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를 응원해 주세요 - 제30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수상작(저학년) 신나는 책읽기 68
온선영 지음, 홍주연 그림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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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만 보아도 재미가 있을 듯하여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양배추가 되어 버린 아홉 살 소년 양현찬의 하루를 그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인 현찬은 부모에게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말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고 체육대회 주전 선수를 뽑는 중요한 날 아침에는 뜻밖에도 사람이 아닌 양배추의 모습으로 눈을 뜨게 된다. 이야기는 이러한 기발한 설정에서 출발해 양배추가 된 채 학교에 등교하고 수업을 듣고 운동장에서 굴러다니는 등 예상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이어 가며 경쾌한 분위기 속에서 전개된다.

작품은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어린이가 겪는 현실적인 고민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축구를 좋아하지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주인공의 마음,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흔들리는 어린이의 고민이 이야기 곳곳에 스며 있다. 동시에 어떤 모습이든 주인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친구들과 주변 인물들의 태도는 이야기의 분위기를 한층 부드럽게 만든다. 이 책은 이러한 설정을 통해 어린이의 꿈과 도전에 관한 이야기를 유쾌한 상상력 속에서 풀어내며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야기는 주인공 양현찬이 아침에 눈을 떠 자신이 양배추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인 현찬은 체육대회 주전 선수를 뽑는 중요한 날 아침, 사람이 아닌 양배추의 모습으로 눈을 뜨며 당황스러운 하루를 맞이한다. 엄마와 아빠는 현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채 그를 평소처럼 학교에 보내려 하고, 현찬은 행주에 싸인 채 부엌 식탁 위에서 어젯밤 일을 떠올리게 된다.

전날 밤 현찬은 학교 숙제로 장래 희망을 적는 과정에서 부모에게 자신의 꿈이 축구 선수라고 말하지만, 부모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장난처럼 넘긴다. 현찬의 바람과 달리 의사나 과학자 같은 직업을 이야기하며 웃어넘기고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 역시 가볍게 놀림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기억을 떠올리며 현찬은 자신의 꿈이 제대로 이해 받지 못했다는 서운함과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바로 그 다음 날 아침 뜻밖에도 양배추가 되어 버린 상황은 이야기의 전개에 색다른 긴장과 흥미를 더하며 주인공이 양배추로 변했다는 설정 자체가 독자의 시선을 단번에 붙잡아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양현찬이 실제로 양배추가 된 채 학교에 가게 되면서 겪는 여러 장면들을 따라 펼쳐진다.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현찬은 당황하지만 부모는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채 상황을 평소처럼 넘겨 버린다. 결국 그는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양배추의 모습 그대로 학교에 가게 되고, 자신이 축구 선수도 축구공도 아닌 양배추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전날 밤 부모에게 현찬이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던 장면 역시 인상적으로 남는다. 현찬은 축구공이 선수의 발에 자연스럽게 붙어 움직이는 것은 수많은 연습과 노력 덕분이라며 작은 채소가 굴러가기 위해서도 애써야 한다는 식의 비유를 들어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였다. 이 장면은 축구를 향한 현찬의 열망이 얼마나 진지한지 보여 주는 대목으로 읽혀 그래서 현찬이 양배추로 변하게 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학교에서의 시간은 예상과 달리 낯설면서도 새로운 경험들로 채워진다. 친구들은 양배추가 된 현찬을 신기해하면서도 오히려 응원의 말을 건네고 양배추가 된 현찬 역시 굴러다니며 계속 축구에 도전한다. 때로는 양배추가 된 덕분에 수업 시간에 잠깐 쉬어 갈 수 있다는 소소한 장점도 발견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양배추가 된 현찬을 특별하게 대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이다. 이러한 모습은 다소 엉뚱한 상황 속에서도 꿈을 향해 나아가려는 주인공의 마음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내며 이야기의 분위기를 한층 따뜻하게 만든다.

