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영혼의 왈츠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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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넘어 한국 독자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장편소설 <영혼의 왈츠> 1, 2권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개미>, <타나토노트> 등으로 독창적인 상상력을 입증한 그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인류의 기원과 미래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고 있음을 밝혔다. 과학적 지식과 철학적 사유를 결합하는 그만의 고유한 서술 방식은 전미연 번역가의 매끄러운 문장과 만나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인류 멸망이라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 과거로 회귀하여 해답을 찾는 여정을 그리는 이 책은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 시공간을 초월하는 지적 모험을 즐기는 독자, 역사와 인류학에 호기심을 가진 이들에게 주저 없이 권할 만한 소설이라 평가한다.


파국을 막기 위한 12만 년의 시간 여행

소설은 세상의 종말이 단 5일 남았다는 충격적인 설정으로 막을 올린다. 아포칼립스 D-5일인 8일 일요일부터 D-2일인 11일 수요일까지 숨 가쁘게 카운트다운이 진행되는 가운데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르네 톨레다노의 딸 외제니가 새로운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파리 울름가 26번지에 위치한 퀴리 병원 병실에 혼수상태에 빠진 어머니를 둔 채 외제니는 아버지의 안내를 받아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는 최면을 통해 109번째 전생으로 향한다. 그녀가 당도한 곳은 기원전 12만 년 전의 타분 동굴이다. 그곳에서 호모 사피엔스인 엄지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인 검지가 조우하는 원시의 풍경이 리얼하게 펼쳐진다. 횃불을 밝힌 동굴에서 흑표범의 습격에 맞서 싸우는 주술사 아버지와 두 남녀의 처절한 생존 투쟁은 현재의 멸망 위기와 교차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주술사 아버지가 코끼리 가족의 매장 풍습에서 영감을 얻어 시신을 묻고 영적 생활을 시작하는 대목은 인류 문명의 발단에 대한 작가의 경이로운 상상력을 보여준다.


몽매주의에 맞서는 지식과 영혼의 수호

이 작품은 <기억>, <꿀벌의 예언>을 잇는 판도라 연작의 세 번째 이야기를 다룬다. 세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구원한다는 주제 의식을 보여준다. 서사의 전면에 나선 외제니는 전생 체험을 통해 이집트의 아크나톤, 인도의 싯다르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페르시아의 자라투스트라 등 시대를 풍미한 역사적, 철학적 인물들의 삶에 접속한다. 깨달음을 얻은 선각자들이 시공간을 넘어 서로 조우하고 사유를 나누는 장면은 지적 쾌감을 선사한다.

이러한 과거의 위대한 유산은 현재 소르본 대학교 도서관을 불태우려 하는 신나치주의, 극단적 공산주의 등 몽매주의 학생 세력의 폭력, 혐오와 대비된다. 외제니와 동료 라파엘 헤르츠는 무지와 혐오로 세상을 통제하려는 이들의 작전을 막아내며 도서관이라는 인류 지식의 보고를 수호한다. 작가는 인공지능과 첨단 과학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도리어 반지성적인 몽매주의가 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음을 날카롭게 경고한다. 흩어진 영혼의 형제들을 찾아내어 연대하고, 무지에 맞서 지혜를 지켜내는 외제니의 투쟁은 AI 로봇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두 거대한 세계관의 경이로운 결합

주목할 만한 점은 저자가 이 소설을 가리켜 <천사들의 제국>과 <꿀벌의 예언>을 합쳐 놓은 작품이라 밝혔다는 사실이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막기 위해 시간을 넘나드는 <꿀벌의 예언>의 타임슬립 구조에 인간의 영혼과 사후 세계를 관장하는 <천사들의 제국>의 영적 세계관이 융합되었다. 무엇보다 베르베르 세계관의 상징적인 인물인 미카엘 팽송과 에드몽 웰즈가 미래의 도서관 사서로 재회하는 에피소드는 마니아들에게 벅찬 감동을 안긴다. 천사로서 인간의 운명을 이끌던 이들이 이제는 우주적 도서관에서 인류의 모든 지식과 영혼의 기록을 관장하는 사서로 등장하여 외제니의 여정에 철학적 깊이를 더한다. 각기 다른 연작으로 존재했던 세계관들이 하나의 유니버스로 통합되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다.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지적 카타르시스..

