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과학책 - 엉뚱한 호기심에서 시작되는 유쾌한 과학 교양
김진우(은잡지) 지음, 최재천 감수 / 빅피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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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만 보아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을 듯하여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일상에서 한 번쯤 떠올려 보았을 법한 사소한 질문에서 출발하고 있다. 태아의 배변 여부, 펭귄이 동상에 걸리지 않는 이유, 벌집이 육각형인 까닭과 같은 질문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호기심처럼 보이지만 책은 그 이면에 자리한 생물학, 화학, 생태학, 신경과학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복잡한 이론을 나열하기보다 그림과 스토리텔링을 활용하여 개념을 구조화하여 이야기하여 누구에게라도 과학을 일상과 분리된 학문이 아니라 생활 속 현상을 해석하는 도구로 인식하도록 돕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자연의 구조와 기능을 과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대멸종 이후에도 생존할 수 있었던 거북의 등껍질 구조, 동상을 방지하는 펭귄 발의 혈관 배열, 고속열차 설계에도 활용되는 벌집의 허니콤 구조 등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자연 속 형상과 배열이 단순한 모양이 아니라 효율과 생존 전략의 결과임을 설명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연을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탐구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며 관찰과 질문이 과학적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자연을 단순한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인간을 지구의 지배자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지구는 결코 인간만의 공간이 아니다. 수많은 생명체가 각자의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하며 공존해 왔고, 인간 역시 그 생태계의 일부인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자연을 통제하는 태도가 아니라 다양한 생물과 어떻게 지속적으로 공존할 수 있을 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생명체의 구조와 생존 전략을 존중하고 과학적 탐구를 통해 그 원리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은 52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과학 채널 〈은근한 잡다한 지식〉의 두 번째 저서로, 전작 <엉뚱한 과학책>에 이어 보다 확장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심해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탐구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사람과 동물, 진화와 적응, 생태와 환경을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 하지만 과학 지식을 단편적으로 나열하는 대신, 질문을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여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개념을 이해하도록 구성하고 있는 게 큰 매력이다.


책은 총 6개의 장으로 이루어 있으며 인체의 신비로운 작동 원리에서 출발해 동물의 생존 기술과 진화 과정, 생태계의 상호 연결성까지 단계적으로 확장히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어 곤충의 세계와 동물의 일상 행동 속 과학적 원리까지 다루며 지구 생명체 전반을 하나의 흐름 속에서 조망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개별 사례를 넘어 지구라는 하나의 체계 안에서 모든 생명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은 먼저 ‘태아도 엄마 뱃속에서 똥을 쌀까?’라는 질문을 통해 인체의 기본적인 생리 작용을 설명하고 있다. 태아는 탯줄과 태반을 통해 이미 소화 과정을 거친 영양분만을 전달 받기 때문에 일반적인 음식물 찌꺼기로 인한 대변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즉 태아의 몸에는 배설해야 할 불필요한 소화 부산물이 거의 남지 않는다. 다만 태아는 양수를 마시고 일부를 소변으로 배출하는데 이 소변은 다시 양수의 일부가 된다. 이러한 순환 과정은 태아 발달에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으로 위생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한편 태아의 장에는 탈락한 세포와 점액, 미처 흡수되지 않은 양수 등이 축적되어 ‘태변’이라 불리는 물질이 형성된다. 태변은 대개 출생 직후 배출되지만 드물게 자궁 내에서 배출되는 경우도 있다. 이때 태변이 양수와 함께 태아의 폐로 들어가면 ‘태변 흡입 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으며 출생 직후 호흡 곤란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초음파 관찰이 이루어지며 필요할 경우 폐 세척 등의 의학적 처치를 시행한다. 이 사례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하여해 인체의 발달 과정과 의학적 관리의 중요성까지 연결되는 과학적 설명의 전개 방식을 잘 보여준다.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사례로 제시되는 것은 노르웨이 하르다에르비다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순록 집단 폐사 사건이다. 2016년 8월, 번개가 툰드라 지대에 떨어지면서 무리 지어 있던 야생 순록 323마리가 한꺼번에 즉사했다. 갑작스러운 자연 재해로 대규모 사체가 발생하자 이를 치워야 할지 여부를 두고 논쟁이 일어났다. 주민들은 부패로 인한 악취와 해충 증가, 생태계 훼손을 우려했지만 국립공원 측은 번개와 폐사 모두 자연 현상이라는 점을 들어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사체 주변에는 구더기와 설치류가 늘어났고, 이를 먹이로 삼는 새와 까마귀, 여우, 검수리 등 상위 포식자까지 차례로 등장했다. 연구 결과 몇 년 사이 조류와 육식동물의 개체 수가 증가하고, 특정 식물의 종자 확산이 이루어지는 등 생태계 내 상호작용이 활발해졌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은 선택이 오히려 새로운 생태적 균형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 사례는 자연 현상을 단기적 문제로만 판단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생태계의 자정 능력과 순환 구조를 이해해야 함을 보여준다.

