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좋은지 몰라서 다 가 보기로 했다 - 버드모이의 2500일, 100개국 세계여행
버드모이 지음 / 포르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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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여행을 통한 자기 탐색의 과정을 담고 있다. 2017년, 평범한 직장 생활을 접고 베트남행 비행기에 오른 저자 버드모이는 이후 2,500일 동안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삶의 방향을 다시 정립해 나갔다. 이 책은 그 과정 속의 단순한 경험담이나 관광 정보에 그치지 않고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을 실험하며 정체성을 세워나간 기록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럽의 설국열차에서 시작된 여정, 이방인으로 겪은 차별, 낯선 도시에서 적응해가는 일상까지 책은 네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튜브를 통해 13만 명의 구독자와 여정을 공유해온 저자의 생생한 경험이 녹아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결국 어디를 갔는가 보다 어떻게 살았는가를 이야기하는 책이라 하겠다. 그 안에 담긴 불확실함을 감수하며 살아낸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독자에게도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상기시키게 만들며 깊은 울림을 가져다 준다. 


책의 프롤로그는 저자가 여행하는 삶으로 전환하게 된 배경을 풀어내며 시작된다.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던 20대 후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베트남행 비행기에 오른다. 처음 도착한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하루는 불확실했지, 일정 없는 시간을 보내며 마주한 거리의 풍경과 사람들, 식당의 현지 음식이 오히려 새로운 감각을 깨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첫 여행 이후 저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이전과는 다른 감정이 남았다. 짧은 여행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생겼고, 곧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준비를 시작한다. 남미 대륙에서의 빠듯한 일정, 중동에서의 예상치 못한 상황, 그리고 육로로 이어진 동남아 순례는 단순한 이동이 아닌 자신만의 원칙과 방식으로 일상을 다시 구성해 가는 시간이 되었다.저자는 그 시간을 통해 여행이 특별한 목적이나 계획이 아니라 일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하나의 과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디를 갔는지 보다 어떤 방식으로 마주하고 반응했는 지가 중요했다. 그렇게 저자는 여행자가 된다는 것이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익숙한 틀을 의심하는 순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책에서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는 저자가 영어와 마주한 경험을 어떻게 극복했는 지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영어를 능숙하게 쓰지 못해 겪는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다. 단순히 언어 능력이 부족한 문제를 넘어서 외국인 앞에서 말을 꺼내는 데 필요한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는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어색함 속에 직접 부딪히며 대화를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과의 교류는 언어 실력보다 말하려는 의지가 훨씬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이는 실질적인 성장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과정들은 학습의 과정이라기 보다 실전 속에서 쌓인 훈련에 가까웠다. 책은 이 경험을 통해 영어를 잘하는 법을 설명하기보다는 낯선 환경에서 소통을 시도하는 태도 자체가 용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이야기는 영어 실력에 대한 두려움보다 그 상황에 뛰어드는 자세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책의 후반부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중단된 이후, 저자가 한국에서 진행한 국토대장정의 기록이 담겨 있다. 서울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약 600km에 이르는 여정은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자신과 주변을 다시 점검하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한 번쯤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됐지만 예상보다 체력적 부담도 컸고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이 여정이 의미 있었던 이유는 단지 저자 혼자의 힘만으로 완주한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의 도움과 함께 걸어준 동행자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응원이 여행의 지속하게 만들었다. 책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관계의 가치와 타인에 대한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땅끝마을은 여정의 마지막 지점이었지만 저자에게는 일종의 정리이자 다음 단계를 위한 전환점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 책은 여행을 통해 자신을 실험하고 그 결과를 구체적으로 기록해 온 과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낯선 환경에서 반복되는 도전과 관찰을 통해 스스로를 정의하는 기준을 바꾸어 왔다. 이 책에서 여행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며 기록은 그 과정을 인식하고 정리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저자는 화려한 장면이나 감각적인 순간보다 꾸준히 이어가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영상 몇 편으로 주목 받기 보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지속적으로 쌓고 정리한 시간이 지금의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고 책이 새롭거나 획기적인 길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길고 다양한 나라 속의 이야기들이지만 그 시간들이 주는 메시지는 오히려 심플하다. 저자는 각자가 자신만의 리듬과 방식으로 방향을 찾아갈 수 있음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고, 그 솔직한 이야기들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렇기에 저자의 이야기는 어떤 선택이든 그것을 이어갈 힘이 있다면 삶의 형태는 달라질 수 있음을 모두에게 깨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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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숙제가 아니라 축제입니다
호사카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 알키미스트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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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은 아직 좋은 순간을 남겨두었습니다."라는 띠지 속 문장에 끌려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50년 가까이 사람들의 마음을 돌봐온 70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전하는 노년기의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한다. 저자는 인생이 길어진 오늘날, 60대와 70대가 ‘노년=쓸쓸함’이라는 오래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 성취나 물질적 목표를 위해 달리던 젊은 시절과 달리 인생 후반부에는 자신에게 집중하고 생활의 균형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에 책은 노년을 숙제로 받아들이는 대신 축제처럼 즐기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과 실천 방안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마음 건강을 돌보는 방법, 관계 맺는 방식, 취미와 건강 관리 등 실제적 조언들이 담겨져 있어 유용하다. 노화를 실감하는 순간이 늘어가는 시대에 이 책은 남은 삶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노년을 숙제로 받아들이는 시각에서 벗어나 앞으로의 삶을 재구성하는 시기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생이 길어진 시대에 노년은 더 이상 여유 시간을 소진하는 단계가 아니라 또 하나의 생활의 장이다. 특히 가족 구조와 인간관계가 크게 달라진 지금, 자녀가 있더라도 결국 스스로 노후를 꾸려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저출산과 1인 가구 증가가 일상이 된 만큼 남은 생을 활기 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나를 삶의 중심에 두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단순히 조심스럽게 시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서 '왜 이렇게 여유롭지?'라고 할 정도로 능동적이고 낙천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이 점이 꽤 인상깊다.