총 2권, 700여 페이지를 읽고 나면 거대한 서사시를 감상한 듯한 여운이 남는다. 작가는 뇌과학, 고고학, 역사학을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을 소설이라는 무대에 정교하게 옮겼다. 단조로운 선악 구도에서 벗어나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고, 피타고라스와 싯다르타의 조우를 통해 인류 영성의 기원을 묻는다.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치밀한 교차 편집과 속도감 있는 전개 덕분에 독자의 몰입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책 말미 감사의 말을 통해 창작 과정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 비발디, 데드 캔 댄스 등 시대를 초월한 명곡들을 들으며 서사의 배경을 구상했음을 짐작게 한다. 또한 각 장 사이에 삽입된 마야 점성술이나 역사적 사건들을 다룬 에드몽 웰즈의 백과사전 항목들은 단순한 허구를 넘어 현실의 인류가 직면한 위기를 객관적으로 성찰하도록 돕는다. 역자 전미연의 유려한 해설이 덧붙여져 베르베르 특유의 철학과 영성, 과학이 결합된 지적 탐구의 정수를 온전히 맛볼 수 있다.


위기에 처한 인류에게 절실한 것은 차가운 AI 시스템이나 맹목적인 극단주의가 아니라 태초부터 이어져 온 끈질긴 생명력, 지식의 보존, 영혼의 연대 의식임을 일깨운다. 인공지능과 고도화된 기술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도리어 인간 본연의 가치와 지성을 상실한다면 파국을 면하기 어렵다는 작가의 경고는 서늘하게 다가온다. 과거의 지혜를 발판 삼아 미래로 나아가는 영혼들의 장엄한 춤사위는 혐오와 무지로 분열된 현시대에 강렬한 울림을 던진다.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내면의 진화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통찰을 담아낸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영혼의 왈츠>는 현대인들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적 나침반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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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과학자 - 우리 곁의 자연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기록한 과학의 순간들
이동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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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 신간 <그림 그리는 과학자>는 형태학을 기반으로 미증유의 종을 발굴하는 생물학자 이동주가 집필한 저작이다. 동아대학교 응용생물학과에서 곤충을 탐구하고 한양대학교와 영국 자연사 박물관을 거쳐 신라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국내 일호 자연과학 책방 '동주'를 운영하며 소통해 왔다. 이 책은 17세기부터 현대까지 자연의 신비를 도화지에 옮긴 학자들의 집념을 추적한다.


언어의 장벽을 통과하는 직관의 힘

글은 방대한 자료를 축적하지만 언어 장벽에 가로막힐 수밖에 없다. 반면 그림, 세밀화는 국경을 관통하여 생명체의 온전한 실재를 보여준다. 책머리 저자의 말처럼 자연학자들에게 묘사는 필연적 선택이었다. 현장에서 펜과 수첩은 연구자의 분신과 같다. 탐험가 알렉산더 폰 훔볼트 역시 험난한 여정 속에서 기압계, 시안계 등과 함께 필기구를 움켜쥐었다. 그가 작성한 자연의 단면도는 육천여 종의 생태 분포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도록 돕는다.


오해와 편견에 저항한 관찰자들의 동반

진리를 추구하는 경로는 외롭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은 자연발생설이라는 완강한 시대적 착각에 대항했다. 그녀는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번데기를 거쳐 날아오르는 우화 과정을 판화로 담아냈다. 이는 형태학적 규명이자 역사학자 내털리 제먼 데이비스가 헌사했듯 최초의 생태학적 업적이다. 찰스 다윈의 갈라파고스 핀치새 부리 스케치 역시 단순한 모사를 넘어 자연선택설의 주춧돌,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그는 생물의 지형도를 그리며 미지의 세계를 탐구했다.