책은 흔히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넘겼던 익숙한 장면을 낯선 시각으로 다시 해석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책은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생명 현상과 자연의 구조가 실제로는 치밀한 생리 작용과 진화의 축적이라는 점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 준다. 질문에서 출발해 근거를 따라가며 설명에 이르는 전개 방식 덕분에 우리는 개별 지식을 단편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원리가 형성되는 과정을 함께 이해하게 된다. 그 결과 과학적 개념이 한층 명확하게 정리되고 복잡하게 느껴졌던 내용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책은 서로 다른 분야의 내용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제시함으로써 자연 현상을 하나의 흐름 속에서 바라보게 한다. 인체의 작동 원리, 동물의 적응 전략, 생태계의 상호 관계는 따로 떨어진 주제가 아니라 동일한 법칙 안에서 설명된다. 이러한 구성은 과학을 암기해야 할 정보의 집합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합리적 틀로 인식하게 만든다. 읽는 과정 자체가 과학적 사고 방식을 연습하는 시간이 되며 동시에 과학적 원리를 보다 쉽게 체득하도록 도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유용한 시간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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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사춘기 창비아동문고 137
채인선 지음, 김정은 그림 / 창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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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선 작가님의 책이라서 읽게 된 책이다. 채인선 작가는 오랜 시간 어린이의 일상과 감정을 현실적으로 담아내는 작품을 발표해 왔으며 이 책 역시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다. 이 책은 완벽해 보이던 오빠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이전과 달라지는 모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야기는 열한 살 소녀 은미가 오빠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사춘기라는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감정 변화와 가족 관계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 특히 어린 동생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사춘기의 모습은 독자들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여 더욱 인상적이다.

책은 사춘기를 단순한 반항이나 혼란의 시기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성장의 한 과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새롭게 개정된 판본에서는 보다 공감할 수 있도록 표현과 삽화가 보완되어 이야기의 전달력을 높였다고 한다. 사춘기라는 공통된 경험을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풀어내며 변화하는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둔다는 점에서 이 책은 어린이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이 읽을 만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책은 주인공 열한 살 은미가 오빠와 말다툼을 하며 관계의 변화를 처음으로 체감하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늘 자신을 챙겨 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던 오빠는 어느 날부터 사소한 질문에도 짜증을 내며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은미는 이러한 변화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서운함과 혼란을 느끼고, 이전처럼 오빠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또한 은미는 자신의 마음속에 ‘뱃속 생각’이라는 존재를 떠올리며 혼자 감정을 정리하려 하지만,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막막함을 느낀다.

이야기는 주인공 은미가 직접 기록하는 일기 형식으로 전개되며 이를 통해 어린 화자의 솔직한 감정과 혼란이 더욱 생생하게 드러난다. 은미는 어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대신 뱃속 생각과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 상황을 이해하려 한다. 이는 은미가 성장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불안과 외로움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동시에 과거에는 오빠와 함께 해결하던 문제들을 이제는 혼자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강조되면서 어린 시절의 익숙했던 관계가 서서히 달라지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는 은미의 오빠가 왜 변했는지,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하여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오빠는 사춘기에 걸린 것 같다는 생각은 은미의 시선에서 점점 확신에 가까운 판단으로 굳어진다. 친구 소희에게서 ‘사춘기’라는 말을 들은 은미는 오빠의 변덕스럽고 예민한 행동을 하나의 병처럼 받아들이며 이전과 달라진 오빠의 모습을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오빠가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괜히 트집을 잡는 모습은 은미에게 당황스러움과 서운함을 동시에 안겨 준다. 은미는 장난스럽게 오빠에게 사춘기에 걸렸다고 말하지만, 그 말 속에는 오빠의 변화를 설명하고 싶어 하는 어린 마음과 관계가 예전처럼 돌아가기를 바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

