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살리고 싶어서 -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싸웠던 외상외과의 1분 1초
허윤정 지음 / 시공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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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제목인 '또다시 살리고 싶어서'과 소제목의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싸웠던 외상외과의 1분 1초'만 보아도 외상외과에서의 시간이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가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병원 내에서도 가장 죽음과 가까운 곳,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바닥을 가장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는 외상센터에서 의사로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단국대학교 권역외상센터에서 일하는 외상외과 의사이다. 이 책은 먼저 외상센터는 사실 책이나 쓸 정도로 한가한 곳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사고가 끊이지 않고 늘 인력이 부족한 곳이다. 그런 곳이기에 혹자는 책 쓸 시간에 환자나 한 명 더 살리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맡았던 환자의 마지막 순간과 그 때의 감정, 그리고 그들의 인생을 모나게 했던 풍파에 대해 알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읽다보니 의사 중에서 가장 극한의 멘털과 체력이 필요한 곳에서 저자를 버티게 한 것은 바로 환자를 향한 지독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오로지 환자를 살려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순간 순간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자꾸 목이 메어온다. 그리고 환자를 향한 그 지독한 사랑과 진심이 너무나 생생하게 전해진다.


외상센터에 있다보면 죽음을 자주 목도할 수 밖에 없다. 그곳은 CPR이 일상적인 곳이다. 사실 CPR을 언제까지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외상 환자의 경우 손상 이후 경과한 시간과 그 손상의 정도에 따라 중단의 여부가 결정된다. 권역 밖에서 이미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온 할머니 환자의 CPR의 중단 여부를 보호자에게 물으러 간 저자는 제발 CPR을 멈추지 말아달라는 보호자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가 5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CPR을 그만해 달라고 한 자신을 5년간 미친듯이 후회했다는 말에 그러한 결정을 내렸던 거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중단하는 것이 맞다고 할 수 있지만 남겨진 유족의 마음을 헤아려 멈추지 않고 더 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위로의 말을 건네는 장면은 다시 울컥하게 만든다. 그리고 의사는 단지 사람을 살리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인건의 존엄과 감정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함을 다시금 깨달아본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치유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이토록 많거늘 우리는 너무나 차가운 시선을 그들에게 던졌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1분 1초를 다투어 어렵사리 살려낸 환자가 "저를 왜 살리셨어요."라고 말하였을 때 저자는 그 어떤 메스보다 더 깊고 예리하게 가슴을 후벼파는 듯했다는 사연에서 자살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말을 한 환자를 향해 "당신이 열두 번 실려 와도, 또다시 살려 낼 겁니다."라고 말할꺼라는 저자의 말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동안 우리는 의사를 단순한 생명의 연장을 위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라고 여긴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끝까지 생명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저자의 답에 인간의 생명이 지니는 가치와 존엄을 다시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절망을 마주할 때 우리는 판단보다는 이해와 지지로 다가가야 함을 배우게 된다.