저자는 이러한 마음가짐이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40~50대부터 서서히 삶의 방향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 사회적 성취와 책임에 집중해 왔다면 이후의 시간은 건강 관리, 심리적 안정, 삶의 균형 회복을 중심에 두고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년의 불안과 외로움을 줄이기 위해서는 생활 습관을 조기에 점검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연습이 필요하며, 이러한 준비가 실제 노년기의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 이 책은 인생 후반을 보다 기민하고 즐겁게 맞이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법을 제시하며 축제 같은 노년을 위한 관점 전환을 돕는 안내서에 가깝다.


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조언은 노년기에 반드시 갖춰야 할 요소로 유머 감각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유머가 단순한 농담의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와 지성에서 비롯되는 삶의 태도라고 설명한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 환자의 반응을 통해 정신적 여유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고 말하며 다른 사람의 농담에 미소로 반응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삶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강조한다. 유머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처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길러지는 것이라는 거다.

또한 저자는 토머스 모어의 일화를 예로 들며, 유머가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인간을 지탱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나이가 들수록 노화나 질병처럼 피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많아지지만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책에서 제시하는 멋진 노년을 살아가는 14가지 기술 가운데 가장 실질적이면서도 당장 실천하고 싶은 조언은 바로 인생의 전환기마다 대청소를 하라는 부분이다. 저자는 주변 환경을 정리하는 일과 마음의 상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물건을 줄이고 공간을 비우는 과정은 단순히 생활 편의성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노화와 삶의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를 돕는 심리적 정리의 시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도에서는 노년기 수행의 일환으로 가진 것을 조금씩 비워내는 전통이 있으며 이를 통해 오히려 가벼운 마음을 유지한다고 소개한다.

