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인문학 - 비늘과 딱지, 날개맥이 누설하는 ㅣ 지식 벽돌
이상헌 지음 / 초봄책방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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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인문학>이라는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곤충의 생김새와 생태를 소개하는 일반적인 곤충도감이 아니라 태곳적부터 인간과 곤충이 함께 살아오며 만들어 온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다. 곤충을 단순한 생물종으로 바라보는 데서 나아가 인간과 오랜 시간 공존해 온 존재로 조명하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생명들이 인류의 삶과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지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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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곤충 사진작가이자 인문사회학자의 시선으로 곤충을 바라보고 있다. 생생한 접사 사진과 함께 벌, 나비, 모기, 파리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곤충들의 이야기를 역사와 문화, 인간의 삶과 연결해 소개하며 곤충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곤충에 관한 지식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과 자연이 오랜 시간 맺어 온 관계와 공존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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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이 단순히 곤충에 관한 정보를 모아 놓은 책이 아니라 사진과 이야기, 그리고 인문학적 해석을 하나로 엮어 새로운 의미를 담아낸 결과물이라고 밝히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에 따르면 하나의 사실은 그 자체로는 단순한 자료에 불과하지만 서로 연결되고 해석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지식이 된다. 이러한 연결은 인간의 사고와 문명의 발전을 이루는 근본 원리이기도 하다. 인간의 뇌는 수많은 뉴런과 시냅스가 서로 연결되면서 사고와 창의성이 만들어지고, 오늘날 AI 역시 방대한 정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인간과 곤충, 나아가 AI를 포함한 모든 존재는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이 책은 곤충을 단순한 자연 생물이 아니라 인간과 오랜 시간 관계를 맺으며 역사를 함께 만들어 온 존재로 바라보도록 이끌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지닌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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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가장 먼저 '멋쟁이딱정벌레'의 학명에 담긴 인물, 폴란드 귀족 미하우 양코프스키와 그의 가문에 관한 역사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단순히 곤충의 이름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명 속에 담긴 인물과 시대적 배경을 차근차근 소개한다. 러시아의 압제를 피해 연해주에 정착한 양코프스키는 우리 동포들과 함께 마적을 소탕하며 '네누니'라는 전설적인 존재로 불렸고 인삼 재배와 녹용 가공법을 익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또한 식물학자의 탐사를 지원하는 등 동북아 자연 연구에도 기여하며 자신의 이름을 곤충의 학명 속에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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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자가 전하는 내용은 한 사람의 업적을 소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러시아 혁명과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양코프스키 가문은 삶의 터전을 잃고 가족이 흩어지는 비극을 겪었으며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명예를 회복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함경도에 세워진 '노비나'는 시인 백석과 소설가 이효석이 작품 속 이상향으로 그릴 만큼 특별한 공간이 되었으며 <조복성 곤충기>에는 곤충을 채집하던 네누니 일가가 첩자로 의심받았다가 조복성의 도움으로 오해를 풀고 노비나에 초대받는 일화도 소개되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멋쟁이딱정벌레라는 작은 곤충 한 마리에서 출발해 한국과 폴란드, 러시아를 잇는 150여 년의 역사와 문학, 곤충학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평범한 곤충의 이름 하나에도 인간의 삶과 시대의 흔적이 켜켜이 스며 있다는 사실은 이 책이 곤충을 매개로 역사와 문화, 인간의 삶을 함께 조명하는 인문학적 시각을 담고 있음을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또 하나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풀벌레 그림의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가을 논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곤포사일리지를 소재로 현대 농업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볏짚과 낙곡은 미생물과 토양, 새들의 먹이가 되어 자연의 순환을 이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수확하는 방식은 토양의 건강을 약화시키고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에 비해 과거 우리 조상들이 윤작과 퇴비를 활용하고 까치밥을 남겨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 했던 모습은 자연의 순환을 존중했던 삶의 지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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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저자는 메뚜기와 방아깨비를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 우리 문화와 예술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존재로 소개한다. 