저자는 두 가지 이유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먼저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을 거쳐간 환자들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의료 대란 이후 힘겹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필수 의료 종사자들에게 관심과 응원을 부탁하기 위해서이다. 처음 외상외과 의사가 되고자 했던 그 소중한 마음들이 지쳐 사라지고 있다는 저자의 고백에 의료 대란 이후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하기에 앞서 당장의 불편함만을 보고 얼마나 날카롭고 차가운 시선 보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렇기에 이 책 가득 담긴 저자의 이야기들은 지금 우리가 그들에게 내어야 목소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그들을 응원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이 책은 마지막에 부록으로 '가족의 생명을 지키는 법'을 통해 저자는 외상 사고를 피하고 가족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그 방법들을 하나씩 읽다보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외상 사고를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모든 사고는 예고편은 없지만 일상 생활 속의 많은 부분에서 조심하고 부록에 실린 안전을 위한 방법들을 지킨다면 큰 사고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생생하게 담긴 사람이 죽고 사는 이야기, 사람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지, 의사로서의 사명감 등 솔직한 고백들을 들려줘서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또 다시 살리고 싶어서' 의료 현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그들의 진심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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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
황민구.이도연 지음 / 부크럼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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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영상 분석가인 황민구님의 첫 장편 소설이라 해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 최고의 법 영상 분석가인 황민구님과 에세이부터 드라마 극본까지 다방면으로 활동 중인 이도연 작가님의 협업으로 출간된 장편소설이다. 주인공인 법 영상분석가 '대아'가 동아리 후배인 '선희'의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프레임 밖에 존재하는 용의자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법 영상 분석가인 대아의 시선으로 오직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정답이라 믿음 아래 프레임 밖 진실을 찾아 나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반전은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이 책의 이야기는 법 영상 분석가로서 주인공 대아가 법원에 출두하여 증인으로서 맹세를 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유명해지려고 법 영상 분석을 직업으로 삼은 것은 아니었지만 수년 동안 영상 분석을 위한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논문에 몰두하며 지낸 결과 대아는 어느 새 법 영상 분석의 전문가가 되어 유명해졌다. 하여 오늘처럼 재판에 감정 증인으로 자주 출두하곤 했는데, 대아를 따라 법 영상 분석 전문가라고 칭하지만 엉터리인 상대측 증인을 보고나니 일 자체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법원으로 오기 3시간 전 대아는 대학 병원에서 망막색소변증으로 곧 시력을 잃게 될 꺼라는 진단까지 받게 된다.모든 걸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대아 앞에 갑작스레 나타난 동아리 후배의 선희의 동생 선영. 선영을 통해 대아는 선희가 3년 전 제주도에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 자리에서 잘 살고 있을 꺼라고 생각했던 선희가 죽었을 거라니. 대아는 충격에 휩싸인다. 그리고 선영을 통해 듣게 되는 선희가 우울증이었다는 사실과 남편과 제주도에 한달 살기를 하러 갔다가 죽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선영은 대아에게 선희의 인스타그램 계정과 선희의 스마트폰 클라우드에서 다운 받은 원본 사진을 넣은 USB를 주며 선희의 살아 생전 이야기를 써달라는 부탁을 한다. 참 잔인한 부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대아는 USB 속에 담긴 사진 한장을 샘플로 보던 중 선희가 왠지 무슨 이야기를 남겼을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일을 중지시키고 대아는 충동적인듯 선희의 이야기를 쫓아 제주도로 향한다.


제주도에 간 대아는 그녀의 흔적이 담긴 USB 속 사진들을 통해 제주도에서 선희의 시간이 그리 좋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사진 속 선희를 찾기 위해 AI 안면 인식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한 결과 울고 있는 선희의 모습과 블랙박스 속 영상. 그리고 병원 진료까지 그녀의 흔적을 따라가다가 대아는 선희가 남편인 변호사 동연에서 가정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과연 선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진실은 무엇일까? 프레임 밖에 존재하는 진실을 찾아 나서는 대아의 이야기를 통해 선희가 남긴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면 진짜 범인은 누구인지 너무나 궁금해진다.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길 추천해본다.


냉철하면서도 이성적인 영상 분석가 대아. 제주도에서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선희, 그리고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하는 변호사 동연. 이들의 얽히고설킨 제주도에서의 발자취를 따라가던 대아는 3년전 기록과 증언, 그리고 선희가 남긴 사진 속 진실을 바탕으로 모두에게 잊혀져 버린 사건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여정의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우리 눈이 얼마나 진실을 잘 보지 못하고 믿고 싶은대로만 보고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진 진실을 보지 못하는 지를 깨닫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 벌을 내리는 것을 넘어서 법은 단 한 사람의 억울한 이도 없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기 진실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는 대아의 결심이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아무리 희망이 멀어보이고 무력함이 느껴질지라도 우리는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의지를 잃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진실에는 승자나 패자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고 묵묵히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진실을 알고 싶어하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며 누구 한 명이라도 억울한 죄를 뒤짚어 쓰지 않기를 바라는 두 저자의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때로는 세상과 마주하는 일이 아득한 두려움으로 다가올지라도 이 책을 통해 세상이 생각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슴에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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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사랑만 한다면 우리는 죽을 수 있다 - 페소아의 내면보고서 러너스북 Runner’s Book 2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이준혁 편역 / 고유명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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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명사의 큐레이션 북, 러너스 북 시리즈의 두번째 책이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그의 이름 아래 수많은 이명들을 만들어내며 각기 다른 문학적 스타일과 철학을 표현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름별로 너무나 다른 스타일의 글들을 통해 그는 '이질적인 자아들'을 표현해내었는데 이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보아도 참 독특하다. 이 책에서는 페소아의 대표 작품과 그의 글 속에 담긴 주옥같은 문장들을 선별하여 소개하고 있으며 그의 다층적 자아와 복잡한 사유의 세계를 간결하지만 깊이 있게 느껴볼 수 있다.