저자는 50세나 60세 생일, 혹은 정년퇴직처럼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을 때 일부러 큰 정리를 시도해보라고 권한다. 지나치게 많은 물건은 체력과 정신력, 경제력이 서서히 줄어드는 시기에는 오히려 부담이 되기에 그 시점에 맞는 간결한 삶의 규모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납 공간의 70~80%만 채우고, 선반 위의 물건을 최소화하는 아주 현실적인 팁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정리된 공간은 물건을 찾는 시간을 줄여주고 집 전체를 스스로 관리하고 있다는 안정감을 주어 노년기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기반이 된다. 결국 인생의 전환기에 하는 대청소는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삶의 다음 장을 준비하는 중요한 의식이 될 듯 싶다.

이 책에는 노년을 안정적으로 꾸려가기 위한 구체적인 생활 지침이 폭넓게 정리되어 있다. 마음, 관계, 취미, 건강을 아우르는 80가지 조언은 거창한 목표보다 소소한 실천에 초점을 맞춰 누구나 일상에서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주기적으로 주변을 정리하며 마음의 짐을 덜고, 위험한 재테크나 한탕주의적 제안을 경계하며, 인간관계에서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라는 조언은 노년기에 특히 실효성이 크다. 또한 ‘콩, 깨, 미역, 채소, 생선, 버섯, 감자’로 이어지는 간단한 식재료 원칙은 건강한 식생활을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는 방법으로 소개되고 있어 이 또한 꼭 기억해두면 좋을 듯 싶다.

이처럼 책은 나이 듦을 소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앞으로의 시간을 주체적으로 꾸려가기 위한 태도와 습관을 세심하게 짚어준다. 노후를 보다 편안하고 단정하게 정비하고 싶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선택지를 제시하며 인생 후반부를 숙제가 아니라 새로운 흐름을 즐기는 시기로 바라보도록 돕는다. 그렇기에 이 책은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로도 좋을 듯 싶고, 스스로의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하려는 독자에게도 의미 있는 안내서가 될 듯 싶다.


. 어릴 때 ‘하루 세 번 양치’라는 생활 습관을 배웠듯이 노년에는 ‘하루 세 번 웃기’를 새로운 생활 규칙으로 삼으라는 제안은 현실적이면서도 누구라도 실천 가능한 조언이 아닐까. 그렇기에 웃음을 일상의 작은 의식처럼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인생 후반을 건강하고 생기 있게 만드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메시지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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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동주 창비교육 성장소설 15
정도상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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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읽어도 마음이 울컥해진다. 2025년은 윤동주 시인의 서거 80주기이다. 이 책은 그를 기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적 시도 중 하나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윤동주 시인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남긴 국민 시인이지만, 이 책은 그가 시인이 되기 전 한 명의 평범한 소년이었던 시절에 주목한다. 만주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하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윤동주의 내면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 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여고생 새봄이 꿈에서 윤동주를 만나 시간 여행을 떠난다는 독특한 구성으로 오늘날 청소년 독자들이 윤동주에게 느낄 수 있는 거리감을 자연스럽게 좁혀준다. 또한 송몽규과 문익환 등 그의 친구들과의 관계, 문학과 신앙, 조국에 대한 고민 등 당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시인이 겪었던 갈등과 선택을 깊이 있게 담아내었다. 이 책은 윤동주를 위대한 시인으로만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 한 명의 고민 많은 청소년으로 바라보게 하고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삶과 꿈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책의 프롤로그는 윤동주를 단순히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여전히 시를 통해 현재와 연결된 존재로 그려낸다. 그렇기에 시인은 자신이 알닐람이라는 별에 거주하며 육체를 벗어난 이후 자유롭게 시의 언어를 따라 지구를 오간다고 말하고 있다. 독자가 윤동주의 시를 깊이 있게 읽는 순간 그 감응에 이끌려 지구별로 내려온다는 설정은 신박하게 다가올 뿐만 아니라 시인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는 여고생 정새봄이 공부 도중 시에 빠져들고 꿈속에서 시인 윤동주와 조우하면서 시작된다. AI로는 알 수 없는 시인의 학창 시절을 윤동주 본인이 직접 들려주는 이 전개는 보다 생생하고 인간적인 윤동주를 보여준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접근 대신 시인을 주체적인 화자로 설정한 이 서사는 본격적인 시간 여행을 예고하며 시인 윤동주가 아닌 윤동주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좀 더 궁금하게 만들며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한다.


