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나무
아야세 마루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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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치자나무_아야세 마루_현대문학



아름다운 로맨스의 선율이 느껴졌던, 그러나 작가가 그리는 독특한 세계관이 매력적이었다. 오묘하면서도 잔잔한 전개 그리고 심리적 긴장감은 더욱더 <치자나무>에 몰입되었다. 소설의 규칙성이 이제는 의미가 없게 된 걸까, 싶었다. 그렇다면 개연성을 따지지 않고 예술 소설이라고 치부해버린 다면 어떨까. 아니면 작가만의 개성이라고 해둔다면. 그 어떤 이야기라도 독자 스스로가 이해해버리면 될 것 같다.
이 소설은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집중되어 버리는 묘함이 있었다. 해괴망측한. 그리고 자연스레 남녀간의 불륜의 결말을 얘기하는 중인데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이별의 댓가로 여자가 원한 게 돈이 아니라 남자의 팔이었다니. 그런데 남자의 반응은 더 기가막히다. 
나는'제 정신인가? 팔을 달라니, 이 무슨 그로그테스크함인가.' 하며 당황했다. 근데 진짜로 팔을 준다. 어떻게? 그냥 몸에서 떼어 준다.
소설의 세계에선 그게 가능한 걸까, 싶은. 독자는 그저 읽으라는 건가.
팔의 특정 부분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뚜둑 하고 뼈가 분리되면 돌려서 뽑아낸다. 이 때 독자들은 고통스런 비명과 피가 분수같이 뿜어져 나오겠지, 하겠지만 그런 건 없었다.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않고 작가 의도대로 독자에게 이야기를 주입시키는 것이 독특했다. 물론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하고 싶다. 그만큼 이 소설은 특이하고 매력적으로 다가 왔다. 뭐랄까, 클래식 음악으로 치자면 조성음악이 깨어져 버린 자유 형식의 무조 음악이라고 하면 될까, 아무튼 당황스러웠다.
분명히 팔을 뽑아내는 건 공포스럽다. 그러나 마치 선물을 주고 받는 듯한 전개는 자연스러웠다. 이 두가지 심리적인 대비가 굉장했다. 결국 그 팔은 여자에겐 사랑했던 남자의 최후의 흔적이자 추억을 간직한 존재였다. 괴기스럽게도 그 팔은 살아움직이는 생명성이 있었다. 남자의 습성을 그대로 갖고 있었고 여자에게 남자의 숨결과도 같은 사랑을 주었다. 보고, 듣고, 행동하는 팔.
그걸 유리 화병에 담아 물을 채워 놓고 담그면 신선함을 유지했다. 
<치자나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건 팔이라는 존재였다. 남자의 팔을 찾으러 오는 부인. 다툼 끝에 거래를 하는데 남편의 팔을 돌려주고 부인의 팔을 받는다. 거기서 또 느껴지는 부인에 대한 남편의 마음을 또 그 팔을 통해 느낀다. 
공원에서 마주친 치자나무. 그리고 그곳까지 여자를 이끈 부인의 팔. 그것들의 관계는 무엇일까.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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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해변
이도 게펜 지음, 임재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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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예루살렘 해변_이도 게펜_문학세계사

