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여전히 대문자 L로 적힌 Life, 삶의 압력을 느끼려고 읽는다._26p

책을 다시 읽고 싶어서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이 못 말리는 애서가의 당찬 포부에는

유쾌한 전염성이 있다._245p



작가들의 작가, 이 시대 최고의 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스트 '비비언 고닉'의 최근작 <끝나지 않은 일>. 글항아리에서 출간한 비비언 고닉 선집 마지막 책이다.

정식 출간본에 앞서 티저 북을 읽어 보았다. 20여 페이지의 발췌록과 옮긴이의 말 전문.

책의 일부를 들춰보았을 뿐인데도, 저자의 집필 의도와 방향, 관통하는 주제를 짚기에는 무리가 없다.


유한한 인간의 삶, 그와 함께 명멸하는 수많은 책들. 극히 일부는 세대를 넘어 빛을 발하는 클래식한 고전으로 남아 우리 곁을 지킨다. 과거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아닐 수 없다. 현재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영상과 웹툰, 게임이 넘쳐나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기 어려운 요지경 세상. 혼란하고 번잡한 세상 살이 중에 어느 책을 재독한다는 것은 책과의 범상치 않은 인연에 의미를 둘 수도 있지만, 독서에의 열망과 의지를 다짐하고 정연한 삶을 향한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만 달성할 수 있는 거사임에 틀림없다.



희수를 훌쩍 넘은, 적지 않은 나이의 비비언 고닉은 밖으로 거동하여 급변하는 세상을 체험하기가 어렵다. 그녀는 노회한 몸을 움직이는 대신, 곁을 지키는 문학 작품을 '다시 읽는다'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여전히 진화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흰옷을 입은 여인>, <작은 아씨들> 등 유년기를 통과하는 의식처럼 머물렀던 다수의 문학 작품을 통해 아직 영글지 않았어도 찬란한 젊음을 과시하던 시절을 추억한다. <사나운 애착>을 다시 읽으면서 증오에 가까운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다독이고, 여성 운동의 이론과 실천이 동떨어진 시대의 딜레마를 돌아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서술 방법, 즉 자기중심적인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하는 문학 평론에 대해 독자들이 자신의 곁에 바짝 다가서서 바라보고 사유하는 모든 것에 공감하기를 바라는 바람을 드러낸다. 어느 문학 작품을 재독하면서 처음 읽었을 때의 시공간으로 되돌아가 당시를 되돌아 보고, 과거와 현재에 비친 각각의 뉘앙스를 비교하고 음미하는 것. 시간의 흐름에 따른 두 자아가 거듭된 읽기를 통해 어떻게 분열하고 충돌하는지, 이러한 시행착오를 통해 균열되고 상처 입은 자아의 응어리들이 심사숙고 끝에 합일하고 화해하는 구체적 과정을 보여준다. 비비언 고닉은 통합되고 실천 가능한 자아라는 생의 위업에 다가서기 위한, 몸부림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새겨진 분투의 기록을 여기에 남겼다.



난 <끝나지 않은 일> 일부를 읽으면서 지난날 읽었던 몇몇 책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생전 아버지가 곁에 어린 날 누이고 외우다시피 읊어주셨던 현진건 작가 <운수 좋은 날>의 마지막 장면.. 연중 손꼽을 정도로 돈벌이가 좋았던 운수 넘치는 하루의 마지막에, 싸늘히 식은 처의 시신을 붙들고 오열하는 어느 사내의 울부짖음을 복기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삶의 예측불가함, 처절함에 경악한다. 언제든 방심하고 행복에 겨워하는 뒤통수를 냅다 후려갈기고, 뜨끈한 설렁탕 뚝배기를 뒤집을 수 있는 인간 운명의 얄팍함, 배신에 대해 깨닫는다.

또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석양을 바라보는 스칼렛 오하라의 그 유명한 마지막 외침보다..

"한 나라가 흥할 때는 물론 돈이 굴러들어 오지. 하지만 어느 나라가 망할 때도 부를 움켜쥘 수 있는 법이야."라는 작가의 글귀가 '각자도생'이 메인 키워드로 등장한 현시점에 더 마음에 와닿는다. 그 밖에 무수한 작품들의 복잡다단한 문장, 각양각색 이미지와 꼬리를 무는 대사들이 기억과 망각 경계선에서 떠돌고 있다.