소설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윤동주의 은진중학 시절로 시작된다. 동주는 명동소학교 시절부터 함께 문학을 꿈꾸어온 송몽규, 문익환과 함께 중학교에 입학하며 본격적인 청소년기의 첫발을 내딛는다. 이 시절의 윤동주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만나온 무겁고 비장한 이미지의 시인과는 조금 다르다. 축구를 좋아하고, 땀 흘리며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즐기고, 바느질도 손수 해내며 일상에 몰입하는 모습은 오히려 소박하고 정감 있는 평범한 소년의 모습에 가까와 더 인싱 깊었다. 특히 어린이들과 어울리며 동요 가사를 하나하나 분석하고 감탄하던 그의 순수함은 이후 탄생하게 될 주옥 같은 동시의 정서적 뿌리를 짐작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시기의 동주는 섬세한 감수성과 예술적 기질을 지닌 반면, 몽규는 보다 현실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지닌 인물로 등장한다. 동요에 빠져드는 동주를 바라보며 몽규는 가난과 억압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의 현실을 먼저 떠올린다. 이상을 좇는 동주와 현실을 직시하는 몽규의 대비는 두 인물의 내면을 더욱 뚜렷이 드러내며 독자로 하여금 윤동주의 예술적 선택이 어떻게 고민과 갈등 속에서 다져졌는 지를 이해하게 한다. 그 맑고도 투명한 시심은 결코 현실을 모른 채 피어난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더욱 간절히 지켜내려 했던 감정이라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책은 윤동주라는 인물을 새롭게 조명하게 만든다. 특히 이 소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상징적인 시인의 모습 너머, 자신의 이름조차 어색했던 한 소년의 내면과 성장의 과정을 세심하게 펼쳐 보인다. 송몽규, 문익환과 맺은 끈끈한 우정 속에서 문학을 향한 열망과 열등감 사이를 오가며 고민하는 모습은 시인 이전에 고민 많던 한 청소년의 흔적을 생생히 보여주며 많은 공감과 그의 이야기에 깊은 몰입을 선사한다. 시대적 억압 속에서도 우리말로 시를 짓고자 했던 윤동주의 선택은 단순한 열정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를 건 다짐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더더 울컥해졌다.

그리고 이 책은 윤동주의 시가 어떻게 탄생했는 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게 만든다. 아이들과 함께 나눈 순수한 정서, 축구장에서 흘린 땀방울, 일상 속 사소한 순간들과 그의 깊은 고민들이 그의 언어 속에 어떻게 스며들었는 지를 따라가다 보면 시 한 편 한 편이 그의 삶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는 지를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이 책을 통해 그의 시를 다시금 읽게 되니 그의 시들이 문학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책을 읽고 나니 이제는 윤동주의 작품을 단순히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의 흔들림과 결심까지 함께 떠올리며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 든다.

또한, 저자는 사실과 상상을 정교하게 엮어 북간도와 평양의 풍경을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감각으로 재현해냈다.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말들과 방언들을 적절히 활용해 문장의 결을 살리고 독자에게 잊혀졌던 우리말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인물 중심의 전기 소설을 넘어 꿈을 품고 방향을 찾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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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
맥스 포터 지음, 민승남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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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심사위원장인 맥스 포터의 신작이라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짧은 분량 안에서 인간 존재의 균열을 정교하게 포착하고 있다. <슬픔은 날개 달린 것>과 <래니>로 이미 국내 독자에게 이름을 알린 맥스 포터는 이 책에서도 200쪽이 되지 않는 구성 속에 한 소년이 맞닥뜨린 결정적 하룻밤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담아내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저자가 가장 빠르게 초고를 완성한 동시에 가장 천천히 다듬은 책으로 알려져 그 압축된 서사 안에 치밀한 문장과 구조적 실험이 균형 있게 배치되어 있다. 소설은 한밤중 돌아오지 않을 산책을 떠난 십대 소년의 내면을 추적하며 외부 세계의 혼란보다 자기 안의 소용돌이와 싸우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아주 세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접근 방식은 출간 직후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등극과 BBC ‘올해의 책’ 선정이라는 평가로 이어졌고, 이후 아카데미 수상 배우 킬리언 머피가 차기작으로 참여하며 빠른 영화화까지 이루어졌다고 한다. 짧은 분량 속에서 한 인물의 삶과 흔들림을 최소한의 언어로 구현해내는 저자의 고유한 문학적 기량이 이 책에서도 다시 한번 입증되고 있고, 깊은 여운을 남기며 소설을 자꾸 곱씹게 만든다.

