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미래의 풍경
장강명 지음 / 해냄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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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의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읽어 보고 싶었던 <근미래의 풍경>. 그런데 책을 펼치기 전 띠지에 적힌 “이 짧은 소설들은 예언이 아니라 질문이다”라는 문장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미래를 다룬 소설이라면 흔히 첨단 기술이 만들어 낼 새로운 세상이나 그로 인해 발생할 위험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장강명 작가는 미래를 예측하거나 경고하는 대신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 묻는다. 사실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알고리즘이 취향을 분석하며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한층 발전한 기술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든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근미래의 풍경>은 이러한 상상에서 출발하여 출산과 육아, 노동과 인간관계, 죽음 이후의 애도에 이르기까지 달라진 일상의 모습을 24편의 짧은 소설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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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눈여겨볼 점은 기술의 발전 자체보다 그것이 사회에 도입되고 확산되는 과정에 주목한다는 사실이다. 인공자궁과 육아 안드로이드, 가정 관리 시스템과 디지털 제사 등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서비스는 저마다 현실적인 필요와 욕망을 바탕으로 탄생한다. 특히 개인의 취향과 소비를 넘어 사고방식까지 설계하는 초거대 기업 '네카팡'을 중심으로 기업의 이윤 추구와 사회 제도의 변화가 긴밀하게 맞물린다. 이는 저자가 꾸준히 탐구해 온 'STS SF(과학기술과 사회를 다루는 SF)'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여기에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과 언론 기사, 토크쇼 인터뷰와 기업 회의 등 다채로운 서술 형식을 활용해 실제 미래 사회의 기록을 들여다보는 듯한 생생함을 더한다. 무엇보다 작품 속 기술들이 공상적인 발명품이 아니라 현재의 경제구조와 사회적 요구를 바탕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그래서 이 책이 그려낸 미래는 낯선 상상의 세계라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연장선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책을 덮을 무렵에는 과연 기술이 만들어 낸 편리하고 완벽한 세상이 반드시 더 나은 삶을 의미하는 것일까?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소설집의 첫 번째 작품인 <생각의 관문 앞에서>는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장면으로 시작한다. 막말로 인기를 얻은 3선 국회의원은 초거대 기업 네카팡이 여론과 사회 전반을 좌우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후보자를 거세게 몰아붙인다. 작품 속 사람들은 네카팡이 선별한 기사를 읽고 추천 영상을 시청하며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글을 쓰고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후보자 역시 과거 네카팡의 윤리준칙위원회에 참여하며 기업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일조한 인물이다. 이처럼 두 사람의 공방이 절정에 이른 순간 뜻밖의 반전이 드러난다. 지금까지의 청문회는 실제 상황이 아니라 인공지능 시뮬레이터를 활용한 사전 연습이었던 것이다. 준비팀은 청문회에서 오가는 발언보다 포털에 올라갈 요약 영상과 인공지능이 작성할 기사의 제목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심지어 상대 정치인의 발언과 행동을 오랫동안 수집해 그의 반응까지 예측하고 있었다. 네카팡의 영향력을 비판하는 정치적 논쟁조차 정작 네카팡의 기술에 의존해 준비되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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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러한 모순이 작품의 핵심을 관통한다. 거대 기업의 권력을 견제해야 할 정치인과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전문가들마저 자신들이 비판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기업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윤리규칙이 오히려 네카팡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지배력을 강화했다는 사실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선의의 개입이 도리어 기존의 권력구조를 공고히 하는 역설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네카팡은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생각의 관문'이라는 제목이 지닌 의미가 더욱 선명해지는 듯하다. 정보에 접근하는 통로를 장악한 기업이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검색엔진과 추천 알고리즘에 일상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오늘날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자유롭게 정보를 선택한다고 믿지만 그 선택지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선별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스스로 내렸다고 믿는 판단은 과연 어디까지 온전히 자신의 것일까?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작품은 멸종 동물 복원 기술이 가져올 변화를 다룬 <죽은 동물, 되살아난 동물, 죽일 동물>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사라진 도도새가 초거대 기업 네카팡의 합성생물학 기술로 부활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네카팡은 복원한 동물을 원래 서식지에 돌려보내고 관광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지역 경제와 기업의 이익을 동시에 끌어올린다. 이후 멸종된 여행비둘기까지 되살려 식용으로 사육하고 레스토랑 체인을 운영하면서 생태계 복원은 새로운 산업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기술의 활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대규모 개발 사업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보호하는 대신 나중에 복원하겠다는 약속만으로 환경 파괴를 정당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철도 건설에 방해되는 동물을 일단 멸종시킨 뒤 공사가 끝나면 되살리는 편이 경제적이라는 주장까지 등장한다. 여기에 멸종한 줄 알았던 로키산메뚜기 떼가 농경지를 습격하자 네카팡의 회장은 유전자만 보관해 두면 언제든 복원할 수 있다며 아예 멸종시켜 버리자는 제안을 내놓는다.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개발한 기술이 이제는 어떤 종을 없앨 것인지 결정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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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가장 날카로운 지점은 환경 보호를 명분으로 등장한 기술이 오히려 생태계 파괴의 면죄부가 되는 역설에 있다. 멸종 동물 복원이라는 놀라운 성취는 처음에는 인간이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업의 수익과 개발의 효율성이 우선되는 순간 생명은 필요에 따라 없애거나 되살릴 수 있는 관리 대상으로 전락한다. 