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서 - 글을 사랑한 프리랜서 편집자의 작업 세태에세이
유민정 지음 / 소도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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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사랑하는 프리랜서 편집자의 이야기라 하여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프리랜서 편집자로 일해 온 저자가 자신의 작업 경험을 바탕으로 글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내었다. 이 책은 결과보다 노출이 우선되는 환경에서 문장을 다듬는 노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짚으며 언어의 선택과 배열이 사고와 인식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편집 과정에서 마주한 고민과 판단을 통하여 언어의 기술과 글의 설계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사회적 역할을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책은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상적인 문장 속에 숨어 있는 미시성을 중심 개념으로 삼고 있어 인상적이다. 저자는 작은 어휘의 차이와 문장 구조의 변화가 의미의 범위를 어떻게 달리 만드는 지를 사례를 통해 보여 주고 이러한 세밀한 감각이 글쓰기뿐만 아니라 노동, 일상, 미래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연결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과 출판, 앞으로의 일에 대한 논의까지 이어지는 이 책은 글을 완성된 산물이 아니라 사회와 관계 맺는 하나의 방식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책의 들어가며에서 저자는 글을 업으로 삼아 살아오며 겪은 현실적인 어려움과 선택의 과정을 정리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프리랜서 편집자로 일하며 글을 다듬고 대신 써주는 작업을 반복하는 동안 글이 삶의 중심이었기에 감내해야 했던 불안정함과 산업 구조의 한계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동시에 완성도와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고자 글을 쓴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글쓰기가 일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 보편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행위임을 확인한다. 이러한 경험은 글을 결과물보다 과정과 태도의 문제로 바라보게 만든다.

특히 이 책은 글이 늘 낮은 자리에 놓여 왔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글은 일상에서 가장 널리 쓰이지만 그만큼 가볍게 취급되고 쉽게 소모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저자는 그 보편성과 지속성 자체가 글의 핵심 가치라고 강조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 신념과 타협해야 했던 경험과, 이름 없이 수행해 온 글 관련 노동의 현실을 숨기지 않는 태도 역시 이 인식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이 책이 성취나 성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글을 어떻게 다루고 존중할 것인 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며 동시에 그 이야기들을 궁금하게 만든다.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되면서 저자는 글을 사랑하게 된 과정과 그것이 직업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경로를 상세하게 말하고 있다. 소설가를 꿈꾸던 시절의 좌절과 생계를 위해 선택했던 다양한 일자리, 출판사 편집자로서 경험한 현실적인 한계는 글을 업으로 삼는 일이 단순한 열정만으로는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 준다. 출판 현장에서 효율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글이 다뤄지는 상황 속에서 저자는 문장을 충분한 시간과 책임을 가지고 다루는 일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는 문제 의식을 갖게 된다.

이러한 경험 끝에 저자는 프리랜서 편집자이자 교정과 윤문자로서의 길을 선택한다. 책은 이 선택을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교정과 윤문 작업이 요구하는 태도와 조건을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의 선택을 반복적으로 검토하고 문장의 논리와 리듬을 점검하는 과정은 단순한 성실함을 넘어 언어에 대한 애정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노동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미시적인 글 다루기 작업이 눈에 띄지 않지만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임을 강조하며 글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일상과 함께 기능해 온 이유를 말한다.

