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루의 멋진 크리스마스
셀린 리 지음 / 창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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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만 보아도 마음이 따스해지는 책이다. 이 책은 홀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외로운 한 고양이 루의 크리스마스를 따뜻한 여정으로 그려내고 있다. 겨울과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외로움과 연결, 환대라는 감정을 중심으로 두고 어린 독자들에게 함께 있음의 의미에 대해 정말 따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루는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야 할 상황에 놓이지만 예상치 못한 기차 여행과 그 여정 속의 사건들을 통해 진정한 따스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과정 속의 일상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림으로 풀어내어 더더욱 고양이 루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단순한 플롯 속에서도 관계의 변화와 감정의 이동으 아주 자연스럽게 흐르며 진심 어린 환대가 어떠한 경험으로 남는지를 깨닫게 만들며 읽는 이의 마음도 따스하게 만든다.

책의 이야기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밤에서 시작된다. 모두가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고양이 루만은 혼자였다.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는 루는 집으로 가는 길 내내 “흥, 나는 크리스마스가 정말 싫어!”라고 투덜거린다.


루의 집 앞에는 이웃 강아지 티스푼이 기다리고 있었다. 티스푼은 루에게 멋진 크리스마스 계획이 있다고 말하지만, 루는 망설이다가 지금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며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후 혼자 돌아온 루는 저녁을 챙겨 먹고,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한 뒤 좋아하는 책을 골라 침대에 누웠지만,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사실, 할머니 없이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가 낯설기만 한 루는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했던 거다. 그런 루를 찾아온 친구 티스푼에게 루는 처음엔 차갑게 대하였지만, 곧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진심을 담은 편지를 건넨다. 할머니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루는 스스로의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고 작지만 중요한 변화를 받아들인다. 다음 날 티스푼은 루를 기차역으로 데려간다.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루는 조금씩 마음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이 책은 마음을 닫은 루가 다시 온기를 되찾아 가는 과정을 조용히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은 크리스마스를 화려한 이벤트로 보내기보다 작은 배려와 환대가 어떻게 한 사람의 일상에 변화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면서 더더욱 깊은 여운과 울림을 남긴다. 기차가 전나무 때문에 멈춰 선 장면에서 루가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안하고 승객들이 각자 가진 물건을 모아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은 공동체적 행동의 의미를 드러내며 깨달음을 전한다. 그리고 티스푼의 가족이 루를 자연스럽게 맞아들이며 새로운 자리를 내어주는 결말 역시 관계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듯하다.

또한 저자 셀린 리의 일러스트는 텍스트가 말하지 않는 여백을 섬세하게 채워 따스함을 충분하게 전한다. 공간의 구조, 사물의 질감, 인물의 표정 등이 서사의 흐름을 뒷받침하며 이야기의 밀도를 높인다. 루가 할머니와의 기억을 되짚거나 새로운 환경에서 조심스럽게 마음을 여는 장면은 그림의 역할을 통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구성은 독자로 하여금 과장된 감동이 아니라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외로움 속에서도,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느껴지는 온기와 그 가치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되새기게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고양이 루의 멋진 크리스마스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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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급을 이기는 생기부 독서법
김수미 지음 / 빅피시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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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대입 제도 속에서 달라진 입시 제도에 대해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는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특히 내신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단순히 성적만으로는 명문대 입시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는 현실이 분명해졌다. 이 책은 이러한 고민을 가진 이들에게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내신 2등급으로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들의 사례를 통해 생기부에 독서를 효과적으로 녹여내는 전략을 소개한다.

이 책의 강점은 단순한 독서 권장에 그치지 않고 실제 생기부 작성에 바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생활 속 독서를 어떻게 세특과 진로 활동, 면접까지 연결 지을 수 있는 지를 상세하게 설명하며, 2028 대입 개편안과 고교학점제 등 변화하는 입시 환경에 대한 정보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26년 차 독서교육 전문가의 노하우가 담긴 이 책은 고가의 입시 컨설팅 없이도 충분한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실용적이고도 현실적인 대입 전략서라 할 수 있다.