한편 은미 역시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경험하며 또 다른 혼란을 겪는다. 친구들과 함께 성장의 징후를 마주하면서도 이러한 고민을 누구에게 먼저 털어놓아야 할지 망설이게 되고, 예전 같으면 가장 먼저 이야기했을 오빠에게조차 더 이상 말을 꺼낼 수 없다는 사실에서 관계의 거리감을 실감한다. 더불어 친구 소희가 오빠에게 보이는 미묘한 태도 변화까지 겹치면서 은미가 바라보는 세계는 점점 복잡해지고 낯설어진다.

이처럼 이 책은 사춘기를 단순히 성장 과정에서 반드시 거치는 혼란의 시기로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변화를 바라보는 시선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은 열한 살 은미의 일기를 통해 사춘기를 겪는 당사자의 내면 뿐만 아니라, 그 변화를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 구성원의 감정과 인식까지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은미가 오빠의 달라진 태도를 이해하려 애쓰는 과정은 사춘기를 낯설고 불안한 변화로 받아들이면서도 이를 관찰하고 해석하려는 아이의 시선의 특징을 보여 주는 듯하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사춘기를 하나의 문제 상황으로 단정하기보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경험되는 복합적인 변화로 인식하게 만든다.

또한 소설은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와 감정의 동요를 특별하거나 숨겨야 할 사건으로 강조하지 않고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변화로 표현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사춘기를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라기보다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점차 받아들이게 되는 경험으로 바라보게 된다. 주인공 은미가 기록하는 일상의 단면들은 거창한 사건보다 사소한 감정의 움직임과 관계의 미묘한 균열에 주목하며 성장이라는 과정이 개인의 변화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형성된다는 점을 께닫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사춘기를 겪는 시기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며 성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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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마음의 소리 - 나는 달리기보다 버티고 서는 법을 배웠다
조석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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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리>로 너무나 유명한 조석 작가의 첫 에세이라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네이버 웹툰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한국 웹툰의 흐름을 만들어 온 저자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쓰게 된 첫 에세이이다. 한국 최장수 연재, 누적 조회 수 70억 회라는 기록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그의 또 다른 이력은 20년간 단 한 번의 지각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책은 바로 그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작업의 리듬과 일상의 축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책은 작품 해설이나 성공담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개그 만화 작가로 살아오며 마주한 일과 삶의 태도를 짧은 글들로 압축하여 담고 있다. 그리고 저자가 〈마음의 소리〉를 비롯해 〈문유〉, 〈조의 영역〉, 〈행성인간〉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 활동이 가능했던 이유는 꾸준한 마감과 반복된 선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웹툰 속 웃음 뒤편에 존재했던 저자 개인의 사고방식과 작업 환경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정리한 이 책은 조석 작가 뿐만 아니라 조석이라는 사람을 좀 더 가깝게 만날 수 있게 하여 책으로 더욱 빠져들게 된다. 


책을 넘기자마자 만나게 되는 프롤로그의 제목은 바로 ‘슈욱 쾅’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슈욱 쾅’의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이 표현은 만화에서는 한 컷의 그림과 효과음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될 장면이지만 글로 옮겨지는 순간 세밀한 설명과 선택을 요구하는 고난도의 작업이 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그동안 당연하게 사용해 왔던 그림의 언어와 새롭게 마주한 글의 언어 사이에 분명한 간극이 존재함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슈욱 쾅’은 곧 만화가로 살아온 20년의 시간을 글로 풀어내야 하는 저자의 현재를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림으로 사고하고 표현해 왔던 장면들을 오롯이 문자로 구성하는 과정에서 그는 비로소 글로 이야기를 만들어 온 이들의 작업이 얼마나 치열한지 체감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이 작가로서의 성과를 정리한 기록이 아니라 만화를 그려온 시간과 그 속에 쌓인 생각들을 하나씩 언어로 옮겨 보려는 시도라고 밝힌다. 그래서 이 책은 웃음을 만들어 온 조석 작가의 또 다른 출발점이자, 그의 진짜 마음의 소리를 볼 수 있게 하는 이야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남긴다.