책은 글을 하나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회와 인간을 지탱하는 과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저자는 글이 낮은 곳에 머문다는 사실을 소외가 아니라 보편성의 문제로 해석하며 누구나 접근하고 사용하는 언어이기에 오히려 더 정교한 태도와 책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AI 기술의 확산과 플랫폼 중심의 노동 환경 속에서 글이 값싼 기능으로 취급되는 현실을 짚으면서도 글의 아름다움과 세밀함이 이러한 구조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책은 노동, 출판, 환경, 인공지능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글이 사회의 변화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보존하는 장치로 작동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감정의 미시성에 주목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글은 감정이라는 무수한 결을 통과해 의미를 형성하는 매개이며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기록이자 역사라는 것이다. 특정한 생각이나 감정을 잘게 나누어 들여다보고 그것이 문장으로 형체를 갖추기까지의 흐름을 따라가는 일은 글쓰기의 핵심이 된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미시사로 정의하며, 글쓰기를 거창한 선언이 아닌 다정하고 집요한 관찰의 연속으로 설명한다. 결국 이 책은 글이 어떻게 인간의 감정을 통과해 사회로 확장되는지, 그리고 그 작은 움직임들이 어떻게 더 나은 방향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지를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좋은 글의 필요성은 결국 개인의 감정과 사고가 사회의 태도로 이어지는 지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고민하고 조합하는 과정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가깝다는 것이다. 저자는 글을 탐구하는 일이 곧 세계를 탐구하는 일이라고 보며 사소해 보이는 언어 선택의 반복이 사고의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개인의 삶과 사회의 방향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더 나은 문장을 쓰려는 시도는 결국 더 나은 판단과 태도를 길러 내는 과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책은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글의 미시적 성격을 끝까지 놓지 않는 태도가 어떤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지를 상세하게 정리하여 말한다. 감정의 미세한 결을 외면하지 않고 언어로 다루는 일은 빠르게 소모되는 정보의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기에 글을 쓰는 일, 그 자체를 되새겨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책은 글쓰기를 특별한 재능의 영역으로 격상시키기보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습해야 할 감각으로 바라본다. 따라서 이 책은 글을 통해 어떻게 더 인간답게 살아가고 그 인간다움이 사회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어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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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람을 배웁니다 - 잘 익어가는 인생을 위한 강원국의 관계 공부
강원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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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 작가의 관계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 하여 읽게 된 책이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는 자연히 정리되고 단순해 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말 한마디, 태도 하나가 관계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이 잦아진다. 이 책은 그런 경험을 이미 충분히 겪어온 어른의 시선에서 관계를 다시 배워야 하는 이유를 담고 있다. 관계를 잘 맺는 요령이 아니라, 관계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어 더더욱 빠져들게 된다.

저자는 대통령 연설관과 대기업 직장인으로 겪은 치열한 인간관계와 가족과의 가장 일상적인 관계까지 아우르며 사람을 대하는 자신의 기준을 정리해간다. 책에 담긴 여섯 가지 원칙은 삶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결과물에 가깝고, 그렇기에 더 현실적이다. 버티지 않기, 고이지 않기, 필요할 때 선택하고 거절할 줄 아는 태도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이라기 보다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 자세처럼 읽혀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책은 관계를 하나의 배움의 영역으로 놓고 있다.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흐름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부딪히고 돌아가며 관계를 건너온다. 저자는 오십이 되어서야 관계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가까운 사람과 더 깊이 관계 맺는 법부터 불편한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과 멀어진 관계를 대하는 태도까지를 되짚는다. 이 과정에서 관계의 어려움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누구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영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오랜 시간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며 관찰한 경험을 통해 관계의 본질을 정리한다. 관계의 양을 늘리는 데 집중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중요한 것은 확장이 아니라 상처를 견디고 회복하는 힘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지만 이 책은 관계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완벽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며 성장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막히지 않고 고이지 않는 관계와 필요할 때는 거리를 둘 줄 아는 태도가 어른다운 관계의 핵심임을 제시하며 독자 스스로에게 자신의 관계를 점검해볼 기준을 건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관계를 둘러싼 질문을 다시 현재형으로 불러온다. 이 책은 관계가 왜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어려운지, 그리고 어른이 된 이후의 관계는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 지를 차분히 되묻는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관통해온 다양한 관계의 장면을 통해 관계의 문제를 개인의 능력이나 처세의 부족으로 돌리기보다 배우지 못한 영역으로 바라보고 있어 인상적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관계는 저절로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돌아보고 다시 익혀야 하는 삶의 기술이라고 말한다.