처음 읽기도 쉽지 않은 시대에 '다시 읽기'라는 흔치 않는 행위가 깊이 없이 겉돌고 방황하는 현 세태의 우울과 공허함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제시되길 바라며.. 비비언 고닉의 <끝나지 않은 일> 전체를 완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이 글에 남긴다.





#서평단 #티저북 #끝나지않은일 #비비언고닉 #김선형옮김 #글항아리 #신간추천리뷰 #다시읽기 #성장서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에 사는 코끼리
미코와이 파신스키 지음, 고시아 헤르바 그림, 정주영 옮김 / 마리앤미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코와이 파신스키/고시아 헤르바_<달에 사는 코끼리>는 달을 바라보는 각자의 마음을 그리고 있어요.

망원경으로 달을 바라보는 어느 천문학자의 눈이 푸르스름하게 빛나요.

달에 마음을 빼앗긴 그녀의 눈에 색다른 무언가가 보였나 봐요.

커다란 덩치에 코가 기다란 달 코끼리가 달 표면에 비친 거예요.

처음엔 천문학자 자신도 믿지 못했어요. 다른 사람들 또한 코웃음 치며 그녀를 비웃었어요.

그림책을 읽는 저 또한 믿을 수가 없었지요.



결국 그녀는 달 코끼리를 만나기 위해 머나먼 여행을 떠나요.

달 코끼리는 그녀를 위해 여행 가이드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비밀 임무를 설명하기도 해요.

그녀는 달에 오래 머물면서 미처 깨닫지 못한 달의 숨은 풍경과 생물들을 기록했답니다.

지구 사람들은 그녀의 말과 글에 공감하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17세기 천문학자였던 '폴 닐' 경은 달에 있는 코끼리를 관찰했다고 해요.

아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달을 바라보면서 각기 다른 그림을 떠올려요.

누군가는 달을 보면서 커다란 토끼들이 살고 있다고, 한가위 추석이면 인절미를 빚기 위해

절구질을 빻는다고 말하기도 해요.


저희 아이들은 둥그런 보름달을 볼 때마다 달님이 기분이 좋은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고

말하곤 했답니다. 저 또한 마음을 열고 휘영청한 달을 바라보면 칙칙폭폭 질주하는 은하 철도와

거대한 우주 전함의 그림자가 어른대기도 해요.

각자의 어릴 적으로 돌아가, 때묻지 않은 마음으로 저 달을 바라보면..

저마다 원하고 바라는 숨겨진 무언가가 떠오를 겁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어떤 달 풍경이 그려지는지요? 무척 궁금합니다.



#서평단 #달에사는코끼리 #미코와이파신스키 #고시아헤르바 #정주영옮김 #마리앤미 #그림책추천리뷰

#각자의달풍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 쉬는 것들은 어떻게든 진화한다 - 변화 가득한 오늘을 살아내는 자연 생태의 힘
마들렌 치게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_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어릴 적 외가에서 고슴도치를 발견한 적이 있다. 연탄 풍로 안 깊숙이,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던 녀석은 근처 야산에서 인가로 내려온 듯했다. 미동도 하지 않던 그 고슴도치는 이후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낯선 도시는 녀석에게 생경하고 충격적인 곳으로 남았으리라.



마들렌 치게_<숨 쉬는 것들은 어떻게든 진화한다>는 진화 생물학자의 눈으로 지켜본, 낯선 곳에서 생존하고 투쟁하는 생물들에 대한 탐구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 프랑크푸르트에 나타난 야생 토끼들을 관찰한다. 자신은 고층 빌딩이 즐비한 대도시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음을 토로하면서, 시골보다 도시에 토끼 무리가 많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추적하기 시작한다. 토끼들은 수대에 걸쳐 서식지를 옮기면서 생활을 하면서, 어디서 적응이 용이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릴 수 있는지에 대해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토끼들이 천적에게 쫓겨 희생 당하고, 개체 수가 감소하는 위기에 처했겠는가. 결국 토끼들은 인간들이 이룩한 문명에 가깝게 생활하는 것이 진화론적 관점에서 타당한 최선의 선택임을 동물적으로 터득했다.



