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
맥스 포터 지음, 민승남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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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심사위원장인 맥스 포터의 신작이라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짧은 분량 안에서 인간 존재의 균열을 정교하게 포착하고 있다. <슬픔은 날개 달린 것>과 <래니>로 이미 국내 독자에게 이름을 알린 맥스 포터는 이 책에서도 200쪽이 되지 않는 구성 속에 한 소년이 맞닥뜨린 결정적 하룻밤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담아내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저자가 가장 빠르게 초고를 완성한 동시에 가장 천천히 다듬은 책으로 알려져 그 압축된 서사 안에 치밀한 문장과 구조적 실험이 균형 있게 배치되어 있다. 소설은 한밤중 돌아오지 않을 산책을 떠난 십대 소년의 내면을 추적하며 외부 세계의 혼란보다 자기 안의 소용돌이와 싸우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아주 세밀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접근 방식은 출간 직후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등극과 BBC ‘올해의 책’ 선정이라는 평가로 이어졌고, 이후 아카데미 수상 배우 킬리언 머피가 차기작으로 참여하며 빠른 영화화까지 이루어졌다고 한다. 짧은 분량 속에서 한 인물의 삶과 흔들림을 최소한의 언어로 구현해내는 저자의 고유한 문학적 기량이 이 책에서도 다시 한번 입증되고 있고, 깊은 여운을 남기며 소설을 자꾸 곱씹게 만든다.

소설의 도입부는 한 소년이 새벽 3시 13분,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몰래 시설을 빠져나오려는 순간으로 시작한다. 배낭 속에는 6억 년 된 부싯돌들이 가득 들어 있어 배낭이 무겁다는 반복적 묘사는 그의 상황적 압박뿐 아니라 정신적 혼란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샤이는 마지막 남은 마리화나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정글 테이프를 챙기며 스스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충동과 불안 속에서 어둠을 통과해 나간다. 소년의 방에는 여러 아이들의 이름과 시간의 흔적이 뒤섞여 있어, 그가 속한 공간이 단순한 기숙사가 아니라 복잡한 과거와 규율이 쌓인 기관임을 암시한다.

도주 과정은 과장 없이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샤이는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을 피해 카펫 중앙만 밟고 배낭끈이 끊어져 부싯돌이 쏟아질까 경계하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간다. 이러한 신체적 긴장감은 그가 처한 불안정한 현실인 감시, 규칙, 처벌, 그리고 자신에 대한 불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지나가는 생각들은 산만하게 흩어지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깊은 자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소설의 도입부는 이처럼 한밤의 탈출이라는 단순한 사건을 통해 샤이가 감당해야 하는 정서적 무게와 혼란을 직접 체감하게 만들며 샤이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더하게 되고 점점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어지는 샤이가 새벽 어둠 속을 걸어가는 장면은 소설의 핵심 정서를 너무나 잘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그는 자신이 감당해온 시간의 무게가 한밤중에 더욱 짙게 드리워지는 것을 느끼며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온다. 문제행동으로 낙인찍힌 채 라스트 찬스라는 이름의 대안 학교에 머물고 있지만 그 공간은 안정과 불안이 뒤섞인 환경일 뿐이다. 서로에게 거칠게 반응하면서도 뜻밖에 우정이 스며드는 관계, 규칙 속에서 자신을 다시 세우려는 시도는 존재하지만 샤이는 여전히 불안과 죄책감이 반복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 있다.

교사들은 그의 과거가 영원히 발목을 잡지 않도록 돕고자 하지만, 샤이에게 변화는 언제나 버거운 과제이다. 그래서 일까. 샤이는 자신이 만든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그 굴레가 익숙해져 버린 탓에 벗어날 수 없는 상태에 머문다. 주변에서 건네는 위로와 조언은 샤이를 향해 있지만 그 말들이 실제로 작동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감정들은 그가 새벽에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연못을 향해 가는 행동으로 응축된다. 배낭 속의 돌처럼 그는 스스로의 내면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걷는 동안 그의 머릿속은 파편화된 기억과 감정으로 요동친다. 소설은 이 과정을 '밤은 감각이 뒤범벅된 기억들의 파편, 그 깜빡이는 잔상이다, 그가 높은 데서 떨어져 박살이라도 난 것처럼, 사실 전혀 그렇지 않고, 그저 정처 없이 걸으며 기억을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는 샤이의 혼란을 과장 없이 압축적으로 드러내며 한밤의 여정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스스로와의 충돌을 견디는 과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극적인 사건에 의존하지 않기 보다는 한 소년의 감정과 신체적 감각을 정교하게 묘사해 나감으로써 그의 내면적 균열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그리고 이러한 샤이의 혼란스러운 감정과 생각들은 그가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지, 그리고 그 선택이 무엇을 의미할지를 궁금하게 만들며 그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게 만든다.

