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 플레이어 투 - 가상현실 오아시스에 숨겨진 일곱 개의 조각을 찾아서 레디 플레이어
어니스트 클라인 지음, 전정순 옮김 / 에이콘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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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국내 출간된 <레디 플레이어 원>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저자 '어니스트 클라인'은 메타버스 & 가상현실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메시아로 거듭났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덧입혀 2018년 동명의 영화를 개봉했다. '오아시스'라는 가상 세계에 숨겨진 세 개의 열쇠를 찾는 모험을 그린 영화는 원작을 스크린 상에 훌륭히 재현했다. 전 세계의 대중문화 오타쿠와 메타 버스 신봉자들은 원작에 이어 영화에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다. 대중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며 N 차 관람이 늘어나고 도서 판매량이 늘어날 즈음, 나 또한 서울 어느 극장에서 <레디 플레이어 원>을 감상했다. 빈민가의 10대 소년이 가상 현실에 우연히 뛰어들어 퀘스트를 완수하며 성장한다는 스토리는 장대한 스페이스 어드벤처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처럼, 극적인 몰입감과 재미를 선사한다. 막판 거대한 건담과 메카 고질라와의 한 판 대결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영화 감상 후 접한 원작은 500페이지가 넘는 텍스트를 통해 가상세계를 세밀히 구축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우정과 사랑,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저자는 평생토록 덕질을 통해 갈고닦은, 책과 영화/음악 등에 대한 고급 & 전문 지식을 사이사이 배치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유도한다. 독자들은 그가 숨겨 놓은 복선과 힌트를 해독하고 풀이하며, 주인공과 함께 미션을 완수하고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쾌감을 누릴 수 있다.


몇 년이 흐른 후, 저자는 자신이 창조한 오아시스라는 세계가 과거의 유산에 묻혀 망각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무한 덕질을 통해 습득하고 켜켜이 누적된, 오마주를 바쳐야 마땅한 무궁무진한 대중문화판이 그를 키보드 앞에 다시 앉혔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는 '오엔아이'라는 헤드기어를 통해 인간의 뇌와 정신까지 컨트롤하는, 기존의 오아시스를 급진적으로 확장시키고 진일보시키는 변혁을 꿈꾸었다. 정점에 오른 주인공 '웨이드 와츠'는 오아시스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지만, 디지털 아바타 빌런의 출현과 함께 그의 아성은 삽시에 무너진다.


세이렌의 영혼을 깨우고 최강의 가상 빌런을 격파하기 위해 일곱 개의 조각을 찾아야 하는, 흥미진진한 퀘스트가 펼쳐진다. 흘러간 대중문화에 경배하고, 미래 세계를 촘촘히 건설하는.. 어니스트 클라인의 특기이자 장기는 신작 <레디 플레이어 투>를 통해 보다 원숙한 경지에 도달했다. 그는 일련의 퀘스트를 통해 세가에서 출시된, 시대를 앞선 여성 닌자 아케이드 게임과 80년 대 코미디 영화의 대부 '존 휴스' 감독을 소환한다.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팝 장르를 확장하고, 파격적인 캐릭터와 다양한 성 역할을 시도한 '프린스'에 오마주를 바친다.


마지막 퀘스트는 판타지의 영원한 대부, J.R.R 톨킨이 창조한 '실마릴리온'의 세계에서 궁극의 대적 '모르고스'의 왕관을 훔쳐야 한다. 저자는 마르지 않는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오아시스'를 탐험하는 이들의 좌충우돌, 혼란스러운 여정을 매끄럽게 촘촘히 구현했다. 텍스트로 차곡차곡 빚어지고 쌓아 올려진, 가상 우주에 떠다니는 온갖 피조물들은 손에 잡힐 것처럼,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실감 나고 생생하다. 어디 그뿐이랴! 저자는 머지않은 시기에 도래할 가상 세계에 대한 위험 요소를 포착하고, 현실 세계에 미칠 영향을 예견하여 소설의 주요 서사로 다루는데 성공했다. 리얼 월드와 가상 세계의 대립, 인공 지능/아바타의 체제 이탈과 반란, 마인드 백업과 이를 통한 디지털 환생과 멀티 유니버스 탐험까지.. 민감하면서도 복잡한 가상의 주제를 평생을 건 덕질과 탐구 정신으로 정면 돌파한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최근 어니스트 클라인은 레디버스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메타버스 플랫폼 'The ReadyVerse'를 선보일 예정이라 한다. "미래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다가왔다."라고 말하는 그는 진정한 덕후는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말을 몸소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평단 #레디플레이어투 #어니스트클라인 #메타버스 #가상현실 #덕후덕질 #디지털환생 #에이콘출판사 #스티븐스필버그 #전정순옮김 #신간추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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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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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첫 출간된 이후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20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른 더글라스 케네디_<빅 픽처>. 2024년 새로운 표지로 옷을 갈아입고 다시 출간되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당시에 이 책을 펼쳐 읽지는 않았다. 치열한 사회생활에 지쳐 허덕일 때였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이 책이 살아남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이 소설은 14년이 흐른 후에도 독자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거친 시간의 풍파에 밀려 수북이 쌓인 책 무덤에 묻히지 않고 신간 목록에 우뚝 선 <빅 픽처>. 난 책 표지를 열어 정독할 수밖에 없었다.