저자는 도시 토끼들이 최선의 서식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그들을 생존하게 하고, 환경에 적합한 유전자를 구축하는 동력을 제공했다고 설명한다. 가뭄을 기억하고 전파하는 개나래새, 기생충을 물리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절단하는 민달팽이, 늪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호흡뿌리를 발달시키는 맹그로브숲 등.. 자연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스트레스에 대응하고, 환경에 적응하다가 끝내 진화하는 과정을 거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인간 또한 스트레스를 무작정 회피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서식지를 찾는 과정 속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적응 반응임을 인식하고 인생의 동반자처럼 대할 것을 조언한다. "날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적절한 스트레스는 다양한 환경에서 자신을 생존케 하고,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영유하기 위한 필수 요소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평안을 누리고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처소는 본능적으로 파악 가능하다. 각자의 DNA, 유전자에 적합한 환경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각자가 외진 곳에서 고독을 감당하는 살쾡이나 독수리인지, 문명 가까이 무리 생활을 즐기는 토끼, 비둘기인지 등을 판단하여 그에 적합한 환경을 찾아야 할 것이다. 누군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뜻을 따라 복잡한 인간관계를 피해 산골 오지에 은둔한다 해도, 그는 사무치는 외로움과 공포, 나날이 영역을 침범하는 자연에 대항해야 하는 난관에 처할 수도 있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스트레스가 없는 무해 청정 구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숨을 쉬는 한 스트레스는 모습을 달리해 자신을 덮칠 것이고, 이를 친구로 삼을지 적으로 대할지는 각자의 생각에 달린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온갖 압박을 견디고 자신의 일부로 체화한 자만이 낙원에 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들렌 치게는 <숨 쉬는 것들은 어떻게든 진화한다>를 통해 자연에 속한 모든 생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스트레스를 친구 삼아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고 친절히 설명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메가 도시 서울을 비롯한 한국 각지에서 일상을 지속하는 자신이 대견스러워질 것이고, 어디서든 적응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서평단 #마들렌치게 #숨쉬는것들은어떻게든진화한다 #흐름출판 #배명자옮김 #신간추천리뷰 #진화생물학 #스트레스는우리의친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진 소방차 마르틴 베크 시리즈 5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르틴 베크 시리즈 다섯 번째 권 <사라진 소방차>. 시리즈 중반에 다다른 만큼 마르틴 베크를 비롯한 스웨덴 형사들의 수색, 심문, 수사 능력은 원숙의 경지에 오른 것처럼 보인다. 여전히 말단 경찰들은 실수 연발이고, 베테랑 형사들마저 사건의 핵심을 짚지 못해 겉돌 때도 있지만,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하려는 근성과 끈기는 최고조에 다다랐다.


성 오틸리아 영명 축일, 어느 사내가 침대에 누워 권총 자살을 한다. 메모장에 익숙한 이름, '마르틴 베크'를 적은 채로.. 마르틴 베크는 목숨을 끊은 그와 일면식이 없다.


초반 서사는 발 빠르게 진행된다. 터프한 형사 '군발드 라르손'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느 공동 주택이 폭발한다. 라르손은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다가가 여러 생존자들을 구해내 일약 영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발생 초기, 단순 화재 사고라 여겼던 건은 과학 수사를 통해 전문가의 폭발 방화 사건으로 파악되면서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은 원점으로 돌아가 수사를 진행한다.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지고 시간은 기약 없이 흐른다.

하지만 기나긴 터널 끝에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세부를 놓치지 않는 정황 묘사와 인물들 간의 대화는 독자가 실제 현장에 투입된 것처럼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한다. 공동 저자들 또한 시리즈와 함께 성장을 하고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르면서, 독자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서사의 완급을 조절하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감을 조성한다. 파열하는 불길과 잔해를 뒤집어쓰며 피해자를 구조하는 형사의 몸부림,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차량을 발견하고 견인하는 과정의 세부 묘사 등 굵직한 줄거리는 흡인력이 상당하고 리얼하게 진행된다.


중간중간 투척된 세부 떡밥을 잊지 않고 회수하는 능수능란한 서사 작법, 인터폴과 협조하여 국제적인 프로 킬러를 일망타진하는 시원한 사이다 엔딩까지.. 시작만 거창하고 끝은 흐지부지한 용두사미 스타일의 여타 범죄 스릴러물에 지쳤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라!


자신 있게 마이 셰발 & 페르 발뢰가 창조한 마르틴 베크 시리즈 다섯 번째, <사라진 소방차>를 읽어 보라 추천하고 싶다. 재미와 함께 시대를 관통하는 사회 문제까지 숙고하는,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서평단 #사라진소방차 #엘릭시르 #마이셰발 #페르발뢰 #마르틴베크시리즈 #경찰형사느와르 #김명남번역

#스웨덴범죄소설 #마르틴베크시리즈정주행멤버 #문학동네 #책추천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날은 그렇게 왔다 - 나는 중증장애아의 엄마입니다
고경애 지음, 박소영 그림 / 다반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는 이 글을 꼭 써야만 했습니다.