특히 여행비둘기를 먹는 것이 오히려 종을 보호하고 지구를 살리는 길이라는 네카팡 회장의 주장은 경제적 논리가 어떻게 환경 보호의 언어로 포장되는지를 보여 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복원 기술에 대한 믿음이 멸종 자체의 위험성을 가볍게 여기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사라진 종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서 오랜 시간 형성된 생태계와 그 안의 복잡한 관계까지 온전히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작품은 인간에게 생명을 복원할 능력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마음대로 없앨 권리까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과 윤리적으로 허용되어야 할 일은 분명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연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새로운 오만을 키우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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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공통 경험의 종말> 역시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변화를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이라 기억에 남는다. 영화 <타이타닉>을 본 딸과 이야기를 나누던 주영은 자신이 기억하는 내용과 딸의 설명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딸이 본 영화에서는 잭과 로즈의 역할이 뒤바뀌고 결말마저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인공지능으로 제작한 성반전 버전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딸이 그마저도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요 장면은 쇼츠와 팬 제작 영상으로 대신하고 나머지는 AI가 요약한 영상을 배속으로 시청한 것이 전부였다. 주영은 친구들과 이 문제를 이야기하며 사람들이 더 이상 같은 작품을 통해 공통의 경험을 나누지 못하는 현실을 우려한다. 그러나 대화가 이어질수록 자신들 역시 영상을 배속으로 시청하거나 불편한 장면을 수정하는 등 원작을 변형해 감상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급기야 원작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주영조차 자신이 본 <벤허>에 다른 영화의 장면들이 뒤섞여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젊은 세대의 감상 방식을 비판하던 기성세대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같은 변화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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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반전은 작품이 단순히 세대 간 문화적 차이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인공지능과 플랫폼이 콘텐츠의 제작과 소비 방식을 바꾸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공통 경험의 의미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같은 영화를 본 사람들이 동일한 장면을 떠올리며 감상을 나눌 수 있었지만 이제는 개인의 취향과 편집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접할 수도 있다. 물론 과거에도 검열된 영화나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줄거리를 통해 작품을 접하는 일이 있었기에 이러한 변화를 무조건 문화적 퇴보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인공지능이 개인마다 다른 버전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시대에는 무엇이 원작이며 어디까지를 같은 작품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진다. 나아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공통의 기억과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결국 작품은 각자의 취향에 맞게 편집된 세계를 경험하는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지 묻고 있다.


이 책의 매력은 과학기술이 가져올 변화를 무조건 낙관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본다. 장강명 작가는 인공자궁과 육아 안드로이드, 디지털 제사처럼 편리함을 약속하는 다양한 기술을 통해 인간의 관계와 사회적 가치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세밀하게 짚어낸다. 특히 기업의 이해관계와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욕망을 함께 들여다보며 변화의 이면에 숨겨진 모순과 딜레마를 드러낸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그것이 가져다줄 혜택에 주목하지만 그 대가로 무엇을 잃게 될지는 충분히 고민하지 않는다. 저자가 '작가의 말'에서 강조하듯이 이 소설들은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게 하는 질문에 가깝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발전을 거부하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받아들이고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을 세우는 데 있을 것이다. 아무리 정교한 기술이라도 인간이 지켜야 할 가치까지 결정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을 보여 주면서도 지금 우리의 선택과 책임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미래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모든 것이 실현된 세상인가? 아니면 그 속에서도 인간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지켜 낼 수 있는 세상인가?라는 하나의 물음을 남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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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자연을 원한다 - 환경신경과학 석학이 밝혀낸 지친 뇌를 가장 빨리 회복하는 방법
마크 버먼 지음, 김미선 옮김 / 다산북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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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했는데도 피로가 가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쁜 일과를 마치고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은 현대인에게 익숙한 휴식 방법이다. 하지만 몸은 쉬고 있어도 뇌는 여전히 수많은 자극을 처리하느라 분주하다. 업무와 공부는 물론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림과 거리의 소음까지 우리의 주의력을 끊임없이 소모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친 뇌를 제대로 회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카고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환경신경과학 분야를 개척한 마크 버먼은 그 해답을 뜻밖에도 자연에서 찾는다. 그의 책인 <뇌는 자연을 원한다>는 공원을 걷는 것만으로도 주의력과 기억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자연이 인간의 뇌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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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해 온 저자는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 자연이 지닌 회복 효과를 구체적으로 밝혀낸다. 