그리고 이 책의 제일 처음으로 실린 <콘셉트가 길어지면 본질이 된다>에서 저자는 자신의 초창기 작업 태도를 '열심히 하는 척’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데뷔 당시 그림 실력에 대한 평가와 업계의 냉담한 시선 속에서 그는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도 상황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다만 만화를 그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성실한 태도를 연기하듯 유지해 왔다고 말한다. 더 많은 컷을 그리는 척, 만화를 사랑하는 척, 독자에게 감사한 척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그 ‘척’이 행동이 되고 습관이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저자는 ‘척’이라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결국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반복된 노력과 선택이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완성된 재능이 아니라 버티며 쌓아 온 시간의 무게가 지금의 조석 작가를 만든 셈이다. 이러한 인식은 최근 방영된 <흑백요리사 시즌 2>에서 우승한 최강록 요리사가 했던 말과도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좋아하는 척, 잘하는 척을 하며 계속 손을 움직이다 보면 결국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이야기처럼 이 글은 성실함이 어떻게 개인의 본질로 굳어지는 지를 담담하게 보여주며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앞선 글이 성실함이 하나의 태도로 굳어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여전히 어려운 것>에서는 저자가 일을 대하는 또 다른 기준이 드러나서 매우 인상적이다. 그는 작업이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무엇이 특히 어려운지 따지는 일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한다. 남들도 똑같이 겪는 어려움이라면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고, 결국 해야 할 일이라면 판단보다 실행이 앞서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저자는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무엇을 잘 못하는지를 굳이 정확히 알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어차피 모든 과제는 피할 수 없고 차라리 모른 채 손을 움직이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더 알수록 더 자유로워진다’는 통념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저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한 이후 오히려 스스로를 제한하게 되었고, 타인의 평가와 업계의 기준을 알게 되면서 더 많은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무엇을 못하는지 명확히 알게 되는 순간, 그 인식이 족쇄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많은 것을 알고 판단하게 되지만, 그 정보가 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요즘 나 역시 깨닫고 있기에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은 한 웹툰 작가의 성공 서사가 아니라 한 직업인이 자신의 자리를 어떻게 유지해 왔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끊임없이 평가받는 환경 속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무엇을 선택했고, 무엇을 내려놓았는지를 너무나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조회 수와 별점, 댓글이라는 외부의 잣대 속에서도 자신이 세운 기준을 놓지 않으려 했던 태도는 화려한 결과보다 과정의 밀도를 다시 보게 만든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저자가 앞서가는 법보다는 계속 서 있는 법을 중심에 둔다는 점이다. 재능이나 요령보다는 버티는 힘, 그리고 그 버팀을 가능하게 한 일상의 태도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장르를 넘나든 작업들과 실패와 불안, 그리고 다시 시도하는 선택들은 모두 특별한 결단이라기보다 일을 계속하기 위해 필요했던 현실적인 판단에 가까워 더욱 인상적이다. 그래서 이 책은 창작자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일을 오래 이어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듯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과 동료, 오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의 존재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저자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는 부분은 무척이나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책은 저자 특유의 웃음을 만들어 온 작가의 이면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인생이라는 긴 연재를 중단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을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끝까지 읽고 나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매일 자신의 자리를 자신의 사람들과 함께 지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되돌아보게 만들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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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다정한 말
수정빛 지음 / 부크럼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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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읽어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마음에 위안이 되는 책이다. 이 책은 거창한 위로나 극적인 변화 대신, 일상 속에서 오가는 말 한마디가 사람의 삶을 어떻게 지탱해 왔는지를 담담하게 되짚어주는 에세이이다. 수정빛 작가의 네 번째 작품인 이 책은 기억 속에 남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언어의 흔적을 따라가며 상처와 위로가 분리되지 않은 채 같은 시간과 공간에 함께 존재해 왔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개인적인 경험과 익숙한 일상의 장면들을 통하여 다정한 말이 감정을 잠시 달래는 역할을 넘어 삶을 다시 이어 가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책이 담고 있는 다정함은 현실을 외면하거나 감정을 과장하는 방식이 아니라서 더욱 인상적이다. 아픔을 없애려 하기보다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말이 우리 곁에 놓일 수 있을까. 저자는 “잘 먹고 잘 자라”와 같은 평범한 언어들이 반복될 때 그것이 오히려 마음을 회복시키는 최소한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책 속의 문장들은 순간의 위로에 머무르지 않고,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언어로 남아 삶을 정돈하도록 돕고 있기에 오래오래 마음에 남는다.


