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대연쇄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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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요 작가의 신작이라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컴퓨터과학과 신학, 중세철학을 바탕으로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이 될지도 모르는 세계를 그려 낸 여섯 편의 SF 단편소설을 담고 있다. 오래된 집 전화기를 통해 로마 황제 칼리굴라의 음성 메시지를 듣게 되는 이야기, 감전 사고 이후 신으로부터 세상을 종말시킬 명령어를 부여받는 인물, 예언자와 마술사의 능력을 과학적으로 해석한 설정, 인공 척추 시술을 받은 딸의 존재를 둘러싼 의문 등 각 작품은 익숙한 현실에 낯선 상상력을 더하며 독자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지금은 지어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머지않아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설정들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이야기 자체에 몰입하게 만든다.

저자는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로 박지리문학상과 문윤성SF문학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고,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 오며 한국 SF를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번 책에서는 기존에 계간지와 웹진을 통해 발표했던 작품들과 미발표작이 함께 실려 있으며 표제작 <존재의 대연쇄>는 공개 당시 독자와 편집부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특히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게 하며 인간 존재와 현실의 본질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여섯 편의 소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소설은 책의 맨 처음에 실린 <사랑하는 신의 생일>이다. 소설의 주인공 유하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어린 시절 집에서 사용하던 오래된 유선전화기를 발견한다. 부모가 모두 바깥일을 하며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던 유하는 어린 시절 아무 번호도 누르지 않은 채 수화기에 대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신호음을 자신의 말에 대한 대답이라고 여기며 외로움을 견뎠던 것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발견한 전화기는 유하에게 그저 낡은 물건이 아니라 외롭지만 마냥 슬프다고만 말하고 싶지는 않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유품이었다.

유하는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전화기의 플러그를 벽면 콘센트에 꽂아 본다. 전화 회선과 연결되지 않았으므로 신호음 정도만 들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수화기에서는 뜻밖에도 자신을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라고 소개하는 남자의 음성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그는 로마제국의 제3대 황제인 칼리굴라였지만, 처음에 유하는 그 목소리를 전화기 안에 숨겨진 장난스러운 자동응답 기능 정도로 생각한다. 그렇게 별다른 의심 없이 수화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기 시작하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유하와 서기 41년의 로마 황제를 연결하는 기이한 대화가 시작된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유하는 전화기 너머의 존재가 단순한 녹음 음성이 아니라 실제로 서기 41년을 살아가는 칼리굴라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그의 죽음이 불과 이틀 앞으로 다가왔음을 알게 되면서 미래를 알고 있는 자신이 그 사실을 알려야 하는지 깊은 갈등에 빠진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역사의 흐름을 뒤바꾸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소설은 단순한 시간 교류를 넘어 인간의 선택과 책임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이야기를 따라갈수록 나 역시 주인공 유하와 함께 '과연 역사는 바뀌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대로 흘러가야 하는가'라는 쉽지 않은 질문 앞에서 오래 고민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야기가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두 사람의 관계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특별한 연결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시작된 대화였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쌓이면서 유하와 칼리굴라는 각자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 잡는다. 그 과정에서 유하는 자신의 선택과 희생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삶을 완성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두 사람의 삶이 마침내 하나의 세계로 이어지는 장면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시간조차 뛰어넘어 서로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오래도록 깊은 여운을 남겼다.

<존재의 대연쇄>는 미래 기술과 디스토피아를 소재로 삼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의 존재와 선택, 관계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는 SF 소설집이라 할 수 있다. 여섯 편의 작품은 컴퓨터과학과 신학, 철학, 역사 등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무엇보다 작품들은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하기보다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두기에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 의미를 연결하고 상상하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게 된다.

그래서일까.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작품 속 장면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오래된 유선전화기, 인공 척추, 종말을 부르는 프로그래밍, 세상의 질서를 만들어 내는 신화적 상상력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조금씩 흐리며 '만약 이것이 현실이라면'이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질문은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돌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독자 스스로 사고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하도록 이끄는 점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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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삼총사의 글쓰기 대소동
곽민수 지음, 벼레 그림 / 다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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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속 등장인물들의 표정이 너무 즐거워 보여 읽게 된 책이다. 글쓰기가 표지 그림 속 아이들의 표정처럼 기쁜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숲 속 도서관의 단골손님인 리니, 구리, 끼끼가 이야기꾼 따따 작가를 만나 글쓰기의 비밀을 배우고 익숙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나 배경을 새롭게 바꾸며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신발을 겹겹이 신는 오리 아저씨, 황금을 누는 거북이, 소원을 빌면 엉덩방아를 찧게 만드는 의자처럼 엉뚱한 상상들이 하나의 그림책으로 완성되는 모습은 글쓰기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오늘날 아이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쉽게 접하지만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 볼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특히 AI와 대화를 나누며 글을 쓰는 시대가 되었지만 AI에게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할지 생각해 내는 힘은 결국 자신의 상상력과 글쓰기 능력에서 나온다. 이 책은 책을 읽는 데서 멈추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경험의 가치를 강조하며 독자를 단순한 독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능동적인 창작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이끌어 준다.