소설의 도입부는 한 소년이 새벽 3시 13분,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몰래 시설을 빠져나오려는 순간으로 시작한다. 배낭 속에는 6억 년 된 부싯돌들이 가득 들어 있어 배낭이 무겁다는 반복적 묘사는 그의 상황적 압박뿐 아니라 정신적 혼란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샤이는 마지막 남은 마리화나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정글 테이프를 챙기며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충동과 불안 속에서 어둠을 통과해 나간다. 소년의 방에는 여러 아이들의 이름과 시간의 흔적이 뒤섞여 있어, 그가 속한 공간이 단순한 기숙사가 아니라 복잡한 과거와 규율이 쌓인 기관임을 암시한다.

도주 과정은 과장 없이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샤이는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을 피해 카펫 중앙만 밟고 배낭끈이 끊어져 부싯돌이 쏟아질까 경계하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간다. 이러한 신체적 긴장감은 그가 처한 불안정한 현실인 감시, 규칙, 처벌, 그리고 자신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지나가는 생각들은 산만하게 흩어지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깊은 자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소설의 도입부는 이처럼 한밤의 탈출이라는 단순한 사건을 통해 샤이가 감당해야 하는 정서적 무게와 혼란을 직접 체감하게 만들며 샤이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더하게 되고 점점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어지는 샤이가 새벽 어둠 속을 걸어가는 장면은 소설의 핵심 정서를 너무나 잘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그는 자신이 감당해온 시간의 무게가 한밤중에 더욱 짙게 드리워지는 것을 느끼며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온다. 문제행동으로 낙인찍힌 채 라스트 찬스라는 이름의 대안 학교에 머물고 있지만 그 공간은 안정과 불안이 뒤섞인 환경일 뿐이다. 서로에게 거칠게 반응하면서도 뜻밖에 우정이 스며드는 관계, 규칙 속에서 자신을 다시 세우려는 시도는 존재하지만 샤이는 여전히 불안과 죄책감이 반복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 있다.

교사들은 그의 과거가 영원히 발목을 잡지 않도록 돕고자 하지만, 샤이에게 변화는 언제나 버거운 과제이다. 그래서 일까. 샤이는 자신이 만든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그 굴레가 익숙해져 버린 탓에 벗어날 수 없는 상태에 머문다. 주변에서 건네는 위로와 조언은 샤이를 향해 있지만 그 말들이 실제로 작동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감정들은 그가 새벽에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연못을 향해 가는 행동으로 응축된다. 배낭 속의 돌처럼 그는 스스로의 내면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걷는 동안 그의 머릿속은 파편화된 기억과 감정으로 요동친다. 소설은 이 과정을 '밤은 감각이 뒤범벅된 기억들의 파편, 그 깜빡이는 잔상이다, 그가 높은 데서 떨어져 박살이라도 난 것처럼, 사실 전혀 그렇지 않고, 그저 정처 없이 걸으며 기억을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는 샤이의 혼란을 과장 없이 압축적으로 드러내며 한밤의 여정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스스로와의 충돌을 견디는 과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극적인 사건에 의존하지 않기 보다는 한 소년의 감정과 신체적 감각을 정교하게 묘사해 나감으로써 그의 내면적 균열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그리고 이러한 샤이의 혼란스러운 감정과 생각들은 그가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지, 그리고 그 선택이 무엇을 의미할지를 궁금하게 만들며 그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게 만든다.