흥미로운 점은 자연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자연을 접하면 인지적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가까운 공원을 산책하거나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뇌의 회복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책은 여기서 나아가 학교와 직장, 병원과 도시를 인간의 뇌가 더 건강하게 기능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꾸는 방법까지 모색한다. 특히 집중력 저하와 만성적인 피로를 개인의 의지나 생활 습관만이 아닌 환경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진정한 휴식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친 뇌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점도 새롭게 다가온다. <뇌는 자연을 원한다>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연의 가치를 뇌과학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며 휴식과 회복에 관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자연은 실제로 인간의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저자가 자연과 뇌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밝히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은 공원에서의 산책이라는 흥미로운 실험이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기억력과 주의력을 소모하는 어려운 인지 과제를 수행하게 한 뒤 한 집단은 나무가 우거진 수목원을, 다른 집단은 차량과 상점으로 복잡한 도심을 걷도록 했다. 두 집단은 같은 시간 동안 같은 거리를 걸었지만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자연 속을 산책한 참가자들은 기억력과 주의력 과제에서 뚜렷한 향상을 보인 반면 도심을 걸은 참가자들에게서는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단순히 걷는 행위보다 어떤 환경에서 걷느냐가 뇌의 인지 기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특히 자연의 효과를 주관적인 기분 변화가 아닌 객관적인 인지 능력으로 측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이 연구는 자연과 인간의 뇌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저자가 환경신경과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개척하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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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연구의 출발점에는 저자의 어린 시절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외할머니가 심어 놓은 은청가문비나무 아래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보냈던 시간은 당시에는 그저 평범한 추억이었지만 훗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자연이 인간에게 이롭다는 오랜 통념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뇌 영상 분석과 시선 추적 실험은 물론 스마트폰 위치 데이터까지 활용하며 연구의 범위를 넓혀 왔다. 그 과정에서 자연이 인지 기능뿐 아니라 신체적·정서적 건강과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나무가 많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건강 상태가 더 좋은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는 자연의 가치가 개인적인 휴식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점을 보여 준다. 결국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자연을 단순히 여가를 즐기거나 심리적 위안을 얻는 공간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자연은 인간의 건강과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환경적 조건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설계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라는 것이다.


자연이 인간의 인지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한 저자는 그 효과가 나타나는 원리를 더욱 깊이 탐구한다. 여기서 주목할 개념은 주의 회복 이론이다. 인간이 특정한 일에 집중할 때 사용하는 의도적 주의는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피로해진다. 반면 자연은 새소리나 흔들리는 나뭇가지, 흐르는 물결처럼 특별한 노력 없이도 관심을 끄는 부드러운 매혹을 제공한다. 이러한 자극이 의도적 주의에 휴식을 주어 집중력을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약 50분간 자연을 산책한 참가자들의 주의 관련 기능은 약 20퍼센트 향상되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영하의 추위 속에서 산책을 즐기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효과가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자연을 경험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과 인지 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던 셈이다. 후속 연구에서는 자연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일정한 효과가 확인되면서 중요한 것은 걷기 자체보다 자연을 보고 듣고 경험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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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발견은 정신적으로 더 취약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에게도 자연이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특히 우울증 환자들이 부정적인 생각과 기억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우울 반추에 주목했다. 이러한 사고 과정은 상당한 주의력을 소모시키고 일상적인 인지 활동에도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이 제공하는 부드러운 자극은 부정적인 생각의 악순환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반대로 자연 속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오히려 우울한 생각을 심화시키지는 않을까? 저자는 이러한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해 후속 연구를 설계한다. 