결국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현찬은 좌충우돌한 하루를 지나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양배추가 된 채 학교에서 보낸 시간은 단순한 소동이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조금씩 마음이 단단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부모임과 선생님, 친구들은 낯선 모습이 된 현찬을 이상하게 바라보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곁을 지켜 준다. 이러한 장면들은 어린이가 어떤 모습이든 존재 자체로 존중 받을 수 있어야 함을 일깨워 주는 듯하다.

그리고 현찬이 받은 따뜻한 시선과 응원은 다시 다른 사람을 향한 다정한 마음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통해 비슷한 상황에 놓인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에게 응원을 건네는 모습은 이야기의 여운을 더욱 깊게 만든다. 이 책은 기발한 상상력 속에서 어린이가 자신의 꿈과 마음을 지켜 나가는 과정을 보여 주며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제목처럼 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꿈을 가지고 꿈꾸는 아이들 모두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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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날들이 당신 편이에요
하승완 지음 / 부크럼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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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읽어보아도 위안을 받는 책이다. 이 책은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를 잃은 사람들에게 지나온 시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남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음에도 유독 뒤처진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스스로의 선택과 속도를 의심하게 되는 마음의 장면들을 차분하게 짚어 보며 지금까지 견뎌 온 시간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여러 작품을 통해 많은 독자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해 온 저자는 이번 책에서도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했던 감정과 생각들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책은 눈에 보이는 성취나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지나온 시간에 주목한다. 느린 걸음과 흔들리던 마음, 서툰 선택들 또한 지금의 자신을 이루는 과정이었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쉽게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시간들이 사실은 삶을 지탱해 온 중요한 경험이었음을 되짚고 있다. 그렇게 이 책은 지나온 시간 자체가 이미 삶의 한 부분이자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하며 독자가 자신의 시간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만든다.


책은 독자에게 안부를 건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누구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고민과 시련을 마주하며 살아가지만 그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 채 하루를 버텨 내는 순간들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말하지 못한 아픔이 있을 수 있으며 “잘 지내요”라는 짧은 인사 속에도 서로의 삶을 묵묵히 견디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을 수 있음을 전하며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이어 저자는 이러한 마음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조심스럽게 응원의 말을 건넨다. 지금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때로는 잠시 걸음을 멈추는 순간이 있더라도 그것이 결코 실패나 뒤처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삶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방식으로 빛나고 있으며 지나온 시간과 경험들 역시 결국 삶을 이루는 중요한 장면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마음을 울리게 만든다.

책의 첫 글인 '아주 작은 빛이 되어서라도'에서는 잠들지 못하는 밤, 복잡한 마음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순간 속에서 저자는 자연스럽게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예전에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스스로를 많이 맞추며 살아왔고, 때로는 빛나 보이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눌러가며 버티기도 했다는 사실을 되짚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저자는 그런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고 스스로를 의심했던 순간들, 힘들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한 채 견뎌야 했던 시간들이 결국 지금의 자신을 지탱해 온 힘이었다는 것이다. 겉으로 단단해 보이는 사람들 역시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처와 고민을 견디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저자는 삶의 의미를 되짚는다. 이 글은 그렇게 지나온 시간들이 결국 한 사람을 지켜 주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전하며 이야기를 이어 간다.


이어지는 글들 가운데 특히 공감하게 되는 글은 '어른이 된다는 건'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던 어린 시절과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은 점점 실패를 두려워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쉽게 꺼내지 못하고 감정을 속으로 삼키는 순간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행동과 마음 역시 조심스러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단순히 감정을 억누르며 단단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넘어질 가능성을 알면서도 다시 걸어 보려는 마음, 흔들리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서려는 용기, 그리고 누군가를 끝까지 믿어 주는 태도가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의 용기와는 다른 방식이지만 삶을 통해 조금씩 자라난 다정함과 믿음을 품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나 역시 흔들림을 두려워하기보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사람, 그렇게 진정한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다른 글인 '다정한 사람의 특징'에서는 다정함이 무엇인지에 대해 간결한 문장들로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다정한 사람의 모습이 거창한 행동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태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기억하고, 사소한 이야기라도 흘려듣지 않으며,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태도가 바로 그런 모습이다. 또한 잘못이 있을 때는 사과를 미루지 않고, 자리에 없는 사람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으며, 작은 약속도 가볍게 넘기지 않는 태도 역시 다정함의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된다.