이 책에 담긴 페소아의 간결한 문장들은 나로 하여금 나 자신에 대해, 행복과 사랑에 대해, 그리고 삶의 태도에 대해 되돌아보게 만든다. 나에게 울림을 준 문장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행복해지려면,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길 바라고 또 행복을 기원하지만 정작 행복에 대해서 어떤 것이 행복인지, 어떨 때 자신이 행복한지를 깨닫지는 못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행복하다는 것부터 인식해야 함을 명심해야지.


가르치지 말라.

배울 것 전부가 아직 당신 손에 있으니.


겸손하자. 누군가를 가르치기 전에 내가 아직도 배워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는 누군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군가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을 사랑할 뿐이다. 즉, 우리가 사랑하는 건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에 잠심 멈칫해본다. 과연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것인지 되물어보게 된다. 


보는 것은 앎에 대한

언제나 최고의 은유일 것이다.


내가 보는 것이 앎을 위한 가장 첫번째 단계라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 무언가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이 책은 페소아의 독특한 세계를 소개하며 그의 철학을 통해 사랑과 삶에 대해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의 내면과 사유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나 역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들며 오랫동안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다가오는 새해에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한 목표를 설정할 때 우선 나자신을 좀 더 깊이 있게 바라보게 만드는 이 책과 함께 한다면 어떨까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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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소모하는 것들로부터 달아나기 - 소로의 미니멀리즘 러너스북 Runner’s Book 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청경채 편역 / 고유명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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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 들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고유명사의 큐레이션 북으로 러너스북 시리즈의 첫번째 책이다. 여기서 러너스 북이란 책과 달리기로 일상의 건강성을 회복하자는 모티브에서 출발된 시리즈이다. 책은 우리의 정신을, 달리기는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 달리기의 정신과 철학을 바탕으로 러너스북 시리즈는 인생의 마라톤을 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휴식과 힐링을 제공하기 위해 고전 속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작가의 문장을 선별하여 모은 큐레이션 북이다.


'러너스 북' 시리즈의 첫번째 책으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윌든>에서 주옥같은 문장들을 선정하여 편역하여 이 책에 담아내었다. <윌든>은 소로의 대표적인 에세이로 1845년부터 1847년까지 그가 윌든 호숫가 숲속에서 홀리 지낸 삶의 기록이다. 물질적 욕망과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나 간소하고 자립적인 생활을 실천하면서 자연과 인생에 대해 깊이 관찰하고 성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소로의 사상과 인간관을 보여주는 결정체로, 그의 철학적 깊이와 간결하면서도 절묘한 문체를 통해 더욱 가깝게 우리에게 와닿는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최고의 예술 작품에 대해 단순한 관찰이나 감상을 넘어서 우리의 삶을 하나의 예술로 바라보고 정성스럽게 가꿀 때 우리의 하루와 인생은 더욱더 풍성해질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일상에서 지나치기 쉬운 작은 요소들에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소한 것들,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하루와 삶을 이루기에 우리는 아주 작고 소소한 부분들까지고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거짓이 진실을 대변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무엇이 진실인지, 올바른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늘 깨어 있는 태도로 살아야 할 것이다. 수많은 정보와 뉴스 속에서 진실을 판별하기 위해 과연 우리는 어떠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까.