책은 도서관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리니, 구리, 끼끼가 신이 나서 숲속 도서관으로 향하는 모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 친구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뛰어가지만 모두 도서관에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만은 똑같다. 도서관에 들어선 뒤에도 각자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책장을 오르내리며 원하는 책을 찾는다. 또한 도서관에서는 뛰거나 떠들지 않고 조용히 책을 읽어야 한다는 규칙도 자연스럽게 알려 주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의 즐거움과 올바른 이용 방법을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내고 있다.

무엇보다 도서관을 이토록 좋아하는 세 친구의 모습이 책과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더욱 인상 깊고 반갑게 다가왔다.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 가는 일을 특별한 숙제가 아니라 기다려지는 즐거운 일로 표현한 점이 특히 좋았다. 또한 숲속 도서관의 아늑한 풍경과 책을 읽는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은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곳이 아니라 누구나 편안하게 머물며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공간임을 보여 준다. 이러한 시작은 앞으로 펼쳐질 글쓰기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며 다음 장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세 친구는 문득 '이런 이야기는 누가 만들었을까?'라는 궁금증을 품게 된다. 그때 도서관을 찾은 따따 작가는 책 속 이야기가 작가의 경험과 상상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들려주며, 누구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기존 이야기의 주인공이나 사건, 배경을 조금만 다르게 바꾸어도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다는 글쓰기 방법을 알려 주는데, 이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글쓰기를 쉽고 재미있는 활동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장면을 계기로 리니, 구리, 끼끼는 자신들도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하고, 본격적인 글쓰기 대소동을 펼쳐 나간다.

이후 세 친구는 서로의 엉뚱한 상상을 자유롭게 나누며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다. 신발을 여러 겹 신는 오리 아저씨, 황금을 누는 거북이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아이디어들도 서로 연결되자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탄생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서로의 생각을 틀렸다고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 가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모습은 글쓰기가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라 상상과 소통, 협동이 함께 만들어 가는 활동임을 보여 준다. 이렇게 이 책은 글쓰기를 잘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마음껏 상상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즐거운 놀이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글쓰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빈 종이 앞에서 망설이거나 잘 써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첫 문장조차 시작하지 못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 책은 그런 두려움을 내려놓고 생각을 조금만 다르게 바라보면 누구나 즐겁게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정답을 찾기보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마음껏 표현하는 과정 자체가 글쓰기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 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글쓰기를 혼자만의 작업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 친구는 서로의 엉뚱한 생각을 보태고 이어 가며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고 마지막에는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따따 작가에게 그 이야기를 인정까지 받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들 속에서 누군가의 노력과 글을 진심으로 읽어 주고 가치 있게 바라봐 주는 일은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도서관 삼총사의 글쓰기 대소동>은 글쓰기를 잘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책이 아니라 글쓰기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을 선물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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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사 -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다
최윤석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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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사>라는 제목과 표지 그림, 그리고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부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평범한 한 남자가 우상이었던 축구선수의 화려한 삶 뒤에 숨겨진 진실을 마주하면서 복수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을 그린 심리 스릴러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돈도 명예도 없는 싱글 대디 명관은 심장이 약한 아들의 치료를 위해 자신이 평생 동경해 온 축구선수 최강민의 비밀을 대신 감추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가 되지만 결국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 이후 동경은 증오로, 존경은 복수심으로 바뀌고 이야기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 우상을 만들어 소비하는 사회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욕망,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느끼는 박탈감과 열등감을 함께 비추고 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 소설은 유튜브 라이브, SNS, 실시간 댓글 등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현대 사회의 군중 심리와 여론의 흐름을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그려 낸다. 치밀하게 배치된 복선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반전은 다음 장면을 계속 궁금하게 만들었고 사건이 전개될수록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이야기의 흐름이 매우 빠르고 몰입감이 뛰어나 책을 읽는 동안 좀처럼 자리를 뜰 수 없었으며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한 번에 읽게 될 정도로 강한 흡입력을 지닌 작품이었다. 빠른 전개 속에서도 인물들의 심리 변화와 사건의 인과관계를 촘촘하게 쌓아 올려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든다.