저자는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건네며'에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말의 힘을 되짚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린 시절의 따뜻한 장면들과 가족과 함께한 평범한 순간들, 그리고 쉽게 꺼내기 어려운 아픈 기억들까지 모두 삶을 따라다니며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왔다고 말한다. 그 기억들 곁에는 언제나 말이 있었다는 거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한마디는 삶을 버티게 했고, 또 어떤 말은 오래 남아 마음을 아프게 했다. 결국 우리를 흔들고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단 하나의 기억이자 단 하나의 말이었다는 깨달음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바로 그 언어의 힘에 주목한다. 아픈 기억을 단번에 지워 내는 말이 아니라 밝고 따뜻한 언어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상처를 조금씩 덮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다정한 말은 타인을 향한 위로에만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히 건네는 작은 말들이 어떻게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삶에 다정을 불어넣는지를 보여 주며 결국 다정한 언어가 누군가의 하루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조용히 전한다.


책에 실린 여러 글 가운데 표제작인 <나를 살리는 다정한 말>은 저자가 오랫동안 붙잡고 살아온 감정의 방향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과거의 상처와 차별적인 시선 속에서 분노를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왔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가정환경이 평가의 기준이 되고, 주변의 가벼운 말들이 정체성을 규정하던 시간 속에서 그는 이를 악물고 목표를 이루는 방식으로 삶을 버텨 왔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스스로를 지켜 주기보다는 과거의 감정을 반복적으로 되살리며 고통을 연장하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저자를 실제로 변화시키고 회복으로 이끈 것은 분노나 복수가 아니라 다정한 사람들이 건넨 짧고 담담한 말들이었다.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얼마나 혼자 힘들었을까”와 같은 문장들은 상처를 자극하지도 감정을 부추기지도 않았다. 대신 오래 남아 삶을 다시 붙잡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결국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동력이 고통의 기억이 아니라, 그 기억을 덮어 주는 다정한 언어임을 깨닫게 만든다. 


책에 실린 여러 글 가운데 가장 공감되었던 글은 <어른도 그래도 돼>였다. 이 글에서 저자는 성장 과정에서 ‘어른스럽다’는 말이 어떻게 개인의 감정을 억누르는 기준으로 작동해 왔는지를 돌아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착하고 속이 깊다는 평가를 받아 왔던 저자는 시간이 흐른 뒤 그 말들이 아이에게 요구된 과도한 성숙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슬픔이나 힘듦을 드러내지 않고 감정을 삼키는 태도가 미덕처럼 여겨졌던 경험은, 결국 억눌린 감정이 성인이 된 이후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어 저자는 그 과정을 통해 회복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차분히 짚어 나간다. 상담과 기록, 독서 등 다양한 시도를 거친 끝에 도달한 핵심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었다. 기쁨뿐 아니라 슬픔과 분노 역시 배제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스스로에게 건넬 수 있는 최소한의 위로였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 역시 저자와 비슷한 경험을 했고, 어른이 된 이후 도달한 결론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감정을 표현해도 괜찮다는 이 글의 메시지는 더욱 깊은 위로로 다가왔다.

이 책이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분명하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견뎌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의 의지나 강인함 때문이 아니라 삶의 어느 순간에 건네받은 다정한 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정함은 거창한 해답이나 특별한 조언의 형태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늘은 쉬어도 돼”, “그 정도면 충분해” 같은 짧고 평범한 말들이 흔들리던 마음을 붙들어 주며 완전히 주저앉지 않게 만든다.

