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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김열규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1월
평점 :
서평_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_김열규_사무사책방
사람은 참 애매하다. 외롭고 우울감이 들면 극단적으로 죽음까지 생각하지만 결국은 내 의식이 이겨낸다. 대부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회복된다. 죽음은 그래서 삶에서 가깝고도 멀다.
나는 특이한 걸까. 좀 유별난 구석이 있다. 의외로 사람이 죽고 죽는 스릴러나 공포 영화를 즐겨보기도 한다. 그렇다고 죽음을 가벼이 쉽게 여기는 건 아니다. 그저 '길티 플래슈어'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죽음에 관한 김열규 작가님의 통찰이 담긴 책이다. 근데 기존의 죽음론 책들과는 다른 느낌이다. 바로 우리 전통 문화와 죽음론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리고 릴케를 비롯 다양한 시들을 통해 죽음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죽음을 찬미하는 책은 아니다. 한국적인 죽음에 대하여 담론한다. 나는 솔직히 이 책의 내용에서 역사적, 전통적인 것보다 죽음의 본질에 관한 것에 흥미가 있었다. 물론 한국 전통 문화의 근본을 따라 가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도 있다.
귀신이 왜 영혼이나 사령이 아니고 귀신인지, 숫자 4를 왜 건물에선 F라고 표기를 하는지, 왜 15, 18을 열다섯, 열여덟이라 부르는지, 우리 무덤 봉분의 미적 특징들 말이다. 한국인의 장례문화도 흥미로운 얘기들이었다.
그리고 죽음이 주된 주제지만 일부 인생론에 관한 것도 있고 작가님이 언론사에 글을 투고하면서 겪은 웃지 못할 일화들은 흥미있었다. 사람들이 묘지를 없애라는 것. 아파트 미관을 해치고 땅값을 떨어지게 한다는 이유로 없애버리라는 건 자본주의 현실이라지만 너무 이기적이었다. 그래서 작가님은 그러셨다. 너희들이 무덤에서 물러가라. 무덤이 미관을 해치면 가꾸면 되는 것이고 망자를 존중해야 하는 건 기본인 것이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유려한 문장들과 철학적 고찰이 있었다. 당장 그 내용을 필사하고 싶을 만큼 매혹적었다. 너무 와닿는 글이 많아서 페이지 메모를 많이 하고 싶었다.
수록 된 릴케와 윤동주의 시 그리고 다른 죽음과 관련된 시들을 통해 깊은 감정을 느꼈다.
독특했던 내용들.
'죽음이 죽는다.', '죽음이 산다.'
삶과 죽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함께 간다는 것이였다.
'죽음을 대하는 우회적 표현들.'
우리는 참 죽는다는 소리를 많이 한다. '졸려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 '아파 죽겠다.' 등 삶의 일상에서 강조를 하기 위해서 참 많이도 이런 표현들을 쓴다. 그런데 정작 죽음 그 자체 대한 표현은 우회적인 것들이 많았다. '죽었다.'는 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잔인한, 과격한 표현이었다.
'입적하셨다.'하늘 나라에 갔다.'세상을 뜨셨다.' 등, 의 얘기들은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았던 죽음에 관한 우리 한국인들만의 정서였다는 것이 놀라웠다.
일을 열정적으로 한다고 한다고해서 죽음에 대한 의식마저 잊고 살려고 하는 건 그다지 좋지 못한 행동인 것 같았다. 이는 곧 손바닥으로 죽음이라는 하늘을 가린다고 한들 소용없는 것이었다. 김열규 작가님은 삶의 끝 다음에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의 삶과 죽음은 서로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 뱃속의 태아에서부터 죽음의 수레바퀴를 굴린다.'는 릴케의 말은 소름끼치는 표현이었다. 살아가는 이유가 죽기 위해서고, 죽을 이유가 살아가기 위해서라는 지극히 돌직구적인 문장은 신선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이해하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진지하게 접근 해야하며 학문을 탐구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마지막에 김열규 작가님이 고인이 되시며 그의 딸, 김소영 감독님의 쓴 글은 마음의 짠했다. 작가님은 직접 딸의 영화에 출현도 하셨었다. 두 부녀의 사진은 묘한 느낌을 주었다. 이렇 듯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건 인간의 진리이다. 하지만 죽음을 대하는 내 마음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오늘도 이렇게 무사히 나는 살았다. 다행스러웠다. 죽음과 삶이 늘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막연하다. 그렇지만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이 책은 조만간 또 읽을 생각이다. 그만큼 나를 가치있게 하기에.