책의 프롤로그는 “이제 고등학생이니까 책은 그만 읽어야죠”라는 현실적인 말 한마디로 시작한다. 오랜 시간 입시 현장에서 독서는 비효율적인 활동으로 여겨졌고, 속도와 정확성 중심의 문제풀이 능력이 더 큰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고교학점제의 전면 도입과 수능 비중의 점진적 축소, 생활기록부 중심의 평가 확대는 이러한 흐름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이제 대학은 단순한 성적을 넘어서 학생의 사고력, 탐구 자세, 진로와의 연계성 등을 두루 살펴보며 독서는 그 핵심 축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독서를 어떻게 입시에 효과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지를 구체적으로 안내하고 있다. 27년간 독서교육 현장을 지켜본 저자는 실제 교육 현장에서 축적한 사례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생이 직접 실천 가능한 전략을 제시한다. 책은 입시 구조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1장)에서 시작하여 진로 설계 및 탐구 역량과의 연계 방안(2장), 생활기록부에 녹여낼 수 있는 독서 활용법(3장), 그리고 실전 합격 사례 분석(4장)까지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 책은 복잡한 입시 제도를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내고, 독서가 왜 지금 필요한 지에 대한 해답을 명확히 제시한다.


우선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책은 입시 용어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수록하여 독자가 내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2028 대입 개편의 핵심은 지식 암기 중심의 평가에서 벗어나 학생의 사고력과 탐구력, 그리고 전공 적합성을 다면적으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특히 고교학점제와 통합형 수능의 도입은 과목 간 경계를 허물고 융합적 사고를 요구하는 문제 해결 능력을 강조한다. 단순히 높은 내신 등급이 아니라 어떤 과정을 통해 그 학생이 성장했는 가를 평가하는 정성평가가 확대되면서 내용 중심의 기록과 학습 과정의 깊이가 대입 성패를 가를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서는 단순한 부가 활동이 아닌 학교생활기록부 전반을 설계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실제로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와 면접, 진로활동 등 대입의 주요 평가 요소는 모두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쌓은 생각과 태도, 표현력을 요구한다. 인문·사회, 과학·기술,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통합형 사고를 요구하는 수능 문항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교과서 바깥의 지식을 흡수하고 연결하는 독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공과 진로에 맞는 독서를 꾸준히 이어가며 사고를 확장하고 이를 생기부에 전략적으로 녹여낼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바뀐 입시에서 독서력은 보조 활동이 아니라, 모든 기록과 평가를 관통하는 핵심 역량이 된 것이다.

책의 가장 큰 강점은 막연히 독서가 중요하다는 주장을 넘어서, 실제 학교생활 속에서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생기부에 연결할 수 있는 지를 구체적으로 안내한하고 있다는 거다. 학년별 수강 과목 선택 전략부터 탐구보고서 작성, 세특 활용법, 전공 계열별 추천 도서까지, 지금 당장 실천 가능한 내용을 풍부하게 담고 있어 더 유용하다. 특히 같은 활동이라도 어떻게 기록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세특 사례 비교는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실질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초판 한정으로 제공되는 특별 부록인 <무조건 통하는 계열별 생기부 필독서 100〉을 통해 진로와 전공에 따른 독서 방향까지 명확히 제시한다. 단순히 많이 읽는 독서가 아니라 전공 적합성과 탐구 역량을 드러내는 전략적인 독서를 도와주는 이 목록은 어떤 책을 선택해야 할지 막막한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입시 제도가 복잡해질수록 본질에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고 본다. 이 책은 단순한 입시 기술서가 아니라 독서를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그 성장 과정을 생기부에 설득력 있게 담아내는 방법을 안내하는 가장 현실적인 입시 가이드에 가깝다. 그리고 책은 진로, 탐구, 세특, 면접까지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힘은 바로 독서력임을 다시금 깨닫게 만들기에 수험생뿐 아니라 학부모와 교사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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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란 말 따위 -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
아잠 아흐메드 지음, 정해영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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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한 어머니가 딸을 납치 당하는 개인적 비극에서 출발하여 국가 시스템의 부재와 조직 범죄가 만든 멕시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뉴욕타임스 국제 탐사보도 특파원인 아잠 아흐메드는 4년에 걸쳐 현장을 취재하고 수백 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직접 카르텔 조직원을 추적한 미리암 로드리게스의 삶을 치밀하게 재구성하였다. 책은 단순한 범죄 기록을 넘어 공권력의 무능과 지역사회의 침묵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정의를 실현해 나갔는 지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멕시코 북동부를 장악한 마약 카르텔 세타스와 그에 맞선 미리암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피해자가 스스로 수사관이 되어야 했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저자는 미리암의 추적기를 통해 멕시코 현대사에 깊이 뿌리내린 조직범죄과 권력 유착, 그리고 제 기능을 상실한 법체계를 함께 드러낸다. 그리고 책은 단일 사건에 국한된 기록이 아니라 개인의 분투를 통해 사회 전체의 병리적 구조를 비판하는 문제의식으로 확장하여 깊은 울림을 남긴다.