소설은 교통사고 현장에서 보험조사관인 명관이 사고를 낸 노인을 친절하게 돕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가드레일 수리 비용을 걱정하는 노인을 안심시키고, 배차가 늦어지자 자신의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는 모습은 명관이 따뜻하고 성실한 성품을 지닌 인물임을 보여 준다. 그는 이혼 후 심장이 약한 아들 준우를 홀로 키우며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으로, 과거에는 유망한 축구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현재 그의 가장 큰 바람은 준우가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을 되찾아 자신이 이루지 못한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명관은 국가대표 축구선수 최강민을 누구보다 동경하며 아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는다. 하지만 그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고를 겪으며 그의 평범했던 일상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저자는 소설의 첫 장면부터 명관이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임을 보여 주며, 이후 전개될 이야기에 현실적인 설득력을 더한다.

이후 작품은 축구 경기 속에서 등장하는 '파우사(PAUSA)'와 게임 속 NPC(Non-Playable Character)라는 두 개의 단어를 통해 작품의 주제를 암시한다. 파우사는 스페인어로 '멈춤'을 뜻하는 축구 전술로, 잠시 공을 멈춰 상대를 끌어들인 뒤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 내는 전략이다. 소설은 이를 단순한 경기 용어가 아니라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운명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음을 상징하는 장치로 활용한다. 또한 준우가 설명하는 NPC는 스스로 이야기를 이끌지 못한 채 주인공을 돕거나 배경을 채우는 존재를 의미한다. 명관은 이 설명을 들으며 자신 역시 다른 사람의 삶을 빛내는 조연처럼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러한 인식은 이후 그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처럼 작품은 초반부터 상징적인 장치들을 치밀하게 배치하여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한층 높이고 있다.


명관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평생 동경해 온 최강민과 가까워지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하게 된다.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강민을 돕기 시작한 그는 점차 그의 사적인 일까지 처리하는 존재가 되고 그 과정에서 화려한 성공 뒤에 감춰져 있던 욕망과 위선을 마주하게 된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완벽해 보였던 우상도 가까이 다가갈수록 평범한 인간이었고 명관은 존경했던 인물을 지켜 주기 위해 자신의 양심과 삶까지 조금씩 희생하게 된다. 처음에는 강민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감수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관계는 신뢰가 아닌 이용과 의심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두 사람의 사이는 서서히 균열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명관이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삶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으로 남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과정이다. 평범한 삶에 만족하며 살아오던 그는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경험하면서 자신 역시 인생의 중심에 서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된다. 반대로 최강민은 자신의 명성과 성공을 지키기 위해 점점 더 타인을 믿지 못하고 명관마저 잠재적인 위협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결국 서로 다른 위치에서 출발했던 두 사람은 각자의 욕망 때문에 점점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고 동경과 신뢰로 시작된 관계는 경쟁과 대립으로 변한다. 이 과정은 성공을 향한 욕망과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심리가 한 사람의 삶과 선택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 주는 대목이라 더욱 인상적이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와 여론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는지를 너무 사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SNS와 실시간 방송, 댓글이 단순히 사건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의 판단을 바꾸고 여론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도구로 활용된다. 작은 정보 하나가 순식간에 확산되고 확인되지 않은 주장조차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온라인 환경을 그대로 떠올리게 했다. 특히 사람들의 관심과 분노가 한순간에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는 과정은 미디어의 영향력과 군중심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소설은 '전반전-선제골-후반전-동점골-역전골'이라는 축구 경기의 흐름을 그대로 목차에 적용한 구성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장이 바뀔수록 실제 경기처럼 분위기가 달라지고 갈등이 점차 고조되며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이어질 때마다 마치 중요한 승부를 지켜보는 듯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초반에 무심코 지나쳤던 사건과 대사들이 후반부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면서 치밀한 구성의 묘미를 보여 주었고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이야기가 더욱 빠른 속도로 전개되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손에서 책을 내려놓기 어려웠다.