방아깨비의 생태와 번식 과정을 흥미롭게 설명한 뒤, 신사임당과 강세황, 정선의 초충도와 회화 작품 속에서 방아깨비와 나비, 벌 등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함께 보여 준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곤충들이 우리 미술사에서는 자연의 생명력과 계절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소재였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으며 생태와 예술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곤충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층 넓혀 준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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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인문학>은 곤충을 하나의 생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와 문학, 예술, 과학, 생태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서로 다른 분야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낸다. 작은 곤충 한 마리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인류의 역사와 문화, 예술 작품, 생태계의 원리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과정은 이 책만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본다. 또한 생생한 접사 사진과 흥미로운 일화가 적절히 어우러져 전문적인 내용도 부담 없이 읽히며 곤충이라는 소재가 이처럼 폭넓은 인문학적 주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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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덮고 나면 주변에서 쉽게 마주치는 곤충들을 이전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름조차 모르고 지나쳤던 작은 생명 하나에도 오랜 역사와 문화, 인간의 삶이 켜켜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이 책은 곤충을 통해 자연을 이해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을 이루는 수많은 존재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다. 그렇기에 자연과 인문학을 함께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 생각되기에 적극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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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유명 인플루언서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SNS 시대의 비교와 질투, 인정 욕구, 강박을 날카롭게 그려 낸 청소년 소설이다. 베스트셀러 <비스킷>과 <스티커> 등을 통해 청소년의 현실과 심리를 섬세하게 담아낸 김선미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조회수와 좋아요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을 배경으로, 온라인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와 한 사람의 실제 삶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담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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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한 인플루언서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따라가면서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 속에 SNS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교와 인정 욕구, 질투와 강박을 함께 담아낸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왜 타인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는지, 관심과 인정은 언제 집착으로 변하는지, 그리고 SNS 속 화려한 모습은 과연 한 사람의 진짜 모습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지를 차례로 질문한다. 작품은 여러 인물의 서로 다른 시선을 통해 하나의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 내며 우리가 누군가를 얼마나 쉽게 소비하고 판단하는 존재인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프롤로그였다. 소설은 처음부터 진다이아가 남긴 마지막 글을 제시하고 있다. 화면 속에서 사랑받던 사람이 왜 스스로를 '로그아웃'한다고 표현했을까. 화려한 인플루언서의 삶 뒤에는 어떤 현실이 있었기에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더욱이 글 곳곳에는 누군가를 향한 원망과 오해,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암시하는 문장들이 담겨 있어 이것이 단순한 유서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의미를 품은 메시지인지를 둘러싼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학교에서 진다이아의 사망 소식을 접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교실은 갑작스럽게 전해진 유명 인플루언서의 죽음으로 술렁이고, 학생들은 SNS와 속보 기사를 통해 그녀의 마지막 게시물과 사망 소식을 확인한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와 정황을 근거로 극단적 선택에 무게를 두지만 진다이아를 가까이에서 알던 사람들은 평소의 성격과 유서의 말투가 다르다는 이유로 타살 가능성을 의심한다. 처음부터 자살과 타살이라는 두 가능성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소설은 사건의 진실에 대한 궁금증을 더 많이 생기게 만들며 이야기 자체에 몰입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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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건의 중심에는 주인공 이다니가 있다. 한 번 본 것을 절대 잊지 못하는 과잉기억증후군을 앓는 다니는 진다이아의 동생 루비와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인연으로 추모 영상 제작을 맡게 되고 진다이아를 알고 지냈던 네 사람을 차례로 인터뷰하며 그녀의 삶을 되짚어 간다. 그러나 같은 인물을 이야기하면서도 저마다 기억하는 진다이아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고 서로 엇갈리는 증언은 새로운 의문을 만들어낸다. 다니는 자신의 뛰어난 기억력으로 작은 단서들을 하나씩 연결해 나가고 독자 역시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사건의 진실을 함께 추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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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롭게 느껴졌던 점은 진다이아라는 인물을 직접 보여 주기보다 그녀를 알고 있었다는 사람들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 조금씩 그 모습을 완성해 가는 구성이다. 다니가 만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건을 해석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먼저 내세우고, 같은 사람을 이야기하면서도 서로 전혀 다른 진다이아를 기억한다. 