더글라스 케네디가 공들여 창조한 이 소설은 변호사 '벤자민'이 갈수록 꼬이는 현실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여정을 그린, 일종의 로드 스릴러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벤자민은 일찍이 사진작가를 꿈꾸지만 아버지의 강권에 굴복하여 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작가를 꿈꾸는 아내와 결혼하여 어린 자식들을 돌보며, 남부럽지 않은 중상류층 가정을 꾸린다. 하지만 아내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그와 충돌하며 불만을 표출하는데.. 결국 이웃 어느 사내와 불륜을 저지르고 벤자민은 그를 추적해 덜미를 잡지만, 말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상간남을 살해하고 만다. 벤자민은 깊은 고뇌 끝에 완전 범죄를 꾀하며 치밀한 알리바이와 신분 세탁을 통해 2회차 인생을 작당하는데.. 과연 그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피해자 행세를 한다는 서사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능 있는 리플리>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에서 접한, 익숙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가족을 위해, 생계를 위해 또는 주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꿈과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로망을 자극하며 기존의 스릴러물과 차별화를 꾀했다. 저자는 벤자민(벤)과 주변 인물과의 밀고 당기는 갈등 구조와 이를 해결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플롯을 치밀히 전개하며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 묘사와 사진 예술에 대한 감평은 디테일이 살아있고, 인물들의 대화는 생생하다. 독자들은 그의 작품에 열광했고, 결국 <빅 픽처>는 밀리언 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만약 벤이 와인병을 들어 게리 서머스의 머리를 가격하지 않았다면, 맥없이 주저앉아 현실에 안주했다면 이후 소설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었으리라. 또는 살인을 저지른 후 무기력하게 자수하거나 허술하게 행동했다면, 그는 잔혹한 살인자의 낙인이 찍힌 채로 감옥에 갇혔으리라. 그는 자신을 옥죄는 굴레와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생 필사의 몸부림을 쳤다. 그의 철두철미한 계획과 임기응변, 천운마저 그를 감싼 탓에 제2의 인생은 성공하나 싶지만, 운명은 그를 호락호락 놔주지를 않는다. <빅 픽처>, 이 소설은 비좁은 삶의 화폭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려는 한 남자의 험난하고 기나긴 인생 여정을 따라간다.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는 그 길은 온통 가시밭길이며 도중에 마주치는 이들은 협력자도 있지만 이빨을 드러내는 악인들이 부지기수다. 벤이 어떻든 역경을 돌파하고 사진작가로서 재능을 꽃피우면서, 그 과정을 지켜본 독자들은 그를 동경하고 응원을 할 수밖에 없다. 소설을 단숨에 독파하고 역자 후기까지 읽고 나서 난 궁금증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조력자이자 애인 앤과 함께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았을까? 과연 이후 도래하는 프라이버시가 전무하고 사방팔방 관계가 뻗어가는 SNS 시대에 그는 신분을 감출 수 있었을까? 어찌했든 그는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자신의 인장이 새겨진 '큰 그림'을 그리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한 폭의 그림을 이루기까지 구상, 스케치와 세부 묘사를 하는 전 과정을 누리고 싶다면..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를 펼치시라. 한 편의 소설을 통해 맛볼 수 있는 최대치의 대리 만족과 쾌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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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처럼 사라진 남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2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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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부터 살인 현장이 펼쳐진다. 이미 시신은 감식반에 의해 실려나갔고, 하얀 묵필로 표시된 굵은 실루엣 만이 남아있다. 스웨덴의 노련한 형사 '마르틴 베크'는 동료 콜베리와 함께 용의자의 자백을 받는 데 성공한다.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 그는 가족들과 함께 섬에서 휴가를 즐기지만, 그를 찾는 긴급한 전화와 함께 달콤한 휴식은 산통이 깨지고 만다.

'마르틴 베크'의 두 번째 이야기는 그가 휴가 중에 긴급히 경찰서로 복귀해야 하는 건으로 시작된다. 스웨덴의 발 빠르고 영민한 저널리스트 한 명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실종됐다. 외무부 관료, 실종 기자가 소속된 잡지사, 헝가리 현지 경찰까지 개입하여 복잡히 엉킨 사건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갈수록 미궁으로 빠지는데..



