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철학 - 고대 철학가 12인에게 배우는 인생 기술
권석천 지음 / 창비교육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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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막막한 순간 꺼내보는, 최선의 삶을 위한 최소한의 철학'이라는 소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사람에 대한 예의>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권석천 작가의 신작으로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철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드러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철학이라는 오랜 사유의 도구에 주목한다. 삶의 막막함 앞에서 저자가 반복하여 찾은 것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과 철학자들의 이야기였고, 그는 이를 통해 인간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진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 세네카, 키케로 등 12인의 철학자의 사유를 중심으로 고대 철학이 지닌 실질적 가치에 집중하고 있다. '질문', '존중', '기세'와 같은 태도의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철학이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일상의 판단과 선택에 작용하는 사고의 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책의 표지를 꺼내 펼치면 나타나는 철학작의 사고방식을 시각화한 '철학가 마을 지도'는 독자가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며 철학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 그렇게 이 책은 철학을 일상의 기준으로 삼고자하는 독자에게 삶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임을 깨닫게 된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와닿았던 부분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통해 풀어낸 ‘신념을 지닌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나는 그 신념이 세상과 맞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기준을 정립하고 타인의 의견까지도 경청할 수 있는 자세라는 데 깊이 공감되었다. 사실 나 역시 어떤 사안에 대해 나름의 생각은 있지만 누군가 앞에 나서서 말할 용기가 부족해 조용히 넘어간 적이 많다. ‘내가 굳이...’라는 자기 방어와 혹시 모를 오해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한 발 물러서게 만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조심조심 살아가는 사이에 어느 순간부터 굳걷하다고 생각했던 나만의 기준도, 중심도 흐려졌던 것 같다.

저자는 지금 우리 사회는 자기 신념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드물다고 말한다. 남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더 편하고 안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편안함은 결국 자기 자신을 배신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중요한 순간 침묵하는 것이 꼭 중립이나 현명함이 아님을 다시 깨달았다. 안티고네는 시대의 흐름과 권력과도 충돌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지켜냈다. 죽음을 앞두고서도 후회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과 확신에 따른 선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신념을 지닌 삶이란, 세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멈추지 않는 태도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아본다. 나와 다른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근거를 다듬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보며 더 나은 판단을 향해 나아가는 삶 말이다. 그렇게 신념의 뿌리를 깊이 내릴 때 우리는 진짜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나는 “내가 진심으로 옳다고 믿는 가치는 무엇인가?”,“지금 나는,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의 질문을 해본다. 그리고 그 답들을 조금씩 찾아가며 살아가고 싶다.

책은 고대 철학자들의 생각을 오늘의 삶에 연결시켜 우리가 마주한 현실적 문제들을 스스로 돌아보게 만든다. 저자는 그들의 말과 생각을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서 우리가 스스로의 기준을 어떻게 세울 수 있는가에 집중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철학을 거창한 학문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단단히 다지는 힘, 타인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태도, 사회를 바라보는 균형 있는 시선까지 책은 생각의 깊이를 넓히되 현실과 단절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신념을 지키는 삶이란 세상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기만의 기준을 갖되, 타인의 입장에도 귀 기울이고, 자신의 시선을 끊임없이 점검하는 태도. 그 과정이 있어야만 우리는 남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진짜 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 시작은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오늘 하루 내가 어떤 기준으로 행동하는 지를 돌아보는 데서 출발함을 깨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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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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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작가의 신작이라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출판의 현장에서 보이지 않게 존재해온 편집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1990년대 초 교열자로 일을 시작해 평생을 문학 편집자로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책을 만들며 겪는 관계와 사건,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천천히 구축되어 가는 삶의 모습을 담아낸다.