책의 프롤로그는 국경 도시에서 미리암이 낯선 남성을 뒤쫓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단순한 감시가 아닌 구조적 한계 속에서 벌어진 사실상의 사적 수사에 가깝다. 딸을 납치당한 지 2년, 경찰과 수사당국은 아무런 실마리도 제공하지 못했고 공권력은 절차를 반복하는 데 그쳤다. 결국 미리암 로드리게스는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고 용의자들의 행방을 추적하며 마약 카르텔의 말단 조직원들까지 직접 대면하기에 이른다. 이는 한 개인의 감정적 보복만이 아니라 기존 수사 체계가 실질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조치였다. 미리암은 반복되는 형식적 대응과 무책임한 처리 과정을 확인하며 공적 시스템에 의존해서는 사건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추적 행위는 감정의 동요가 아니라, 작동하지 않는 구조를 보완하기 위한 현실적 선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미리암은 사건 이전까지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인물도, 법 제도에 익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딸 카렌이 납치된 이후, 가족은 범인의 요구에 따라 몸값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다. 사건 해결에 책임을 져야 할 국가 기관은 오히려 피해자 가족을 방치했고, 미리암은 제도와 절차가 오히려 현실을 가리는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미리암의 절친이 그녀를 두고 “두려움은 한낱 단어일 뿐”이라고 표현한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책 속에 등장하는 그녀의 행적과 비교해보면 이 표현이 지나치지 않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하는 딸을 잃은 평범한 어머니가 이런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떠올리면 이 문장은 단순한 인물 묘사를 넘어선 씁쓸함을 남긴다.


책의 이야기는 미리암 개인의 사건에서 출발하지만 곧 멕시코 곳곳에서 사라져간 사람들의 현실로 시선을 확장한다. 미리암은 딸이 납치된 후 가족은 요구받은 몸값까지 지불했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사실 이는 비단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공권력이 사실상 기능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반복되던 구조적 실패였다. 걸프 카르텔과 세타스가 분리되면서 폭력은 걷잡을 수 없이 증가했고, 그 여파는 시민들의 일상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특히 산페르난도를 중심으로 흔적 없이 실종되는 사람들이 급증했는데 이들은 ‘사라진 사람들(los desaparecidos)’로 불리며 마치 존재 자체가 지워진 것처럼 취급되었다. 미리암이 추적을 멈추지 못했던 이유에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인식도 자리하고 있었다.