참 독특한 소설이다. 92년생 작가 의 인생 안에서 어떻게 이런 소재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하며 감탄했다. 예루살렘엔 바다가 없다. 허나 그건 주인공 내면의 바다요, 무의식의 세계 속에 존재했던 것 같다. 그리고 왠지 모를 추억으로의 여행이었다. 과거 젊은 시절의 새미와 60년후 노인이 되어 다시 찾은 새미의 현재. 세월에 농익은 마음가짐과 노쇠해버린 신체. 그리고 젊은 청년들을 향한 불편한 심기와 함께 잦아드는 즐거움. 그 즐거움은 젊음을 바라보면서도 내 추억을 그들에게 심어놓는 듯 했다. 노인도 머나먼 과거엔 청년이었고, 아이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해변>은 노인 요양원에 가기 전날 아내 릴리안과 존재하지 않는 예루살렘의 바다를 찾아 남편 새미와 도시 여행을 떠나는 로드무비 형식의 소설이다. 나는 아직 노인은 아니지만 웬지 모를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결국 나도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될 것이고 지금도 서서히 늙어가고 있는 건 진리이기 때문이다. 짧은 소설이었지만 묘한 그리움을 느꼈다. 어느덧 청년기가 저물어 청년, 중장년, 노년이 되기까지 우리는 저마다 다양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새미의 아내 릴리안의 머리가 바람결에 날리자 휑하니 들어나는 정수리. 그걸 얼른 가려주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안쓰러우면서도 남일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폰으로 시끄럽게 음악을 트는 청년 무리를 향해 당차게 음악을 꺼달라고 하는 새미의 모습은 영락없는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는 바다가 없음에도 아내를 위해 기꺼이 상점 직원에게 당당하게 바다가 어딨냐고 묻는 새미. 그 어이없는 질문에 상점 직원은 말문이 막혀 버리지만 거기에 더해 릴리안은 남편의 편을 든다. 왜 대답을 하지 않냐고. 그 모습에서 노인 부부와 사회의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노인이니까, 나이 많은 어르신이니까, 아니면 노망 든 노인들이 미친 소리를 하는구나 치부해버리는 사회. 그래도 결국 노인은 꿋꿋하게 자기 의지대로 밀고 나갔다. 더 이상해지는 분위기를 얼른 끊고 새미는 아내를 이끌어 그곳을 벗어났다. 
어느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공차는 모습을 보며 박수치고 환호하는 릴리안. 그러나 곧 아이들이 모르고 찬 공에 머리를 맞아버렸다. 새미는 놀라며 아내를 보호했고 분노에  찬 마음으로 과일을 썰던 과도로 아이들의 공을 찢어버리고 바람을 빼며 돌려준다. 
새미의 아내 릴리안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다.

알츠하이머: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으로 서서히 발병하여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의 악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병.
출처: 네이버 사전.

곧 아내의 기억은 상실되며 이곳이 어디인지 조차 모르게 되지만 여전히 부부는 바다를 찾고 있었고, 릴리안은 기대하고 있었다. 
바다.. 새미가 만들어 낸 바다는 놀라웠다. 
사실 별 것 아니었지만.

예루살렘에는 바다가 없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 바다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건 노인들의 추억 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회와는 동떨어진 내  존재. 그러나 함께하는 이가 있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있다는 것. 그리고 같이 바다를 공유하는 부부는 아름다웠다. 

이 책은 <예루살렘 해변>을 비롯하여 다양한 소설이 엮인 단편집이다. 이 작품집으로 이스라엘 문화부 장관상을 수상했으며 몇몇 작품은 판권이 팔려 영화화 될 것이라고 한다.
이도 게펜이 차기작을 출판하면서 꼭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는데 내한하면 그를 보러 꼭 가고 싶다. 한국음식을 참 좋아하는 분이셨다.
이 책을 온 열정을 쏟아 번역하신 임재희 번역가님의 후기가 글의 뒷면에 있는데 그 부분을 참고해서 읽고 싶은 단편부터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추천 보증심사지침' 개정안에 따라 명확하게 경제적 이해관계를 밝힙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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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더클래식 한국문학 컬렉션 1
김승옥 지음 / 더클래식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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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무진기행_김승옥_더클래식


상실 된 사람들. 채워지지 않은 각자의 불완전한 인생들. <무진기행>은 무진으로 가는 단순한 기행 소설이 아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실 된 무언가를 서로가 채워주고 있었다. 그렇게 보이면서도 사회적인 위치에 따라 차별받고 차별하는 잔인성은 드러나지 않는 칼날 같았다. 상실의 세계. 그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쓸쓸하고 고요했다. 한 여자와의 애매한 관계 속에서 우러나오는 성욕의 본능. 그저 채우고 싶어했던, 그러나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행동은 인간의 가려진 이면처럼 느껴졌다. 불륜의 사랑이 될 것 같으면서도 그저 연민인지도 모를 남자의 행동. 결국 편지지를 찢어버리고 잊히는 것은 상실된 과거의 자신에게서 어떤 해결점을 찾는 듯 보였다. 결국은 돌아가야 할 곳으로 가야하는 건가 싶었다.