그래서 인터뷰가 이어질수록 진실에 가까워지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의문이 생긴다. 과연 다니가 끝내 마주하게 될 진실은 무엇일지, 그리고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진실인지까지 생각하게 만들며 더욱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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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번에 읽은 책이 가제본이었던 만큼 이야기가 가장 궁금해지는 지점에서 이후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이 더욱 아쉽게 다가왔다. 인물들의 엇갈린 증언 속에서 드러나는 작은 단서들이 어떤 하나의 진실로 이어질지,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세웠던 추측이 끝까지 유지될지 아니면 완전히 뒤집힐지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그래서 정식 출간본을 통해 하루라도 빨리 다니가 마주하게 될 마지막 진실과 진다이아의 죽음에 숨겨진 이야기를 끝까지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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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다이아를 사랑해>는 한 인플루언서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이야기이면서도 그보다 더 깊게는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들은 타인의 삶을 몇 장의 사진과 짧은 게시글만으로 쉽게 판단하고 관심과 응원이라는 이름 아래 비교와 질투, 호기심을 소비하기도 한다. 소설은 이러한 현실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이 조회수와 좋아요, 알고리즘 속 이미지로만 기억될 때 무엇을 잃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따뜻한 의미로만 받아들였던 <우리는 진다이아를 사랑해>라는 제목 역시 책을 읽고 나니 모두가 진다이아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 했던 사람은 과연 있었는지를 되묻게 하는 아이러니한 문장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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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사람 자체를 소중히 여겨 준 적이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책 속 인물들이 진다이아를 자신의 기준과 욕망으로 바라보았던 것처럼, 나 또한 타인을 내 판단과 선입견 속에서 이해하려 했던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따라서, 소설은 결국 한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관심과 사랑이 소비가 아닌 공감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시선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만들기에 더더욱 앞으로 발간될 정식본이 더욱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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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가제본된 책을 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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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대연쇄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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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요 작가의 신작이라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컴퓨터과학과 신학, 중세철학을 바탕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이 될지도 모르는 세계를 그려 낸 여섯 편의 SF 단편소설을 담고 있다. 오래된 집 전화기를 통해 로마 황제 칼리굴라의 음성 메시지를 듣게 되는 이야기, 감전 사고 이후 신으로부터 세상을 종말시킬 명령어를 부여받는 인물, 예언자와 마술사의 능력을 과학적으로 해석한 설정, 인공 척추 시술을 받은 딸의 존재를 둘러싼 의문 등 각 작품은 익숙한 현실에 낯선 상상력을 더하며 독자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지금은 지어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머지않아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설정들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이야기 자체에 몰입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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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로 박지리문학상과 문윤성SF문학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고,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 오며 한국 SF를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번 책에서는 기존에 계간지와 웹진을 통해 발표했던 작품들과 미발표작이 함께 실려 있으며 표제작 <존재의 대연쇄>는 공개 당시 독자와 편집부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특히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게 하며 인간 존재와 현실의 본질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여섯 편의 소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소설은 책의 맨 처음에 실린 <사랑하는 신의 생일>이다. 소설의 주인공 유하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어린 시절 집에서 사용하던 오래된 유선전화기를 발견한다. 부모가 모두 바깥일을 하며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던 유하는 어린 시절 아무 번호도 누르지 않은 채 수화기에 대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신호음을 자신의 말에 대한 대답이라고 여기며 외로움을 견뎠던 것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발견한 전화기는 유하에게 그저 낡은 물건이 아니라 외롭지만 마냥 슬프다고만 말하고 싶지는 않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유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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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는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전화기의 플러그를 벽면 콘센트에 꽂아 본다. 