책에서 특히 눈에 남는 지점은 관계의 시선을 바깥에서 안쪽으로 돌리는 대목이다. 저자는 오래도록 자신을 낮추고 의심하며 살아온 경험을 솔직하게 말한다. 반복된 실패와 수치의 기억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었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기대게 만들었다. 그는 자기부정과 과도한 자기애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데서 비롯된 동일한 현상임을 짚는다. 이 인식은 관계에서 반복되는 피로와 불안을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게 만든다.

그리고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삶의 중심을 다시 자신에게로 가져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기대보다 내 상태를 먼저 살피고 나를 소모시키는 요구 앞에서 선을 긋는 태도는 이기심이 아니라 자기 보존에 가깝다고 본다. 하루 중 잠시라도 나를 위해 시간을 비워두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는 작은 습관들이 쌓여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만든다. 이런 선택들이 반복될 때 비로소 관계는 부담이 아니라 균형 위에서 유지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이 책은 인간관계를 기술이나 요령의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저자는 관계의 어려움을 개인의 성격이나 능력 부족으로 환원하지 않고 누구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영역으로 바라본다. 상처받지 않는 관계는 없으며 관계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는 가가 아니라 상처 이후에 어떻게 다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가에 있다는 점을 반복해 강조하고 있다. 중심을 세우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필요할 때는 결단하고 회복하는 여섯 가지 원칙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처방이라기 보다 삶을 정리하는 기준에 가깝다고 본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으로 '나가며'에서 신영복 선생의 삶과 일화를 통해 배움이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과정임을 설명하고 있다. 교도소에서 만난 사람들, 늙은 목수의 집 짓는 방식은 머리로만 이해해온 삶의 한계를 돌아보게 한다. 사람에게서 배우는 일은 대단한 깨달음이 아니라 관찰하고 이해하며 반복적으로 따라 해보는 실천에 가깝다는 점이 이 부분에서 분명해진다. 이어지는 위기와 실패에 대한 정리는 관계 공부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초기화, 국면 전환, 초심으로 돌아가기, 그리고 함께하기라는 네 가지 방식은 혼자 감당하는 삶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다시 균형을 찾는 방법이다. 싫어하는 사람에게서도 배울 점을 찾고 뛰어난 사람 앞에서 위축되기보다 그 과정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배움을 지속하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된다. 관계에서 생기는 열등감이나 시기심 또한 배움을 가로막는 감정으로 정리되고 결국 중요한 것은 계속 배우려는 자세라는 점이 강조된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평생 다시 사람을 배우며 관계를 만들어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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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비가 내리면 창비아동문고 349
신주선 지음, 방새미 그림 / 창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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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환경 문제는 흔히 어렵고 무거운 주제로 여겨지지만 동화는 이러한 문제를 어린이의 시선에서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끔 하며 더 깊은 사유를 이끌어 낸다. 신주선 작가의 동화집인 이 책은 해양 오염과 산림 훼손, 동물 살처분처럼 우리 사회가 마주한 생태적 현실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환상적인 서사로 풀어내고 있다. 2019년 부산아동문학상 수상 이후 7년 만에 발표된 이번 동화집은 생명과 환경에 대한 저자의 지속적인 관심을 여섯 편의 이야기로 묶어서 동화를 통해 현실을 더 깊게 성찰할 수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이 책은 교훈을 직접 제시하기보다 이야기 전개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바다 생물의 탈출을 그린 모험담, 동물 구조와 살처분을 다룬 상상력 있는 설정, 플라스틱과 개발 문제를 비틀어 바라보는 장면들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절제된 문장과 균형 잡힌 유머는 생명의 가치와 회복의 가능성을 차분히 드러내며 책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환경 문제를 자기 몫의 질문으로 받아들이도록 이끌고 있다.


책의 표제작이자 제일 처음 실린 <바다 비가 내리면>은 한밤중 낡은 아파트에 내리는 낯선 비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주인공 나가 창문을 닫을 까 고민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퍼지고 창밖에는 공중을 헤엄치듯 날아다니는 물고기와 해파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현실과 바다가 뒤섞인 이 장면에서 주인공 나는 자연스럽게 하늘 위로 떠오르게 되고 그곳에서 바다 생물들의 무리와 가오리 등에 올라탄 정체불명의 소년을 만나게 된다.