책은 한 소년의 위태로운 밤을 따라가며 성장 과정에서 겪는 불안과 감정의 무게를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소설은 그의 내면을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포착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목소리인 교사의 말이나 친구들의 기억과 과거의 잔상, 그리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을 나란히 배치하며 청소년기 특유의 혼란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바로 이런 접근 방식이 저자가 문학계에서 꾸준히 신뢰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짧은 분량 속에서도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단단하게 구축해내고 독자가 쉽게 짐작하거나 단정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유지하는 그의 문장들은 너무나 독창적이다.

그리고 이 책은 샤이의 미래가 특별히 밝을 것이라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한 시기를 버티고 지나가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담아내고 있다. 라스트 찬스에서 들려오는 격려와 조언은 즉각적으로 변화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다른 형태로 되살아날 가능성을 열어둔다. 결국 이 책은 삶이 주는 부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그 속에서 한 발 더 나아갈 여지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누군가의 흔들리는 시간이 단순한 실패나 문제로 환원되지 않으며 그 순간을 지나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경험일 수 있음을 다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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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 결심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두번째 선택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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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작가의 신작이라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판사에서 드라마 작가로 전업한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익숙했던 삶의 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선택한 한 개인의 고민과 변화를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오랜 시간 법관으로 살아오며 사회 정의와 시스템의 작동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고, 특히 양승태 대법원 시절 법원 내의 구조적 문제와 한계를 직접 목격하면서 결국 법복을 벗고 전업 작가라는 다른 삶을 선택하게 된다. 책은 저자의 모든 결심들이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안정된 직업을 내려 놓기까지의 망설임과 조직을 떠난 이후 맞닥뜨린 현실적인 고민, 그리고 새로운 직업인 드라마 작가로서 겪는 시행착오까지를 정말 꾸밈없이 기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사회적 지위나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재정비하고자 했던 저자의 시도는 단지 직업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태도를 바꾸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아주 인상 깊다.


책은 익숙한 삶의 틀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한 한 개인의 깊은 성찰과 실천의 흔적을 아주 솔직하게 담고 있다. 저자는 20년 넘게 재직했던 법원을 떠나 드라마 작가라는 전혀 다른 영역에 발을 들였다. 저자는 23년간 몸담았던 법원을 떠나 드라마 작가로 전업하며 익숙하고 안정적인 자리를 내려놓고 낯설고 불확실한 삶에 발을 들였다. 그 결정은 단기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르고, 조직의 기대와 자신이 믿는 가치 사이에서 균열을 느낀 그는 더 이상 법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신념대로 살 수 없음을 깨닫는다. 결국, 더 늦기 전에 나 자신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내리고 법복을 벗게 된 것이다.

책의 제목인 ‘나로 살 결심’은 법률 용어인 ‘결심’이 재판을 종결하는 순간을 의미하듯 저자는 스스로의 첫 번째 인생을 정리하고 다음 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단호한 선택을 표현하고자 한 표현이다. 초기에 고려했던 ‘세컨드 라이프’라는 제목은 외형적인 변화만을 담아내는 듯해 폐기되었고 오히려 세렝게티 초원에서 누 떼가 강을 건너기 전 끝없이 망설이던 장면 속에서 그는 자신의 상태를 떠올렸다. 불확실성과 두려움 속에서도 더 늦기 전에 스스로의 길을 선택해야 했던 시간들을 담고자 하였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렇게 화려하거나 감상적인 포장이 아닌, 현실을 밀고 나아가는 단단한 의지로 완성된 기록을 아주 담담하게 담고 있다.