자연의 회복 효과가 단순히 집중력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연과 뇌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정신건강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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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연의 회복 효과는 주의력과 정신건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 환경이 신체 건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토론토 주민들의 건강 정보와 50만 그루가 넘는 나무의 분포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거주지 주변에 나무가 많을수록 건강 상태가 양호한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평균 크기의 나무가 열한 그루 더 있는 지역에서는 뇌졸중과 당뇨병, 심장병 같은 심혈관 대사 질환의 발생률이 약 1퍼센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미국에서 외래 해충인 호리비단벌레의 확산으로 물푸레나무가 대규모로 사라진 지역에서는 심혈관 및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물론 이러한 연구만으로 자연과 건강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도시의 나무가 단순한 경관이나 편의시설을 넘어 주민들의 건강과 밀접하게 관련된 공공 자원이라는 사실만큼은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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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러한 가능성을 실제 질병을 겪는 환자들의 치료와 회복 과정으로 확장한다. 특히 암 환자들은 질병 자체의 부담뿐 아니라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를 경험하기도 한다. 유방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12주 동안 일주일에 세 번씩 20분간 정원을 가꾸거나 산책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주의 기능과 삶의 질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다. 나아가 녹지가 풍부한 지역일수록 알츠하이머병의 발병률이 낮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한다. 아직 자연이 질병을 직접 예방하거나 치료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발견은 의료적 처치와 더불어 환자가 머무는 환경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를 제시한다. 결국 자연은 건강한 사람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니라 질병과 노화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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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자연이 인간의 인지 기능과 정신건강은 물론 질병의 회복 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특히 <뇌는 자연을 원한다>가 강조하는 것은 자연을 개인의 취향이나 여가 활동이 아닌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건강을 위해 식습관과 운동, 수면에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정작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더욱이 자연에 대한 접근성이 건강의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를 개인의 선택에만 맡겨 둘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누구나 일상에서 녹지를 누릴 수 있도록 학교와 주거 공간, 의료시설과 도시를 설계하는 일이 중요하다. 결국 자연을 보존하고 생활 가까이에 들이는 것은 개인의 건강을 위한 노력인 동시에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공동의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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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다양한 과학적 연구를 독자의 일상과 연결한다는 데 있다. 각 장 끝에 수록된 '오늘의 환경 실험'은 독자가 직접 생활 속 변화를 시도하고 그 효과를 관찰하도록 이끈다.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을 다시 살펴보거나 익숙한 생활 공간을 조금 다르게 꾸미는 일도 의미 있는 실험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자연이 모든 피로와 질병을 해결하는 만능 처방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 가운데 우리가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요소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고 나니 특별한 휴식을 찾아 멀리 떠나기보다 평범한 하루에 자연이 얼마나 자리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게 된다. 우리는 더 건강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이제는 그 삶을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함께 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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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분! 코파츄의 진짜 웃기는 과학 뉴스 ㅣ 하루 5분! 코파츄의 진짜 웃기는 과학 뉴스
다영 지음, 밤코 그림 / 창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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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도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이다. <하루 5분! 코파츄의 진짜 웃기는 과학 뉴스>라는 제목에서 과학과 웃음이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호기심이 생겼다. 과연 외계인은 정말 존재할까? 사람마다 똥 모양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컵라면과 봉지라면 중 어느 쪽이 더 맛있을까? 평소 한 번쯤 궁금해했을 법한 엉뚱하고 기발한 질문들이 이 책에서는 흥미진진한 과학 뉴스로 펼쳐진다. <하루 5분! 코파츄의 진짜 웃기는 과학 뉴스>는 이처럼 어린이들의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30가지 궁금증을 과학의 원리로 풀어낸 책이다.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과학 지식을 친숙한 소재와 유쾌한 이야기에 녹여 내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하루에 단 5분씩 한 가지 주제를 읽으면 한 달 만에 책 한 권을 완독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과학을 단순히 공부하고 암기해야 할 지식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즐거운 탐구의 과정으로 경험하게 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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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일상의 궁금증을 흥미로운 과학 뉴스로 전해 주는 주인공은 바로 뛰어난 과학 지식과 날카로운 관찰력을 지닌 크리에이터 '코파츄'와 부지런하고 꼼꼼한 성격의 PD '버니'이다. 달콤한 디저트와 낮잠을 좋아하는 코파츄와 매사에 철저한 버니는 서로 다른 성격에도 불구하고 찰떡같은 호흡을 자랑하며 어린이들의 궁금증을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여기에 개성 넘치는 바람마을 주민들과 미워할 수 없는 악당까지 가세하면서 마치 한 편의 재미있는 과학 방송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러한 이야기의 재미에 더해 현직 초등 교사이자 EBS 과학 교재 집필진인 다영 작가의 쉽고 명쾌한 설명은 과학에 대한 이해를 돕고,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작가 밤코의 재치 있는 그림과 백여 장의 생생한 사진은 보는 즐거움까지 더한다. 또한 댓글 쓰기와 퀴즈, 단어 풀이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으며 가짜 뉴스를 구별하는 방법까지 소개해 과학적 사고력과 정보 판별 능력을 함께 기를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재미와 배움을 조화롭게 담아낸 데다 초등 과학 교과와도 연계되어 있어 과학에 흥미를 붙이고 싶은 어린이는 물론 긴 글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에게도 좋은 독서의 출발점이 되어 줄 듯하다.