미리암의 행동은 단순한 대응이라기보다 정보의 수집과 정리, 대상 파악과 같은 실질적 행위를 기반으로 한 체계적 움직임에 가까웠기에 더 인상적이다. 그녀의 지휘 아래 여러 용의자가 검거되거나 제거되었고, 미리암이 축적한 자료는 정식 사건기록을 방불케 할 만큼 세밀한 수준으로 쌓여갔다. 이는 국가가 맡아야 할 역할이 개인에게 떠넘겨진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카르텔 간의 충돌이 격화되고, 정부와 사법기관이 이를 통제하지 못한 사이 납치는 돈벌이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폭력의 방향은 점차 평범한 사람들에게 향했고 실종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적인 위험으로 변했다. 미리암이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고 너무나 찬혹한 현실 앞에서 할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미리암의 움직임이 복수에서 머물지 않고 연대의 형태로 확장되는 과정을 함께 조명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많은 실종 피해자 가족이 기본적인 법적 절차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리암은 직접 정리한 방대한 자료와 행정 경험을 토대로 그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는 피해자 가족 단체를 조직했고, 정부를 압박해 암매장지의 유해를 신원 확인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을 움직였다. 거대한 폭력 앞에서 국가가 비어 있는 자리에 미리암의 활동은 실종자 문제를 공적 영역으로 끌어올린 사례가 되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미리암의 행적에 대한 추적 그 자체보다도 사라진 사람들을 둘러싼 사회적 무관심과 제도의 공백이 어떻게 평범한 개인을 행동하게 만들었는 가에 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책에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개인적 고통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통제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이 무척이나 인상 깊으면서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마약 카르텔의 폭력과 국가 시스템의 무능은 시민을 침묵시키는 공포를 만들어냈고 그 구조 속에서 실종과 학살은 일상적인 사건처럼 취급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억압적 환경에서도 두려움이 절대적 기준이 되지 않는 순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미리암의 행적을 단순한 복수의 서사로만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움을 견디는 과정과 제 기능을 잃은 공권력의 공백을 메우려는 실천과 점차 다른 피해자 가족들과 연대로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행동이 사회 변화를 촉발할 수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특히 폭력의 피해자였던 이들이 스스로 기록을 축적하고 조직을 만들며 실종 문제를 공적 문제로 재정의하는 모습은 공포에 잠식된 공동체가 회복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보여주는 듯하다.

결국 이 책은 두려움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어떻게 권력의 도구로 사용되고 어떻게 시민을 무력하게 만드는 지를 정확히 짚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두려움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전환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미리암의 궤적은 그 사실을 입증하는 예로 제시되며 독자는 그녀의 생을 통해 용기가 특별한 자질이 아니라 붕괴된 구조 속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방식임을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은 폭력의 반복을 고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두려움을 넘어서는 실천이 왜 필요한지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두려움은 이미 사회 곳곳에 스며 있지만 그 감정 자체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된다. 무력감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작은 선택들이야말로 부패한 권력 구조를 흔들고 공동체의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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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읽기 - 날씨와 기후 변화,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공기에 숨겨진 과학
사이먼 클라크 지음, 이주원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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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가 전 세계적인 과제로 떠오른 지금, 이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 책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대기를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바라보며 그 구조와 작동 원리를 체계적이면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인 사이먼 클라크는 대기 물리학자로서의 전문성과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전달력을 바탕으로 기상학의 역사부터 대류권, 성층권, 제트기류, 엘니뇨 등의 다양한 개념을 물리학적 틀 안에서 정리하여 설명한다.

이 책은 단순히 날씨와 기후를 설명하는 수준을 넘어 지구를 둘러싼 대기를 하나의 유기적 생명 시스템처럼 바라보는 데 이러한 관점이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오며 흥미를 유발시킨다. 그리고 과학 용어와 모델링을 바탕으로 복잡한 현상을 풀어내며 독자에게 기후 현상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과학적 내용을 충실히 담아내면서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기후 변화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부터 배경지식을 가진 이들까지 다양한 독자들에게 유익한 관점을 제시한다.