소년은 자신을 용왕의 아들이라고 밝히며 인간의 도시에 갇혀 있는 바다 생물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목적지는 아쿠아리움으로, 그곳에 친구가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길을 아는 인간으로서 이들의 안내를 맡게 된다. 이야기는 주인공 나가 큰 거북의 등에 올라타 도시 위를 이동하며 바다 비가 내리는 동안에만 가능한 이 특별한 여정을 함께하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바다 비는 용왕의 아들이 오랜 시간 준비해 만들어 낸 것으로 바다와 땅의 경계를 잠시 허무는 장치로 작동한다. 동화는 이 설정을 통해 바다 생물들이 인간의 공간으로 오게 된 이유와 용왕의 아들이 향하는 목적지를 분명하게 제시하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이 환상적인 이야기들은 어느 새 책에 폭 빠지게 만든다.

이야기는 한 아이의 모험을 그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이 만든 공간 속으로 밀려 들어온 바다 생물들의 처지를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있다. 여기서 아쿠아리움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생명이 분리되는 장소로 등장하며 용왕의 아들이 친구를 찾기 위해 그곳으로 향하는 설정은 인간 중심의 시각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바다와 육지를 이어 주는 바다 비는 두 세계의 경계를 잠시 느슨하게 만드는 장치로 보이지 않던 생태적 현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여정에 동참한 바다 생물들은 각자 잃어버린 존재를 안고 있으며 이들의 침묵은 이야기의 무게를 더한다.

그리고 동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모든 문제가 말끔히 정리되지는 않아서 더 인상적이다. 여전히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생명이 남아 있고 주인공 나가 다시 바다 비를 부르는 장면은 현실의 생태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저자는 뚜렷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독자가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이는 바다 생물들이 왜 인간의 영역에 갇히게 되었는지, 그 상황을 만든 책임은 어디에 있는 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책은 여섯 편의 단편을 나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하나의 질문을 공유하며 이어지는 구성으로 완성된다. 바다와 숲, 동물과 도시라는 각기 다른 무대는 인간의 판단과 행동이 생명에 어떤 결과를 남기는 지를 계속하여 환기시킨다. 저자는 오염과 개발, 살처분과 전시 같은 현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상상력에 기반한 설정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상황을 이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로써 이 책은 지식을 전달하는 설명서가 아니라 사유의 출발점이 되는 이야기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이 강조하는 바는 생명이 관리되거나 보호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관계를 맺으며 존재하는 주체라는 점이다. 이야기 속 존재들은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움직이며 인간 중심의 질서를 흔든다. 또한 저자는 명확한 결론이나 행동 지침을 제시하기보다독자가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과 그에 따른 책임을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며 더 깊은 울림을 전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어린이에게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어른에게는 익숙해진 현실을 재고하게 만들며 지속 가능한 삶을 모색하는 첫 단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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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 남은 김미자
김중미 지음 / 사계절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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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작가의 에세이라서 읽게 된 책이다. 가족에 대한 기록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서 한 시대의 풍경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그동안 아동청소년문학을 통해 사회의 여러 모습을 꾸준히 다뤄 온저자가 처음으로 자신의 가족사를 기록한 에세이다. 인지장애를 앓는 어머니를 돌보는 과정에서 시작된 이 책은 한 가정의 기억을 따라가며 197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 주변부로 밀려났던 삶의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책은 가족 내 돌봄이라는 구체적인 상황을 중심으로 세대 간의 연결과 여성의 삶을 이야기한다. 어머니의 시간은 외할머니의 삶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가족 관계와 사회 구조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 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경험을 기록하고 해석하는 데 집중하며 개인의 삶이 사회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한 가족의 이야기를 읽는 동시에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사회적 맥락을 함께 돌아보게 되며 그 먹먹함과 긴 여운을 쉽사리 잊을 수가 없다.