주인공은 내성적이고 순응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원고와 책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과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시간을 차분하게 쌓아간다. 작품은 단순히 직업적인 기록을 넘어 노동이라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일의 의미와 결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책을 만든다는 일이 지닌 사회적이고 인간적 함의를 탐색하며 일과 사람, 그리고 관계를 둘러싼 균형을 담담한 문체로 드러낸다. 편집이라는 보이지 않는 노동의 세계를 조명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어떻게 한 개인의 삶을 형성하는지를 차분하게 보려주고 있다. 책 덕후인 내가 이 이야기들에 완전히 빠져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는 주인공 석주가 스무살이 되고 하게 된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도시 종합대 사학과에 입학한 그녀는 역사를 죽음과 닮은 학문으로 여기지만 답사와 박물관 수업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연결될 수 있음을 인식한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이 일상에 즉각적인 활기를 불어넣지는 못한다. 석주에게 있어 변화의 계기는 문학을 통해 찾아온다. 문학 창작 동아리와 청강으로 참여한 소설 창작 수업에서 그녀는 글을 쓰고 비평받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곳에서 석주는 문학을 단순히 좋은 감상을 주고받는 일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드러내고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배움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혹평과 자기 검열 속에서 위축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문학을 향한 애정이 취미를 넘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졸업식 날, 석주는 부모가 당연하게 여긴 교사의 길을 거부하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 그러나 열정만으로 미래가 열리지는 않았다. 한동안 방황을 겪은 끝에 그녀는 스물넷의 나이에 출판사 교한서가에 교열자로 입사한다.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문학에 대한 관심과 출판 현장의 노동이 어떻게 교차하며 한 개인의 삶을 형성해 가는지를 아주 차분하게 보여준다.


석주는 신출내기 교열자로서 원고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고자 했다. 깐깐하고 철저한 오기서 과장 밑에서 교정과 교열을 배우며 기본기를 다졌고 인문교양부 편집자로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편집’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인다. 그곳은 정해진 규칙이나 기준이 존재하지 않으며 예측할 수 없으면서도 반드시 맞닥뜨려야 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석주는 그 불확실함 속에서 책을 만드는 일에 점차 몰입하며 자신의 열정을 발견한다. 그녀에게 열정은 단순한 감정의 폭발은 아니었고 오히려 자신을 차분히 길들이며 꾸준히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기에 남는 것은 그것을 지탱하는 의지가 되었고 석주는 그 의지를 통해 책을 만드는 일을 단순한 직무가 아닌 삶의 중요한 자리에 놓으며 열정보다 더 근본적인 지속의 힘을 배워나갔다. 이렇게 하나씩 쌓아가는 석주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깊이 있게 빠져들었는데 그 이유는 나 역시 비슷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불안과 서투름으로 가득했지만 시간이 쌓이며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던 경험이 석주의 여정과 겹쳐졌고 그렇기에 석주의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다. 게다가 석주의 그 과정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로 책을 편집하는 여정이었기에 석주가 겪는 성장과 깨달음은 더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석주는 편집자 소모임에서 잡지 편집자 조원호를 만나며 일과 사랑이라는 두 축이 동시에 그녀의 삶 속에 들어오게 된다. 계획할 수 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고 예상할 수 있지만 언제나 예상을 빗겨가는 편집의 세계처럼 두 사람의 관계 역시 우연과 불완전함 속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불확실성은 결핍이 아니라 매력으로 다가왔고 석주는 원호와의 관계에서 여행 같은 뜨거움보다는 매일의 산책 같은 지속성을 발견하며 원호에게 점차적으로 빠져들게 된다.


석주에게 일과 사랑은 서로 닮아 있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고 압도하기보다 스며들며 예측할 수 없지만 그래서 더 깊은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원호와의 관계는 매일의 산책처럼 이어졌고 편집자로서의 일 역시 담당 작가와 함께하며 점점 더 무게를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좋아한다는 마음이 언제나 기쁨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네 삶 또한 그렇듯 석주의 일과 관계 모두에 그림자를 드리워지게 된다. 석주는 그제서야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상처의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석주가 책을, 그리고 편집이라는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를 깨닫게 되면서 정말 잔잔하게 흘러가듯 보이는 그녀의 이야기는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과 삶을 응원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버린다.