책은 한 소년의 위태로운 밤을 따라가며 성장 과정에서 겪는 불안과 감정의 무게를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소설은 그의 내면을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포착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목소리인 교사의 말이나 친구들의 기억과 과거의 잔상, 그리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을 나란히 배치하며 청소년기 특유의 혼란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바로 이런 접근 방식이 저자가 문학계에서 꾸준히 신뢰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짧은 분량 속에서도 인물의 복잡한 심리를 단단하게 구축해내고 독자가 쉽게 짐작하거나 단정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유지하는 그의 문장들은 너무나 독창적이다.

그리고 이 책은 샤이의 미래가 특별히 밝을 것이라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한 시기를 버티고 지나가는 일에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담아내고 있다. 라스트 찬스에서 들려오는 격려와 조언은 즉각적으로 변화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다른 형태로 되살아날 가능성을 열어둔다. 결국 이 책은 삶이 주는 부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그 속에서 한 발 더 나아갈 여지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누군가의 흔들리는 시간이 단순한 실패나 문제로 환원되지 않으며 그 순간을 지나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경험일 수 있음을 다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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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살 결심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두번째 선택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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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작가의 신작이라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판사에서 드라마 작가로 전업한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익숙했던 삶의 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선택한 한 개인의 고민과 변화를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오랜 시간 법관으로 살아오며 사회 정의와 시스템의 작동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고, 특히 양승태 대법원 시절 법원 내의 구조적 문제와 한계를 직접 목격하면서 결국 법복을 벗고 전업 작가라는 다른 삶을 선택하게 된다. 책은 저자의 모든 결심들이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안정된 직업을 내려 놓기까지의 망설임과 조직을 떠난 이후 맞닥뜨린 현실적인 고민, 그리고 새로운 직업인 드라마 작가로서 겪는 시행착오까지를 정말 꾸밈없이 기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사회적 지위나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재정비하고자 했던 저자의 시도는 단지 직업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태도를 바꾸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아주 인상 깊다.


책은 익숙한 삶의 틀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한 한 개인의 깊은 성찰과 실천의 흔적을 아주 솔직하게 담고 있다. 저자는 20년 넘게 재직했던 법원을 떠나 드라마 작가라는 전혀 다른 영역에 발을 들였다. 저자는 23년간 몸담았던 법원을 떠나 드라마 작가로 전업하며 익숙하고 안정적인 자리를 내려놓고 낯설고 불확실한 삶에 발을 들였다. 그 결정은 단기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르고, 조직의 기대와 자신이 믿는 가치 사이에서 균열을 느낀 그는 더 이상 법원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신념대로 살 수 없음을 깨닫는다. 결국, 더 늦기 전에 나 자신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내리고 법복을 벗게 된 것이다.

책의 제목인 ‘나로 살 결심’은 법률 용어인 ‘결심’이 재판을 종결하는 순간을 의미하듯 저자는 스스로의 첫 번째 인생을 정리하고 다음 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단호한 선택을 표현하고자 한 표현이다. 초기에 고려했던 ‘세컨드 라이프’라는 제목은 외형적인 변화만을 담아내는 듯해 폐기되었고 오히려 세렝게티 초원에서 누 떼가 강을 건너기 전 끝없이 망설이던 장면 속에서 그는 자신의 상태를 떠올렸다. 불확실성과 두려움 속에서도 더 늦기 전에 스스로의 길을 선택해야 했던 시간들을 담고자 하였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렇게 화려하거나 감상적인 포장이 아닌, 현실을 밀고 나아가는 단단한 의지로 완성된 기록을 아주 담담하게 담고 있다.