<무진기행>의 유려한 문장은 오감을 자극하 듯 다채로움이 있었다. 60년대의 시대상을 반영하 듯 통금 시간에 맞춰 울리는 사이렌은 묘한 긴장감을 준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이 소설 속에 표기가 되고. 잠들지 못하늑 남자. 결국 통금이 풀리는 사이렌이 울리기 까지의 기다림은 한 여인 때문에 설레여서 밤잠을 설치는게 아니었다. 그 날 아침, 자살 해서 방죽 개울에 엎어져 죽어있는 술집 여인이 있었다. 그는 그녀의 죽음을 잠들지 못한 자신과 연결지었다. 여인의 죽음과 남자의 존재. 그것도 결국 상실이었던 것 같다.

<생명연습>에선 어느 다방에 있는 교수와 제자의 평범한 만남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은근히 드러나는 교수의 과거와 제자의 어린 시절. 그것이 교차되어 두 사람의 내면의 심리가 인생 속에 스며들어 보였다. 두 사람의 과거는 결국 여미지 못한 하나의 상처이자 상실 된 사랑이었고, 가슴 속에 가두어 둔 정체된 추억으로 보여진다. 그것이 인생 전반을 지배하며 트라우마로 작용하진 않았지만 제목처럼 인생의 내적 생명성을 채우는 서로간의 인생 연습이었던 것 같다. 심각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교수는 순간으로 당황하기도 했다. 불편한 듯 하면서도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이야기. 그 끝은 분명치 않은 해결이었다. 그들이 선택한 사랑의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단정 지을 수가 없었다. 해석은 오롯이 독자들의 몫이다.

김승옥 작가님의 <무진기행>은 인간의 상실에 대해 무릇 긴장감을 준다.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한편으론 안타까우면서도 주인공에 대해 심리적 동의를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감정이 흐르는대로 따라가는 나 자신을 보면 또 묘한 죄책감도 느낀다. 소설을 읽는 재미와 매력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 된다. 실제적이지 않지만 그럴 법한 현실.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뒤떨어진 시대상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주인공과 등장 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상실감을 느끼고 소설과 교감하는 것이 소설을 읽는 이유인 것 같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추천 보증심사지침' 개정안에 따라 명확하게 경제적 이해관계를 밝힙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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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서는 용기 - 거침없이 살기 위한 아들러의 인생수업
알프레드 아들러 지음, 유진상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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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다시 일어서는 용기_알프레드 아들러_스타북스

개인이 어떤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 어려움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거나 그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 돌파해 내지 못하면 개인은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 원망과 분노를 상관없는 타인에게 돌리는 폭행이나 살인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아들러는 자기 삶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온전히 감당해 내야 하는 존재는 분명 그에 해당하는 개인이지만, 그 과정에서 도움이 없다면 개인적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시작하는 글에서-


프로이트나, 융, 니체의 책들은 몇권 읽었는데 아직까지 아들러의 책을 읽지 못했다는 게 내심 부끄럽기도 했다.
용기.. 용기란 것이 있다면 온전치 못한 내 인생에 빛을 찾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읽게 되었다.
사실 쉬운 책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주 어려운 책도 아니지만 상식을 다루는 기본적인 책들 보다는 어렵게 느껴졌다. 일단 심리학 책이면서 정신 분석학 이론도 있다. 

특이했던 점은<다시 일어서는 용기>가 주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 분석 책 같아 보였지만, 어린이에 대한 심리 발달 부분이 많아서 마치 자녀 교육 책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꽤나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어린이의 실험 사례를 든다. 이를 점검하고 심리적 고찰을 한다. 