우리 준영이가 이 세상에 존재했었고,

세상 속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13년간 있었다 갔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_작가의 말



생후 6개월에 폐렴으로 시작된 원인 불명의 병이 악화되어 중증 장애아가 된 준영이.

아이가 사춘기 나이가 될 때까지 13년간 이어진 엄마의 간병 기록.

고경애 작가. 그녀는 준영이 엄마다. 중증 장애아 준영이는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일부를

잃어가고 있다. 그녀는 몸을 가누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는 아이를 돌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지난한 시간과의 투쟁인지를 고백한다.


아이를 껴안은 채, 한 점 빛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그녀는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쏟았을는지.. 두 아이의 아빠로서 속이 끊어지고 문드러졌을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지만, 섣부른 공감의 말을 건네기는 어렵다. 한없는 고통의 시간을 몸소 겪어보지 않고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나날이 무언가를 상실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엄마의 처절함, 안타까움, 비애, 집착, 미련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페이지 곳곳에 넘친다. 책은 조심스럽게 더디게 읽힌다. 서서히 끝을 향하는 준영이와 하루라도 생을 늘리려는 엄마의 고투가 이어지면서, 차오르는 눈물을 거두기 어렵다. 애써 담담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도 버겁다. 끝내 삶의 끈을 놓아버린 아이의 휘어진 뼈를 맞추고, 수의를 입히자 그녀는 탄식을 지른다.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편한 자세로 훌쩍 자라버린 아이를 바라보며 엄마는 무너져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기나긴 터널 밖으로 나왔지만, 그녀의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외부와 단절된, 어둡고 괴로웠던 터널의 시간을 떠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허나 엄마는 먼저 떠난 준영이를 가슴에 묻을 수는 없었다. 이대로 망각의 바다 어딘가에 준영이를 가라앉게 둘 수는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의 기쁨, 비극이 덮친 이후의 슬픔, 괴로움, 분노, 회한.. 곳곳에 보석처럼 숨겨진 웃음과 행복을 떠올리면서 그녀는 문장으로 층층 쌓아 올린 '애도의 탑'을 완성했다. 그토록 아끼고 보듬던 준영이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것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당부의 말을 잊지 않는다.


우리네 삶은 예측불가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인간의 운명은 (신이 존재한다면..) 그의 거대한 손바닥에서 질주하는 한낱 개미들처럼 언제든 짓눌리고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다. 유감스럽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곁의 지인들을 지켜볼수록 신은 무심한데다 잔인하고 무자비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언제든 비극의 주역이 되어,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으로 처지가 뒤바뀔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 분명 장애 아동을 비롯한 장애인이 존재함에도 그들이 좀체 보이지 않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건 바로 장애인의 이동권마저 보장하지 않는 낙후된 사회 정책과 차별적인 시선이 존재하기에 그들이 좁은 골방으로, 어둑한 그늘로 숨어들고 유폐당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중증 장애아의 엄마로서 일상을 이어갔던 기억을 되살려, 장애인 이동권과 복지 시설 확충을 위한 국가/민간 지원과 연대/협력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그녀의 의견에 동감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비장애인은 장애인에 비해 너무나 많은 권리를 보장받고 있고, 과다한 편의를 누리고 있다. 사회가 힘들고 고난에 처할수록, 사각지대로 밀려난 장애인의 처지를 돌아보고, 그들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을 길러야 할 것이다. 그보다 앞서 국가/정부 차원의 실효성 있는 정책이 우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아직 <그날은 그렇게 왔다>를 접하지 못한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면서..

저자에게 조심스러운 말을 건네고 싶다.

저세상에서 준영이는 엄마와 함께 했던 나날들이 행복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추억할 거라고..

인간의 운명을 저울질하고 좌지우지하는, 저 냉혹한 신마저도 한 엄마의 무한한 사랑과 정성, 인내에 감복하여

준영이의 안식을 약속할 거라고.. 당신은 포기를 모르는, 강인하고 자애로운 모성애의 대표이자 모범임을 잊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



책 표지를 덮으며 난 저자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고경애 작가 <그날은 그렇게 왔다>는 품을 떠난 아이를 애도하고 기리는 마음으로 쌓은,

그녀만의 탑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서평단 #고경애작가 #그날은그렇게왔다 #중증장애아엄마 #다반 #박소영그림 #애도의탑

#삼가준영이의명복을빕니다 #신간추천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