책의 1부 <첫번째 삶과의 작별>에는 사법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한 개인이 조직 속에서 느낀 현실적 괴리와 그로 인한 선택 과정을 차분하게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법관으로서의 소임에 충실하고자 했지만 조직 내에서 반복되는 비합리적인 결정과 위계적 분위기 속에서 점점 회의감을 느낀다. 특히 블랙리스트 사건과 같은 결정적인 계기를 통해 그는 조직에 대한 기대가 더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상을 품고 입직했지만 시스템이 스스로를 보호하기에 급급한 상황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그는 조직을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전직 이후의 삶은 단순한 직업 전환이 아니라 일과 역할의 방식이 바뀌었다. 판사로 일하면서 병행해오던 글쓰기는 취미에 가까웠으나 드라마 작가로 이어진 것은 본인의 경험과 관찰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결과였다. 다양한 사건과 사람을 다뤄야 했던 판사의 업무는 결국 드라마 작가라는 새로운 직업에도 일정 부분 유사한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 그는 그 변화가 갑작스러운 결단이 아니었음을 책을 통해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과거 자신이 조직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것이 체제 내부에서 허용된 범위 안에서의 발언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자신이 했던 칼럼이나 유머를 곁들인 비판 역시 결국 영향력을 가지기엔 한계가 있었고 스스로를 궁중의 광대에 비유한 표현은 그 판단의 결과라 왠지 씁쓸하게 다가왔다.


2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에서는 새로운 삶에 발을 들인 후 마주한 구체적인 문제들과 그에 대한 대응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조직의 틀 안에서 비교적 예측 가능한 일상을 살아오던 저자가 프리랜서로 독립하면서 처음 마주한 것은 막연한 자유가 아닌 통제되지 않는 시간과 불확실한 환경이었다. 수입 관리, 창작의 부담, 체력 저하, 심리적 기복 등 이전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과제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그에 대한 해답은 외부가 아닌 자신의 판단과 선택에 맡겨진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는 그간 생각해온 ‘자유로운 삶’의 이미지와 실제가 다르다는 점을 점차 체감하게 된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자유를 바라며 떠나온 삶이 오히려 새로운 구속을 자초하게 된다는 인식이다. '첫번째 삶에서는 없는 시간을 쪼개 글도 쓰고 여행도 하며 바쁘게 살았는데, 지금은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무의미하게 낭비하다가 결국은 또 마감에 쫓겨 바쁘게 산다'는 저자의 고백은 일정과 규율 속에서 살아온 이들이 자유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당혹감을 잘 보여준다. 자율적인 삶이 반드시 효율적인 삶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자유조차도 관리되지 않으면 또 다른 부담이 된다는 점을 저자는 냉정하게 짚고 있다. 결국, 두 번째 삶도 이상적인 해방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의 분투라는 점에서 더 많은 공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은 단절이 아닌 연속이었다. 저자는 드라마라는 형식을 통해 법정에서 다뤘던 수많은 현실의 갈등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작가로서의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상업성과 사회적 의미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며 그는 평범하지만 성실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 불완전한 정의, 타협과 연대의 필요성은 모두 그가 판사로서 고민해왔던 주제들이다. 드라마 <프로보노>는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이며 결국 그는 자신이 잘 알고 깊이 생각해온 주제만이 진짜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야기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작은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려는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은 전직 판사의 경력, 드라마 작가로의 전업, 삶의 방향 전환 같은 외형적인 변화보다 그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되묻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동기에 자기애나 인정욕망이 포함되어 있었는 지까지 면밀히 성찰한다.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열망보다 스스로가 이야기의 중심에 서고 싶었던 내면의 욕망을 인정하는 대목은 이 책의 중심을 이룬다는 점이 무척이나 인상깊다. 그는 결국 자신의 첫 번째 삶이 두 번째 삶을 가능하게 했고 실패와 불안조차 삶을 성립시키는 요소였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거창한 인생 해법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전환의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한 성찰의 기록에 가깝고 그래서 더 많은 공감을 자아낸다.

