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문방구 2 : 어쭈 도사의 비밀 아무거나 문방구 2
정은정 지음, 유시연 그림 / 창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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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이야기를 무엇이든 들어주는 매력 만점의 도깨비가 운영하는 문방구가 다시 문을 열었다. 독창적인 설정과 유쾌한 전개로 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은 '아무거나 문방구' 시리즈가 두번째 이야기로 돌아왔다. 1권, <아무거나 문방구 1: 뚝딱! 이야기 한판>에서 도깨비 아무거나와 고양이 귀신 어서옵쇼가 신비한 물건으로 어린이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면서 따뜻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번 책, <아무거나 문방구 2: 어쭈 도사의 비밀>에서는 새로운 인물인 어쭈 도사가 등장하여 더욱 흥미로운 모험을 펼친다.


어쭈 도사가 문방구에 남긴 비밀스러운 그림 족자, 그리고 만나자마자 티격태격하는 도끼비 아무거나와 어쭈 도사의 관계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신비로운 사건과 유쾌한 캐릭터, 그리고 아이들이 문방구에서 마법 같은 물건을 얻으며 용기를 키우며 고민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 생동감 있게 펼쳐져 이야기 속에 쏙 빠져들게 만든다.


이 책의 이야기는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앞이야기'로 시작된다. 한밤중, 깊은 잠에 빠진 도깨비 아무거나를 찾아 한 장의 종이 쪼가리가 날아든다. 그런데 이 종이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바로 어쭈 도사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앙숙 관계인 두 존재의 특별한 사연이 앞 이야기에서 밝혀진다.

과거, 어쭈 도사는 아무거나를 골탕 먹이려다 오히려 이야기 내기에 휘말려 자신도 모르게 비밀을 술술 털어놓고 만다. 문제는 그 이야기가 다름 아닌 산신령들의 비밀이었다는 거다. 결국, 어쭈 도사의 말은 대나무를 타고 퍼져 나가 산신령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그날부터 그는 산신령을 피해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이 사건 이후, 아무거나와 어쭈 도사는 서로를 골탕 먹이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앙숙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어쭈 도사는 한밤중 아무거나 문방구에 몰래 침입해 아무거나가 모르는 사이에 계약서에 손도장을 찍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계약서에는 도사가 휴가를 떠나는 동안 아무거나가 도사의 집을 청소하고, '얼씨구나 그림 족자'를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된다는 조건이 적혀 있다. 언제나 똑 부러지고 유능한 모습이었던 아무거나가 어쭈 도사의 꾐에 빠져 억울해하는 장면이나, 티격태격하며 보여 주는 이 둘의 앙숙 케미는 예상치 못한 웃음을 선사하며 우리를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제일 처음 나오는 '어쩌다 빨간부채 파란부채 세트'이야기의 주인공 지희는 예전에 아무거나 문방구에 갔을 때 '어저다 빨간부채 파란부채 세트'를 손에 넣게 된다. 부채를 휘두르면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신기한 능력에 빠진 지희는 몸의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하며 장난을 치면서 짜릿한 쾌감을 맛본다. 하지만 장난이 지나쳐 결국 개구리에게 통째로 삼켜지는 예상치 못한 위기에 처하고 만다. 오빠 지우는 지희를 구하기 위해 개구리를 데리고 아무거나 문방구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지희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솔직한 속마음을 털어놓고서야 아무거나 문방구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비로소 개구리 배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아무거나 문방구' 시리즈는 느닷없는 마법으로 아이들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기존의 판타지 동화와는 차별하된 구조로 주목 받았다. 아이들은 문방구를 찾아와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여기서 아무거나는 단순히 어린이의 마음을 읽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자신들의 고민과 마주하고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에 가깝다. 문방구에서 얻은 신비로운 물건들 역시 고민 해결의 직접적인 열쇠가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문제를 직면하도록 돕는 매개체일 뿐이다.


이 책에서도 지희 외의 다양한 어린이 손님들이 '구구절절 옛이갸기 물건' 코너에서 자신에게 꼭 맞는 물건을 발견한다. 거짓말이 습관이 된 승우는 그림을 그리면 무엇이든 진짜로 만들어 주는 '알쏭달쏭 요술붓'을, 인기를 얻고 싶은 주아는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단방귀 젤리'를, 친구의 새 물건을 탐내는 동화는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얼씨구나 그림족자'를 손에 넣는다. 이들은 마법 같은 물건 덕분에 순간적인 즐거움을 느끼지만, 결국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뿐더러 더욱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문방구를 찾아와 아무거나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반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처럼 아무거나 문방구는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특별한 장소가 된다.