책의 프롤로그는 저자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돌아보며 이상화된 모성의 이미지와 자신의 경험 사이의 간극을 정리하고 있다. 어머니는 자녀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고 저자는 그로 인해 흔히 말하는 어머니의 품을 당연한 것으로 느끼지 못했다. 인천으로 이주한 이후 어머니의 삶은 점차 불안정해졌고, 경제적, 의료적 여건 속에서 몸과 마음의 병을 겪게 된다. 이러한 삶의 조건은 어머니의 성격과 가족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후 인지장애가 진행되면서 어머니는 기억을 하나씩 잃어 가지만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와 조심스러운 말투는 끝까지 남아 있다. 저자는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어떤 딸이었는지, 어머니에게 어떤 존재였는 지를 다시 묻는다. 동시에 외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자신으로 이어지는 세 세대의 삶을 돌아보며 완벽한 엄마가 되려는 노력과 일과 돌봄을 병행하려는 시도가 모두 쉽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이러한 글 속에 담긴 저자의 생각이나 감정들은 단지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서 더더욱 어머니의 이야기들에 귀기울이게 되고 먹먹해진다.


책은 인지장애로 기억을 잃어 가는 어머니를 돌보는 현재의 장면에서 출발하여 저자가 미처 알지 못했던 김미자라는 한 사람의 삶으로 시선을 넓혀 간다. 저자는 오랫동안 가족의 가난을 견디며 살아온 것을 자식으로서의 역할을 다한 결과로 여겨 왔지만 형제와 친척들의 기억을 따라가며 어머니의 삶을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어머니에게 가난 그 자체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가난이 반복적으로 만들어 낸 이주와 단절이었다. 더 낮은 주거비를 찾아 옮겨 다닌 동네들에서 관계는 쉽게 이어질 수 없었고 어머니는 늘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위치에 머물렀다. 이 과정에서 자자는 현재의 자신이 부모와 조부모 세대가 지나온 시간 위에 놓여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게 된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외할머니와 조부모 세대로 확장되며 가족을 둘러싼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구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시장에서 타협하지 않던 외할머니의 태도, 항구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거리낌 없이 커피를 내주던 모습은 당시 지역 공동체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또한 어린 시절 처음으로 꿈이라는 질문을 받았던 경험은 저자가 성장 과정에서 얼마나 이른 시기에 현실을 체념하도록 요구받았는 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개인의 가족사를 넘어 세대와 계층, 지역의 조건이 한 사람의 삶과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저자는 기억을 잃은 어머니에게 끝까지 남아 있는 역할이 '엄마’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자녀의 이름과 관계는 흐릿해졌지만 붙잡아 주어야 할 존재가 있다는 감각과 먼저 챙기려는 태도는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기억이 지워진 뒤에도 남아 있는 이 정체성은 존경스럽기보다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한 사람의 삶이 수많은 이름과 역할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마지막에 남은 것이 오직 ‘엄마’라는 자리뿐이라는 사실에서 저자는 강한 감정의 동요를 느꼈고 바로 '엄마만 남은 김미자'가 이 책의 제목이 된 것이다. 이 말들은 돌봄의 의미를 넘어 개인으로서의 삶이 어디까지 보존될 수 있는 지를 되묻게 하며 나 역시 딸이자 엄마이기에 무척이나 울컥해졌다.