이 글을 읽으며 하나씩 짚어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농담에도 선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화를 내기보다 이유를 설명하며, 사랑과 관심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까지 되돌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목록을 하나씩 체크하다 보니 생각보다 내가 꽤 다정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작은 태도들이 모여 다정함을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주는 글이다.

결국 이 책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바꾸어 보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기대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스스로를 탓하고, 지나온 시간들을 부족했던 순간으로만 기억하려 한다. 그러나 저자는 뜻대로 되지 않았던 시간들 역시 삶의 일부이며, 그 과정 속에서 사람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성장해 간다고 이야기한다. 눈에 보이는 성취가 없었던 날들조차 결국은 오늘의 자신을 이루는 경험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 거창한 해답이나 특별한 순간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무심하게 건네진 한마디의 친절, 누군가가 보여 준 작은 배려, 말없이 곁을 지켜 준 시간들처럼 사소해 보이는 장면들이 삶을 이어 가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받은 온기가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며 서로의 삶을 지탱하게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책의 길지 않은 글들을 하나씩 읽다 보면 어느새 마음 한켠에서 다정한 위로를 받게 되는 듯해서 마음이 참 따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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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 사람 주의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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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겪는 고독과 불안,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미세한 균열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이다. 등단 30주년을 맞은 조경란 작가의 아홉 번째 작품으로, 2024년 이상문학상과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작을 포함한 7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과 변주되는 설정을 통해 하나의 연작처럼 읽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은 극적인 사건의 전개보다는 일상 속에서 감지되는 작은 변화와 관계의 단면에 주목한다. 사라진 사람을 찾거나, 누군가의 유서를 접하거나, 관계의 가능성을 마주하는 상황들은 인물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계기로 작용한다. 반복되는 고독과 불안 속에서도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이를 과장된 감정이나 낙관 없이 절제된 문장으로 풀어낸다. 이러한 서술은 결국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책에 실린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그녀들>은 대학 강사 영서의 일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서는 수업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게 하지만 이 과정이 일부 학생들에게 부담으로 받아 들여지며 인권위원회에 신고를 당하게 된다. 강의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영서는 면담을 거치고, 결국 학생들 앞에서 해명과 함께 수업을 이어가기로 한다. 그러나 이 일을 계기로 그는 학생들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게 되고 수업은 점점 부담과 긴장의 공간으로 변해간다.

이후 영서는 공황 증상을 겪을 정도로 불안이 심화되고 강의와 일상 모두에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집에서는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각자의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과거 가까웠던 사람과의 관계도 단절된 상태로 남아 있다. 소설은 이러한 상황을 통해 영서의 내면에 이미 자리하고 있던 균열을 드러내며 그가 왜 이처럼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는 지에 대한 궁금증을 남기며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후 전개에서는 영서의 현재와 과거가 겹쳐지며 그가 관계 속에서 점점 멀어지게 된 과정이 드러난다. 윤선배의 연락을 계기로 그는 자연스럽게 시인 오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고, 한때 가까웠던 세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흐트러졌는 지를 되짚는다. 처음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기대던 사이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미묘한 거리감이 생기고, 특히 자신을 제외한 채 이어진 관계는 영서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남겼다. 이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그는 타인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지 못하고 일정한 선을 유지해왔던 자신의 태도 또한 인식하게 된다.