이 책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분명한 해결점을 제시하는 책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겪는 심리적 문제점을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여 독자 스스로 어떻게 판단을 하는게 옳은건지 생각을 하게 한다.
일단 이 책은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 저서이다. 처세술이나, 기타 성공학 또는 더 나아가 재테크 관련 책이라고 보면 안될 것 같았다. 문장의 느낌 자체가 A를 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고 여러분은 B를 해야 할 것이다, 는 아니었다. 심리학 개념 서술이 주류를 이루었고 이러 저러한 사례가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탐구를 해야 할 것이다, 또는 비교하여 어떤 심리적 상황을 겪게 되는데 이는 무엇과 같다, 라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심리학 입문자나 초보자들 그리고 일반인들이 바로 이해하기엔 다소 난해 할 수 있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아들러의 심리학 입문을 먼저 접하거나, 그의 심리 이론에 관한 기초 해석편을 먼저 읽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느끼는 우울이나, 그에 더해 자살 충동, 또는 인간 관계적인 문제와 사회 생활 내에서 겪는 문제들을 주제로 하며 구체적 서술을 해주어서 개념 정리는 잘 되었다. 심리학은 엄연히 학문의 분야다. 소설처럼 쉽게 읽히긴 어렵다. 그래서 학술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어떤 느낌이다, 정도만 이해해도 이 책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p43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과제이며 우리는 거기에 대처할 수 있다. 우리는 행동의 주인이다. 낡은 것이 변화되고 뭔가 새로운 것을 강조해야 한다면 그 일을 수행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만약 인생이 이런 식으로 자립적인 인간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 인간 사회의 진보에서 한계점이란 없을 것이다.

p50
심리학의 영역은 개인의 모든 표현 속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를 탐구하며 그 사람의 목표를 응시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의 목표와 비교하는 일에 역점을 두고 있다. 

p52
우리의 문화는 인간의 마음이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룩해 놓은 모든 행위의 결과이다.

p53
우리의 행위는 마음에 의해 영감을 받는다. 우리 몸의 발달은 마음에 의해 그 방향이 결정되며 도움을 받는다. 결국 우리는 마음의 목적 의도로 꽉 차 있지 않은 인간의 표현을 단 한가지도 발견할 수 없다. 그렇지만 마음이 자기의 역할을 과시할 정도로 강조하는 일은 결코 바라지 않는다.

팩트체크. 여기서 얘기하는 우리 몸의 발달은 개인적으로 봤을 때 내 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몸의 발달을 세부적으로 나누자면 신체 내부의 세포의 움직임을 비롯 심작박동까지도 볼 수 있는데 이건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움직이는 것들이다. 즉 마음의 통제와는 별개의 것.

p60
심리학이란 '한 개인이 자기의 몸에 대해 취하는 태도에 관한 이해'다.

p83
자기가 타인에 대해서 우월한 듯이 행동하는 모든 사람의 배후에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서 숨겨야만 하는 열등감이 존재하고 있다. 그 노력은 마치 키가 너무 작아너 고민하는 사람이 자기를 커 보이게 하기 위해서 발끝을 세우고 걷는 일과 같다.

p86
열등감이란 개인이 어떤 일에 대해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혹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그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자기의 확신을 언행으로 표현하는 경우에 나타난다. 이 정의로부터 우리는 눈물이나 변명과 마찬가지로 노여움 또한 열등감의 표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p87
위험으로 부터 몸을 사리는 행동 중에서 가장 철저한 표현은 자살이다. 자살하는 사람은 자신이 직면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포기하고, 자기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다는 확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자살은 마치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과 같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모든 사람들 속에서 가장 우울하며 상처받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당신은 나를 너무도 심할 정도로 잔혹하게 취급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추천 보증심사지침' 개정안에 따라 명확하게 경제적 이해관계를 밝힙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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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김열규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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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_김열규_사무사책방


