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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재발견 - 공부 잘하는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박주용 지음 / 사회평론 / 2025년 5월
평점 :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소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다. 수많은 공부법이 넘쳐나는 시대에 정작 우리는 공부의 본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입시 성공담이나 자극적인 제목의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뇌와 학습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통해 공부를 바라보고 싶었다. 그래서 인지심리학을 토대로 30년 넘게 학습과 공부를 연구해 온 저자의 시선이 더욱 궁금했다.
이 책은 한국 학생들의 현실에서 출발하여 공부란 무엇이고 왜 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묻고 있다. 단순히 성적을 올리기 위한 요령이나 요약된 팁이 아니라 인간의 인지 구조와 학습 메커니즘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통해 지끔껏 우리가 몰랐던 공부의 본질에 대해 새롭게 조명한다. 특히 국내 학자가 직접 집필한 거의 유일한 과학 기반의 공부법 책으로 번역서 중심이었던 ㅇ기존의 인지심리학 분야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공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실질적인 전략을 함께 담고 있어 더욱 매력적인 이 책은 그동안 막연한 공부 습관을 점검하고 싶거나 보다 깊이 있는 학습 전략을 찾는 모든 사람에게 많은 도움이 될 듯 싶다.
책은 앞서 말한 것처럼 단순히 성적을 높이기 위한 요령이나 스킬을 제시하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바로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이다. 저자는 과도한 경쟁과 피로감에 짓눌린 한국 교육 현실을 직시하며 공부가 단지 ‘시험 합격’이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축소되어버린 오늘의 상황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공부란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적 도구이자 세상의 복잡한 문제를 탐색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물가 상승, 기후 위기, 전쟁의 위협, 양극화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거대한 문제들은 단순히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정보를 활용하고, 문제를 정의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능력이 진정한 공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공부란 지식을 습득하는 동시에, 그 지식을 삶의 문제에 적용해 해결하는 총체적인 활동'이라고 말한다. 이는 곧 공부가 개인의 성장 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의 미래를 위한 실천적 기반임을 뜻한다. 따라서 이 책은 공부를 통해 삶의 가능성을 확장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2강에서 다룬 '공부법에 대한 오해'이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효율적이라 믿는 공부법이 실제로는 효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심리학적 연구와 실험 결과를 통해 조목조목 짚어내고 있다. 특히 '편하고 쉽게, 재미있게'만을 추구하는 공부법에 대한 환상을 비판하며 진짜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태도와 능동적인 학습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단지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 성적이 오를 것이라는 믿음은 착각에 불과하다는 실험 결과가 나온다. 하버드대 연구에서도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강의를 들었을 때 더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고 느꼈지만, 실제 시험 성적은 능동적으로 문제를 먼저 풀어본 뒤 강의를 들은 집단이 더 높았다. 이처럼 ‘느낌’과 ‘실제 학습 성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일타강사에게 배우면 성적 상승은 당연하다'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다. 유명 강사의 유창한 강의가 실제 학습 성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실험한 결과 학생들은 유창한 강의를 듣고 더 많이 배운 것 같다고 응답했지만 놀랍게도 실제 시험 점수는 더듬거리며 강의한 경우와 차이가 없었다. 듣는 순간엔 이해가 잘 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이해한 느낌이 반드시 성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착각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이를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표현하며, 잘하는 사람을 보며 자신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태도를 경계한다. 일타강사의 강의는 학습의 좋은 보조 도구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실력이 쌓이지는 않는다. 진짜 성장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사고하고, 실수하며, 불안감을 견디는 능동적 학습 과정 속에서 일어난다. 이 책은 공부의 본질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있다는 점을 끝까지 일관되게 강조한다. 그리고 이 능력은 누구의 강의를 듣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하는 지에 달려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질문이 단순한 호기심의 표현을 넘어, 진짜 공부의 본질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인지심리학 개념인 ‘스키마’와 ‘인지적 균형’을 통해, 새로운 지식이 기존 지식과 충돌할 때 질문이 어떻게 학습을 촉진하는지 설명한다. 아이가 빨간 사과만 알다가 초록 사과를 보며 개념을 확장해가는 과정이 바로 ‘조절’이며, 그 중심에 질문이 있다는 것이다. 질문은 얕은 이해를 깊은 통찰로 이끌어주는 도구다. 단지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 ‘무엇을 질문할 수 있는가’를 목표로 삼았을 때 학습 효과가 더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함께 제시된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질문 만들기’를 목표로 설정했을 때, 이해도와 사고의 깊이가 함께 향상되었다.
또한 질문은 디지털 시대에도 중요한 역량이다. ChatGPT 같은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 즉 ‘프롬프트 능력’이 필수다. 이에 따라 등장한 신조어가 ‘호모 프롬프트(Homo Promptus)’, 즉 질문하는 인간이다. 더 나은 질문은 더 나은 답을 이끌어내며, 이 과정에서 사고력은 더욱 깊어진다. 게다가 흥미로운 실험 결과도 있다. 미국 아마존이 진행한 연구에서 사람들은 처음부터 좋은 질문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여러 질문 중 더 나은 질문을 고를 수는 있었다는 거다. 라이너스 폴링의 말처럼, “좋은 질문을 하려면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처음부터 완벽한 질문을 하려고 하기보다, 많이 질문해보고, 그중 좋은 질문을 선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진정한 공부는 정답을 아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질문하는 습관이야말로 사고력을 키우고, 나만의 배움을 완성하는 핵심 열쇠임을 일깨워준다.
결국 이 책은 공부를 단순한 성적 향상의 수단이 아닌,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와 연결되는 지적 훈련으로 바라본다. 암기 위주의 수동적인 학습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반복적으로 인출하며,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과정이 진짜 실력을 만든다고 강조한다. 특히 읽기, 질문과 토론, 글쓰기로 이어지는 세 단계는 서로를 순환하며 사고를 넓히고, 생각을 정돈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데 이른다.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탐구하고 표현하는 힘을 기르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읽는 방법부터 질문하는 태도, 토론의 실천, 글쓰기 전략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혼자만의 공부를 넘어 타인과 함께 사고하고 협력하는 힘의 중요성도 일깨워준다. 결국 공부는 ‘나’를 성장시키는 동시에, ‘우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메시지는 꼭 기억하고 싶다. 오늘날처럼 혼란과 정보 과잉의 시대에 거짓된 정보에 흔들리지 않는 판단력과 고유한 생각을 갖추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공부다. 생각하는 사람, 질문하는 사람, 함께 나아가는 사람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분명 깊은 울림과 깨달음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