<파우사>는 한 남자의 복수를 그린 심리 스릴러이지만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복수보다 인간의 욕망과 동경에 대한 질문이 더 오래 남는다. 작품은 우리는 왜 누군가를 우상으로 만들고, 왜 타인의 성공에 자신의 결핍과 꿈을 투영하는지, 그리고 스포트라이트 밖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평생 조연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를 묻는다. 또한 치밀한 심리 묘사와 빠른 전개, 빈틈없이 회수되는 복선과 거듭되는 반전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뛰어난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렇기에 <파우사>는 무더운 여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 읽을 수 있는 스릴러를 찾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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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불량품
유영광 지음 / 알키미스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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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 속 로봇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인간과 로봇이 함께 살아가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정기 검사에서 불량 판정을 받아 폐기를 앞둔 로봇들이 예상치 못한 모험을 통해 세상을 구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으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유영광 작가의 신작인 <완벽한 불량품>은 성장과 모험, 미스터리 요소를 균형 있게 엮어 낸 장편소설이다. 폐기물 처리장에서 살아가는 배달 로봇 저니를 중심으로 개성 넘치는 불량 로봇들이 등장하며 빠른 전개와 치밀하게 이어지는 복선은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만든다.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세상이 가장 쓸모없다고 여긴 불량 로봇들이 인류를 구할 마지막 희망이 된다는 점이다. 따뜻한 피자는 차갑게, 아이스크림은 녹여 배달할 만큼 결함투성이인 저니와 저마다 부족한 점을 지닌 친구들은 완벽한 로봇들이 해결하지 못한 거대한 사건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전개는 단순한 모험담을 넘어 완벽함만을 기준으로 존재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또한 결함과 실패를 가진 존재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담아내며 앞으로 펼쳐질 여정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책은 먼저 프롤로그를 통해 원인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구멍이 하늘을 뒤덮고 그곳에서 떨어진 정체불명의 존재들로 인해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처하지만 완벽한 로봇들이 이를 막아 내는 소설의 세계관과 기본 설정을 제시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은 세상을 구한 로봇들을 '히어로'라 부르며 완벽함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되고 이러한 사회 속에서 결함을 가진 불량 로봇들이 어떤 의미를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킨다.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 저니가 제한 시간 안에 배달을 끝내기 위해 감마시티를 전력 질주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저니는 따뜻한 피자는 차갑게, 차가운 아이스크림은 모두 녹여 배달할 정도로 결함이 많은 불량 로봇이지만 누구보다 맡은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배달 로봇이다. 배달을 마친 뒤 그가 돌아가는 곳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폐기물 처리장이다. 이곳에서는 정기 검사에서 불량률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폐기 처분된다는 안내 방송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저니를 비롯한 불량 로봇들은 언제 폐기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비록 세상에서는 쓸모없는 불량품으로 취급받지만 저니는 완벽한 로봇, 히어로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시청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개인 방송을 꾸준히 이어 가며 자신의 꿈을 향한 도전을 이어 가고 언젠가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로봇이 되겠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친구들은 그런 저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놀리기도 하지만 저니는 쉽게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묵묵히 나아간다. 이러한 불량품이라는 현실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저니의 모습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대해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소설 속 저니는 처음부터 특별한 능력을 가진 영웅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팬텀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에 떨고 자신의 꿈이 정말 이루어질 수 있을지 끊임없이 흔들리는 평범한 존재에 가깝다. 그런 저니에게 전설적인 히어로 길가메시와의 만남은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길가메시는 꿈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끝까지 믿고 나아가는 사람에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는 사실을 전하며 결과보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 만남 이후 저니는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하기보다 스스로를 믿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저니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의 모습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소심하고 쉽게 상처받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봐 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저니의 곁을 지키는 친구들인 불칸, 에이미, 딩거 역시 저마다 결함과 부족함을 안고 살아가지만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이처럼 소설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함께 성장하는 존재들이야말로 진정한 힘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 주며 이들의 여정에 더욱 깊이 공감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저니는 예상치 못한 사건을 계기로 감마시티를 벗어나게 되고 불칸과 에이미, 딩거를 비롯한 친구들과 함께 거대한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폐기 처분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정처럼 보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들의 앞에는 인류의 운명과 연결된 거대한 진실과 음모가 모습을 드러낸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다고 여겨졌던 불량 로봇들이 뜻밖에도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다는 설정은 작품의 긴장감을 더욱 높이며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저니와 친구들은 수많은 위기와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며 조금씩 성장해 간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자신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류와 서로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그 결말과 여정이 궁금하다면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기를 추천해본다.

책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은 스위퍼가 살아가다 보면 모든 계획과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만 그 이유를 억지로 이해하려 하기보다 언젠가는 의미 있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믿어 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실패의 이유만 찾으려 하기보다 앞으로의 가능성을 믿으며 다시 나아가는 태도가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저니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완벽한 결과보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긍정적인 시선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작품의 핵심을 가장 잘 보여 준다고 느꼈다.