현재의 영서는 여전히 타인과의 만남 앞에서 쉽게 발걸음을 내딛지 못한다. 약속을 앞두고도 망설이고 결국 자리에 나가면서도 끝까지 불안과 긴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족과의 관계 역시 가까이 있으면서도 충분히 닿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 특히 그는 스스로 감정을 구분하고 통제하려 애써 왔지만, 실제로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한 번 시작된 감정은 이어지고 겹치며 점점 커져가고 그 속에서 영서는 점점 더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그가 왜 관계 속에서 머물지 못하고 계속해서 멀어지게 되었는지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이처럼 소설은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결을 보다 섬세하게 들여다보게 만든다. 영서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책임감과 피로, 연민과 거리감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을 경험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가까워지려 했던 시도들이 오히려 균열로 이어지는 과정을 겪는다. 특히 어떤 순간에는 상대의 부재가 상실이 아니라 해방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감정의 양가성은 영서의 내면을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이후 영서는 자신의 감정을 다시 짚어보며 그것이 단순한 분노라기보다 잃어버린 관계에서 비롯된 슬픔과 애착에 가까웠음을 인식하게 된다. 타인을 향해 기울였던 마음이 있었기에 그만큼의 흔들림도 뒤따랐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서로를 충분히 이해한 끝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서거나 멀어지는 관계도 존재할지 모른다. 이러한 인식은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확장시키며 소설이 남기는 여운을 더욱 깊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은 불안과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차분히 돌아보게 만든다. 작품 속 인물들은 끝내 완전히 회복되거나 단단해지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자리에서 흔들리면서도 타인을 향해 시선을 두고, 사소한 말과 행동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가까스로 이어간다. 가까운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은 한편으로는 불안을 키우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삶을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관계가 지닌 여러 층위의 의미를 보여주며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결국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을 내미는 순간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완전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로소 형성되는 연결의 감각이야말로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중요한 지점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은 삶의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에서 흔들리는 우리에게,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갈 수 있음을 조용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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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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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띠지 속 “아낙시만드로스가 과학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라는 문장이 특히 눈에 띄는데 문장 그대로, 고대 그리스 밀레토스의 자연철학자가 어떻게 신화적 설명에서 벗어나 자연 현상을 스스로의 법칙으로 이해하려 했는지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저자 카를로 로벨리는 아낙시만드로스를 단순한 철학자가 아닌 비판과 관찰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려 했던 최초의 과학자로 조명하며 그의 사유가 현대 과학의 출발점이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특히 신이 아닌 자연 자체에서 원인을 찾는다는 발상은 당시 세계관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는 비판적 사고와 자연주의라는 과학의 핵심 태도로 이어진다. 이 책은 아낙시만드로스의 사유를 따라가며 우주, 지구, 생명의 기원을 이해하려 했던 초기 시도를 살펴보고, 그러한 지적 전환이 왜 고대 그리스에서 가능했는 지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과학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에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책은 고대 인류가 공유하던 신화적 세계관에서 출발하여 그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려 했던 전환의 과정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문명이 하늘과 땅, 그리고 그것을 떠받치는 존재를 상정했던 것과 달리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가 아무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우주 공간에 떠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단순한 우주관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자연을 설명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며 기존의 믿음을 의심하고 스스로 설명하려는 태도 속에서 새로운 사고방식이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아낙시만드로스는 현대 물리학과 지리학, 기상학, 생물학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로 평가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기존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사고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데 있다. 