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장벽을 부수고 한국 문화를 세계로 실어 나르는 이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샘터 신간, 재스민 리 에세이 <오 마이 갓김치!>는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유쾌하고도 짠 내 나는 해답이다. 2024년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에서 목표액을 200% 이상 초과 달성하며 돌풍을 일으킨 이 독립출판물은 독자들의 입소문을 등에 업고 정식 상업 출판의 궤도에 안착했다. 책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저자가 즐겨보는 유튜브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입버릇에서 따온 이 기발한 감탄사는 톡 쏘는 갓김치처럼 맵싸한 프리랜서의 현실과 마감의 압박 속에서 터져 나오는 '오 마이 갓'의 비명을 절묘하게 융합한다.
저자 재스민 리, 본명 이지민은 자신을 장르에 맞춰 보호색을 바꾸는 카멜레온 번역가라 부른다.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부와 통번역대학원 한영 번역과를 거친 엘리트지만, 저자의 일상은 미디어 속 우아함과 거리가 멀다. 글로벌 명품 그룹 마케팅 부서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서 일했던 화려한 과거를 뒤로한 채 지금은 노트북 한 대와 명랑한 반려견 하이디에게 의지해 골방에서 텍스트와 사투를 벌인다.
그녀는 2019년 김세희 작가의 <가만한 나날> 영역본으로 제50회 코리아타임스 현대 한국문학번역상 우수상을 꿰차고 하버드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문예지 아젤리아에 박민정 작가의 <아내들의 학교> 영역본을 수록한 탄탄한 이력의 소유자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전기 <하우스 오브 드림>을 번역하고 2025년 영국 문학번역센터 창작 워크숍에 참가하며 세계적 감각을 벼리면서도 예술가처럼 배고픈 직업 아니냐는 주변의 시선에 속앓이를 하는 뼈저린 현실을 가감 없이 폭로한다.
이 책의 독보적인 성취는 텍스트 뒤에 숨어 투명 인간 취급을 받던 번역가를 무대 중앙으로 끌어올렸다는 데 있다. K-콘텐츠가 세계를 휩쓰는 시대지만 정작 한국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영어로 깎고 다듬는 이들의 수고는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 저자는 찰나의 환희와 짙은 좌절이 교차하는 번역의 최전선을 직접 그린 귀여운 일러스트와 실무 꿀팁으로 맛깔나게 버무려낸다. 예비 번역가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훌륭한 실전 지침서이며 일반 독자에게는 미지의 세계를 엿보는 흥미로운 관찰 카메라다.
굳이 아쉬운 점을 찾자면 일상 에세이의 경쾌한 리듬을 유지하려다 보니 번역학의 심오한 학술적 담론이나 오역을 교정하는 치열한 학구적 과정은 다소 얕게 스쳐 지나간다는 것이다. 심층적인 텍스트 해부가 조금 더 더해졌다면 완벽한 장르의 교본이 되었을 것이지만.. 언젠가 세상에 나올 다음 출간작에서 저자의 내공이 발휘되리라 믿는다.
기계 번역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번역가의 설자리가 위협받는 시대에 AI와 협업하는 노하우를 다룬 대목은 무척 시의적절하며 통찰력이 빛난다. 저자는 AI를 경계해야 할 적이 아니라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는 유능한 조수로 영리하게 활용한다. 초벌 번역의 물리적인 수고는 AI에게 맡기고 기계가 결코 포착할 수 없는 행간의 미묘한 감정선과 한국 문화 특유의 짙은 유머는 인간 번역가의 치열한 고민으로 섬세하게 채워 넣는다. 기술의 발전을 배척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수용하며 자신만의 대체 불가능한 번역 감각을 견고히 다지는 태도는 현대 프리랜서가 취해야 할 가장 현실적이고 스마트한 생존 전략이다.
세상의 잣대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직업의식은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