책의 프롤로그는 대기 과학의 출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젊은 과학자가 외딴 숲속에서 유리 플라스크에 대기 샘플을 채취하는 장면은 단순한 실험을 넘어 우리가 매일 접하는 공기 속에 얼마나 많은 과학적 의미와 탐구의 가능성이 숨어 있는 지를 시사한다. 이 장면은 대기 과학이 세밀한 관측에서 시작해, 지구 규모의 복합적 시스템을 이해하는 학문으로 확장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가 생존에 의존하는 대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구성 성분이나 움직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이해는 놀라울 만큼 낮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기의 역할은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구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 연결망으로 작동시키는 데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기의 작용 원리를 설명하지 못하며 기후 변화와 관련된 단편적인 이슈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인식의 한계를 짚고, 보다 근본적인 이해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또한, 저자는 사람들이 대기를 날씨 변화나 기후 위기의 수단으로만 이해하는 좁은 관점에서 벗어나 이를 하나의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자연 시스템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생명 유지의 기반이 되는 대기층은 단순한 보호막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의 현상까지 연결하는 복잡한 상호작용의 장이다. 프롤로그는 이러한 대기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지구과학과 물리학을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함을 역설하며 기후 변화라는 주제가 오랜 시간 축적된 대기 과학 지식 위에 놓여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책의 이야기는 대기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초기 탐사의 극적인 사례로 시작된다. 1862년,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글레이셔와 조종사 헨리 콕스웰은 열기구 매머드를 타고 3만 피트 이상의 고도로 상승하면서 인간이 대기를 실제로 관측하고 측정하려는 시도의 한계를 시험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저산소 환경 속에서 이들이 시도한 고도 측정은 이후 대기가 단일한 층이 아니라 복잡한 구조를 지닌 여러 층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1장에서는 또한 온도계와 기압계의 발명 과정을 통해 대기 과학이 어떻게 계측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보해 왔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갈릴레오의 열팽창 실험, 토리첼리의 진공 실험, 파스칼의 고도에 따른 대기압 측정 실험 등은 대기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수치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대 문명과 고대 그리스의 기상 관측 사례,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상학>, 르네상스 이후의 기술적 진보는 대기에 대한 인식이 초자연적 설명에서 점차 물리학적 설명으로 이동해온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렇게 책의 1장은 과학적 탐구의 진보가 대기 이해에 어떻게 결정적 역할을 했는 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기후 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책은 대기 과학을 이루는 핵심 개념과 현상을 설명하는 동시에, 지금의 지식을 가능하게 한 수많은 과학자의 발자취를 함께 조명하고 있다. 다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특정 분야의 엘리트 과학자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게 인상적이다. 최초의 온도 측정기를 제작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부터 방정식 하나 없이 지구물리유체역학의 토대를 놓은 윌리엄 페렐, 대학 수위로 일하다 빙하기 알베도 피드백 개념을 발전시킨 제임스 크롤, 그리고 지구 대기의 적외선 흡수를 입증하고도 여성 과학자라는 이유로 가려졌던 유니스 푸트에 이르기까지 대기를 이해하려는 인류의 여정은 다양한 배경과 환경을 지닌 인물들의 시도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그들의 성취뿐 아니라 주목받지 못했던 노력과 좌절까지도 세심하게 그리며 대기 과학이 쌓여 온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 역사적 서사들은 결국 하나의 사실로 수렴하고 있다. 인간이 대기에 남긴 흔적은 이제 자연적인 변동성의 범주를 벗어났다. 스웨덴의 지질학자 아르비드 회그봄이 인간의 탄소 배출량이 자연적 배출 수준에 근접한다는 계산을 처음 제시했을 때, 그것은 당시로서는 과감한 가설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는 이후 관측된 대기 중 CO₂ 증가와 정확히 이어지며 현대 기후 과학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오늘날 측정된 414ppm의 CO₂ 농도는 자연 주기나 지질학적 탄소 순환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인간 활동이 지구 시스템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분석을 다시 한 번 데이터 중심으로 되짚는다. 그는 이 책에 담긴 모든 지식이 엄격한 검증과 관측 자료에 기반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이러한 정보를 무시할 경우 위험해지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인간 자신임을 강조한다. 지구는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거대한 시스템이지만 인류는 그 속에서 훨씬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결국 기후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는 과학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과학자들은 이미 필요한 원리를 밝히고 데이터를 제시했다. 이제 남은 것은 독자들이 이 거대한 대기 시스템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결정하는 일이다.