이 책은 편집이라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배경으로 하여 한 여성이 어떻게 자신만의 삶의 무게와 의미를 찾아가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는 겉으로는 잔잔히 흘러가지만 후반부에 이르면 깊은 울림을 전한다. 작품 속 석주가 끝내 붙잡은 것은 화려한 성취나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남과 비교할 수 없는 대신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자리이자 매일 꾸준히 이어가는 일의 과정이었다. 동시에 생활처럼 곁에 머무는 사랑, 그리고 흔들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까지,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오직 그녀의 것'으로 자리한다.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 노동이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과 삶의 가치가 구현되는 것임을 깨닫게 만든다. 그리고 그 노동이 내가 좋아하는 책과 문학이 존재하기 위한 일이었기에 더욱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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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호 2 - 수상한 손님 초고리 창비아동문고 348
채은하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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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2호가 초등학교 시절 너무 재밌게 읽어던 책 <루호>의 2권이라 읽게 된 책이다. <루호>는 사람으로 변신한 호랑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 설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한국형 판타지 동화다. 이 책은 1권의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로 변신 호랑이 루호가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고민하는 한편 타인과 시선과 맞부딪히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권에서 '나는 호랑이답게 살아갈거야'라고 외치며 인간 세계 속에서 자기 삶을 선택한 루호는 이번 책에서는 '호랑이는 결국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일까?'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초고리'라는 아이가 등장한다. 초고리는 호랑이에게 죽음을 당한 뒤 창귀가 된 아이로 동화속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설정이라 인상적이다. 루호는 초고리의 과거의 이야기를 들으며 호랑이와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 과정은 바로 설화 <김현감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대목으로 서로 다른 존재간의 관계의 가능성을 되물으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먼저 책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앞서 펼쳐진 이야기들을 소개함으로써 이야기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산속 추격 장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루호의 복잡한 마음이 숨어 있다. 친구 지아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 끊임없이 신경 쓰는 루호의 생각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지아는 루호의 정체가 호랑이라는 걸 알면서도 친구가 되어줬지만 문득문득 놀라는 모습이나 슬퍼 보이는 표정들이 루호는 신경쓰였다. 친해졌기에 오히려 더 어려워진 관계와 마음을 건네는 일이 조심스러워진 상황에서 루호는 갈팡질팡한다. 지아의 눈에 자신이 여전히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일까, 아니면 무섭고 두려운 모습으로 변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루호를 흔든다.


"지아는 분명 널 좋아해. 그냥 잘 지내면 된다고." 친구 달수의 말에 루호는 일부러 힘을 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등 뒤에 커다란 물음표가 달린 듯 불안하던 마음도 잠시 누그러진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면 괜찮을 거야라는 스스로의 다짐과 낯선 감정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루호의 모습은 이 이야기가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 관계 속에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야영장으로 돌아온 루호와 친구들은 잠시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만 숲속에서 들려온 낯선 울음소리는 새로운 긴장을 예고한다. 이야기 속 전설 같은 존재인 창귀가 등장하며 아이들 사이엔 무서운 이야기와 함께 불안한 기류가 흐른다. 지아가 무심코 꺼낸 “호랑이는 너무 강해서 창귀까지 부리는 건 너무하다”는 말은 루호에게 큰 상처가 되고 둘 사이엔 미묘한 거리가 생긴 듯 하다. 지아의 진심을 오해한 루호는 ‘호랑이와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진 채 숲을 헤매다가 슬픔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알아본 한 할아버지를 만난다. 할아버지는 루호에게 “네 자리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며 루호가 지닌 감정의 섬세함이 호랑이의 강함과는 다른 의미의 힘임을 일깨워 준다. 과연 이 할아버지의 정체는 무엇일까? 할아버지의 정체와 그의 조언이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증을 자아내며 점점 더 깊이 루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책은 루호와 지아가 서로의 마음속 질문과 불안을 마주하며 진정한 우정을 다시 쌓아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호랑이라는 자신의 본모습이 지아에게 위협으로 보일까 두려워하는 루호, 그리고 그런 루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는 지아. 이들의 갈등은 ‘다름’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통해 성장으로 나아간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앞서 말한 초고리가 있다. 한때 호랑이와 가족을 이루었지만 사람들의 오해와 두려움 속에 버려져 창귀가 되어 나타난 초고리는 루호와 지아의 관계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그의 상처와 외로움은 두 주인공에게도 오해와 거리감, 외로움을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우고, ‘서로 다르다는 것’이 이해와 화해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초고리의 사연은 산신 금강과의 갈등, 그리고 친구들 사이의 흔들림 속에서 자신의 선택을 지키는 용기와 진심으로 연결되고 싶은 마음의 소중함을 다시 묻게 만든다.