마르틴 베크는 혈혈단신 부다페스트로 건너가 실종자의 족적을 쫓는다. 60~70년대 부다페스트의 도나우 강을 건너는 유서 깊은 다리들, 머르기트 섬, 페슈트 구역과 부더 구역 등 주요 시가지의 풍경이 눈에 보이는 듯 생생히 묘사된다. 주의 깊고 신중한 형사와 마주치는 용의자들의 인상착의는 세세히 그려진다. 그의 오감을 동원하여 감지하는 현장의 특이점과 분위기는 담담하면서도 세심한 문장으로 다가온다. 동료들, 협력자들과 나누는 대화는 시니컬하면서도 위트가 흐른다. 공동 저자 마이 셰발, 페르 발뢰가 창조한 '마르틴 베크' 시리즈 2탄,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는 경찰 소설의 신영토를 개척할 만한, 완숙한 경지를 선보인다.


사건의 서사는 초반에는 차분하게 진행되다가, 변곡점에 이르러서는 긴장도를 끌어올리며 독자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용의자로 마주친 여성이 마르틴 베크의 숙소를 찾아와 유혹하는 장면은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다가 차갑게 얼어붙는다. 대마초를 밀매하는 패거리가 그를 불시에 습격하여 난투를 벌이는 장면은 혈흔이 난무하고 아슬하기만 하다.


피날레까지 30여 페이지를 앞두고, 마르틴 베크는 스웨덴으로 돌아와 사건을 처음부터 되짚는다. 그는 냉철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행방이 묘연한 기자의 행적을 역으로 되밟으며 용의자를 절벽 끝으로 몰아간다.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는 숨 막히는 반전과 고밀도의 서사를 독자에게 선사하며 마지막 페이지와 문장까지 긴박감을 불어넣는다.

과연 마르틴 베크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건을 마무리 짓고, 가족들이 기다리는 휴양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수사에 임하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하다면 망설이지 말고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를 펼치시라.



우리는 유럽의 북적이는 구시가지와 낡은 선로를 운행하는 목재 열차, 썩은 달걀 냄새가 진동하는 유황 온천에서 어느 형사의 지친 얼굴을 마주할 것이다. 뿌연 안갯속에서 야광으로 빛나는, 형형한 두 눈동자가 어둠을 꿰뚫는다.

그의 발걸음은 느리지만 지칠 줄 모르니 부디 놓치지 말고 뒤를 따르라. 그는 자그마한 실마리도 놓치지 않고 사냥개 마냥 끈질기게 따라붙어, 짙은 그늘 아래 숨은 범인의 목을 조르고 수갑을 채울 것이다. 우리는 마르틴 베크, 그를 믿을 수밖에 없다.




#연기처럼사라진남자 #마르틴베크 #경찰형사소설 #문학동네 #엘릭시르 #마이셰발 #페르발뢰 #김명남번역 #서평단 #책추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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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산들 문학인 산문선 5
이즈미 세이이치 지음, 김영수 옮김 / 소명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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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 세이이치는 1927년 부친 이즈미 아키라가 경성제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조선으로 이주했다. 그는 경성공립중학교 3학년 때부터 경성 근교의 산을 오르면서 등산가, 알피니스트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이어 경성제대 재학 시절, 최초의 대학산악회인 '경성제대 산악회'를 창설하여 왕성한 산악 활동을 펼친다.

20세기 초 조선 북녘의 금강산, 관모봉, 부전고원, 백두산 등정까지 실행하였고, 주위 풍경과 지형, 상세한 감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는 소중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수차례 금강산에 오르는 여정을 공들여 설명한다. 장안사의 방갈로에서 머무르다 망군대로 가는 길, 태초의 자연을 간직한 내외금강의 비경, 너덜지대를 통과하여 비로봉에 도달하여 금강산 전체를 조망하는 벅찬 감정을 글로 옮겼다.



p29>>

처음 오른 비로봉 정상에서의 한 시간을 나는 잊어버릴 수 없다. 금강산의 장대함을 통해 산의 굳건함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힘과의 관계를 몸이 저릿할 만큼 느꼈다고나 할.. 그런 느낌이었다.