그렇기에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또 누군가에게는 유보된 질문을 끌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완전히 다른 삶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변화 이후에도 현실의 무게는 여전히 존재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무게를 감당하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한 태도로 이 책을 완성했고, 그렇기에 그가 앞으로도 어떤 이야기들을 써나갈지 궁금해진다. 드라마 작가로서, 글 쓰는 개인으로서, 또 한 명의 시민으로서 그의 다음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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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 혁명 - AI 시대, 느리게 배우지 말고 빠르게 복사하라
이토 요이치.오바라 가즈히로 지음, 최화연 옮김 / 김영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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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직도 힘들게 애쓰는가? 인간과 AI가 함께 완성하는 새로운 노력의 공식'이라는 띠지 속 문구와 'AI 시대 느리게 배우지 말고 빠르게 복사하라'는 소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의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은 오랫동안 노력의 본질을 대변해왔다. 하지만 생성형 AI가 지식과 창작의 영역을 빠르게 재편하는 지금, 이 격언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예전과 같은 방식의 노력만으로 지금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이 책은 이 시대적 변화에 맞서 노력의 양이 아니라 노력의 전략이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음을 깨닫게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단순히 오래 앉아 있고 많이 시도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 책은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를 도구가 아니라 멘토이자 협력자로 삼는 법을 소개하며 AI와의 효과적인 협업을 통해 시행착오를 줄이고 결과의 완성도를 비약적으로 높이는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코딩을 몰라도 앱을 만들고 그림을 배우지 않아도 고급 일러스트를 생성할 수 있는 시대에 더 이상 만드는 것 자체는 차별화되지 않는다. 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80점짜리 결과에서 어떻게 120점짜리 성과로 도약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있다.

책은 AI 시대를 맞아 노력의 의미와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짚고 들어간다. 생성형 AI, 특히 챗GPT는 단순히 질문에 답을 주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성장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대화 파트너이자 학습 가속 장치로 작동한다. 저자들은 챗GPT를 멘토이자 동료로 설정하며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제시하고 있다. 책의 서문은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짚는다. 많은 이들이 챗GPT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거나 부담을 느끼거나 몇 번의 실패 후 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완벽한 프롬프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시작해보고 대화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사고를 확장하고 조율하는 능력이다.

책은 AI를 도구가 아닌 성장의 동력으로 전환하는 실천적 전략을 소개하며,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성장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 사고 정리를 돕는 질문 구조 훈련

* AI를 통해 전문 지식, 논리력, 창의성 ‘복사’

* 기존 학습법을 대체하는 새로운 자기계발 접근

* 결과 중심이 아닌 과정 중심의 성장 체험

또한 책은 챗GPT와 함께 사고의 폭을 넓히고 더 빠르게 구체적인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말하며 생각하기’ 방식, ‘느낌에서 출발해 체계를 만들어가는’ 과정 등을 안내한다. 독자는 이를 통해 기존의 정답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기준과 방식으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게 될 것이다.


책에서 특히 돋보이는 부분은 챗GPT를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AI의 가능성을 단순히 소개하는 수준이 아니라 직접 적용 가능한 사용법과 단계별 접근법을 통해 독자가 손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책은 문제를 세분화하는 대화 전략을 강조한다. 처음에는 “직장에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려면?” 같은 포괄적인 질문으로 시작하고, 챗GPT가 제공한 답변 중 눈에 띄는 항목을 선택해 그 주제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드는 방식이다. 핵심은 완벽한 질문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우선 대략적으로 묻고 그 안에서 핵심 요소를 골라내 점차 방향을 좁혀 나가는 과정 자체가 사고력을 확장시키는 기회가 된다. 이는 전문가들이 문제를 분석할 때 사용하는 방식과 유사하며, 흔히 말하는 ‘20:80 전략’ 즉, 중요한 20%에 집중해 전체 결과의 80%를 이끌어내는 사고법과도 맞닿아 있다.

이 책은 챗GPT를 단순한 지식 제공 도구가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고 방향을 잡아주는 대화형 사고 파트너로 바라볼 것을 권한다. 프롬프트 구성과 응답 확장을 통해 AI의 답변을 단순 소비가 아닌 생산적인 사고 도구로 전환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이 실천 가이드는 AI를 능동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책은 단순히 ‘열심히 하자’는 구호에서 벗어나 AI와 협력해 전략적으로 일하고 배우는 방법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챗GPT를 활용한 문제 해결 방식이 매우 실질적이다. 모호한 질문으로 출발하더라도, 대화 속에서 질문을 세분화하고 사고를 구체화하면서 답을 스스로 만들어가게 돕는 구조는 AI를 답변기가 아닌 사고 파트너로 전환시킨다.