그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확실성을 거부하고, 의심과 탐구를 지식 형성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러한 태도는 이후 과학이 발전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원리로 이어졌으며 과학은 완전한 진리를 제시하는 체계가 아니라 인간의 무지를 자각하고 더 나은 설명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임을 드러낸다. 나아가 저자는 과학의 본질을 확실한 답이 아니라 끊임없는 질문과 수정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러한 관점에서 아낙시만드로스의 사유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과학적 사고의 기원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그리고 아낙시만드로스의 저서인 <자연에 관하여>는 오늘날 남아있지는 않지만, 자연과 우주의 기원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그는 모든 존재가 아페이론(apeiron)이라는 무한하고 불확정적인 근원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으며 이로부터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분리되며 세계가 형성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지구는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독립된 천체이며, 태양과 달, 별은 일정한 질서를 따라 움직인다고 보았다. 이러한 우주관은 세계를 신이 아닌 자연적 원리로 이해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더 나아가 그는 기상 현상과 생명의 기원 역시 자연적 과정으로 설명하였다. 비는 물의 증발과 순환으로, 천둥과 번개는 구름의 충돌로 발생한다고 보았으며 생명은 바다에서 시작되어 환경 변화에 따라 육지로 진화했다고 추측했다. 또한 최초의 지도 제작과 관측 도구 활용 등 경험적 탐구에도 기여했다. 비록 그의 이론은 현대 과학의 기준에서 완전하지 않지만 자연현상을 신화가 아닌 자연 자체로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과학적 사고의 출발을 보여주는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된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아낙시만드로스가 자연현상을 바라본 시각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는 비, 바람, 천둥, 지진과 같은 현상을 신의 의지가 아닌 태양의 열, 공기의 흐름, 지표의 변화와 같은 자연적 원인으로 설명하려 하였다. 물론 그의 설명은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일부는 정확하고 일부는 한계를 지니지만 중요한 점은 자연 현상을 자연 그 자체로 이해하려 했다는 데 있다고 본다. 당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자연 현상을 신의 작용으로 여겼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기존의 사고방식과 뚜렷이 구별되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이러한 자연주의적 관점은 생명과 인간의 기원에 대한 사유로까지 확장된다. 그는 생명의 기원이 바다에 있으며 환경과 기후 조건의 변화에 따라 생물이 육지로 올라와 적응해 나갔다고 보았고, 나아가 어떤 생물이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는지에 대해서까지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는 훗날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 본격적으로 설명되기 전까지는 쉽게 제기되지 않았던 관점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더 나아가 그의 설명이 완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연 현상의 원인을 자연 내부에서 찾으려 했다는 태도 자체는 이후 과학적 탐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책은 아낙시만드로스를 중심으로 신화에 의존하던 설명 방식에서 벗어나 자연 자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어떻게 과학적 사고로 발전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사유는 당대에는 낯설고 불완전한 가설로 받아들여졌지만 시간이 흐르며 과학이 작동하는 기본 원리로 자리 잡았다. 특히 기존 이론을 비판하고 수정해 나가는 태도는 과학이 축적되는 방식과 맞닿아 있으며 지식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아낙시만드로스의 시도가 단순한 고대의 사유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의 질문과 태도는 오늘날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출발점으로 작용한다. 이 책을 통해 과학이 특정한 이론의 집합이 아니라 세계를 지속적으로 새롭게 이해하려는 과정임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고, 그 출발점에 서 있는 최초의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가 지니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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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만두 한 판이요! 창비아동문고 351
송혜수 지음, 란탄 그림 / 창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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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 그림에 끌려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바닷가 마을 시장에서 만둣집, 달인만두를 운영하던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만두 장인을 꿈꿔 온 열세 살 소년 황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복싱 선수를 꿈꾸다 집을 떠났던 아버지가 돌아와 가게를 이어받으면서 뜸이의 일상은 흔들리게 된다. 단골손님들은 예전과 달라진 만두 맛에 아쉬움을 드러내고, 할아버지가 남긴 비법 공책은 가장 중요한 마지막 장이 찢어진 채 발견된다. 위기에 놓인 달인만두를 지키기 위해 뜸이는 사라진 비법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는 단순히 요리 비법을 되찾는 문제를 넘어한 소년이 자신의 꿈을 어떻게 지켜 나갈 것인 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시장 상인들의 다양한 사연과 먹거리 가득한 풍경은 바닷가 소도시의 활기를 생생하게 전하며 전통 시장이라는 공간이 지닌 공동체적 정서를 드러내고 있는 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특히 이번 책은 송혜수 작가 특유의 경쾌하고 익살스러운 문체는 서사의 리듬을 살리고 란탄 화가가 그린 만두 모양 머리의 뜸이는 인물의 개성을 또렷하게 부각하여 이야기 자체에 완전히 빠져들게 만든다.