동서양을 관통하는 박물의 다채로운 흔적

도화지는 서구 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조선의 실학자 서유구는 <임원경제지>의 <전어지>에서 한반도 수족을 독자적 체계로 구분했다. 정학우, 이규경, 남계우, 유희 등 조선 지식인들은 집요한 관찰로 향토 박물학을 세웠다. 에른스트 헤켈의 방산충 묘사는 미시 세계의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메리 애닝이 석판에서 찾아낸 화석 도판은 유실된 과거를 선명하게 증명한다.


버제스 혈암을 해독한 고생물학자들의 집념

찰스 월컷, 해리 블랙모어 휘팅턴, 스티븐 제이 굴드로 이어지는 탐구자들의 계보는 고대 생물의 폭발적 진화를 화폭에 담아냈다. 버제스 혈암에서 발굴된 기상천외한 화석들은 단편적인 렌즈 촬영만으로 전체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카메라는 빛과 각도에 따라 왜곡된 결과물을 낳을 수 있지만, 연구자의 지난한 스케치는 삼차원의 실체를 이차원 평면에 정교하게 재구성한다. 사진 도감이 놓치기 쉬운 피사체의 은밀한 굴곡조차 펜 끝에서 신뢰성을 획득한다. 뱃멀미와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험지에 뛰어든 숱한 해양 생물학자들이 굳이 스케치를 고집한 까닭은 찰나의 시각적 편견을 배제하고 생태의 숨겨진 진실을 후세에 온전하게 전수하기 위함이었다.


연필에서 AI 인공지능 시대로 이어지는 관찰의 확장

기록을 향한 인류의 도구는 멈추지 않고 진화한다. 흑연과 낡은 수첩에서 출발한 도해는 탁월한 전자현미경을 거쳐 이제 인공지능 기술과 접목되는 무한한 가능성의 시대를 맞이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도안 작업이 전문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선을 긋는 행위가 미미한 예술적 재능의 발현이 아니라 대상의 오류 없는 전달임을 분명히 밝힌다. 과학, 생태에 관심 있는 일반인 역시 책에 수록된 견고한 분류학 지식을 이정표 삼아 생태 세밀화에 직접 도전할 수 있다. 산야에 핀 들풀이나 곤충의 얼개를 찬찬히 뜯어보고 기존 도감의 기준에 맞춰 도화지를 채우다 보면, 누구든 막연했던 삼라만상을 명증한 이해의 대상으로 치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연필을 쥐었던 까닭..

삼라만상의 질서를 밝히려는 열정은 고결하다. 감춰진 존재를 드러내려는 의지는 자연을 향한 숭고한 경외에서 출발한다. 현대 생물학자인 저자가 국제 학회에서 치밀한 도판으로 신종을 설득하고 학술지에 등재한 사건은 도해의 설득력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손끝에서 탄생한 획들은 정량화된 수치보다 얽히고설킨 뭇 생명의 연대를 수월하게 납득시키는 강력한 무기다.

저자는 책의 맺음말을 통해 뛰어난 연구든 아니든 모든 기록은 소중하며, 이 저작이 훗날 생명의 서사시를 다룬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로 뻗어가기 위한 '첫 번째 서문'이라고 고백한다. 십 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숱한 편집자를 거치며 다듬어진 원고는 저자 자신이 지닌 학자적 고집과 집념의 산물이다.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이


"점과 선으로 기록된 옛 문헌 속 동식물의 도판을 감상하고 그러한 그림이 나올 수 있었던 현장을 생생히 목격했다. 긴 숲을 통과한 기분이다"


라고 찬사를 보냈듯, 독자는 이 책을 덮는 순간 거대한 생태계의 복원 현장을 빠져나오는 듯한 짜릿함을 경험하게 된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에서 새를 실물 크기로 옮긴 존 제임스 오듀본, 나아가 정약전의 <자산어보>와 신사임당의 곤충 기록에 이르기까지.. 펜과 붓으로 빚어낸 이 치열한 자연학의 역사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소리 없이 명멸하는 생명들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고 보존해야 하는지 화두를 던진다.


