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전 조선에 자리한 주요 봉우리들. 백운대, 인수봉, 만폭동 계곡, 접선봉 등을 오르내리며 남긴 글을 생생하기 그지없다. 이즈미 세이이치는 조선의 명산을 등정하며 등산가와 인문학자로서의 꿈을 동시에 키워 나갔다. 남해를 건너 제주도에서 등정한 한라산에서 뜻밖의 조난을 당한 동료의 사고에 괴로워하지만,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굿거리를 통해 토속 신에게 실종자의 행방을 묻는 제주도의 무속 신앙에 놀라워하면서도, 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면서 학문적 폭을 넓혔다. 그가 졸업논문으로 제출한 <제주도- 그 사회인류학적 연구>는 당시의 제주도와 도민들의 사회상, 민중 문화를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후 이즈미 세이이치는 몽골, 대만 등 중앙아시아, 남태평양의 뉴기니, 남미를 방랑하며 등산가에서 탐험가로서 입지를 다진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군 복무와 아시아의 식민지 탐방을 하면서 일제가 몰락하는 전조를 포착한다. 학계 강연과 기고를 통해 일본 사회에 경고를 하지만, 그의 발언은 무시되고 탄압받기 일쑤였다. 이 책에 일제가 패망하고 조선을 비롯한 여러 식민지가 해방을 맞이한 기록이 상세하지는 않지만, 일본은 이전의 과오를 인정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바람이 일부 행간에 묻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