전화 회선과 연결되지 않았으므로 신호음 정도만 들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수화기에서는 뜻밖에도 자신을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라고 소개하는 남자의 음성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그는 로마제국의 제3대 황제인 칼리굴라였지만, 처음에 유하는 그 목소리를 전화기 안에 숨겨진 장난스러운 자동응답 기능 정도로 생각한다. 그렇게 별다른 의심 없이 수화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기 시작하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유하와 서기 41년의 로마 황제를 연결하는 기이한 대화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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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유하는 전화기 너머의 존재가 단순한 녹음 음성이 아니라 실제로 서기 41년을 살아가는 칼리굴라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그의 죽음이 불과 이틀 앞으로 다가왔음을 알게 되면서 미래를 알고 있는 자신이 그 사실을 알려야 하는지 깊은 갈등에 빠진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역사의 흐름을 뒤바꾸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소설은 단순한 시간 교류를 넘어 인간의 선택과 책임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나 역시 주인공 유하와 함께 '과연 역사는 바뀌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대로 흘러가야 하는가'라는 쉽지 않은 질문 앞에서 오래 고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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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야기가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두 사람의 관계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특별한 연결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시작된 대화였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쌓이면서 유하와 칼리굴라는 각자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 잡는다. 그 과정에서 유하는 자신의 선택과 희생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삶을 완성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두 사람의 삶이 마침내 하나의 세계로 이어지는 장면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시간조차 뛰어넘어 서로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오래도록 깊은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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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대연쇄>는 미래 기술과 디스토피아를 소재로 삼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의 존재와 선택, 관계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는 SF 소설집이라 할 수 있다. 여섯 편의 작품은 컴퓨터과학과 신학, 철학, 역사 등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무엇보다 작품들은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하기보다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두기에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 의미를 연결하고 상상하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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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작품 속 장면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래된 유선전화기, 인공 척추, 종말을 부르는 프로그래밍, 세상의 질서를 만들어 내는 신화적 상상력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조금씩 흐리며 '만약 이것이 현실이라면'이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질문은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독자 스스로 사고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하도록 이끄는 점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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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삼총사의 글쓰기 대소동
곽민수 지음, 벼레 그림 / 다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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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속 등장인물들의 표정이 너무 즐거워 보여 읽게 된 책이다. 글쓰기가 표지 그림 속 아이들의 표정처럼 기쁜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숲 속 도서관의 단골손님인 리니, 구리, 끼끼가 이야기꾼 따따 작가를 만나 글쓰기의 비밀을 배우고 익숙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나 배경을 새롭게 바꾸며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신발을 겹겹이 신는 오리 아저씨, 황금을 누는 거북이, 소원을 빌면 엉덩방아를 찧게 만드는 의자처럼 엉뚱한 상상들이 하나의 그림책으로 완성되는 모습은 글쓰기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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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아이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쉽게 접하지만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 볼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특히 AI와 대화를 나누며 글을 쓰는 시대가 되었지만 AI에게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할지 생각해 내는 힘은 결국 자신의 상상력과 글쓰기 능력에서 나온다. 이 책은 책을 읽는 데서 멈추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경험의 가치를 강조하며 독자를 단순한 독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능동적인 창작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이끌어 준다.