책의 저자들은 챗GPT를 단순한 자동화 도구가 아니라 멘토이자 동료로 활용하는 방법을 강조한다. 반복적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은 AI에게 맡기고 인간은 창의적 사고, 전략적 판단, 감정적 통찰 같은 고부가가치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노력=시간 투입’ 공식을 뒤집는 이 관점은 오늘날 모든 직군에 필요한 성장 전략이기도 하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실행 중심의 접근법이다. AI를 통해 전문가의 사고방식과 경험을 ‘빠르게 복사’하는 실용 전략, 질문을 설계하고 답변을 다듬으며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실전 대화법, 정보와 정보를 연결해 자기만의 생각 구조를 만드는 훈련까지,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라 실제 적용 가능한 도구를 제공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아무리 AI를 잘 활용해도 최종 판단은 인간의 몫임을 강조한다. 데이터와 패턴이 제시하지 못하는 그 마지막 한 수는 여전히 인간의 직관과 의지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뛰어넘는 힘의 본질은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진심이라는 점을 다시 일깨워준다.

누구나 처음에는 불안하다. 정답이 없는 길을 걸을 땐 특히 그렇다. 하지만 지금은 AI 덕분에 평범한 사람도 전략적으로 배우고 도전할 수 있는 시대다. 이 책은 독자에게 완벽한 시작이 아니라, 한 걸음의 시도가 모든 것을 바꾼다고 격려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변화의 속도가 두려운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와 같다. 느린 반복이 아니라 빠른 연결과 실험, 피로한 노력 대신 명확한 전략으로 성장하라는 메시지는 아주 큰 응원처럼 들린다. 결국 이 책은 더 이상 AI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AI와 함께 나만의 방식으로 앞서가기 위한 출발점이 되어준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어 AI 시대의 미래를 아주 구체적인 핑크빛으로 물들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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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붕의 글로벌 AI 트렌드 - 지금 모든 자본은 AI를 향하고 있다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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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사피엔스>의 최재붕 작가님의 신작이라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나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기술과 자본의 물결 속에서 우리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할 지를 통찰력 있게 짚어준다. 인공지능이 산업은 물론이고 일상, 사회 구조, 심지어 인간의 사고방식까지 근본적으로 바꾸는 가운데, 이 책은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현실적 지침서라 하겠다. 이 책에는 그렇기에 저자가 강조하는 ‘AI-PT’, 즉 하루 30분의 꾸준한 AI에 대한 학습은 작지만 지속적인 실천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담아 내었다. 그렇기에 이 책은 AI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넘어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한 기반이 될 것이다.

책은 단순히 최신 기술을 나열하거나 트렌드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례 없는 속도로 진행 중인 인공지능 혁명 속에서 책은 우리가 무엇을 인식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를 깊이 있게 생각하게 만든다. 저자는 <AI 사피엔스>를 세상에 내놓은 이후, 더는 할 이야기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단 1년 반 만에 그 판단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변화의 강도와 속도가 기존의 상식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가 애플을 제치고 시가총액 세계 1위를 기록하고 무명의 중국 스타트업이 오픈AI에 맞먹는 모델을 단 560만 달러로 개발하는가 하면 미국 증시 역사상 최대 일일 손실이 발생하는 등,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이 잇달아 벌어졌다. 더욱이 <AI 사피엔스>에서 예고했던 자본의 방향, 기술의 진화, 디지털 문명의 전환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실현되고 있음을 확인하며 저자는 더욱 정밀한 분석과 빠른 대응이 절실하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한국 사회의 AI 수용 특성,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디지털 전환, 디지털 세대의 가치관 변화, 미중 기술 경쟁 등 전작에서는 미처 담지 못했던 다양한 요소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의 핵심에 학습이라는 인간의 능력이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제 AI 시대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재다. 혁신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면 변화의 속도에 밀려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안하는 하루 30분의 집중 학습 ‘AI-PT’는 이 거대한 전환기에 스스로를 재정비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법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글로벌 AI 트렌드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책의 서두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AI 혁명이 단순한 기술의 발전을 넘어 인류 문명의 근본적인 전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스마트폰에 이어 이제는 AI가 인간의 삶 깊숙이 들어오며 'AI 사피엔스’로의 진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 디지털 환경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와 생성형 AI의 확산은 사고방식 자체를 바꿔 놓았고 이를 통해 사회 전반의 작동 방식마저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의 본질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핵심은 자본의 방향이다. 저자는 우리는 지금 AI 혁명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강조하며 30년 전 인터넷에 자본이 몰렸던 것처럼, 현재 전 세계의 막대한 자금이 AI 산업으로 흘러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과거 모든 산업혁명이 자본의 집중을 통해 이뤄졌듯 AI 역시 예외가 아니며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닌 문명 구조의 재편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책의 중반부에서는 AI를 둘러싼 흐름이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닌 세계 권력 질서의 재편임을 짚고 있다. 2025년 APEC 기간 중 젠슨 황, 이재용, 정의선 세 인물이 모인 '8300조 회동’은 단순한 비즈니스 만남을 넘어 반도체와 제조, 인재까지 모두 갖춘 한국이 글로벌 AI 패권 경쟁의 핵심 축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논의의 중심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누가 AI를 통해 미래를 주도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저자는 AI 산업의 본질이 기술 자체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핵심은 자본이 움직이는 방향이며 이는 곧 권력의 흐름이다. 엔비디아의 로봇 생태계 주도 전략, 삼성과 TSMC 간의 반도체 공급망 주도권 싸움, 각국이 경쟁적으로 추진 중인 ‘소버린 AI(국가 단위 AI 시스템)’는 단순한 산업 뉴스가 아니라, AI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패권 지도의 일면이다.이러한 구도 속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인재까지 모두 갖춘 한국은 단순한 기술 수요국이 아닌 AI 3강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저자는 AI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결국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억 단위 연봉이 평범해진 실리콘밸리의 인재 전쟁, 고졸 인턴을 중심으로 한 팔란티어의 ‘대학 무용론’ 실험은 지금 인재를 어떻게 발굴하고 연결하며 실전에 투입할지를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기업과 국가의 미래를 가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AI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실력과 실행력이 없는 곳엔 변화도 없는 것이다.