그리고 루호는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용기임을 깨닫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기에 이 책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지를 보여준다. 결국 이 책은 독자에게 상처와 오해 속에서도 자신을 긍정하고 진심을 나누면 진짜 우정을 이룰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루호와 초고리, 지아와 친구들은 모두 ‘나다움’과 타인의 시선 사이에서 흔들리며 산신 금강의 방해와 갈등 속에서 자기 긍정과 성장의 의미를 배운다. 동시에 오해를 마주하고 진심을 나누며 화해하는 과정을 통해 다름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진짜 관계를 만든다는 믿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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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별 1 - 나로 5970841 창비아동문고 345
이현 지음, 해랑 그림 / 창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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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사자 와니니>의 이현 작가의 SF 3부작이라 하여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출간 15주년을 맞아 새로이 한 전면개정판으로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스스로 꿈꾸고 선택하는 어린이 로봇 '나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똑같은 모습으로 태어난 세 명의 여자아이 로봇들이 자유와 권리를 찾아 나서는 모험의 이야기들은 동화적 재미를 넘어 인간 존재와 공통체의 의미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특히 이번 개정판은 시대 변화의 내용 수정과 함께 해랑 작가의 삽화까지 더해져 풍부하고 생생한 이야기를 펼쳐보이며 더 깊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야기는 태평양 한가운데 이사벨라섬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우주 승강기 터미널이 있는 미래의 주요 거점이며 주인공 나로와 엄마는 라그랑주 우주 도시에 있는 아빠의 묘지를 방문하기 위해 여행길에 오른다. 나로는 외형은 여덟 살 여자아이지만, 사실은 고성능 안드로이드 로봇이다. 감성과 지능이 뛰어나 일반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행동하지만, 공장에서 만들어진 존재라는 이유로 새로 제정된 지구 연방법에 따라 우주 승강기 탑승이 거부된다. 엄마는 규정에 반발하지만 로봇 경찰 실버불의 제지로 결국 나로를 로봇 보관소에 잠시 맡기고 혼자 우주로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된다.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 남게 된 나로. 나로에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여덟 살 아이의 몸을 가진 어린이형 로봇 나로는 평범한 인간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우주 여행을 앞두고 로봇이라는 이유만으로 탑승이 거부되고, 강제로 로봇 보관소에 수용되어 전원이 꺼지는 수모를 겪는다. 다시 깨어난 나로는 모든 것이 흐릿한 가운데 점차 의식을 되찾고 자신이 로봇이라는 사실과 로봇의 3원칙을 떠올린다. 그러던 중, 보관소에서 본 공룡 로봇 ‘루피’를 본 순간 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강한 확신에 사로잡힌다. 루피를 꼭 데려가야 한다는 생각말이다. 분명 루피는 오늘 들어온 로봇인데 보관소에선 6개월 전 분실된 제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많은 것들이 이상하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로는 자신이 루피를 꼭 데려야가만 한다고 믿고 엄마에게 말한다. 이 장면은 단지 외부 명령을 따르던 로봇 나로가 처음으로 자신만의 의지와 판단을 드러내는 순간이라서 더욱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나로는 왜 루피를 데려오고 싶어졌을까? 그리고 루피는 단순한 로봇일까, 혹은 나로의 과거와 얽힌 존재일까? 이야기 진행될 수록 자꾸만 쌓이는 궁금증과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더더욱 책에 몰입하게 만든다.


엄마와 공룡 로봇 루피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나로는 이웃 진우의 가사도우미 로봇 현주 씨가 팔려가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을 알게 된다. 가족처럼 지내던 로봇이 예고도 없이 끌려가고 기억이 지워질 위기에 처한 상황은 나로에게 깊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로봇이란 이유만으로 마음과 과거를 지울 수 있다는 현실은 나로에게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졌던 세계에 균열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 후, 루피는 나로에게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로봇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인 ‘로봇의 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로봇의 별에 가기 위해 나로는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로봇의 별로 가기 위해 자신의 신분 정보가 심어진 오른손의 아이핀을 잘라내는 것이다. 자유를 위해 사랑하는 엄마를 떠나 자신의 손까지 자르는 나로의 선택은 아주 인상적이면서 깊은 울림을 남긴다.