사람은 참 애매하다. 외롭고 우울감이 들면 극단적으로 죽음까지 생각하지만 결국은 내 의식이 이겨낸다. 대부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회복된다. 죽음은 그래서 삶에서 가깝고도 멀다.  
나는 특이한 걸까. 좀 유별난 구석이 있다. 의외로 사람이 죽고 죽는 스릴러나 공포 영화를 즐겨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죽음을 가벼이 쉽게 여기는 건 아니다. 그저 '길티 플래슈어'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죽음에 관한 김열규 작가님의 통찰이 담긴 책이다. 근데 기존의 죽음론 책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바로 우리 전통 문화와 죽음론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리고 릴케를 비롯 다양한 시들을 통해 죽음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죽음을 찬미하는 책은 아니다. 한국적인 죽음에 대하여 담론한다. 나는 솔직히 이 책의 내용에서 역사적, 전통적인 것보다 죽음의 본질에 관한 것에 흥미가 있었다. 물론 한국 전통 문화의 근본을 따라 가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도 있다. 
귀신이 왜 영혼이나 사령이 아니고 귀신인지, 숫자 4를 왜 건물에선 F라고 표기를 하는지, 왜 15, 18을 열다섯, 열여덟이라 부르는지, 우리 무덤 봉분의 미적 특징들 말이다. 한국인의 장례문화도 흥미로운 얘기들이었다.
그리고 죽음이 주된 주제지만 일부 인생론에 관한 것도 있고 작가님이 언론사에 글을 투고하면서 겪은 웃지 못할 일화들은 흥미있었다. 사람들이 묘지를 없애라는 것. 아파트 미관을 해치고 땅값을 떨어지게 한다는 이유로 없애버리라는 건 자본주의 현실이라지만 너무 이기적이었다. 그래서 작가님은 그러셨다. 너희들이 무덤에서 물러가라. 무덤이 미관을 해치면 가꾸면 되는 것이고 망자를 존중해야 하는 건 기본인 것이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유려한 문장들과 철학적 고찰이 있었다. 당장 그 내용을 필사하고 싶을 만큼 매혹적었다. 너무 와닿는 글이 많아서 페이지 메모를 많이 하고 싶었다. 
수록 된 릴케와 윤동주의 시 그리고 다른 죽음과 관련된 시들을 통해 깊은 감정을 느꼈다.

독특했던 내용들.

'죽음이 죽는다.', '죽음이 산다.'

삶과 죽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함께 간다는 것이였다.

'죽음을 대하는 우회적 표현들.'

우리는 참 죽는다는 소리를 많이 한다. '졸려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아파 죽겠다.' 등 삶의 일상에서 강조를 하기 위해서 참 많이도 이런 표현들을 쓴다. 그런데 정작 죽음 그 자체 대한 표현은 우회적인 것들이 많았다. '죽었다.'는 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잔인한, 과격한 표현이었다.
'입적하셨다.'하늘 나라에 갔다.'세상을 뜨셨다.' 등, 의 얘기들은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았던 죽음에 관한 우리 한국인들만의 정서였다는 것이 놀라웠다.

일을 열정적으로 한다고 한다고해서 죽음에 대한 의식마저 잊고 살려고 하는 건 그다지 좋지 못한 행동인 것 같았다. 이는 곧 손바닥으로 죽음이라는 하늘을 가린다고 한들 소용없는 것이었다. 김열규 작가님은 삶의 끝 다음에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의 삶과 죽음은 서로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 뱃속의 태아에서부터 죽음의 수레바퀴를 굴린다.'는 릴케의 말은 소름끼치는 표현이었다. 살아가는 이유가 죽기 위해서고, 죽을 이유가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지극히 돌직구적인 문장은 신선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이해하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진지하게 접근 해야하며 학문을 탐구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마지막에 김열규 작가님이 고인이 되시며  그의 딸, 김소영 감독님의 쓴 글은 마음의 짠했다. 작가님은 직접 딸의 영화에 출현도 하셨었다. 두 부녀의 사진은 묘한 느낌을 주었다. 이렇 듯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건 인간의 진리이다. 하지만 죽음을 대하는 내 마음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오늘도 이렇게 무사히 나는 살았다. 다행스러웠다. 죽음과 삶이 늘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막연하다. 그렇지만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이 책은 조만간 또 읽을 생각이다. 그만큼 나를 가치있게 하기에.


