간의 미묘한 감정선과 한국 문화 특유의 짙은 유머는 인간 번역가의 치열한 고민으로 섬세하게 채워 넣는다. 기술의 발전을 배척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수용하며 자신만의 대체 불가능한 번역 감각을 견고히 다지는 태도는 현대 프리랜서가 취해야 할 가장 현실적이고 스마트한 생존 전략이다.


세상의 잣대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직업의식은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아직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스타 번역가도, SNS에서 셀럽으로 통하는 유명 프리랜서도 아니지만 나름의 치열하면서도 유유자적한 일상과 노트북 컴퓨터 한 대로 자급자족하는 프리랜서 라이프에 꽤나 만족한다."


저자의 이 담담한 고백은 세상의 거창한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문장을 번역해 나가는 모든 이를 향한 위로다. K-콘텐츠라는 화려한 만찬에 잊을 수 없는 감칠맛을 더하는 번역가들의 노동을 엿보고 싶다면.. 


주저 없이 이 맵싸한 갓김치! 한 접시를 맛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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