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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살리고 싶어서 -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싸웠던 외상외과의 1분 1초
허윤정 지음 / 시공사 / 2024년 12월
평점 :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제목인 '또다시 살리고 싶어서'과 소제목의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싸웠던 외상외과의 1분 1초'만 보아도 외상외과에서의 시간이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가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병원 내에서도 가장 죽음과 가까운 곳,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바닥을 가장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는 외상센터에서 의사로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단국대학교 권역외상센터에서 일하는 외상외과 의사이다. 이 책은 먼저 외상센터는 사실 책이나 쓸 정도로 한가한 곳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사고가 끊이지 않고 늘 인력이 부족한 곳이다. 그런 곳이기에 혹자는 책 쓸 시간에 환자나 한 명 더 살리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맡았던 환자의 마지막 순간과 그 때의 감정, 그리고 그들의 인생을 모나게 했던 풍파에 대해 알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읽다보니 의사 중에서 가장 극한의 멘털과 체력이 필요한 곳에서 저자를 버티게 한 것은 바로 환자를 향한 지독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오로지 환자를 살려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순간 순간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자꾸 목이 메어온다. 그리고 환자를 향한 그 지독한 사랑과 진심이 너무나 생생하게 전해진다.
외상센터에 있다보면 죽음을 자주 목도할 수 밖에 없다. 그곳은 CPR이 일상적인 곳이다. 사실 CPR을 언제까지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외상 환자의 경우 손상 이후 경과한 시간과 그 손상의 정도에 따라 중단의 여부가 결정된다. 권역 밖에서 이미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온 할머니 환자의 CPR의 중단 여부를 보호자에게 물으러 간 저자는 제발 CPR을 멈추지 말아달라는 보호자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가 5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CPR을 그만해 달라고 한 자신을 5년간 미친듯이 후회했다는 말에 그러한 결정을 내렸던 거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중단하는 것이 맞다고 할 수 있지만 남겨진 유족의 마음을 헤아려 멈추지 않고 더 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위로의 말을 건네는 장면은 다시 울컥하게 만든다. 그리고 의사는 단지 사람을 살리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인건의 존엄과 감정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함을 다시금 깨달아본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치유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이토록 많거늘 우리는 너무나 차가운 시선을 그들에게 던졌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1분 1초를 다투어 어렵사리 살려낸 환자가 "저를 왜 살리셨어요."라고 말하였을 때 저자는 그 어떤 메스보다 더 깊고 예리하게 가슴을 후벼파는 듯했다는 사연에서 자살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말을 한 환자를 향해 "당신이 열두 번 실려 와도, 또다시 살려 낼 겁니다."라고 말할꺼라는 저자의 말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동안 우리는 의사를 단순한 생명의 연장을 위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라고 여긴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끝까지 생명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저자의 답에 인간의 생명이 지니는 가치와 존엄을 다시 깨닫게 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절망을 마주할 때 우리는 판단보다는 이해와 지지로 다가가야 함을 배우게 된다.
저자는 두 가지 이유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먼저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을 거쳐간 환자들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의료 대란 이후 힘겹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필수 의료 종사자들에게 관심과 응원을 부탁하기 위해서이다. 처음 외상외과 의사가 되고자 했던 그 소중한 마음들이 지쳐 사라지고 있다는 저자의 고백에 의료 대란 이후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해하기에 앞서 당장의 불편함만을 보고 얼마나 날카롭고 차가운 시선 보냈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렇기에 이 책 가득 담긴 저자의 이야기들은 지금 우리가 그들에게 내어야 목소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그들을 응원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이 책은 마지막에 부록으로 '가족의 생명을 지키는 법'을 통해 저자는 외상 사고를 피하고 가족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상세하게 담고 있다. 그 방법들을 하나씩 읽다보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외상 사고를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모든 사고는 예고편은 없지만 일상 생활 속의 많은 부분에서 조심하고 부록에 실린 안전을 위한 방법들을 지킨다면 큰 사고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생생하게 담긴 사람이 죽고 사는 이야기, 사람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지, 의사로서의 사명감 등 솔직한 고백들을 들려줘서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또 다시 살리고 싶어서' 의료 현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그들의 진심을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