이야기는 달인만두의 단골손님인 다포장 할머니가 만두를 맛본 뒤 고개를 젓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할아버지 생전에는 세 끼를 먹어도 질리지 않던 만두였지만, 이제는 “맛이 변했다”는 말이 이어진다. 복싱 선수를 꿈꾸다 뒤늦게 가게를 이어받은 아버지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지만, 오랜 단골들은 구체적인 설명 대신 예전 맛이 아니라는 반응만을 보인다. 정확히 짚어 말하기 어려운 이 미묘한 차이가 곧 달인만두의 위기를 알리는 신호가 된다.

황뜸 역시 그 변화를 느끼고 있다. 짜거나 싱거운 문제가 아니라 분명히 어딘가 빠진 듯한 맛이다. 손님이 남기고 간 만두를 치우며 뜸이는 가게의 현실을 체감한다. 할아버지의 만두는 남는 법이 없었다는 기억과 지금의 상황이 대비되면서 위기는 더욱 또렷해진다. 할아버지의 비법 대로 만들었지만 달라진 만두 맛 앞에서 뜸이와 아버지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다음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만두 맛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뜸이와 아버지는 가게 문을 일찍 닫고 다시 처음부터 만두를 만들어 보기로 한다. 할아버지가 남긴 비법 공책을 펼쳐 놓고 재료의 비율과 숙성 과정, 반죽의 상태까지 하나하나 점검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여러 차례 시도 끝에 두 사람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낸다. 비법 공책의 마지막 장이 찢겨 나가 있고, '제일 중요한 과정이 남았다. 그게 뭐냐면……'이라는 문장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던 것이다. 가장 핵심이 될 부분이 통째로 사라진 상황에서 달인만두의 위기는 더욱 분명해지며 이야기에 완전 몰입하게 만든다.

설상가상으로 유언장을 통해 달인만두 2대 달인으로 할아버지가 자신이 아닌 아버지가 지목되었다는 것 역시 뜸이의 마음은 복잡하게 만든다. 그러나 가게를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고민하던 끝에 뜸이는 비법 공책이 아닌 사람에게서 답을 찾기로 한다. 할아버지에게 직접 만두 빚는 법을 배운 이가 아직 남아 있다는 점을 떠올린 것이다. 그 인물은 바로 12년 동안 우정을 이어 온 친구 양자강의 아버지로 중식당, 양자강 중화요리를 운영하며 과거 할아버지에게 만두 기술을 배운 적이 있다. 사라진 마지막 장의 단서를 찾기 위해 뜸이는 결국 자강을 찾아 나서게 된다.


비법의 단서를 좇던 뜸이는 친구 자강과 함께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 나선다. 자강의 아버지가 과거 뜸이 할아버지와 인연이 있었다는 점에서 실마리를 기대하지만 부모 몰래 장부를 확인하던 자강은 오히려 아버지가 감춰 온 사정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는다. 뜸이 또한 뚜렷한 해답을 얻지 못한 채 돌아선다. 시장의 변화를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켜봐 온 두 아이에게 두 가게의 흔들림은 단순한 매출 감소가 아니라 가족과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문제로 다가온다.

이후 두 아이는 과거 할아버지와 함께 장사를 했던 작은 할아버지를 찾아 인천으로 향한다. 그러나 작은 할아버지는 수익과 효율을 중시하는 사업가적 태도를 보이며 뜸이 할아버지와는 다른 장사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 만남은 뜸이로 하여금 자신이 지키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가게를 이어 온 힘은 특별한 기술 한 줄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성실함,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붙드는 태도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한편 자강은 아버지와 화해하지만 뜸이와 아버지의 갈등은 오히려 깊어진다.

“나한테는 달인만두가 꿈이에요. 아빠처럼 억지로 하는 거 아니에요.”라는 뜸이의 말은 두 사람 모두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질문과 마주하게 하는 순간이 된다. 그렇다면 과연 뜸이와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비법을 찾아 위기에 놓인 달인만두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책은 사라진 비법을 둘러싼 이야기로 출발하지만, 결국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이다. 특별한 한 줄의 비결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 반복되는 노력과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시도하는 용기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한다. 여기에 더해 작품은 ‘뜸’의 의미를 통해 메시지를 한층 분명하게 전한다. 음식을 익힌 뒤 바로 뚜껑을 열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처럼 인생 역시 서두르지 않고 제 몫의 시간을 견뎌야 비로소 속까지 단단히 익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두를 빚는 과정과 삶의 과정을 겹쳐 놓은 구성과 이야기들은 이러한 성장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만들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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