책은 도서관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리니, 구리, 끼끼가 신이 나서 숲속 도서관으로 향하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 친구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뛰어가지만 모두 도서관에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만은 똑같다. 도서관에 들어선 뒤에도 각자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책장을 오르내리며 원하는 책을 찾는다. 또한 도서관에서는 뛰거나 떠들지 않고 조용히 책을 읽어야 한다는 규칙도 자연스럽게 알려 주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의 즐거움과 올바른 이용 방법을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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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도서관을 이토록 좋아하는 세 친구의 모습이 책과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더욱 인상 깊고 반갑게 다가왔다.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 가는 일을 특별한 숙제가 아니라 기다려지는 즐거운 일로 표현한 점이 특히 좋았다. 또한 숲속 도서관의 아늑한 풍경과 책을 읽는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은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곳이 아니라 누구나 편안하게 머물며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공간임을 보여 준다. 이러한 시작은 앞으로 펼쳐질 글쓰기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며 다음 장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세 친구는 문득 '이런 이야기는 누가 만들었을까?'라는 궁금증을 품게 된다. 그때 도서관을 찾은 따따 작가는 책 속 이야기가 작가의 경험과 상상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들려주며, 누구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기존 이야기의 주인공이나 사건, 배경을 조금만 다르게 바꾸어도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다는 글쓰기 방법을 알려 주는데, 이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글쓰기를 쉽고 재미있는 활동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장면을 계기로 리니, 구리, 끼끼는 자신들도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하고, 본격적인 글쓰기 대소동을 펼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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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세 친구는 서로의 엉뚱한 상상을 자유롭게 나누며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다. 신발을 여러 겹 신는 오리 아저씨, 황금을 누는 거북이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아이디어들도 서로 연결되자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탄생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서로의 생각을 틀렸다고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 가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모습은 글쓰기가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라 상상과 소통, 협동이 함께 만들어 가는 활동임을 보여 준다. 이렇게 이 책은 글쓰기를 잘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마음껏 상상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즐거운 놀이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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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빈 종이 앞에서 망설이거나 잘 써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첫 문장조차 시작하지 못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 책은 그런 두려움을 내려놓고 생각을 조금만 다르게 바라보면 누구나 즐겁게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정답을 찾기보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마음껏 표현하는 과정 자체가 글쓰기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 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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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글쓰기를 혼자만의 작업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 친구는 서로의 엉뚱한 생각을 보태고 이어 가며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마지막에는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따따 작가에게 그 이야기를 인정까지 받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들 속에서 누군가의 노력과 글을 진심으로 읽어 주고 가치 있게 바라봐 주는 일은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도서관 삼총사의 글쓰기 대소동>은 글쓰기를 잘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책이 아니라 글쓰기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을 선물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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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사 -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다
최윤석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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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사>라는 제목과 표지 그림, 그리고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부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평범한 한 남자가 우상이었던 축구선수의 화려한 삶 뒤에 숨겨진 진실을 마주하면서 복수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을 그린 심리 스릴러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돈도 명예도 없는 싱글 대디 명관은 심장이 약한 아들의 치료를 위해 자신이 평생 동경해 온 축구선수 최강민의 비밀을 대신 감추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가 되지만 결국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 이후 동경은 증오로, 존경은 복수심으로 바뀌고 이야기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 우상을 만들어 소비하는 사회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욕망,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느끼는 박탈감과 열등감을 함께 비추고 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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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소설은 유튜브 라이브, SNS, 실시간 댓글 등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현대 사회의 군중 심리와 여론의 흐름을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그려 낸다. 치밀하게 배치된 복선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반전은 다음 장면을 계속 궁금하게 만들었고 사건이 전개될수록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이야기의 흐름이 매우 빠르고 몰입감이 뛰어나 책을 읽는 동안 좀처럼 자리를 뜰 수 없었으며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한 번에 읽게 될 정도로 강한 흡입력을 지닌 작품이었다. 빠른 전개 속에서도 인물들의 심리 변화와 사건의 인과관계를 촘촘하게 쌓아 올려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든다.


