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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 - 유전과 환경, 그리고 경험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케빈 J. 미첼 지음, 이현숙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9월
평점 :
제목과 소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책은 '인간은 어떻게 서로 다른 성격과 능력, 기질을 가지게 되는가?'와 '무엇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뇌과학과 유전학의 시각에서 체계적으로 답하고자 하는 교양과학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인간의 행동과 특성이 단지 유전 또는 환경 어느 하나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지양하고 태아기의 뇌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기 조직화, 유전적 무작위성, 그리고 이후의 환경 및 경험과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개인차가 형성되는 과정을 다층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유전자를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설계도가 아니라 방향성과 가능성을 제시하는 출발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 아래 책은 성격, 지능, 성별 차이, 신경 발달 질환 등 다양한 주제를 통해 인간 개개인이 어떻게 고유한 존재로 형성되는 지를 설명하며 본성과 양육을 둘러싼 오랜 논쟁에 대해 현대 생물학과 신경과학의 최신 성과를 반영한 통합적 시각을 제시한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인간은 유전자의 복제물이 아니라 유전적 토대 위에 무작위성과 환경이 더해져 끊임없이 변화하고 구성되는 유일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즉 인간의 정체성과 다양성은 단순한 과학적 설명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전자와 환경, 경험 간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깨닫게 한다.
책은 전반부에서 유전적 변이와 발달 과정, 뇌의 자기 조직화 같은 개념을 바탕으로 선천적 차이가 형성되는 기제를 설명하고, 후반부에서는 성격, 지능, 성적 지향, 신경 발달 장애 등 심리적 특성의 기원과 다양성을 구체적으로 다룬다. 특히 이 책은 유전이나 환경 중 하나가 인간을 결정한다는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서 유전자와 환경, 무작위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개인차가 만들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경험이 선천적 차이를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기존의 평등주의적 시각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이런 과학적 논의가 갖는 사회적·윤리적 함의를 제시한다. 만약 두뇌와 정신의 작동 방식에 선천적 차이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교육, 고용, 법적 책임, 자유의지에 대해 어떤 재해석이 필요할까? 그리고 인간 정신의 본질적 다양성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인간다움을 어떻게 새롭게 정의할 수 있을까?
책의 본문에서는 유전적 변이가 인간의 심리적 특성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다 정교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쌍둥이 연구, 가족 연구, 입양 연구를 통해 심리적 차이에 유전이 관여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특정 특성을 하나의 유전자로 환원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즉, 외향성 유전자나 지능 유전자 같은 단일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시스템의 비유를 든다. 마치 자동차의 점화 플러그가 차의 주행에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차의 움직임 전체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유전적 변이 역시 특성의 한 요소일 뿐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
현대 유전학은 대부분의 심리적 형질이 하나의 유전자가 아닌 수많은 유전자의 상호작용과 발달 과정에서의 무작위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본다. 외향성, 지능, 언어 능력, 성격 특성 등은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단백질이나 세포 기능이 없는 뇌의 고차원적 신경 회로 작동의 결과물이다. 이런 회로는 수천 개의 유전자와 환경, 무작위성 속에서 형성되며 각 개인의 심리적 특성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단순한 유전자 목록이 아니라 유전적 변이가 신경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그것이 어떻게 심리적 특성으로 표현되는 가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특히 발달 과정에서의 미세한 차이와 무작위적 요소가 사람마다 다른 뇌 구조와 기능을 만들어낸다는 점은 인간의 정체성과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리고 인간의 뇌 발달과 유전자 발현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작위성이 어떻게 개인 간 차이를 만들어 내는 지를 정교하게 설명하는 부분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유전자는 단백질 생산을 지시하지만 이 과정은 결코 기계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단백질의 이동, 상호작용, 유전자 발현 자체가 수많은 분자 수준의 잡음(noise)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이로 인해 동일한 유전자형에서도 각기 다른 표현형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신경 발달 과정에서는 이런 무작위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뉴런의 이동, 시냅스 형성, 축삭 유도 등은 수천 개의 유전자가 관여하는 복잡한 과정이며 이 과정에 발생하는 미세한 변동이 뇌 구조와 기능에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뇌 해부학 구조나 발달적 증상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관찰된다. 이는 유전적 요소뿐 아니라 발달과정에서의 확률적 사건이 개인의 신경 발달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책은 이러한 확률적 발달의 대표적 사례로 뇌량 무형성증을 소개한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생쥐 개체들이 동일한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음에도 어떤 개체는 뇌량이 정상적으로 형성되고 다른 개체는 그렇지 않은 현상이 관찰되었다. 이는 발달 초기 소수 세포의 미세한 차이, 즉 잡음이 전체 신경 회로 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발달상의 무작위성은 손잡이 성향이나 성적 지향 같은 개인차에서도 유사하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왼손잡이의 유전력은 비교적 낮으며 쌍둥이 사이에서도 손잡이 성향이 종종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후천적 경험의 영향이 적은 특성임에도 불구하고 그 형성에 발달적 변이와 무작위성이 기여하고 있다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이 모든 내용을 종합하며 저자는 생물학자 콘래드 워딩턴이 제시한 인상적인 비유를 소개하며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유기체의 발달 과정은 마치 작은 돌덩이가 여러 갈래의 홈이 파인 언덕을 따라 굴러 내려가는 것과 같으며 그 돌이 어떤 홈을 따라 굴러가느 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에 이르게 된다. 이 비유는 유전적 요인, 무작위성, 환경적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달 경로를 형성하는 메커니즘을 시각적으로 효과적으로 설명해 준다.
이 책은 유전자의 기능을 결정론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유전적 기반 위에 무작위성, 환경, 발달적 요인이 어떻게 얽히고 작용하는 지를 과학적으로 풀어내거 있다. 단일 유전자가 특정 특성을 결정한다는 믿음은 오해에 가깝고 인간의 심리적 특성과 행동은 수많은 유전자와 생물학적, 환경적 요인, 발달 과정 중 발생하는 무작위성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결과라는 것이 핵심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책은 양자역학적 불확실성에서 출발해 분자 수준의 잡음, 세포 간 상호작용, 신경 회로 형성 과정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는지 그 복잡하고 유기적인 경로를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각 개인은 가능성의 지형을 따라 하나의 유일한 결과로 형성되며 유전자의 지시로 가능한 결과 중 어느 하나만이 실현되어 '나'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즉, 모든 인간은 유전적 코드로부터 시작되지만 그 끝은 결코 예정된 것이 아니다. 유전자형은 가능성의 지도를 제공할 뿐이며 그 위를 어떻게 걷느냐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전자와 환경, 무작위성의 복합적 상호작용 속에서 태어난 ‘하나의 가능성’일 뿐인가? 아니면, 수많은 가능성 중 실현된 단 하나의 결과로서의 나는 그 자체로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는가?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 존재에 대한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한다. 그리고 그 질문 자체가 바로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의 출발점임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