책은 본격적인 과학 뉴스에 앞서 각 주제가 초등 과학 교과의 어느 학년, 어떤 단원과 연결되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외계인의 존재부터 인공지능과 기후 변화에 이르기까지 책에서 다루는 다양한 이야기가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 지식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덕분에 어린이들은 평소 궁금했던 주제를 찾아 읽는 것은 물론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거나 앞으로 배울 개념을 미리 접하는 등 자신의 관심과 학습 수준에 맞춰 책을 활용할 수 있다. 특히 교과서에서 접했던 과학 개념이 일상 속 흥미로운 현상들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 준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처럼 단순히 재미있는 과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교과 학습과 독서를 연계해 배움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구성했다는 점에서 세심한 기획이 엿보인다.


이어 책을 더욱 알차게 즐길 수 있도록 일곱 가지 활용법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먼저 코파츄가 전하는 과학 뉴스를 통해 물리와 화학, 생물과 지구 과학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을 접한 뒤 뉴스에 등장한 주요 용어를 정리하고 자신의 의견을 직접 남겨 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주제와 관련된 퀴즈로 이해도를 점검하고 풍부한 사진 자료와 배경지식을 통해 궁금증을 한층 깊이 있게 파고들도록 이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코파츄와 등장인물들이 가짜 뉴스를 놓고 의견을 주고받는 '아무거나 믿지 마!' 코너이다. 어린이들이 다양한 주장을 접하면서 무엇이 사실인지 스스로 따져 보고 비판적으로 판단하는 연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팩트 체크'에서는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새롭게 알아두면 좋을 과학 상식까지 보충해 준다. 이처럼 뉴스를 읽는 데서 출발해 생각을 표현하고 사실을 검증하는 단계로 이어지는 구성은 어린이들이 과학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는다.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하는 과학 뉴스는 바로 '외계인의 존재를 밝혀라!'이다. 드넓은 우주 어딘가에 지구인 말고도 다른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오랫동안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해 온 이 질문을 코파츄는 외계인의 정체를 추적하는 긴급 뉴스처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외계인을 찾기 위해 전파를 보내고 탐사선을 발사해 온 과학자들의 노력부터 생명체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까지 살펴보며 우주 탐사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특히 외계 생명체가 반드시 인간과 비슷한 모습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작은 미생물의 형태로 존재할 가능성도 제시하고 있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목성의 위성 유로파와 토성의 위성 타이탄처럼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천체들을 소개하며 호기심을 넓혀 간다. 여기에 낯선 과학 용어를 알기 쉽게 정리하고 바람마을 주민들이 외계인의 존재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댓글로 주고받는 장면을 더해 읽는 재미를 높였다. 게다가 독자 역시 자신의 생각을 직접 남길 수 있어 아직 정답이 밝혀지지 않은 과학적 질문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하고 고민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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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나의 뉴스가 끝나면 '알쏭달쏭 과학 퀴즈'를 통해 앞서 읽은 내용을 되짚어 보고 새로운 지식을 익히는 과정이 이어진다. 문제마다 정답과 함께 자세한 해설을 제시해 어린이들이 과학적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또한 '거대한 우주의 신비'에서는 우주의 크기와 팽창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주로 쏘아 올린 탐사선'에서는 보이저 1호와 2호의 탐사 여정을 소개하며 관심의 범위를 더욱 넓혀 준다. 특히 보이저호에 실린 황금 음반에 지구의 소리와 모습을 담아 우주로 보냈다는 이야기는 언젠가 외계 생명체와 만날지도 모른다는 상상에 설레임마져 생기게 만든다. 이처럼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해 관련 지식을 차례로 확장하는 구성은 어린이들이 과학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도록 이끈다. 짧은 뉴스 한 편에 다양한 읽을거리와 깊이 있는 정보를 짜임새 있게 담아냈다는 점도 이 책이 지닌 특별한 매력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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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하루 5분! 코파츄의 진짜 웃기는 과학 뉴스>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에 유익한 지식을 절묘하게 녹여 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현직 초등 교사인 다영 작가의 풍부한 교육 경험이 책 곳곳에 반영되어 있어 더욱 믿음이 간다. 우주에서는 과연 어떤 냄새가 날지, 좀비 바이러스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을지, 왜 우리는 자극적인 음식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지 등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평소 엉뚱하게만 여겼던 질문에 뜻밖의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식 또한 무척 유쾌하고 재미가 있다. 코파츄와 버니의 익살스러운 대화에 웃음이 터지고 바람마을 주민들의 재치 있는 댓글을 읽다 보면 마치 과학 방송에 직접 참여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여기에 정답을 예상하며 풀어 보는 퀴즈와 가짜 뉴스의 허점을 찾아내는 활동까지 더해져 책장을 넘기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단순한 흥미를 넘어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올바르게 판단하는 태도까지 기를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작가의 세심한 구성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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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책은 과학이 특별한 사람들만의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친숙한 세계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컵라면과 봉지라면의 맛을 비교하는 사소한 의문조차 깊이 들여다보면 새로운 발견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과학을 잘하기에 앞서 먼저 좋아하는 마음을 길러 주는 좋은 길잡이가 될 듯싶다. 처음에는 우스꽝스러운 제목과 그림에 이끌려 펼쳤다가도 어느새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지고 예상과 다른 사실을 마주할 때면 또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의 풍경도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과학을 시험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 아니라 세상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운 탐험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변화일 것이다. 하루 5분의 짧은 독서가 어린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심어 주고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즐거움을 깨닫게 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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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풍류 - 멋스럽고 운치 있게 서울을 감각하는 법