신간 <그림 그리는 과학자>단순히 아름다운 화집을 넘어,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의 동반자로서 짊어져야 할 시선의 책임을 묻는 생태 철학서로 자리매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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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라이프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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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매스커레이드 라이프>는 에도가와 란포상, 나오키상 등을 휩쓸며 일본 미스터리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간 장편소설이다. 김은모 번역가가 우리말로 옮긴 이 작품은 누적 판매 550만 부를 돌파한 매스커레이드 시리즈의 다섯 번째 이야기로 반가운 귀환을 알린다.

다작 속에서도 늘 새로운 무대를 창조하는 저자는 이번 작품에서 일본 추리소설 신인상 심사 현장이라는 출판계의 이면을 풍자적으로 녹여내며 특유의 정교한 서사를 선보인다. 역자의 말에서 언급되었듯 <왜소소설>과 <흑소소설>에서 보여준 현지 출판계 바닥의 민낯이 '호텔'이라는 공간과 결합하여 한층 복잡한 복선으로 탄생한 소설이다. 단순한 트릭 풀이를 넘어 인간 내면의 숨겨진 욕망과 다면적인 심리를 쫓는 독자, 닫힌 공간이 주는 서스펜스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가면무도회의 새로운 무대, 문학상 심사위원회장

이번 서사의 중심 무대는 샹들리에 아래 익명성이 보장되는 코르테시아 도쿄 호텔이다. 이곳에서는 유명 출판사 규에이샤가 주최하는 일본 추리소설 신인상 심사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와 동시에 경찰은 호텔에 은밀한 잠복 수사를 벌이는데, 신인상 유력 후보인 아오키 하루마가 과거 연인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음이 드러나며 걷잡을 수 없는 긴장감 속으로 빠져든다. 수사 과정에서 닛타는 오이즈미가구엔 가족 살인 사건 기사를 검색하며 단서를 찾으려 애쓰지만, 이는 일가족을 비탄에 잠기게 한 참혹한 친족 살인으로 또 다른 물줄기로 서사가 흐른다. 과거 여성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쓴 소설이 최종 수상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얄궂은 역설 속에서, 호텔은 치밀한 두뇌 싸움이 벌어지는 무대로 변모한다. 계획대로 수상 기자회견이 열린 직후, 당사자가 체포될 경우 벌어질 사회적 파장과 언론의 광기를 예견하는 대목은 서사의 흡인력을 끌어올린다. 살인 사건과 연루된 자가 쓴 추리소설은 심사 위원들의 평이 엇갈리며 작품성과는 별개로 출판계의 구미를 당기기 시작하는데.. 닛타와 나오미, 경찰들, 유가족들, 신원 불상의 난입자의 가면이 벗겨지며 벌어지는 예측 불가의 상황은 <매스커레이드 라이프>의 흥분을 극한으로 몰고 간다!


보안과장 닛타와 호텔리어 나오미의 파트너십

시리즈의 최신작으로서 돋보이는 차별점은 단연 주인공 닛타 고스케의 변화된 위치다. 전작들에서 경시청 소속 수사관으로서 탁월한 직관을 발휘했던 그는 이제 경찰 조직을 떠나 코르테시아 도쿄 호텔의 보안과장으로 새롭게 자리 잡았다. 엘리트 형사 신분으로 프런트를 지휘하는 호텔리어 야마기시 나오미와 사사건건 부딪히며 사건의 실마리를 풀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온전한 호텔의 일원으로서 투숙객의 안전과 프라이버시를 수호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진다. 수사를 위해 아즈사 형사를 호텔리어로 위장시키려 하거나 무리한 정보 제공, 불법적인 촬영, 증거 수집 등을 요구하는 옛 동료들의 압박 속에서, 호텔리어의 철칙과 정의 구현 사이에서 고뇌하는 닛타와 나오미의 심리전이 두드러진다. 닛타의 아버지, 변호사 '가쓰히사'가 등장하여 과거 그가 담당했던 오이즈미가구엔 가족 살인 사건이 남긴 생채기, 트라우마를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각자의 본심이 폭로되는 가면극의 진상