결국 이 책은 대기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일이 단지 날씨를 예측하는 수준을 넘어 기후 변화와 극한 기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인류 생존을 위한 실질적 대응의 토대를 마련하는 일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대기의 구조와 운동, 상태 방정식, 카오스 이론 등 물리학적 원리를 통해 대기 시스템의 복잡성을 설명하며 두려움이 아니라 과학적 이해를 기반으로 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하늘을 읽는 것은 기후 위기를 이해하고 대비하는 실천의 시작점이며 이는 과학 지식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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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좋은지 몰라서 다 가 보기로 했다 - 버드모이의 2500일, 100개국 세계여행
버드모이 지음 / 포르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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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여행을 통한 자기 탐색의 과정을 담고 있다. 2017년, 평범한 직장 생활을 접고 베트남행 비행기에 오른 저자 버드모이는 이후 2,500일 동안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삶의 방향을 다시 정립해 나갔다. 이 책은 그 과정 속의 단순한 경험담이나 관광 정보에 그치지 않고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을 실험하며 정체성을 세워나간 기록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럽의 설국열차에서 시작된 여정, 이방인으로 겪은 차별, 낯선 도시에서 적응해가는 일상까지 책은 네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튜브를 통해 13만 명의 구독자와 여정을 공유해온 저자의 생생한 경험이 녹아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결국 어디를 갔는가 보다 어떻게 살았는가를 이야기하는 책이라 하겠다. 그 안에 담긴 불확실함을 감수하며 살아낸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독자에게도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상기시키게 만들며 깊은 울림을 가져다 준다. 


책의 프롤로그는 저자가 여행하는 삶으로 전환하게 된 배경을 풀어내며 시작된다.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던 20대 후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베트남행 비행기에 오른다. 처음 도착한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하루는 불확실했지, 일정 없는 시간을 보내며 마주한 거리의 풍경과 사람들, 식당의 현지 음식이 오히려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첫 여행 이후 저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이전과는 다른 감정이 남았다. 짧은 여행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생겼고, 곧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준비를 시작한다. 남미 대륙에서의 빠듯한 일정, 중동에서의 예상치 못한 상황, 그리고 육로로 이어진 동남아 순례는 단순한 이동이 아닌 자신만의 원칙과 방식으로 일상을 다시 구성해 가는 시간이 되었다.저자는 그 시간을 통해 여행이 특별한 목적이나 계획이 아니라 일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디를 갔는지 보다 어떤 방식으로 마주하고 반응했는 지가 중요했다. 그렇게 저자는 여행자가 된다는 것이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익숙한 틀을 의심하는 순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책에서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는 저자가 영어와 마주한 경험을 어떻게 극복했는 지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영어를 능숙하게 쓰지 못해 겪는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다. 단순히 언어 능력이 부족한 문제를 넘어서 외국인 앞에서 말을 꺼내는 데 필요한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는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어색함 속에 직접 부딪히며 대화를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과의 교류는 언어 실력보다 말하려는 의지가 훨씬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이는 실질적인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과정들은 학습의 과정이라기 보다 실전 속에서 쌓인 훈련에 가까웠다. 책은 이 경험을 통해 영어를 잘하는 법을 설명하기보다는 낯선 환경에서 소통을 시도하는 태도 자체가 용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이야기는 영어 실력에 대한 두려움보다 그 상황에 뛰어드는 자세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책의 후반부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중단된 이후, 저자가 한국에서 진행한 국토대장정의 기록이 담겨 있다. 서울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약 600km에 이르는 여정은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자신과 주변을 다시 점검하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한 번쯤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됐지만 예상보다 체력적 부담도 컸고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이 여정이 의미 있었던 이유는 단지 저자 혼자의 힘만으로 완주한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의 도움과 함께 걸어준 동행자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응원이 여행의 지속하게 만들었다. 책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관계의 가치와 타인에 대한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땅끝마을은 여정의 마지막 지점이었지만 저자에게는 일종의 정리이자 다음 단계를 위한 전환점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 책은 여행을 통해 자신을 실험하고 그 결과를 구체적으로 기록해 온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낯선 환경에서 반복되는 도전과 관찰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하는 기준을 바꾸어 왔다. 이 책에서 여행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며 기록은 그 과정을 인식하고 정리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저자는 화려한 장면이나 감각적인 순간보다 꾸준히 이어가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영상 몇 편으로 주목 받기 보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지속적으로 쌓고 정리한 시간이 지금의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고 책이 새롭거나 획기적인 길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길고 다양한 나라 속의 이야기들이지만 그 시간들이 주는 메시지는 오히려 심플하다. 저자는 각자가 자신만의 리듬과 방식으로 방향을 찾아갈 수 있음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고, 그 솔직한 이야기들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렇기에 저자의 이야기는 어떤 선택이든 그것을 이어갈 힘이 있다면 삶의 형태는 달라질 수 있음을 모두에게 깨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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