은모든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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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쁘게만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는 어느새 풍류를 잊어버린 게 아닐까. 해야 할 일은 늘 많고 하루는 빠르게 흘러가지만, 정작 계절의 변화를 살피거나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즐기고, 마음에 드는 풍경 앞에서 잠시 머무는 일에는 점점 인색해진다. 그래서 서울이라는 익숙한 도시에서 풍류를 즐기는 법을 이야기하는 <서울 풍류>에 더욱 관심이 갔다. 풍류라고 하면 흔히 옛 선비들의 고상한 취미나 한가로운 생활을 떠올리기 쉽지만, 은모든 작가가 말하는 풍류는 훨씬 현실적이고 일상적이다. 자신이 사는 곳을 세심하게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맛과 멋과 흥을 발견하며 오늘의 삶을 제대로 즐기는 일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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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은모든의 첫 에세이인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서울 곳곳을 누비며 직접 보고 맛보고 즐긴 것들을 담아낸다. 오래된 노포에서 만나는 추억의 음식부터 매화가 풍성하게 피는 장소, 성곽길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도서관, 도심에서 반딧불을 볼 수 있는 곳까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서울의 다양한 얼굴이 책 속에 펼쳐진다. 꽃과 술, 음식과 산책, 계절과 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서울에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즐거움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쩌면 <서울 풍류>는 특별한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지금 내가 살아가는 곳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잘 놀고 잘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듯하다.


저자가 말하는 풍류의 바탕에는 잘 놀아야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저자는 국악 공연에서 듣게 되는 ‘잘한다!’라는 추임새를 떠올리며 잘한다는 말을 제대로 건네는 일조차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말한다. 치열한 경쟁과 평가에 익숙한 우리는 타인에게는 물론이고 스스로에게도 좀처럼 후한 말을 건네지 못한 채 무엇이든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저자는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하려 하기보다 일단 시작하고 꾸준히 이어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잘 쓰고 싶다면 우선 써야 하고 오래 쓰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며 스스로를 환기할 시간도 필요하다. 그래서 그가 내놓은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잘하고 싶은 일은 꾸준히 하고, 계속하기 위해서는 잘 놀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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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에게 잘 노는 일의 중심에는 서울이 있다. 한강과 천변을 걸으며 계절을 느끼고, 궁궐과 미술관을 찾고, 작은 서점이나 음악 감상 공간을 기웃거리며 새로운 것을 만난다. 낯선 동네에서 처음 먹어보는 음식과 술을 즐기고, 마음에 남은 장소는 다시 소설 속 이야기로 옮겨가기도 한다. 서울에서 20년 넘게 살았던 나 역시 이런 대목을 읽으며 익숙했던 풍경들을 새삼 떠올리게 되었다.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서울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대전에서 지내며 이 책을 읽다 보니 정작 지나치고도 보지 못했던 장소와 즐거움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깨닫게 된다. 결국 풍류란 멀리 떠나 특별한 경험을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곳을 조금 더 천천히 바라보고 그 안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는 태도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책은 맛의 풍류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서울 곳곳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맨 처음으로 책은 연희동의 오래된 식당들을 따라가며 그 안에 쌓인 맛과 기억, 시간의 흔적을 들여다본다. 양은 주전자에 담긴 따뜻한 엽차와 육수, 어린 시절 먹던 냉면의 맛은 자연스럽게 가족과 함께했던 외식의 기억을 불러낸다. 그렇게 한 끼의 음식은 어느 순간 한 사람의 과거와 연결되고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공통된 기억으로까지 확장된다. 이어 저자는 노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는 사라진 피맛골을 떠올린다. 나 역시 서울에서 오래 살며 피맛골의 유래와 그곳이 지닌 의미를 알고 있었기에 이 대목이 더욱 반갑게 다가왔다. 과거 서민들이 고관대작의 행차를 피해 다니던 골목이 수백 년 동안 식당과 주점이 모인 공간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서울의 오래된 맛이 단순한 음식 이상의 시간을 품고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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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피맛골의 흔적은 종각의 오래된 빈대떡집 ‘열차집’으로 이어진다. 1950년부터 이어져온 이곳에는 옛 피맛골의 사진과 세월이 묻은 낙서가 남아 있고 맷돌에 직접 간 녹두를 돼지기름에 지져낸 빈대떡 역시 오랫동안 지켜온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작가는 요즘의 바삭한 전과는 다른 그 맛과 식감을 경험하며 익숙한 취향만 고집하기보다 새로운 맛을 시도해 보는 것 또한 작은 모험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벽을 가득 채운 서로 반대되는 정치적 구호들이다. 처음에는 첨예한 대립의 흔적으로 보이지만 작가는 오히려 그것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오가며 같은 음식을 먹어 왔다는 공존의 증거로 바라본다. 오래된 음식 한 접시 안에서 개인의 추억과 서울의 역사, 서로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발견해내는 것. 