책에서 제안하는 ‘AI-PT(AI Personal Training)’는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실질적인 습관이 될 것이다. AI가 개인의 역량과 목표에 맞춰 학습 경로를 설계하고 매일 반복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는 이 방식은 단순한 지식 습득을 넘어서 사고 방식과 문제 해결 능력 자체를 재구성해준다. 하루 30분에서 1시간, 이 짧은 시간의 투자만으로도 몇 년 뒤 전혀 다른 삶의 궤도에 올라설 수 있다는 점에서 AI-PT는 지금의 불확실한 시대를 헤쳐 나갈 실천적 나침반이 된다.

또한, 이 책은 실력 중심 사회로의 전환이 AI 기술 발전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출신 학교나 인맥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며 AI를 통해 누구나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전략적 조언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이젠 대기업의 경영 전략도, 스타트업의 제품 개발도, 콘텐츠 창작도 AI와 협업할 수 있는 사람이 주도한다. AI 활용 역량은 더 이상 기술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직업군에 요구되는 필수 역량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전환기에 어떻게 자신을 준비시켜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아주 크다고 본다.

결국 이 책은 AI를 둘러싼 거대한 변화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명료하게 짚어내며, 기술을 활용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미래의 권력 구조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통찰력 있게 전한다. AI는 더 이상 특정 전문가만의 도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이며, 그 가능성은 학습과 실천을 통해 누구나 열 수 있다. 저자가 제안하는 ‘하루 30분 AI 훈련’은 그 변화에 올라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이자 불확실한 시대를 능동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실용적 해답이 될 것이다. 기술, 자본, 팬덤, 경험이 얽혀 있는 이 복합적 전환기 속에서 이 책은 독자에게 단지 따라가라고 말하지 않고 앞서서 방향을 설정하라고 권유하고 있기에 더더욱 유용한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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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실수
강지영 지음 / STORY.B(스토리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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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 속 "나는 양의 실수가 아니라 실수로 태어난 음수야"라는 문구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의 <살인자의 쇼핑몰>의 강지영 작가의 신작으로 서늘한 서사 속에 인간 존재의 본질을 파고든다. 소설은 주인공 유양이 살해된 직후 다시 눈을 뜨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숨이 멎었지만 여전히 움직이고 생각할 수 있는 그녀의 상태는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다소 낯선 세계로 끌어들인다. 이 기이한 설정은 단순한 스릴러적 장치가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살아 있는 자라는 역설을 통해 삶과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다. 이야기는 유양이 자신을 죽인 킬러 단화와 함께 누가 그녀를 표적으로 삼았는가를 추적하는 여정을 따라간다. 두 인물의 관계는 단순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를 넘어 서로의 삶을 교차하며 인간 내면의 욕망과 공포를 드러낸다. 저자는 책 속 인물들의 뒤틀린 심리와 윤리적 갈등을 통해 존엄이란 과연 무엇이며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일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한다.