올바른 독서는 단순히 책의 내용을 소비하는 것이 아리나 참된 정신으로 책의 깊이를 이해하고 내면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독서를 통해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을 넘어, 독서를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성찰하며 변화를 불러일으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독서를 일시적인 활동이 아니라 일종의 평생 습관을 받아들이고, 매일 조금이라도 지속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책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배우고 이를 나의 가치관과 비교하며 내면의 성장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올바른 독서를 하기 위해선 책 선정이 아주 중요한데 이 책은 올바른 독서를 위해 딱 맞는 책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흔히 명확하고 선명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삶에서 겉보기에는 좋은 것처럼 보이는 선택이나 환경이 오히려 진정한 길을 가리는 장애물일 될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외부의 빛에 의존하다보면 자기 내면의 빛인 직관과 본질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처럼 들리는 이 문장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는 내면의 성장을 추구하며 살라고 말하는 듯하다. 빛과 어둠의 상징적인 의미를 통해 균형과 본질을 되돌아 보게 만드는 이 문장을 통해 진정한 깨달음과 성숙은 바로 내면에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정말 간결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은 결코 간결하지 않다. 얼마 남지 않은 2024년을 보내며 이 책을 통해 스스로를 뒤돌아보고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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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돌
육월식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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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실처럼 칭칭 뒤엉켜버린 모녀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담고 있으며 미디어창비에서 처음으로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선보이는 전 연령 그림책이다. 그리고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외면하고 싶은 선인장 '인'의 이야기를 통해 나와 엄마 사이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들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은 어느 날 주인공 '인'이 태어나면서 시작된다. 세상에 태어난 인의 눈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바로 '연'이었다.


인과 연, 그리고 몇몇의 선인장은 같은 물을 먹고 한 화분에서 잔다. 한 화분에서 먹고 자는 이들을 모두 가족이라고 하였다. 연은 인에게 먹는 법, 자는 법과 말하는 법,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인은 세상을 살아가는 법 모두를 연에게서 배웠다. 그리고 화분의 분위기는 연이 결정했기에 인은 연이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만 했다. 사실 별다른 연에게서 모든 것을 배웠으니 별다른 연습 없이도 연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이 모든 시간 동안 인은 연이었고, 연은 인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베란다 구석 그늘진 곳에서 살던 이들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인의 앞에 길이라는 라벤더가 나타난 것이다. 이태껏 연하고만 교류하던 인의 앞에 나타난 길은 무엇을 좋아하는 지를 묻고 여태껏 듣지도 알지도 못했던 세상에 대해 인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길은 인에게 자신은 꼭 검은 돌을 던지고 바다에 갈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인은 검은 돌을 던지는 것이 무슨 말인지를 묻고 이에 대해 길은 누군가 어떤 곳을 완전히 떠날 때 등 뒤로 검은 돌을 던지는 거라고 답했다.

그날 인은 연에게 우리도 바다에 갈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연은 바다는 우리가 살만한 곳이 아니라고 답했다. 이런 연에게 다시 한번 인은 그럼 자신은 바다에 가서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정적만이 흐르고 인은 연의 가시 끝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실로 칭칭 감긴 모습으로 서로에게 묶여 있던 인과 연 사이에 균열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은 조금씩 바다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서 조금씩 연에게서 자신을 분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엄마 연에 대한 애증으로 가득했던 인은 드디어 엄마 연에게서 벗어나 바깥으로 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인은 검은 돌을 던지지는 못했다. 그 때문일까. 엄마와 아무리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심리적으로는 독립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 숨을 기르면서 엄마 연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서 인은 숨을 키우면서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연의 모습을 자신이 너무나 닮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그러하듯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어하며 느끼는 복잡하고 미묘한 애증의 감정을 너무나 섬세하게 잘 담고 있어 이 책의 모든 부분에 공감하고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아이 숨을 키우며 다시 세상을 바라보면서 인은 엄마 연이 자신에게 한 모든 행위가 사랑임을 깨닫게 되고 비로소 자기 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 순간 인에게서 '검은 돌'이 뚝 떨어지며 인은 진정한 행복과 따스한 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아이를 양육하면서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의 눈이 아닌 오롯이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진정한 독립을 하게 된 인의 모습은 딱 나의 모습이자, 이 세상 모든 딸들의 모습이 아닐까.


이 책을 통해 나와 엄마와의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어릴 적 일을 했던 엄마가 늘 그리웠던 나는 내가 중학생이 되어서 엄마가 일을 그만두었을 때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맛난 간식을 주는 엄마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이야기 하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행복했었던지. 정말 너무나 평했던 그 일상이 요즘에는 참 그립다.


나 역시 엄마가 되고서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한때는 나는 절대로 엄마처럼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어린 나의 어리석음과 엄마가 왜 그토록 나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었는지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마음을, 행동들을, 말들을 이제 나는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 이 책의 인처럼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의 딸이 아니라 오롯이 나로서 세상에 서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고, 나의 아이들 역시 어린 내가 느꼈던 나와 비슷한 감정을 나에게서 느끼겠지. 부디 나의 아이들은 검은 돌을 나보다 쉽게 던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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