바로 이런 시선이 <서울 풍류>가 보여주는 맛의 풍류를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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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이야기 뒤에 덧붙인 ‘풍류 노트’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노포 이야기에 이어지는 풍류 노트에서는 '자녀나 조카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오래된 식당’을 노포의 기준으로 제시하며 하천이나 시장 주변을 살피고 제철 메뉴가 있는 가게를 눈여겨보는 등 자신만의 노포를 발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작가의 경험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독자가 직접 자신만의 풍류를 찾아 나서게 한다는 점에서 <서울 풍류>만의 흥미로운 구성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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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서울 풍류>가 이야기하는 것은 서울의 좋은 장소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만은 아닌 것 같다.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데만 몰두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바라볼 때 마음이 움직이는지조차 잊기 쉽다. 은모든 작가는 그런 우리에게 계속 살아가고, 계속 무언가를 해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즐겁게 만드는 것들을 곁에 둘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보고, 듣고, 먹고, 걷고, 사람을 만나며 얻은 경험이 다시 글쓰기로 이어지는 작가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잘 노는 일’ 역시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중요한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서울의 맛과 멋과 흥을 소개하는 에세이인 동시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오래 이어가며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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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지금은 대전에 살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익숙했던 도시를 새삼 돌아보게 만들었다.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서울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친 풍경과 경험이 적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풍류가 반드시 서울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도시에 사느냐보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을 얼마나 관심 있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나만의 즐거움을 발견하느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서울에서 미처 누리지 못했던 풍류를 아쉬워하기보다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의 맛과 멋과 흥에도 조금 더 눈을 돌려보고 싶다. <서울 풍류>가 내게 남긴 가장 큰 변화는 어쩌면 바로 그렇게 익숙한 일상을 다시 바라보고 싶게 만든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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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절은 영원하지 ㅣ 꿈꾸는돌 47
하유지 지음 / 돌베개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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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감성 넘치는 책표지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어떤 계절은 영원하지>는 부모의 부재 속에서 자란 열일곱 살 오한봄에게 어느 날 엄마와 첫사랑이 동시에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사계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름에서 시작해 가을과 겨울을 지나 봄으로 향하는 시간 동안 한봄은 가족과 사랑, 독립과 관계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엄마의 자리가 다시 채워질 수 있는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지, 그리고 혼자 살아가는 것과 함께 살아가는 것 사이에서 어떤 거리를 찾아야 하는지를 한 소녀의 성장 과정 속에 섬세하게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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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모녀 관계를 중심에 둔 가족 이야기이면서 첫사랑의 설렘을 담은 이야기이고, 동시에 정서적인 자립과 관계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이 반드시 갈등하거나 등을 돌리는 일만은 아니며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역시 그 사람에게 전적으로 기대는 것과는 다를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질문들은 단지 청소년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어서 청소년 소설임에도 어른인 내가 읽으면서도 여러 장면과 감정에 공감하며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족의 부재와 상처, 실패처럼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문제를 지나치게 어둡게 끌고 가지 않고 불완전하고 자주 흔들리는 사람도 다시 관계를 맺고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회복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열일곱 살 한봄이 사계절을 지나며 어떤 관계를 선택하고 어떤 모습으로 달라지게 될지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소설은 여름방학 수학 특강 첫날, 한봄이 학원 복도에서 낯익은 얼굴의 추동하와 마주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동하는 한봄이 사는 아파트에서 종종 보았던 택배 기사였고 알고 보니 자신과 같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한봄은 그동안 동하가 1401호로 와야 할 택배를 자꾸 1301호에 두고 갔다며 말을 걸고 조금은 엉뚱한 첫 대화를 나누게 된다. ‘가을 추, 겨울 동, 여름 하’를 쓰는 동하의 이름에 봄만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봄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에 담긴 계절을 계기로 조금씩 가까워진다. 택배 기사와 고객으로 스쳐 지나가던 사이가 같은 학원에서 다시 만나면서 새로운 관계로 이어지는 이 장면은 앞으로 펼쳐질 두 사람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열어주며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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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인공 한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키워온 할머니 강만춘이다. ‘늦봄’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할머니는 한봄에게 유일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이고, 한봄 역시 할머니가 없는 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 부재를 온몸으로 느낄 만큼 깊이 의지하고 있다. 