이 책은 전작 <살인자의 쇼핑몰>에서 보여준 저자 특유의 서사적 긴장감과 인물 구축 능력을 한층 심화시킨 듯하다. 살인과 정체성의 전복, 그리고 대체된 삶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저자는 인간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그리고 섬뜩하게 보여주고 있다. 긴박한 사건 전개 속에서도 저자는 살아 있음의 의미를 끝까지 탐색하며 인간의 욕망과 죄의식이 만들어내는 서늘한 진실을 드러내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책의 이야기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생명을 한낱 숫자로 환산해버리는 냉혹한 현실에서 시작된다. 병아리 두 마리에 4천 원, 구피 한 마리에 천 원, 햄스터 한 마리에 4천 원. 그렇게 싸게 팔리고 쉽게 버려지는 생명처럼 주인공 유양의 삶도 헐값으로 치부된다. 6년 차 웹디자이너지만 연봉은 2,800만 원, 일터에서는 열정보다 비용이 먼저 계산된다. 사장은 소리치고, 동료는 울고 유양은 조용히 짐을 싼다. 값싼 존재는 언제나 예고 없이 사라지는 법이다. 그녀는 그렇게 회사를 떠난다.

그리고 그날 밤, 유양은 바닷가에서 자신과 똑같은 얼굴의 여자를 마주친다. 그녀를 따라오던 쥐색 코트 차림의 낯선 여자는 주저 없이 유양의 목을 찔러버린다. 피가 터져 나오고 몸은 쓰러지지만, 그녀는 완전히 죽지 않는다. 심장이 멈췄는데도 의식은 또렷하고 감각은 선명하다. 모래의 거친 촉감, 피비린내, 매서운 바람까지 말이다. 세상에 죽음조차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다.

유양을 공격한 여인은 바로 단화이다. 단화는 누군가의 의뢰로 유양을 학습해온 킬러였다. 신분을 빼앗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들은 유양은 오히려 단화에게 거래를 제안한다. 자신을 죽이라고 한 사람이 누군지 찾아내면 자신의 삶을 넘겨주겠다고 말이다. 죽은 자와 살인자가 한 팀이 되는 순간 이야기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어서며 더욱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 기이한 여정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인간의 탐욕과 두려움, 그리고 자기 존재에 대한 끝없는 질문이 아닐까.

소설은 인간의 존엄이 무너진 세계에서 살아 있으나 죽은 자의 시선을 통해 현실을 비춘다. 처음에는 단순한 살인과 생존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 작품이 겨냥하는 것은 훨씬 깊고 불편한 인간의 본질임을 깨닫게 된다. 죽음 이후에도 의식을 가진 유양, 신분을 훔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단화, 그리고 생명을 거래하듯 다루는 인물들까지. 그들은 모두 현실의 어두운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삶을 잠식한다.

이 기묘한 설정은 단순한 스릴러의 장르적 장치가 아니며 오히려 그 속에서 드러나는 섬뜩한 진실들이 독자를 끝없이 흔든다. 살아 있기 위해 타인의 삶을 훔치고 사랑을 위해 거짓된 존재가 되며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타인의 죽음을 감내하는 모습들은 읽는 내내 불쾌할 만큼 현실적이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더욱 또렷해진다.

저자는 이 책에서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교묘하게 넘나들며 서늘한 긴장감과 도덕적 딜레마를 교차시킨다. 이후 이어지는 유양과 단화의 여정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자 동시에 정체성과 구원을 찾아가는 내면의 여정들은 참 숨가쁘면서도 섬뜩하기 그지 없다. 두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나오는 섬뜩한 장면들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끝내 그 세계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이 책의 진가는 바로 그 불편함에 있다. 저자는 폭력과 절망을 노골적으로 보여주지만 그것을 단순히 자극이 아닌 사유의 도구로 사용하는 듯하다. 삶의 의미, 인간의 윤리, 존재의 경계라는 근본적 질문이 이 책 곳곳에서 제기되고 그 질문은 깊이 파고들게 된다. 그렇기에 결국 독자는 후반부에 펼쳐지는 섬뜩한 진실에 몸서리치면서도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 앞에 다시 서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추악함과 연민, 생존과 소멸의 모순을 아주 제대로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책을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역설을 통해 저자는 냉혹한 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오랫동안 되묻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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