호텔이라는 열린 공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긴 채 다채로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축소판과 같다. 사건의 중심에 선 후쿠나가 요리코와 후쿠나가 나나에 모녀는 단순한 투숙객이 아니다. 이들은 "가해자의 유족이자, 피해자의 유족"(p.354)으로서 세상의 싸늘한 시선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가면을 쓰고 코르테시아 호텔의 회전문 안으로 들어선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 속 살인 사건의 전말과 문학상 후보작의 플롯을 교묘하게 겹쳐 놓으며 진실을 가린다.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작가이자 용의자, 아오키 하루마의 실체 역시 반전을 거듭한다. 그는 타인을 죽음으로 내몬 악인이 아니라, 자신의 비극적인 시한부 인생으로부터 애인을 벗어나게 하기 위해 도피하였음이 밝혀진다. 만약 생존했다면 진심으로 사랑한 여인의 동생이 살인범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칼을 빼앗아 목숨을 끊으려 했을 만큼(p.383) 이타적인 내면을 지닌 인물임이 밝혀지며 비극의 실타래가 풀린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아버지 가쓰히사와 오랜 대화를 나눈 닛타에게 나오미가


"마음속에 가면을 품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때로는 가면을 쓰고 때로는 가면을 벗고서 살아가는 거죠.."_427p


라고 읊조리는 대목은 뇌리에 강렬히 남는다. 누구도 섣불리 예측하기 힘든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엉킨, 입체적인 서사는 인간의 본질을 되묻게 하며 짙은 여운을 선사한다.


스크린으로 이어질 기대감과 소설 속 소설

전작인 <매스커레이드 호텔> & <매스커레이드 나이트>가 기무라 타쿠야, 나가사와 마사미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어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바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두 배우는 닛타와 나오미를 리얼하게, 찰떡으로 연기했다. 영화 또한 소설 못지않은 재미와 흡입력을 자랑하는데.. 2025년에 소설에 이어 두 영화를 연이어 감상하고 블로그 리뷰를 남겼다


각설하고..

현대문학 신간 <매스커레이드 라이프>는 작가 특유의 기발하고 치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가상의 작품이 훗날 실제 출간되는 바람을 갖게 하는, 매력적인 시리즈 최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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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통역사
리 랑그바드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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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랑그바드는 1980년 한국에서 태어나 생후 2개월에 덴마크로 입양된 작가이자 번역가로 디아스포라의 정체성과 초국가적 입양 시스템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2006년 시집 <덴마크인 홀게르 씨를 찾아라>로 덴마크 문학상 보딜-외르겐 몽크 크리스텐센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그 여자는 화가 난다> 등의 저서를 통해 입양 커뮤니티 안팎에서 활발한 비판적 목소리를 내어왔다. 또한 김혜순의 시집 <죽음의 자서전>을 덴마크어로 공공 번역하는 등 문학적 가교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신간 <나의 통역사>는 2024년 덴마크 몬타나 문학상과 프리즈마 문학상을 휩쓸며 북유럽 최고의 문학으로 인정받았다. 이 책은 한국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는 저자와 그의 연인이자 한국계 덴마크인 통역사가 함께 한국의 친가족을 만나며 겪는 언어적 단절과 정서적 교감을 희곡 형식으로 담아낸 독창적인 책이다. 입양인이 겪는 근원적인 소외감과 핏줄로 얽힌 가족 간의 복잡한 미로를 통역이라는 렌즈를 통해 그려낸다.