반면 엄마 서윤혜는 한봄에게 이름 그대로 서운한 사람이다. 직접 키우지는 않았지만 매달 돈을 보내고 수박과 감, 영양제 같은 물건을 꾸준히 택배로 보내며 멀리서 두 사람의 삶에 관여해 왔다. 한봄은 그런 엄마를 일부러 ‘서운해 씨’라고 부르며 궁금해하지 않으려 애쓴다. 자신에게는 할머니만 있으면 된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할머니가 대동맥 판막 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보호자로 엄마를 불러야겠다고 말하면서 한봄이 애써 밀어두었던 엄마의 존재가 다시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할머니의 수술이 결정되면서 한봄이 오랫동안 외면해 온 엄마의 존재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된다. 한봄의 아빠는 한봄이 태어나기 전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고, 엄마 서윤혜는 갓 태어난 한봄을 시어머니인 강만춘에게 맡긴 뒤 떠났다. 이후 엄마는 매달 양육비를 보내고 계절마다 과일이나 생활용품, 영양제 등을 택배로 보내며 멀리서 한봄의 삶에 흔적을 남겨왔다. 하지만 어린 한봄이 할머니의 휴대전화에서 엄마의 존재를 알아내 연락을 보냈을 때 돌아온 것은 아무런 답도 없는 침묵이었다. 그 뒤로 도착하는 택배 상자는 한봄에게 엄마가 보내는 일방적인 답장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한봄은 서윤혜라는 이름을 일부러 ‘서운해 씨’라고 부르며 엄마를 향한 궁금증과 기대를 차단하고 자신에게는 할머니만 있으면 된다고 믿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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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한봄에게 할머니가 수술 전후의 보호자로 엄마를 부르겠다고 선언한 일은 단순히 낯선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하는 문제와는 달랐다. 더구나 할머니는 한봄이 서윤혜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으면 수술도 받지 않겠다고 못을 박는다. 한봄은 이미 자신이 다 컸고 엄마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엄마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 앞에서는 오래전의 감정들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면서도 좋은 사람일까 봐 오히려 두렵고, 미워하는 편이 차라리 마음 편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모습에서는 한봄이 쌓아 온 무관심이 사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였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게 한봄은 할머니의 수술을 계기로 애써 철벽 밖에 두었던 엄마를 다시 자신의 삶 안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자신에게 찾아올 변화가 어떤 모습일지 알 수 없는 채 그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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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봄은 할머니에게서 평생 서로 믿고 아끼는 사람이 세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을 듣고서 자신의 세 자리 가운데 두 자리는 이미 할머니와 단짝 규림이가 채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남은 한 자리이다. 할머니의 심장 수술을 앞두고 오래된 상실의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한봄은 자신도 모르게 곁을 지켜 줄 또 한 사람을 찾기 시작하고 그 후보에 엄마를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한다. 오랫동안 미워하고 외면해 온 사람에게 다시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못마땅하면서도 함께 지내는 시간이 쌓일수록 엄마를 향한 기대와 연민까지 완전히 밀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소설은 누군가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과거의 상처를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안은 채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 가는 일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연 한봄의 세 번째 자리는 누구로 채워질지, 그리고 엄마와 동하를 비롯해 한봄의 곁에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 갈지는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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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며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슬픔과 불행은 엄연히 다르다’는 한봄의 생각이다. 부모의 부재로 때때로 슬펐지만 할머니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았기에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는 한봄의 모습은 결국 삶을 결정하는 것은 결핍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느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한봄은 사계절을 지나며 엄마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고 동하와 마음을 나누며 언제까지나 그대로일 것 같았던 할머니와 규림이와의 관계 역시 언젠가는 달라질 수 있음을 조금씩 받아들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관계는 영원히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더라도 함께 보낸 시간과 그 안에서 주고받은 사랑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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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한봄이 평생 믿고 아낄 세 사람을 찾는 데서 출발해 결국 그중 한 자리를 자기 자신에게 내어주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누군가가 곁에 있어야만 외롭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혼자일 때 온전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 진정한 자립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회복은 상처를 완전히 지우거나 더 이상 실패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무너진 뒤에도 다시 시작하고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힘에 가깝다고 본다. 계절은 머물지 않고 사람과 관계 역시 계속 변하지만, 어떤 시간은 오래도록 한 사람 안에 남아 다음 계절을 살아갈 힘이 된다. <어떤 계절은 영원하지>는 그렇게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조금씩 자신을 믿고 환대하는 법을 배워 가는 이야기를 따뜻하게 보여주기에 더욱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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