<완벽한 불량품>은 완벽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누구나 부족한 부분과 실패의 경험을 안고 살아가지만 서로의 결핍을 인정하고 응원하며 함께 성장할 때 비로소 더 큰 힘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결국 이 소설은 로봇들의 모험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게 하며 완벽함보다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믿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용기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래서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이 작품이 전하는 따뜻한 위로와 희망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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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은 시다
박정완 지음, 박서영 그림 / 창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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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 그림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익숙한 사물과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상상력과 언어의 가능성을 동시에 담고 있다. <레몬은 시다>라는 제목은 처음에는 단순히 레몬의 신맛을 표현한 말처럼 보이지만 책을 펼치면 '시다'라는 말이 형용사를 넘어 '시(詩)다'라는 새로운 의미로 확장되며 독자에게 색다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늘 보아 온 사물들이 과연 하나의 모습만을 가지고 있는지, 이름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질 수 있는지를 동시라는 형식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에는 총 50편의 작품이 실려 있으며 레몬은 신맛 나는 과일이면서 동시에 한 편의 시가 되고, 지네는 단순한 벌레가 아니라 화물차가 되는 등 익숙한 존재들이 새로운 이름과 의미를 얻는다. 시인은 현실과 상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물을 하나의 정답으로 규정하기보다 여러 겹의 모습으로 바라보도록 이끈다. 이를 통해 시를 읽는 것만으로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과 주변 풍경을 새로운 관점에서 마주하게 되고 언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얼마나 다양하게 바꿀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표제작과도 연결되는 <레몬과 할머니>이다. 시는 "난 시다."라는 짧은 한마디에서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그 의미는 점차 달라진다. 처음에 할머니는 레몬을 숭어구이에 올리거나 차를 만드는 데 사용할 식재료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레몬은 자신을 단순한 먹을거리로 규정하는 시선에 "그래도 난 시다."라고 거듭 말하며 다른 가능성을 드러낸다. '시다'라는 형용사가 '시(詩)다'라는 말로 이어지는 순간 하나의 단어는 새로운 의미를 얻고 평범한 레몬은 상상과 언어를 품은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레몬이 변한 것이 아니라 레몬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마침내 할머니는 레몬을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는 대신 연필을 꺼내 들고 "신 레몬이 시가 될까?"라고 묻는다. 하나의 단어를 새롭게 해석하고 익숙한 대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이러한 발상은 짧은 동시 안에서도 신선한 충격을 전한다. 단순한 언어 유희에 그치지 않고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까지 바꾸어 놓는다는 점에서 이 시는 이 책의 개성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또 하나 재미있게 다가온 시는 <까마귀를 조심해>이다. 처음에는 까마귀의 울음소리와 생김새를 이용한 단순한 말놀이처럼 보이지만 시를 따라 읽다 보면 단어를 분해하고 다시 조합하는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까마귀가 까탈을 부리고 까탈을 몰랐더니 까불까불하다가, 결국 '까'를 떼어 내 마귀가 되었다는 발상은 기존의 언어 규칙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여 준다. 평소에는 의미만 생각하며 지나쳤던 단어를 소리와 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이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특히 마지막에 마귀를 붙잡아 다시 '까'를 꿰매 까마귀로 되돌린다는 장면은 끝까지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언어가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단순히 웃음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글자 하나를 더하고 빼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의미와 상상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일깨워 준다. <레몬과 할머니>가 하나의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사물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면, <까마귀를 조심해>는 언어 자체를 놀이의 대상으로 바꾸며 우리말의 재미와 가능성을 다시 발견하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처럼 <레몬은 시다>는 언어를 가지고 노는 재미를 보여 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과학과 신화, 현실과 상상, 성장과 관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조금씩 넓혀 준다. 특히 어린이의 일상과 몸의 변화, 타인과의 관계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들은 동시가 단순히 짧고 쉬운 글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읽을수록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시들은 독자에게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상상할 여백을 남긴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이 책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면 세상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일깨워 준다. 익숙한 것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평범한 순간에서 특별한 이야기를 발견하는 시인의 시선은 독자에게도 세상을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다르게 바라볼 용기를 건넨다. 동시를 좋아하는 어린이뿐 아니라 바쁜 일상 속에서 상상하는 즐거움을 잠시 잊고 지냈던 어른들에게도 새로운 관점과 언어의 즐거움을 선물해 주기에 이 책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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