소설은 교통사고 현장에서 보험조사관인 명관이 사고를 낸 노인을 친절하게 돕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가드레일 수리 비용을 걱정하는 노인을 안심시키고, 배차가 늦어지자 자신의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는 모습은 명관이 따뜻하고 성실한 성품을 지닌 인물임을 보여 준다. 그는 이혼 후 심장이 약한 아들 준우를 홀로 키우며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으로, 과거에는 유망한 축구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현재 그의 가장 큰 바람은 준우가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을 되찾아 자신이 이루지 못한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명관은 국가대표 축구선수 최강민을 누구보다 동경하며 아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는다. 하지만 그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고를 겪으며 그의 평범했던 일상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저자는 소설의 첫 장면부터 명관이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임을 보여 주며, 이후 전개될 이야기에 현실적인 설득력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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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작품은 축구 경기 속에서 등장하는 '파우사(PAUSA)'와 게임 속 NPC(Non-Playable Character)라는 두 개의 단어를 통해 작품의 주제를 암시한다. 파우사는 스페인어로 '멈춤'을 뜻하는 축구 전술로, 잠시 공을 멈춰 상대를 끌어들인 뒤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 내는 전략이다. 소설은 이를 단순한 경기 용어가 아니라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운명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음을 상징하는 장치로 활용한다. 또한 준우가 설명하는 NPC는 스스로 이야기를 이끌지 못한 채 주인공을 돕거나 배경을 채우는 존재를 의미한다. 명관은 이 설명을 들으며 자신 역시 다른 사람의 삶을 빛내는 조연처럼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러한 인식은 이후 그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처럼 작품은 초반부터 상징적인 장치들을 치밀하게 배치하여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한층 높이고 있다.


명관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평생 동경해 온 최강민과 가까워지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하게 된다.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강민을 돕기 시작한 그는 점차 그의 사적인 일까지 처리하는 존재가 되고 그 과정에서 화려한 성공 뒤에 감춰져 있던 욕망과 위선을 마주하게 된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완벽해 보였던 우상도 가까이 다가갈수록 평범한 인간이었고 명관은 존경했던 인물을 지켜 주기 위해 자신의 양심과 삶까지 조금씩 희생하게 된다. 처음에는 강민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감수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관계는 신뢰가 아닌 이용과 의심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두 사람의 사이는 서서히 균열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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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명관이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삶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으로 남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과정이다. 평범한 삶에 만족하며 살아오던 그는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경험하면서 자신 역시 인생의 중심에 서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된다. 반대로 최강민은 자신의 명성과 성공을 지키기 위해 점점 더 타인을 믿지 못하고 명관마저 잠재적인 위협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결국 서로 다른 위치에서 출발했던 두 사람은 각자의 욕망 때문에 점점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고 동경과 신뢰로 시작된 관계는 경쟁과 대립으로 변한다. 이 과정은 성공을 향한 욕망과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심리가 한 사람의 삶과 선택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 주는 대목이라 더욱 인상적이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와 여론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는지를 너무 사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SNS와 실시간 방송, 댓글이 단순히 사건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의 판단을 바꾸고 여론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도구로 활용된다. 작은 정보 하나가 순식간에 확산되고 확인되지 않은 주장조차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온라인 환경을 그대로 떠올리게 했다. 특히 사람들의 관심과 분노가 한순간에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는 과정은 미디어의 영향력과 군중심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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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설은 '전반전-선제골-후반전-동점골-역전골'이라는 축구 경기의 흐름을 그대로 목차에 적용한 구성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장이 바뀔수록 실제 경기처럼 분위기가 달라지고 갈등이 점차 고조되며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이어질 때마다 마치 중요한 승부를 지켜보는 듯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초반에 무심코 지나쳤던 사건과 대사들이 후반부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면서 치밀한 구성의 묘미를 보여 주었고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이야기가 더욱 빠른 속도로 전개되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손에서 책을 내려놓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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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사>는 한 남자의 복수를 그린 심리 스릴러이지만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복수보다 인간의 욕망과 동경에 대한 질문이 더 오래 남는다. 작품은 우리는 왜 누군가를 우상으로 만들고, 왜 타인의 성공에 자신의 결핍과 꿈을 투영하는지, 그리고 스포트라이트 밖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평생 조연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를 묻는다. 또한 치밀한 심리 묘사와 빠른 전개, 빈틈없이 회수되는 복선과 거듭되는 반전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뛰어난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렇기에 <파우사>는 무더운 여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 읽을 수 있는 스릴러를 찾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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