희곡의 무대 위에 올려진 기호와 디아스포라의 언어

책의 원제인 'TOLK'는 덴마크어로 통역사를 뜻하지만, 그 활자의 생김새는 묘하게도 한글의 자음과 모음(ㅜ, ㅇ, ㄴ, ㅈ)을 연상시킨다. 덴마크 독자들에게는 명료한 의미의 단어지만, 한글을 아는 이들의 눈에는 파편화되어 해독할 수 없는 기호처럼 다가온다. 표지에서부터 시작된 시각적 은유는 모국어를 잃어버린 작가의 처지를 고스란히 체현한다. 반면 한국어판 제목인 <나의 통역사>는 이 건조한 원제에 '나의'라는 소유격을 더했다. 이는 통역사가 단순한 언어 변환기를 넘어, 단절된 두 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생명줄이자 가장 내밀한 연인이라는 절대적인 의존성을 부각한다. 원제가 객관적인 언어의 장벽을 보여준다면, 한국어 제목은 그 장벽을 넘고자 하는 주관적인 애착을 드러내는 셈이다. 일반적인 에세이나 소설의 서술 방식을 탈피하여 작가는 자신과 통역사, 그리고 친가족들의 대화를 대본처럼 나열한다. "나는 말한다", "내 통역사가 말한다", "큰언니가 말한다"로 이어지는 건조한 문장들은 독자를 관찰자, 옵저버?의 위치로 끌어당긴다. 언어를 잃어버린 화자의 말이 한국어로 적혀 있다는 모순은 역설적으로 그가 감내해야 했던 문화적, 역사적 상실의 크기를 시각화한다.


서울의 삼계탕집, 통역을 경유하는 감정의 온도

책에 담긴 시간과 공간의 궤적은 이들의 여정이 지닌 팍팍함을 보여준다. 2018년 서울의 어느 삼계탕집에서 시작된 만남은 피자헛, 엔제리너스, 스타벅스, 호텔방 등 일상적이고 현대적인 공간들을 부유한다. 혈연이라는 강렬한 끌림으로 마주 앉았지만, 이들 사이에는 통역 없이는 건널 수 없는 거대한 심연이 존재한다. 식당 종업원의 안내를 받고 낮은 상 앞에 자리를 잡은 낯선 풍경 속에서 친어머니와 큰언니를 마주한 작가의 내면은 복잡하게 요동친다. 삼계탕을 먹었냐는 언니의 물음에 통역사를 거쳐 대답이 오가고, 출장 중이라 오지 못했다는 아버지의 부재를 두고 어머니가 거짓말하시는 것 같다고 의심하는 대목은 피붙이라는 환상을 걷어낸 리얼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 서술은 감상주의에 기대지 않고 오히려 언어의 지연을 통해 가족 간에 흐르는 미세한 긴장과 서툰 애정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발화되지 못한 비밀과 고백이 된 텍스트

대화의 이면에는 번역을 거치지 못한 숱한 말과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아 있다. 작가는 끝없는 망설임 속에서 차마 한국의 혈육들에게 전하지 못한 비밀을 품고 겉돈다. 연인이자 소통의 매개인 통역사와의 관계가 두드러진다. 둘째 언니와의 묘한 기류 속에서 통역사는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싫다면 먼저 레즈비언이라고 솔직하게 말해보는 것은 어떠냐며 고백을 제안한다. 허나 화자는 섣불리 진실을 꺼내지 못한 채 언니들이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문장들을 속으로 삼켜버린다. 비록 가족들이 넌지시 이들의 특별한 유대를 눈치챘을지언정, 마주 앉은 식탁 위에서 성 정체성은 끝내 직접적으로 발화되지 않는다.


흥미로운 지점은 <나의 통역사>가 출간됨으로써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내밀한 관계가 만천하에 드러난다는 역설이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떠나야 했던 모국, 디아스포라의 세계에서 자신의 고유한 성향과 연인의 존재가 낱낱이 노출되는 것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이 문장 사이사이에 짙게 배어 있다. 발화되지 못한 채 삼켜진 비밀들은 활자화되는 순간 폭발력을 지닌 강렬한 고백으로 변모한다.