해방 이전 조선에 자리한 주요 봉우리들. 백운대, 인수봉, 만폭동 계곡, 접선봉 등을 오르내리며 남긴 글을 생생하기 그지없다. 이즈미 세이이치는 조선의 명산을 등정하며 등산가와 인문학자로서의 꿈을 동시에 키워 나갔다. 남해를 건너 제주도에서 등정한 한라산에서 뜻밖의 조난을 당한 동료의 사고에 괴로워하지만,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굿거리를 통해 토속 신에게 실종자의 행방을 묻는 제주도의 무속 신앙에 놀라워하면서도,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면서 학문적 폭을 넓혔다. 그가 졸업논문으로 제출한 <제주도- 그 사회인류학적 연구>는 당시의 제주도와 도민들의 사회상, 민중 문화를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후 이즈미 세이이치는 몽골, 대만 등 중앙아시아, 남태평양의 뉴기니, 남미를 방랑하며 등산가에서 탐험가로서 입지를 다진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군 복무와 아시아의 식민지 탐방을 하면서 일제가 몰락하는 전조를 포착한다. 학계 강연과 기고를 통해 일본 사회에 경고를 하지만, 그의 발언은 무시되고 탄압받기 일쑤였다. 이 책에 일제가 패망하고 조선을 비롯한 여러 식민지가 해방을 맞이한 기록이 상세하지는 않지만, 일본은 이전의 과오를 인정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바람이 일부 행간에 묻어 있다.



쇠창을 든 뉴기니 섬의 원시 부족들이 밤새 호전적인 춤을 추며 위협하는 가운데 의료 봉사지원을 하고, 떼 지어 날아다니는 박쥐들을 수렵하여 통으로 구워 먹는 파푸아인들의 식생이 흥미롭다. 페루에서 '교차된 손의 신전'을 발굴하고 안전한 박물관에 보관하려는 일련의 노력들을 기술한 몇몇 에피소드에 이르러서는 저자의 고고학, 인류학에 대한 무한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이즈미 세이이치가 1967년 8월부터 산악 잡지 <Alp>에 연재한 기록은 1970년 6월에 마무리되었다. 멕시코 국경을 넘어 과테말라 일본 대사관에 걸어서 도착한 기록이 끝이다. 당대의 지리/생태학을 반영한 탐험기이자 문화인류학적 회고록으로 남은 이들 기고문을 김영수 역자가 매끄럽게 번역하고, 소명출판에서 최근 출간한 저작물이 <머나먼 산들>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연재 마무리 5개월 후, 70년 11월 뇌출혈로 급서했다. 향년 55세, 지병도 없었기에 너무 이른 죽음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생이 더 길었다면, 해방 후 조선과 일본의 알피니스트 조직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며 탐험가, 인문학자로서의 소명을 다했으리라. 항시 그리워하고 꿈꾸던 히말라야와 아프리카 야생의 고원 등을 누비며 <머나먼 산들> 이후 다음 작품을 펴내지 않았을까 싶다.




#머나먼산들 #이즈미세이이치 #소명출판 #신간추천리뷰 #책리뷰 #서평단 #학문적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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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 이상하고 신비롭고 환상적인 어느 날 밤 인생그림책 31
볼프 에를브루흐 지음, 김완균 옮김 / 길벗어린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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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이 뒤바뀐 아이와 달밤 '산책'을 나간 적이 있나요?


밤이 깊을수록 어린아이 솔의 눈동자는 밝게 피어나요


엄마는 입을 벌린 채 곤히 자고, 아빠는 드르렁 코를 골아요


아이는 뒤척거리다 잠드는 걸 포기하고는 아빠의 긴 코를 잡아 흔들어 깨워요


아빠는 피곤해 뒤척이고 아이를 다독이지만, 아이의 눈길과 발자욱은 이미 밖을 향해 있어요


어쩔 수 있나요? 아빠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곤 뚜벅뚜벅, 밤 산책을 나가요


키다리 가로등 주위는 환하지만 그 바깥은 어둑하고 껌껌해요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는 고개를 내밀어 주위를 살피고, 여기저기 손짓을 해요


하늘 높이 뜬 둥근 달의 얼굴을 가리는 레드 미키마우스에 놀라고


도로를 횡단하는 거대한 흰 고릴라의 손을 잡고 걸어요

갈라진 도로의 틈을 잇는 강아지 등을 밟고 건너고


토끼와 앨리스가 펼치는 이상한 나라의 서커스를 구경해요


너무 신기해요, 아빠! 저거 보여요? 


하지만 아빠는 유모차 손잡이를 잡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어요


아쉬웠지만 집으로 돌아왔어요 호리병에 갇힌 토끼와 더 놀고 싶었지만 아빠가 너무 피곤해 해서


다음에 놀기로 약속했지요 집 현관에 도착하자마자 난 눈앞이 흐려지더니 바로 잠이 들었어요


유모차에 탄 채로 말이에요 아빠는 그런 날 바라보더니 미소를 짓고는


서가에서 어느 그림책을 찾아서는 작은 목소리로 내게 읽어 주었답니다.


그 후로 어스름한 새벽에 눈을 뜰 때면 그 일이 떠올라 아빠에게 묻곤 해요


아빠, 오늘 우리 밤 산책 나갈까요?




- 볼프 에를브루흐의 <산책> 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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