책은 직접적인 위로를 제공하기보다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말을 건네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잘 해내지 못한 하루도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애쓰지 않는 선택 역시 존중받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다정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라 오늘의 말과 태도로 실천해야 할 언어가 된다. 그렇게 누군가에게서 받은 다정이 또 다른 다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믿게 하며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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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
정문정 지음, 피도크 그림, 천근아 감수 / 서교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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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읽게 된 그림책이다. 이 책은 사소한 사건 하나가 하루 전체의 의미를 규정해 버리는 아이의 사고방식을 차분하게 짚어 보게 한다. 아이가 겪는 하루의 경험 그 자체보다, 그 하루를 어떻게 해석하고 기억하는지가 감정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순간의 실망이나 좌절이 ‘오늘은 나쁜 날’이라는 단정으로 굳어지는 과정은 많은 아이들에게 익숙한 반응이며, 이 책은 바로 그 판단이 형성되는 지점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지우는 방법이 아니라 그 감정이 하루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힘이다. 하루를 다시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한 가지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게 된다. 이러한 구성은 긍정적인 태도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고 균형 잡힌 시선을 갖도록 이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하루를 되짚어 보는 태도, 즉 회복탄력성의 출발점을 일상의 언어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책이 될 듯 싶다.


책은 한 아이가 놀이터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꽈당 하고 넘어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이는 가장 좋아하는 새 옷에 흙이 잔뜩 묻은 것을 보고 놀라 재빨리 일어나 손으로 옷을 털어 보지만, 얼룩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어 친구와 차례를 정해 인형놀이를 하기로 약속하고 함께 놀던 중, 자신의 차례가 오자 친구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화를 내며 인형을 놓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친구는 아이를 세게 밀치기까지 한다. 연달아 벌어진 일들에 아이는 크게 속상해한다. 넘어져 옷이 더러워진 일도, 친구와의 다툼도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이의 머릿속에는 오늘은 나쁜 일만 가득한 하루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결국 “오늘은 정말 나쁜 날이야”라고 말하며 화를 내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후가 되어 아이는 선생님이 내준 한글 퀴즈를 풀다가 아깝게 한 문제를 틀리고 만다. 분명 알고 있던 글자였기에 왜 이런 실수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어 더욱 속상해진다. 아쉬운 마음이 커진 아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펑펑 울고 만다. 연달아 이어진 일들에 마음이 무너진 아이는 “오늘은 정말 나쁜 날이야!”라고 말하며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한다.

이런 아이 앞에 어느 순간 시계 요정이 나타나 질문을 던진다. 왜 오늘을 자꾸 나쁜 날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말이다. 요정의 안내에 따라 아이는 흘러간 하루를 다시 떠올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속상했던 순간들만 떠오르지만, 기억을 더듬을수록 그 사이에 놓여 있던 다른 장면들이 하나둘 생각해내게 된다. 그렇게 아이는 자신이 미처 보지 못했던 하루의 다른 모습들을 마주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나쁜 일은 일어나지만 그것이 하루 전체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아이의 시선은 조금 달라지게 된다.

그렇게 이 책은 아이가 하루를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책의 감수를 맡은 천근아 교수는 이 작품을 두고,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다시 바라보는 힘이야말로 감정 발달의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 책은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거나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의 일상을 따라가며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다시 정리될 수 있는 지를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

책은 아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을 지워야 할 대상으로 다루지 않고 있어서 더욱 인상적이다. 대신 그 감정을 인정한 뒤 하루를 다시 바라보는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작은 실망이나 좌절이 반복될 때 아이는 하루 전체, 나아가 자기 자신까지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다른 기억과 경험을 함께 떠올리며 시선을 전환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책은 바로 그 연습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사소한 일에도 크게 마음이 다치는 아이, 작은 실패를 오래 붙잡고 놓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이 책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 지금 느끼는 감정이 전부는 아니라는 깨달음은 아이가 스스로 마음을 다루는 힘을 기르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잠들기 전, 이 책과 함께 하루를 천천히 돌아보는 시간은 아이에게 깨달음과 하루 하루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힘을 제공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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