유가족 명단의 공백과 혈연의 환상

포착되는 서사의 뼈아픈 지점은 가족이라는 제도의 허상이다. 작가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한 달이나 지나서야 접하고, 조카의 휴대전화에 담긴 장례식 녹화 영상을 통해서만 그 죽음을 간접적으로 목도한다. 무엇보다 유가족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혈연이라는 견고한 믿음을 부순다. 조카가 이모인 자신에게 남자친구가 있는지를 묻는 장면은 서글픈 단절을 방증한다. 친가족조차 그녀의 성 정체성을 알지 못해 그녀를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않은 사람으로 오해하는 상황은 이들이 물리적으로는 마주 앉아 있으나 정서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이 지독한 소외감 속에서 텍스트는 단지 입양인의 슬픔에 머물지 않고, 피를 나눈 가족이라 할지라도 서로의 고유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짚어낸다. 나아가 가족이라는 당위적인 굴레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고립감을 조명하며, 소통이 불가능한 핏줄을 향해 그토록 끈질기게 손을 뻗는 행위의 의미를 독자에게 되묻는다.


침묵과 공백으로 쓰인 입양의 기록

작가는 애초에 덴마크어, 영어, 한국어라는 세 가지 언어로 이 글을 쓰려 했으나 결국 포기해야 했다고 고백한다. 두 개의 가족, 두 개의 문화, 두 개의 역사를 안고 있음에도 자신은 이중언어 사용자가 아니라는 자각이 이 독보적인 문학적 기법을 탄생시켰다. 텍스트 곳곳에 자리 잡은 의도적인 여백들은 단순히 시각적인 쉼표가 아니라, 입양이라는 사건이 개인의 삶에 남긴 커다란 공백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한국계 덴마크인 여자친구는 사랑하는 연인이자 가장 신뢰하는 입의 역할을 하지만, 그녀의 존재 자체가 화자에게는 모국어의 상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언어의 장벽에 부딪힐 때면 허공에 수영하는 시늉을 하거나, 몸짓으로 전복을 묘사하는 등 육체의 언어에 의존하며 소통을 포기하지 않는다.


푸른숲 신간 <나의 통역사>는 소설가 김혜진의 추천사처럼 잃어버린 언어의 자리를 디아스포라의 영토 안에서 채워나가는 서글프고 완강한 투쟁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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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왜 항상 금요일 밤에 일어나는가
남은주 지음 / 창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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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선 자가 길어 올린 연대의 기록

창비 신간, 남은주 지음 <사건은 왜 항상 금요일 밤에 일어나는가>는 유럽의 심장 베를린의 사각지대를 조명하는 르포르타주이자 고백록이다. 저자는 <한겨레>에서 18년간 몸담으며 <한겨레21> 문화팀장과 전국부 데스크를 역임하고, 2018년 제20회 5·18언론상을 수상한 뼈 굵은 언론인이었다. 특유의 예리한 문제의식과 휴머니즘이 교차하는 문체로 정평이 난 그는 기득권의 언어를 버리고 타인의 고통 곁에 온전히 서기 위해 50세의 나이에 유력 일간지 데스크 자리를 박차고 2018년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17세 동급생들과 나란히 앉아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의 행보는 그 자체로 도전적이다. 낯선 독일어 단어인 '보호받음(Geborgenheit)'의 뉘앙스 앞에서 더듬거리는 '초급자'의 취약함을 기꺼이 감수했던 만학의 시간은 알량한 지적 권위를 벗어던지고 바닥에서부터 타인을 이해하려는 처절한 열정의 산물이다. 현실의 안락함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기꺼이 약자의 곁으로 걸어 들어가는 진정한 지식인의 용기를 일깨운다는 점에서 이 책은 현시대의 필독서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당신들은 왜 꼭 금요일 오후에, 내가 혼자 있을 때 오는 것일까."

