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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사 -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다
최윤석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7월
평점 :
<파우사>라는 제목과 표지 그림, 그리고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다’라는 부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평범한 한 남자가 우상이었던 축구선수의 화려한 삶 뒤에 숨겨진 진실을 마주하면서 복수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을 그린 심리 스릴러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돈도 명예도 없는 싱글 대디 명관은 심장이 약한 아들의 치료를 위해 자신이 평생 동경해 온 축구선수 최강민의 비밀을 대신 감추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가 되지만 결국 모든 죄를 뒤집어쓴 채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 이후 동경은 증오로, 존경은 복수심으로 바뀌고 이야기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 우상을 만들어 소비하는 사회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욕망,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느끼는 박탈감과 열등감을 함께 비추고 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 소설은 유튜브 라이브, SNS, 실시간 댓글 등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현대 사회의 군중 심리와 여론의 흐름을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그려 낸다. 치밀하게 배치된 복선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반전은 다음 장면을 계속 궁금하게 만들었고 사건이 전개될수록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이야기의 흐름이 매우 빠르고 몰입감이 뛰어나 책을 읽는 동안 좀처럼 자리를 뜰 수 없었으며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한 번에 읽게 될 정도로 강한 흡입력을 지닌 작품이었다. 빠른 전개 속에서도 인물들의 심리 변화와 사건의 인과관계를 촘촘하게 쌓아 올려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든다.
소설은 교통사고 현장에서 보험조사관인 명관이 사고를 낸 노인을 친절하게 돕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가드레일 수리 비용을 걱정하는 노인을 안심시키고, 배차가 늦어지자 자신의 차로 집까지 데려다주는 모습은 명관이 따뜻하고 성실한 성품을 지닌 인물임을 보여 준다. 그는 이혼 후 심장이 약한 아들 준우를 홀로 키우며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으로, 과거에는 유망한 축구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현재 그의 가장 큰 바람은 준우가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을 되찾아 자신이 이루지 못한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명관은 국가대표 축구선수 최강민을 누구보다 동경하며 아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는다. 하지만 그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고를 겪으며 그의 평범했던 일상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저자는 소설의 첫 장면부터 명관이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임을 보여 주며, 이후 전개될 이야기에 현실적인 설득력을 더한다.
이후 작품은 축구 경기 속에서 등장하는 '파우사(PAUSA)'와 게임 속 NPC(Non-Playable Character)라는 두 개의 단어를 통해 작품의 주제를 암시한다. 파우사는 스페인어로 '멈춤'을 뜻하는 축구 전술로, 잠시 공을 멈춰 상대를 끌어들인 뒤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 내는 전략이다. 소설은 이를 단순한 경기 용어가 아니라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운명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음을 상징하는 장치로 활용한다. 또한 준우가 설명하는 NPC는 스스로 이야기를 이끌지 못한 채 주인공을 돕거나 배경을 채우는 존재를 의미한다. 명관은 이 설명을 들으며 자신 역시 다른 사람의 삶을 빛내는 조연처럼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러한 인식은 이후 그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처럼 작품은 초반부터 상징적인 장치들을 치밀하게 배치하여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한층 높이고 있다.
명관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평생 동경해 온 최강민과 가까워지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경험하게 된다.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강민을 돕기 시작한 그는 점차 그의 사적인 일까지 처리하는 존재가 되고 그 과정에서 화려한 성공 뒤에 감춰져 있던 욕망과 위선을 마주하게 된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완벽해 보였던 우상도 가까이 다가갈수록 평범한 인간이었고 명관은 존경했던 인물을 지켜 주기 위해 자신의 양심과 삶까지 조금씩 희생하게 된다. 처음에는 강민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감수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관계는 신뢰가 아닌 이용과 의심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두 사람의 사이는 서서히 균열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명관이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삶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으로 남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과정이다. 평범한 삶에 만족하며 살아오던 그는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경험하면서 자신 역시 인생의 중심에 서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된다. 반대로 최강민은 자신의 명성과 성공을 지키기 위해 점점 더 타인을 믿지 못하고 명관마저 잠재적인 위협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결국 서로 다른 위치에서 출발했던 두 사람은 각자의 욕망 때문에 점점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되고 동경과 신뢰로 시작된 관계는 경쟁과 대립으로 변한다. 이 과정은 성공을 향한 욕망과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심리가 한 사람의 삶과 선택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 주는 대목이라 더욱 인상적이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와 여론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는지를 너무 사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SNS와 실시간 방송, 댓글이 단순히 사건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의 판단을 바꾸고 여론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도구로 활용된다. 작은 정보 하나가 순식간에 확산되고 확인되지 않은 주장조차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온라인 환경을 그대로 떠올리게 했다. 특히 사람들의 관심과 분노가 한순간에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하고 반대로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는 과정은 미디어의 영향력과 군중심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소설은 '전반전-선제골-후반전-동점골-역전골'이라는 축구 경기의 흐름을 그대로 목차에 적용한 구성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장이 바뀔수록 실제 경기처럼 분위기가 달라지고 갈등이 점차 고조되며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이어질 때마다 마치 중요한 승부를 지켜보는 듯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초반에 무심코 지나쳤던 사건과 대사들이 후반부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면서 치밀한 구성의 묘미를 보여 주었고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이야기가 더욱 빠른 속도로 전개되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손에서 책을 내려놓기 어려웠다.
<파우사>는 한 남자의 복수를 그린 심리 스릴러이지만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복수보다 인간의 욕망과 동경에 대한 질문이 더 오래 남는다. 작품은 우리는 왜 누군가를 우상으로 만들고, 왜 타인의 성공에 자신의 결핍과 꿈을 투영하는지, 그리고 스포트라이트 밖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평생 조연으로 살아가야 하는 지를 묻는다. 또한 치밀한 심리 묘사와 빠른 전개, 빈틈없이 회수되는 복선과 거듭되는 반전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뛰어난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렇기에 <파우사>는 무더운 여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해 읽을 수 있는 스릴러를 찾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