<책의 메모>.
p329
사람끼리도 자주 만나야 정이 들기 마련이다. 낮이 익는다는 것, 눈에 자주 든다는 것. 그것은 정붙이기의 전제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죽음에 정을 붙이자면 그리하여 죽음과의 친화를 일구어 내자면 죽음과 자주자주 그리고 절실하게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 삶이 죽음과 정을 붙여야 한다.
즉, 죽음을 두려운 존재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의 정이라고 생각하라는 것.
p47
죽음으로 해서 생은 에누리 없이 일회로 제약되고 만다. 한데 이 죽음으로 한계지워지는 생의 일회성이야말로 생의 진지함이며 집요함의 혹은 열정의 근거라고 릴케는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아! 오직 한 번뿐이니까 성실해야 하고 진지해야 하는 삶 그건 죽음이 안겨준 선물이다. 이래서 릴케의 죽음은 삶을 향해서 돌아앉아 있다. 타나톨로지의 역전극이 여기에도 있다. 죽음의 거울에 비쳐서 더욱더 확연해질 더더욱 굳건할 삶의 얼굴! 이 책은 그걸 찾고 싶다. 아니 갖고 싶다.
p70
죽음은 삶이 끝나면서 시작되는게 아니다. 삶과 함께 비롯해서 삶 속에서 삶과 함께 자란다. 죽음은 삶 속에 내재해 있다. 그것은 삶없이는 죽음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입증되고 남는다.
p71
죽음은 목숨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그 목숨과 함께 비롯됐다고 말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확하다.
p72
그래서 우리들은 죽음과 맺어져 드러나는 삶의 아이러니를 천상 희비극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p95
누가 자신의 생사 앞에서 미동이나 하겠는가. 구름, 그것도 한 오리 실구름이 피었다 지는 것은 자연이요, 이치다. 그 앞에서 시적인 정서를 느낄지언정, 기뻐하고 슬퍼할 일은 못 된다.
한여름이라도 좋고 가을이라도 좋다. 청정한 하늘에 뜬 한가닥 흰 구름의 피고 짐은 찰나의 일이면서도 더없이 유유하다. 바람이 잔풍한 날이면 그 유유함은 사문 아련한 길고 긴 여운까지도 남긴다. 자신의 삶이 진실로 그 같은 구름의 피어남일진대, 자신의 죽음이 진실로 그 같은 구름의 스러짐인진대, 그 피고 짐을 두고 감정의 물살이 일 턱이 없다. 그야말로 시적 정서를 누릴 뿐, 감정은 담연자약, 한치의 흔들림도 겪지 않을 것이다.
p246
죽음이란 것은 이 경지에서는 또 다른 새것과 묵은 것의 교환이고 교체다. 죽음 자체가 교환이다. 그것은 일종의 전역이다. 삶과 죽음을 격절 없이 통틀어 하나로 엮음하고 있는 섭리, 그것이야 말로 이들의 경우의 한 차원 높은 생이요. 생명이다. 죽음과 갈라져 있지 않은 삶의 '전체성', 그것은 우리 시대의 초절의 시인 릴케의 꿈이다.
p261
인간은 한계 앞에서 비로소 인간다워진다. 인간은 좌절의 덫에 걸려서 흘리는 동통의 피를 머금고 자라는 꽃이다. 인간은 자신이 고양이에게 쫓겨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쥐라는 의식을 더불어 스스로에 눈뜬다. 한계와 좌절, 그리고 극한은 인간 존재를 비쳐내는 거울이다. 자유혼은 그 거울에 의해서야 비로소 모습이 드러난 인간의 존재성이다.
p263
살아가는 과정이 죽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파리로 와서는 죽어가고 있다."고 릴케가 말테의 입을 빌려 이같이 얘기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한 '죽음에의 존재'가 아니다. '죽음에의 존재'임을 자각하는 존재다.
p336
죽음은 남의 것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살아 있는 자의 타인에 대한 윤리 의식은 죽은 이를 향해서도 지켜져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그런 죽음을 향한 살아 있는 자의 윤리 의식이 아쉽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추천 보증심사지침' 개정안에 따라 명확하게 경제적 이해관계를 밝힙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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