책의 제목이 던지는 탄식은 벼랑 끝에 몰린 피난자와 소수자들에게 행정과 공공 시스템이 닫히는 금요일 밤이 얼마나 가혹한 시간인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난민 공동숙소의 비정규직 실습생이 되어 그 캄캄한 공백의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과거 나치의 홀로코스트라는 뼈아픈 반성 위에서 '환대 문화'를 자랑했던 독일이 어째서 다시 이주민을 배척하는 극우화 노선으로 회귀하고 있는지 그 이면을 해부한다는 것이다.

끔찍한 전범의 역사를 겪고도 독일 사회가 우경화되는 원인은 씁쓸하고 명확하다. 장기화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이라는 위기 앞에서 우보수 정치 세력은 대중의 불안을 이주민이라는 '타자'에게 전가하며 혐오를 정치적 동력으로 악용하고 있다. 2025년 3월 브란덴부르크 슈탄스도르프 지역에서 "히틀러 만세!"를 외치며 난민 숙소를 습격한 우익 청년들의 폭동이나, 2024년 봄부터 라이프치히와 베를린에서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피난민 강제 송환 비행기를 띄우는 야만의 풍경은 이성적 통제력을 상실한 사회의 민낯을 생생히 고발한다.

기자의 예리한 촉과 복지사의 따뜻한 시선은 과거의 비극과 현재의 혐오를 촘촘히 교차시킨다. 1940년대 나치의 'T4 프로그램'으로 희생된 마르틴 바더, 시설에서 살해된 발달장애인 안나 등 '도덕적 결함'이라는 명분 아래 자행된 살해의 역사를 현재로 소환한다. 특히 책에 등장하는 라벤스브뤼크 여성 강제수용소의 '평화의 소녀상' 에피소드는 국가 폭력과 연대의 본질을 되묻는다. 2017년 5월, 이 수용소 추모관 입구에 길원옥 할머니를 기리는 작은 소녀 상이 놓였으나 일본의 거센 항의와 압력으로 결국 철거되어야만 했다. 나치 수용소 내에도 강제 성노동이 존재했다는 끔찍한 진실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본질이 전시 여성 인권 유린이라는 맥락에서 결코 다르지 않음에도.. 가해의 역사를 은폐하려는 권력의 폭력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허나 2024년 라벤스브뤼크 묘지 추모식에서 주류 공식 행사에서조차 밀려난 소수자들이 한국의 '평화의 소녀상'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는 대목은 감동을 선사한다. 이는 시공간을 초월해 타자화된 약자들이 어떻게 서로의 고통에 감응하고 연대하는지를 증명한다. 소녀상 철거라는 외교적 압력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대응은 단순한 민족주의적 분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와 위안부 피해자,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배척당하는 난민과 소수자의 고통이 하나의 뿌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국가 폭력에 맞서는 '세계 시민적 연대'라는 더 크고 단단한 방파제를 구축해야 한다.

독일의 이러한 퇴행은 인구 절벽과 다문화 사회 진입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마주한 한국 사회에 뼈아픈 타산지석이 된다. 경제적 불황을 핑계로 가장 취약한 이주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불안의 책임을 전가하고, 온오프라인에서 혐오를 조장하는 현상은 이미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우리가 독일, 유럽의 씁쓸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소수자를 시혜적 대상이나 통제하기 쉬운 값싼 노동력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동등한 시민으로 포섭하는 제도적, 사회적 안전망을 다져야 한다. 무엇보다 내 안에 내재된 '정상성'의 기준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공공 시스템이 멈추는 금요일 밤에도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시민 사회의 굳건한 연대 의식을 키워나가야만 한다.


<사건은 왜 항상 금요일 밤에 일어나는가>는 각자도생의 건조한 세계에 던져진 뜨거운 숯덩이 같은 논픽션이다. 제도가 외면한 자리를 서로의 다정함으로 채워나가는 주변부 인간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타인의 고통을 관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꺼이 금요일 밤 각자의 문을 열어 그들 곁에 자리를 내어줄 준비가 되었는가?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하면서 리얼한 이 기록은 혐오의 늪에 빠지지 않고 우리 사회가 나아갈 다정한 연대의 방향을 밝히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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