<책의 메모>.


p329
사람끼리도 자주 만나야 정이 들기 마련이다. 낮이 익는다는 것, 눈에 자주 든다는 것. 그것은 정붙이기의 전제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죽음에 정을 붙이자면 그리하여 죽음과의 친화를 일구어 내자면 죽음과 자주자주 그리고 절실하게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 삶이 죽음과 정을 붙여야 한다.
즉, 죽음을 두려운 존재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의 정이라고 생각하라는 것. 

p47
죽음으로 해서 생은 에누리 없이 일회로 제약되고 만다. 한데 이 죽음으로 한계지워지는 생의 일회성이야말로 생의 진지함이며 집요함의 혹은 열정의 근거라고 릴케는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아! 오직 한 번뿐이니까 성실해야 하고 진지해야 하는 삶 그건 죽음이 안겨준 선물이다. 이래서 릴케의 죽음은 삶을 향해서 돌아앉아 있다. 타나톨로지의 역전극이 여기에도 있다. 죽음의 거울에 비쳐서 더욱더 확연해질 더더욱 굳건할 삶의 얼굴! 이 책은 그걸 찾고 싶다. 아니 갖고 싶다.

p70
죽음은 삶이 끝나면서 시작되는게 아니다. 삶과 함께 비롯해서 삶 속에서 삶과 함께 자란다. 죽음은 삶 속에 내재해 있다. 그것은 삶없이는 죽음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입증되고 남는다.

p71
죽음은 목숨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그 목숨과 함께 비롯됐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확하다.

p72
그래서 우리들은 죽음과 맺어져 드러나는 삶의 아이러니를 천상 희비극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p95
누가 자신의 생사 앞에서 미동이나 하겠는가. 구름, 그것도 한 오리 실구름이 피었다 지는 것은 자연이요, 이치다. 그 앞에서 시적인 정서를 느낄지언정, 기뻐하고 슬퍼할 일은 못 된다.
한여름이라도 좋고 가을이라도 좋다. 청정한 하늘에 뜬 한가닥 흰 구름의 피고 짐은 찰나의 일이면서도 더없이 유유하다. 바람이 잔풍한 날이면 그 유유함은 사문 아련한 길고 긴 여운까지도 남긴다. 자신의 삶이 진실로 그 같은 구름의 피어남일진대, 자신의 죽음이 진실로 그 같은 구름의 스러짐인진대, 그 피고 짐을 두고 감정의 물살이 일 턱이 없다.  그야말로 시적 정서를 누릴 뿐, 감정은 담연자약, 한치의 흔들림도 겪지 않을 것이다.

p246
죽음이란 것은 이 경지에서는 또 다른 새것과 묵은 것의 교환이고 교체다. 죽음 자체가 교환이다. 그것은 일종의 전역이다. 삶과 죽음을 격절 없이 통틀어 하나로 엮음하고 있는 섭리, 그것이야 말로 이들의 경우의 한 차원 높은 생이요. 생명이다. 죽음과 갈라져 있지 않은 삶의 '전체성', 그것은 우리 시대의 초절의 시인 릴케의 꿈이다.

p261
인간은 한계 앞에서 비로소 인간다워진다. 인간은 좌절의 덫에 걸려서 흘리는 동통의 피를 머금고 자라는 꽃이다. 인간은 자신이 고양이에게 쫓겨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쥐라는 의식을 더불어 스스로에 눈뜬다. 한계와 좌절, 그리고 극한은 인간 존재를 비쳐내는 거울이다. 자유혼은 그 거울에 의해서야 비로소 모습이 드러난 인간의 존재성이다.

p263
살아가는 과정이 죽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파리로 와서는 죽어가고 있다."고 릴케가 말테의 입을 빌려 이같이 얘기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한 '죽음에의 존재'가 아니다. '죽음에의 존재'임을 자각하는 존재다.

p336
죽음은 남의 것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살아 있는 자의 타인에 대한 윤리 의식은 죽은 이를 향해서도 지켜져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그런 죽음을 향한 살아 있는 자의 윤리 의식이 아쉽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추천 보증심사지침' 개정안에 따라 명확하게 경제적 이해관계를 밝힙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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