하지만 이후 나로의 여정은 순탄치만은 않다. 나로와 루피는 도망 중에 로봇 사냥꾼들에게 쫓기고 그 과정에서 가사 로봇 현태 씨, 노래하는 로봇 조니와 같은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나로를 숨겨주고 때로는 목숨을 걸고 지켜주며 함께 싸워 나간다. 특히 조니가 들려주는 노래는 단순한 음악이 아닌, 로봇의 별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암호로 작동하며 나로의 여정을 이끌어간다. 과연 나로는 무사히 로봇의 별에 도착할 수 있을까? 나로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책은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삶의 주체로서 스스로 결정하고 나아가려는 존재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주인공나로는 로봇이라는 이유만으로 통제와 차별을 겪으며 과연 자신에게도 선택할 권리가 있는 지를 묻는다. 그렇기에 나로가 아이핀을 절단하고 ‘로봇의 3원칙’을 제거하는 결정은 단순한 탈출이 아닌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자기 선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로봇과 인간,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맞서기보다는 협력과 이해를 통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로봇 사냥꾼 ‘횃불들’과의 갈등을 넘어서게 되는 과정은 차이와 오해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는 단지 이야기 속 설정을 넘어 우리 사회의 단절과 편견을 돌아보게 하는 구조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책 속 나로의 여정은 또한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일수록 존엄과 윤리, 책임이라는 가치를 함께 고민해야 함을 깨닫게 만든다. 이 책에서는 로봇이 주인공이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과 선택, 변화는 인간의 삶에도 깊게 닿아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향을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생각할 거리와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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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댄 모든 것 - 술 못 끊는 문학 연구자와 담배 못 끊는 정신과 의사가 나눈 의존증 이야기
마쓰모토 도시히코.요코미치 마코토 지음, 송태욱 옮김 / 김영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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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못 끊는 문학 연구자와 담배 못 끊는 정신과 의사가 나눈 의존증 이야기'라는 소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일반적으로 전문가와 환자는 명확히 역할이 구분되는 관계로 인식되지만 이 책은 그러한 고정된 역할을 벗어나 중독이라는 주제로 같은 경험을 가진 두 사람의 입장에서 접근한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지점이 신박하면서도 흥미로웠고 이 책에 기대를 높게 할 뿐만 아니라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은 문학 연구자 요코미치 마코토와 정신과 의사 마쓰모토 도시히코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이다. 두 사람 모두 중독을 겪은 당사자로서 일방적인 조언이나 해석이 아닌 상호 교차적인 시각을 통해 중독의 다양한 양상을 조명한다. 책에서 다루는 중독의 범위는 전통적인 술, 담배, 약물뿐 아니라 게임, 쇼핑, SNS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대상을 통해 저자들은 중독의 원인을 쾌락의 추구보다는 고통의 완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는 중독을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도덕적 결함으로 설명하려는 기존 시각에 문제를 제기하고 보다 구조적이고 심리적인 요인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아마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킬 듯 싶다.