책의 1부 <첫번째 삶과의 작별>에는 사법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한 개인이 조직 속에서 느낀 현실적 괴리와 그로 인한 선택 과정을 차분하게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법관으로서의 소임에 충실하고자 했지만 조직 내에서 반복되는 비합리적인 결정과 위계적 분위기 속에서 점점 회의감을 느낀다. 특히 블랙리스트 사건과 같은 결정적인 계기를 통해 그는 조직에 대한 기대가 더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상을 품고 입직했지만 시스템이 스스로를 보호하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그는 조직을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전직 이후의 삶은 단순한 직업 전환이 아니라 일과 역할의 방식이 바뀌었다. 판사로 일하면서 병행해오던 글쓰기는 취미에 가까웠으나 드라마 작가로 이어진 것은 본인의 경험과 관찰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결과였다. 다양한 사건과 사람을 다뤄야 했던 판사의 업무는 결국 드라마 작가라는 새로운 직업에도 일정 부분 유사한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 그는 그 변화가 갑작스러운 결단이 아니었음을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과거 자신이 조직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것이 체제 내부에서 허용된 범위 안에서의 발언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자신이 했던 칼럼이나 유머를 곁들인 비판 역시 결국 영향력을 가지기엔 한계가 있었고 스스로를 궁중의 광대에 비유한 표현은 그 판단의 결과라 왠지 씁쓸하게 다가왔다.


2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에서는 새로운 삶에 발을 들인 후 마주한 구체적인 문제들과 그에 대한 대응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조직의 틀 안에서 비교적 예측 가능한 일상을 살아오던 저자가 프리랜서로 독립하면서 처음 마주한 것은 막연한 자유가 아닌 통제되지 않는 시간과 불확실한 환경이었다. 수입 관리, 창작의 부담, 체력 저하, 심리적 기복 등 이전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과제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그에 대한 해답은 외부가 아닌 자신의 판단과 선택에 맡겨진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는 그간 생각해온 ‘자유로운 삶’의 이미지와 실제가 다르다는 점을 점차 체감하게 된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자유를 바라며 떠나온 삶이 오히려 새로운 구속을 자초하게 된다는 인식이다. '첫번째 삶에서는 없는 시간을 쪼개 글도 쓰고 여행도 하며 바쁘게 살았는데, 지금은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무의미하게 낭비하다가 결국은 또 마감에 쫓겨 바쁘게 산다'는 저자의 고백은 일정과 규율 속에서 살아온 이들이 자유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당혹감을 잘 보여준다. 자율적인 삶이 반드시 효율적인 삶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자유조차도 관리되지 않으면 또 다른 부담이 된다는 점을 저자는 냉정하게 짚고 있다. 결국, 두 번째 삶도 이상적인 해방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의 분투라는 점에서 더 많은 공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은 단절이 아닌 연속이었다. 저자는 드라마라는 형식을 통해 법정에서 다뤘던 수많은 현실의 갈등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로서의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상업성과 사회적 의미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며 그는 평범하지만 성실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 불완전한 정의, 타협과 연대의 필요성은 모두 그가 판사로서 고민해왔던 주제들이다. 드라마 <프로보노>는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이며 결국 그는 자신이 잘 알고 깊이 생각해온 주제만이 진짜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야기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작은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려는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은 전직 판사의 경력, 드라마 작가로의 전업, 삶의 방향 전환 같은 외형적인 변화보다 그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되묻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동기에 자기애나 인정욕망이 포함되어 있었는 지까지 면밀히 성찰한다.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열망보다 스스로가 이야기의 중심에 서고 싶었던 내면의 욕망을 인정하는 대목은 이 책의 중심을 이룬다는 점이 무척이나 인상깊다. 그는 결국 자신의 첫 번째 삶이 두 번째 삶을 가능하게 했고 실패와 불안조차 삶을 성립시키는 요소였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거창한 인생 해법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환의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한 성찰의 기록에 가깝고 그래서 더 많은 공감을 자아낸다.

그렇기에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또 누군가에게는 유보된 질문을 끌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완전히 다른 삶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변화 이후에도 현실의 무게는 여전히 존재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무게를 감당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한 태도로 이 책을 완성했고, 그렇기에 그가 앞으로도 어떤 이야기들을 써나갈지 궁금해진다. 드라마 작가로서, 글 쓰는 개인으로서, 또 한 명의 시민으로서 그의 다음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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