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왜 항상 금요일 밤에 일어나는가
남은주 지음 / 창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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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선 자가 길어 올린 연대의 기록

창비 신간, 남은주 지음 <사건은 왜 항상 금요일 밤에 일어나는가>는 유럽의 심장 베를린의 사각지대를 조명하는 르포르타주이자 고백록이다. 저자는 <한겨레>에서 18년간 몸담으며 <한겨레21> 문화팀장과 전국부 데스크를 역임하고, 2018년 제20회 5·18언론상을 수상한 뼈 굵은 언론인이었다. 특유의 예리한 문제의식과 휴머니즘이 교차하는 문체로 정평이 난 그는 기득권의 언어를 버리고 타인의 고통 곁에 온전히 서기 위해 50세의 나이에 유력 일간지 데스크 자리를 박차고 2018년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17세 동급생들과 나란히 앉아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의 행보는 그 자체로 도전적이다. 낯선 독일어 단어인 '보호받음(Geborgenheit)'의 뉘앙스 앞에서 더듬거리는 '초급자'의 취약함을 기꺼이 감수했던 만학의 시간은 알량한 지적 권위를 벗어던지고 바닥에서부터 타인을 이해하려는 처절한 열정의 산물이다. 현실의 안락함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기꺼이 약자의 곁으로 걸어 들어가는 진정한 지식인의 용기를 일깨운다는 점에서 이 책은 현시대의 필독서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당신들은 왜 꼭 금요일 오후에, 내가 혼자 있을 때 오는 것일까."

책의 제목이 던지는 탄식은 벼랑 끝에 몰린 피난자와 소수자들에게 행정과 공공 시스템이 닫히는 금요일 밤이 얼마나 가혹한 시간인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난민 공동숙소의 비정규직 실습생이 되어 그 캄캄한 공백의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과거 나치의 홀로코스트라는 뼈아픈 반성 위에서 '환대 문화'를 자랑했던 독일이 어째서 다시 이주민을 배척하는 극우화 노선으로 회귀하고 있는지 그 이면을 해부한다는 것이다.

끔찍한 전범의 역사를 겪고도 독일 사회가 우경화되는 원인은 씁쓸하고 명확하다. 장기화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이라는 위기 앞에서 우보수 정치 세력은 대중의 불안을 이주민이라는 '타자'에게 전가하며 혐오를 정치적 동력으로 악용하고 있다. 2025년 3월 브란덴부르크 슈탄스도르프 지역에서 "히틀러 만세!"를 외치며 난민 숙소를 습격한 우익 청년들의 폭동이나, 2024년 봄부터 라이프치히와 베를린에서 정치인들이 앞다투어 피난민 강제 송환 비행기를 띄우는 야만의 풍경은 이성적 통제력을 상실한 사회의 민낯을 생생히 고발한다.

기자의 예리한 촉과 복지사의 따뜻한 시선은 과거의 비극과 현재의 혐오를 촘촘히 교차시킨다. 1940년대 나치의 'T4 프로그램'으로 희생된 마르틴 바더, 시설에서 살해된 발달장애인 안나 등 '도덕적 결함'이라는 명분 아래 자행된 살해의 역사를 현재로 소환한다. 특히 책에 등장하는 라벤스브뤼크 여성 강제수용소의 '평화의 소녀상' 에피소드는 국가 폭력과 연대의 본질을 되묻는다. 2017년 5월, 이 수용소 추모관 입구에 길원옥 할머니를 기리는 작은 소녀 상이 놓였으나 일본의 거센 항의와 압력으로 결국 철거되어야만 했다. 나치 수용소 내에도 강제 성노동이 존재했다는 끔찍한 진실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본질이 전시 여성 인권 유린이라는 맥락에서 결코 다르지 않음에도.. 가해의 역사를 은폐하려는 권력의 폭력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허나 2024년 라벤스브뤼크 묘지 추모식에서 주류 공식 행사에서조차 밀려난 소수자들이 한국의 '평화의 소녀상'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는 대목은 감동을 선사한다. 이는 시공간을 초월해 타자화된 약자들이 어떻게 서로의 고통에 감응하고 연대하는지를 증명한다. 소녀상 철거라는 외교적 압력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대응은 단순한 민족주의적 분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와 위안부 피해자,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배척당하는 난민과 소수자의 고통이 하나의 뿌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국가 폭력에 맞서는 '세계 시민적 연대'라는 더 크고 단단한 방파제를 구축해야 한다.

독일의 이러한 퇴행은 인구 절벽과 다문화 사회 진입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마주한 한국 사회에 뼈아픈 타산지석이 된다. 경제적 불황을 핑계로 가장 취약한 이주 노동자들에게 사회적 불안의 책임을 전가하고, 온오프라인에서 혐오를 조장하는 현상은 이미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우리가 독일, 유럽의 씁쓸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소수자를 시혜적 대상이나 통제하기 쉬운 값싼 노동력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동등한 시민으로 포섭하는 제도적, 사회적 안전망을 다져야 한다. 무엇보다 내 안에 내재된 '정상성'의 기준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공공 시스템이 멈추는 금요일 밤에도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시민 사회의 굳건한 연대 의식을 키워나가야만 한다.


<사건은 왜 항상 금요일 밤에 일어나는가>는 각자도생의 건조한 세계에 던져진 뜨거운 숯덩이 같은 논픽션이다. 제도가 외면한 자리를 서로의 다정함으로 채워나가는 주변부 인간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타인의 고통을 관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꺼이 금요일 밤 각자의 문을 열어 그들 곁에 자리를 내어줄 준비가 되었는가?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하면서 리얼한 이 기록은 혐오의 늪에 빠지지 않고 우리 사회가 나아갈 다정한 연대의 방향을 밝히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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