‘쥐 공원 실험’과 같은 사례를 통해 외로움과 사회적 단절이 중독을 강화한다는 점도 언급되며 회복의 조건으로는 단절보다는 연결, 단속보다는 이해가 강조되고 있다. 특히 ‘의존’과 ‘의존증’을 구분함으로써 모든 의존이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 책을 통해 중독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감정이나 도덕의 틀로만 해석하기 쉬운 영역을 구조적 맥락 속에서 차분하게 풀어낸 점이 인상 깊었다. 중독을 겪는 사람뿐 아니라 그 현상을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하였기에 많은 이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책은 단순히 의존증을 소개하거나 설명하기만 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의존증'은 알코올이나 약물뿐 아니라 도박, 게임, SNS, 폭식 등 ‘그만두고 싶지만 멈추기 어려운’ 모든 행동을 포괄한다. 이러한 정의는 의존증을 병리적 문제로만 한정짓기보다 현대인의 삶 속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책의 출발점은 2022년 말 한 북토크 행사에서 두 저자가 처음 대화를 나눈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문학 연구자 요코미치 마코토의 글이 정신과 의사 마쓰모토 도시히코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후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대화가 전형적인 의사와 환자 관계나 전문가 중심의 해설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서로가 자신의 약점을 전면에 내세우며 의존을 단지 관찰하거나 분석하는 대상이 아닌 자신의 문제로 솔직하게 다루고 있고, 이러한 시선이 바로 이 책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책 전반에 흐르는 시선은 철저히 개인적이고 경험 중심적이며 무엇보다 실제 생활과 맞닿아 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의존을 하나의 고정된 진단명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성향, 사회적 조건, 문화적 환경 등 다양한 맥락 속에서 유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는 데 있지 않는게 또 하나의 독특한 매력이라고 본다. 오히려 기존의 판단 기준을 유예하고 우리가 ‘의존’이라는 현상을 얼마나 단순화해 왔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전문가와 당사자가 자신의 언어로 풀어낸 이 서신 교환은 의존증에 대한 시야를 확장시키며 새로운 접근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책에서 주목할 만한 지점 중 하나는 ‘의존’과 ‘의존증’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의존 그 자체는 결코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심리적 구조라고 강조한다. 커피, 단 음식, 사람과의 관계처럼 일상 속에서 우리를 지탱해주는 수단들은 모두 어떤 형태의 ‘의존’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혼자서는 버티기 어려운 존재이며 무언가에 기대어 살아간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자신의 삶을 저해하고,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특정 대상에 집착하게 될 때, 의존은 질환으로 전환된다. 이것이 바로 ‘의존증’이다. 단순한 습관이나 취향의 문제를 넘어 개인의 기능적 손상과 사회적 관계의 붕괴를 초래하는 상태를 지칭한다. 저자들은 이를 ‘그만두고 싶지만 멈출 수 없는 상태’라고 말하며 특정 행위나 물질보다 그것을 대하는 태도와 그 결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의존증의 핵심은 단순한 쾌락 추구에 있지 않다. 이 책은 ‘자기 치료 가설(Self-medication hypothesis)’을 통해 의존이 발생하는 배경을 설명한다. 사람이 무언가에 깊이 빠지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즐거워서가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즉, 중독의 대상은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해소 기제로 기능하며 아이러니하게도 당장은 생존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관점은 의존증을 단순한 도덕적 문제나 성격 결함으로 몰아가는 기존 담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치료의 대상이 되는지는 결국 문화적 규범, 사회적 기대, 개인이 처한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테면 밤새 게임을 하는 청소년은 치료가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지만 같은 시간 동안 공부를 하면 오히려 칭찬받는다. 여기에는 무엇이 ‘정상’이고 ‘이상’인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을 저자들은 짚고 넘어간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의존증을 단순히 끊어야 할 행위가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감정과 고통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문제의 본질은 의존의 대상이 아니라 그로 인해 가려진 삶의 상처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의존을 단순한 욕망의 결과나 절제력의 부재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 책이 말하는 중독의 본질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한 심리적 대응이며 바로 그 점에서 누구에게나 익숙한 감정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책은 인간은 본래 완전한 자립적 존재가 아니며 삶의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거듭 일깨운다. 그렇기에 저자들은 중독을 단속하거나 금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이면의 고통에 주목하고 그에 응답할 수 있는 환경과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문제의 해결은 '억제'가 아니라 '이해'에서 비롯되어야 하며 단절이 아닌 연대와 공감이 회복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의존이 인간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살아남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는 인식은 중독을 바라보는 기존의 도덕적 시선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 결과, 이 책은 단지 중독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 인간이 어떻게 견디고 살아가는지를 탐색하는 하나의 진지한 성찰로 확장된다. 그리고 책은 우리에게 누군가가 어떤 대상에 의존하고 있다면 그 배경에는 어떤 결핍과 아픔이 있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또 어떻게 곁에 있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중독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책임이자 함께 고민해야 할 질문으로 제시하는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 기댈 수밖에 없었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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