책의 후반부에서 작가는 어머니의 인지장애를 개인의 불행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그 삶이 놓여 있던 조건을 함께 바라본다. 요양원이 좋다고 말하는 김미자의 선택은 돌봄의 편의가 아니라 ‘엄마’라는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욕구로 읽혀서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저자는 외할머니, 이모, 어머니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삶을 따라가며 반복된 인지장애가 단순한 유전이 아니라 오랜 시간 감내해 온 삶의 무게에서 비롯된 결과일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짚는다. 이는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 개인이 사회적 역할 속에서 어떻게 소진되는 지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책은 엄마로서 최선을 다한다는 말의 의미를 현실적으로 다시 짚고 있다. 밥상을 차리는 일을 통해 사랑을 전했던 어머니의 방식은 저자가 직접 자녀를 키우며 비로소 이해하게 된 일이다. 반복적인 노동과 시간의 투입으로 유지되는 과업 중심의 돌봄은 많은 여성에게 공통된 삶의 방식이었으며 이는 부족함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 속에서 도달한 결과였던 거다. 저자는 자신의 선택 역시 그러한 맥락 위에 있음을 인정하며 후회나 미화 대신 서로의 역할을 정당하게 평가한다. 그렇게 이 책은 돌봄과 노동, 신념과 공동체가 한 개인의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차분히 정리하며 일상의 실천이 어떻게 사회적 가치로 확장되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저자의 어머니의 이야기이지만 우리 모두의 어머니의 이야기인 책 속의 이야기는 더 많은 공감을 자아내며 몰입하게 되고, 이태껏 미처 깨닫기 못했던 그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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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루의 멋진 크리스마스
셀린 리 지음 / 창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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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만 보아도 마음이 따스해지는 책이다. 이 책은 홀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외로운 한 고양이 루의 크리스마스를 따뜻한 여정으로 그려내고 있다. 겨울과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외로움과 연결, 환대라는 감정을 중심으로 두고 어린 독자들에게 함께 있음의 의미에 대해 정말 따스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루는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야 할 상황에 놓이지만 예상치 못한 기차 여행과 그 여정 속의 사건들을 통해 진정한 따스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과정 속의 일상의 감정들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림으로 풀어내어 더더욱 고양이 루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단순한 플롯 속에서도 관계의 변화와 감정의 이동으 아주 자연스럽게 흐르며 진심 어린 환대가 어떠한 경험으로 남는지를 깨닫게 만들며 읽는 이의 마음도 따스하게 만든다.

책의 이야기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밤에서 시작된다. 모두가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고양이 루만은 혼자였다.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는 루는 집으로 가는 길 내내 “흥, 나는 크리스마스가 정말 싫어!”라고 투덜거린다.


루의 집 앞에는 이웃 강아지 티스푼이 기다리고 있었다. 티스푼은 루에게 멋진 크리스마스 계획이 있다고 말하지만, 루는 망설이다가 지금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며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후 혼자 돌아온 루는 저녁을 챙겨 먹고,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한 뒤 좋아하는 책을 골라 침대에 누웠지만,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사실, 할머니 없이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가 낯설기만 한 루는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했던 거다. 그런 루를 찾아온 친구 티스푼에게 루는 처음엔 차갑게 대하였지만, 곧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진심을 담은 편지를 건넨다. 할머니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루는 스스로의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고 작지만 중요한 변화를 받아들인다. 다음 날 티스푼은 루를 기차역으로 데려간다.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루는 조금씩 마음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이 책은 마음을 닫은 루가 다시 온기를 되찾아 가는 과정을 조용히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은 크리스마스를 화려한 이벤트로 보내기보다 작은 배려와 환대가 어떻게 한 사람의 일상에 변화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면서 더더욱 깊은 여운과 울림을 남긴다. 기차가 전나무 때문에 멈춰 선 장면에서 루가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안하고 승객들이 각자 가진 물건을 모아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은 공동체적 행동의 의미를 드러내며 깨달음을 전한다. 그리고 티스푼의 가족이 루를 자연스럽게 맞아들이며 새로운 자리를 내어주는 결말 역시 관계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듯하다.

또한 저자 셀린 리의 일러스트는 텍스트가 말하지 않는 여백을 섬세하게 채워 따스함을 충분하게 전한다. 공간의 구조, 사물의 질감, 인물의 표정 등이 서사의 흐름을 뒷받침하며 이야기의 밀도를 높인다. 루가 할머니와의 기억을 되짚거나 새로운 환경에서 조심스럽게 마음을 여는 장면은 그림의 역할을 통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구성은 독자로 하여금 과장된 감동이 아니라 관계가 회복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외로움 속에서도,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느껴지는 온기와 그 가치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되새기게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고양이 루의 멋진 크리스마스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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