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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인문학 - 비늘과 딱지, 날개맥이 누설하는 ㅣ 지식 벽돌
이상헌 지음 / 초봄책방 / 2026년 7월
평점 :
<곤충 인문학>이라는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곤충의 생김새와 생태를 소개하는 일반적인 곤충도감이 아니라 태곳적부터 인간과 곤충이 함께 살아오며 만들어 온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인문학적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다. 곤충을 단순한 생물종으로 바라보는 데서 나아가 인간과 오랜 시간 공존해 온 존재로 조명하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생명들이 인류의 삶과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지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저자는 곤충 사진작가이자 인문사회학자의 시선으로 곤충을 바라보고 있다. 생생한 접사 사진과 함께 벌, 나비, 모기, 파리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곤충들의 이야기를 역사와 문화, 인간의 삶과 연결해 소개하며 곤충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곤충에 관한 지식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과 자연이 오랜 시간 맺어 온 관계와 공존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이 단순히 곤충에 관한 정보를 모아 놓은 책이 아니라 사진과 이야기, 그리고 인문학적 해석을 하나로 엮어 새로운 의미를 담아낸 결과물이라고 밝히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에 따르면 하나의 사실은 그 자체로는 단순한 자료에 불과하지만 서로 연결되고 해석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지식이 된다. 이러한 연결은 인간의 사고와 문명의 발전을 이루는 근본 원리이기도 하다. 인간의 뇌는 수많은 뉴런과 시냅스가 서로 연결되면서 사고와 창의성이 만들어지고, 오늘날 AI 역시 방대한 정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인간과 곤충, 나아가 AI를 포함한 모든 존재는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이 책은 곤충을 단순한 자연 생물이 아니라 인간과 오랜 시간 관계를 맺으며 역사를 함께 만들어 온 존재로 바라보도록 이끌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지닌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게 한다.
책은 가장 먼저 '멋쟁이딱정벌레'의 학명에 담긴 인물, 폴란드 귀족 미하우 양코프스키와 그의 가문에 관한 역사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단순히 곤충의 이름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명 속에 담긴 인물과 시대적 배경을 차근차근 소개한다. 러시아의 압제를 피해 연해주에 정착한 양코프스키는 우리 동포들과 함께 마적을 소탕하며 '네누니'라는 전설적인 존재로 불렸고 인삼 재배와 녹용 가공법을 익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또한 식물학자의 탐사를 지원하는 등 동북아 자연 연구에도 기여하며 자신의 이름을 곤충의 학명 속에 남기게 되었다.
그러나 저자가 전하는 내용은 한 사람의 업적을 소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러시아 혁명과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양코프스키 가문은 삶의 터전을 잃고 가족이 흩어지는 비극을 겪었으며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명예를 회복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함경도에 세워진 '노비나'는 시인 백석과 소설가 이효석이 작품 속 이상향으로 그릴 만큼 특별한 공간이 되었으며 <조복성 곤충기>에는 곤충을 채집하던 네누니 일가가 첩자로 의심받았다가 조복성의 도움으로 오해를 풀고 노비나에 초대받는 일화도 소개되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멋쟁이딱정벌레라는 작은 곤충 한 마리에서 출발해 한국과 폴란드, 러시아를 잇는 150여 년의 역사와 문학, 곤충학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평범한 곤충의 이름 하나에도 인간의 삶과 시대의 흔적이 켜켜이 스며 있다는 사실은 이 책이 곤충을 매개로 역사와 문화, 인간의 삶을 함께 조명하는 인문학적 시각을 담고 있음을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또 하나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풀벌레 그림의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가을 논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곤포사일리지를 소재로 현대 농업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볏짚과 낙곡은 미생물과 토양, 새들의 먹이가 되어 자연의 순환을 이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수확하는 방식은 토양의 건강을 약화시키고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에 비해 과거 우리 조상들이 윤작과 퇴비를 활용하고 까치밥을 남겨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 했던 모습은 자연의 순환을 존중했던 삶의 지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와 함께 저자는 메뚜기와 방아깨비를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 우리 문화와 예술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존재로 소개한다. 방아깨비의 생태와 번식 과정을 흥미롭게 설명한 뒤, 신사임당과 강세황, 정선의 초충도와 회화 작품 속에서 방아깨비와 나비, 벌 등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함께 보여 준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곤충들이 우리 미술사에서는 자연의 생명력과 계절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소재였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으며 생태와 예술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곤충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층 넓혀 준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곤충 인문학>은 곤충을 하나의 생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와 문학, 예술, 과학, 생태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서로 다른 분야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낸다. 작은 곤충 한 마리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인류의 역사와 문화, 예술 작품, 생태계의 원리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과정은 이 책만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본다. 또한 생생한 접사 사진과 흥미로운 일화가 적절히 어우러져 전문적인 내용도 부담 없이 읽히며 곤충이라는 소재가 이처럼 폭넓은 인문학적 주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주변에서 쉽게 마주치는 곤충들을 이전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름조차 모르고 지나쳤던 작은 생명 하나에도 오랜 역사와 문화, 인간의 삶이 켜켜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이 책은 곤충을 통해 자연을 이해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을 이루는 수많은 존재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다. 그렇기에 자연과 인문학을 함께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 생각되기에 적극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