그리고 본문의 이야기가 끝난 후 부록처럼 실린 '도깨비 이야기 장부'는 1권과는 달리 미래를 살아가는 아무거나의 모습을 재미있게 담아 읽는 재미를 더욱 배가시킨다. 앞으로 또 어떤 손님들이 아무거나 문방구를 찾아와 이야기를 펼치게 될 지 너무나 기대되는 <아무거나 문방구 시리즈>의 3권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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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과학자 - 망망대해의 바람과 물결 위에서 전하는 해양과학자의 일과 삶
남성현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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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과학자에 대한 궁금증으로 읽게 된 책이다. 과연 해양과학자의 삶은 어떠한 모습인지, 그리고 바다 위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는 과연 무슨 일을 할지 너무 궁금했다. 우리가 푸른 행성이라 부르는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바다는 여전히 신비로운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인류는 달에 발자국을 남겼지만, 바닷속 깊은 곳을 탐사한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다. 바다는 기후를 조절하고 생태계를 유지하며, 수많은 생명체를 품고 있지만, 우리는 바다가 어떻게 움직이고 변화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 이 책은 75회 이상 승선 조사를 경험한 해양물리학자 남성현 교수가 직접 바다로 나가 탐구한 바다의 진짜 모습을 담고 있다. 거친 파도와 태풍을 마주하며 관책해온 연구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바다라는 거대한 세계를 탐험하는 듯한 흥미진진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듯하다


이 책은 우리가 바다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바다의 극히 힐부분에 불과하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시작한다. 해변에서 눈으로 보이는 영역은 바다의 끝자락일 뿐, '진짜 바다'는 수평선 너머로 펼쳐진 광활한 공간이다.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거대한 물순환과 기후 조절을 담당하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다. 태평양만 해도 지구 표면의 3분의 1을 덮을 만큼 광대한데, 그 속에는 미생물과 플랑크톤부터 거대한 고래까지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가며 복잡하고도 풍부한 해양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바다는 단순한 물의 집합이 아니라, 지구 전체와 연결된 생명과 에너지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순환하고 변화하는 존재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달아본다.


그리고 이 책은 바다 연구가 단순한 학문적인 연구를 넘어 예측할 수 없는 생생한 경험임을 보여준다. 연구를 위해 깊은 바닷속에 설치한 센서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상어와 마주하는가 하면, 망망대해에서 몇 달씩 생활하면서 뱃사람과 같은 감각을 익여가는 저자의 여정이 아주 흥미롭게 펼쳐진다. 저자는 문어잡이 배부터 거대한 쇄빙선까지, 국내외 다양한 선박을 타며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 심지어 남극까지 탐사하며 바다를 연구해왔다. 배 위에서의 생활은 단순한 과학 연구에 그치지 않는다. 태풍을 피해 열린 바베큐 파티, 흔들리는 배 안에서 안전하게 잠는 법, 예상치 못한 해양 생물과의 조우 등 오직 바다 한가운데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들이다. 또한 연구 과정에서 어촌 주민들의 도움을 받거나 어업 활동을 돕는 등 과학자의 삶과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모습도 꽤 인상적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바다를 연구하는 일이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지구 환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바다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통찰을 인생에 대한 성찰로 확장한다. 높은 파도를 만나 몸을 가누기 어려운 순간이나, 태풍이 지나간 후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인생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그리고 그는 해양과학자로서 인생을 파도에 빗대어 말한다. 파도는 서로 다른 바닷물이 만나며 생겨나고, 결국 조화를 이루면 사그라든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각자의 파장이 있으며, 잘 맞으면 조화로운 관계가 되고, 맞지 않으면 거친 물결처럼 충돌하기도 한다. 저자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하나의 웨이브로 그려보며, 해양과학자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흐름을 성찰하는 데 이러한 시선은 꽤 신박하면서도 공감이 되어 나 역시 나의 삶에 대해 함께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 책은 해양과학이 단순한 학문적 탐구를 너머, 기후변화와 해양 주권이라는 중요한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2022년과 2024년 동일한 해역에서 승선 조사를 수행하며 직접 이상기후를 경험했다. 불과 2년 만에 극적으로 변화한 강우량은 바다가 기후 조절자로서 수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바다와 대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담수, 열, 기체 교환은 지구 기후 시스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를 연구하는 것이 기후 위기의 해결에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해양 연구의 필요성과 우리나라 해양 주권 문제를 강조한다. 국토 면적의 4배가 넘는 해양 영토를 지닌 한국은 해양 자원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할 시대에 접어들었다. 조선시대 문순득이 바다를 통해 여러 나라를 떠돌았던 사례를 통해, 해양이 문화, 경제,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며, 한반도 주변 해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바다에 관한 관심과 연구가 필수적임을 역설한다. 기후 위기 시대, 그리고 국제적 경쟁이 격화되는 지금, 바다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일은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을 넘어 우리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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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빙수 눈사람 펑펑 2 팥빙수 눈사람 펑펑 2
나은 지음, 보람 그림 / 창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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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출발은 누구에게나 기대와 불안을 함께 안겨준다. 하지만 따뜻한 응원이 있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갈 용기를 낼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용기를 아이들에게 전하는 책이다. 하얀 눈으로 덮인 팥빙수산 꼭대기, 마법 안경을 만드는 눈사람 펑펑이 운영하는 안경점에는 새로운 직원 북극곰 스피노가 찾아온다. 서툰 시작과 예상치 못한 실수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으며 성장하는 두 친구의 모습은 따스한 위로와 용기를 함께 전한다.


특히, 손님들이 가져온 코코넛, 쑥떡, 펭귄 젤리 등의 개성 넘치는 재료로 만들어지는 색다른 빙수들의 이야기는 전편보다 더 재미를 더하고, 보람 작가의 감각적인 그림은 각 이야기에 딱 맞는 감정의 색을 더욱 풍부하게 보여주고 있다. 새 학기를 앞둔 우리 아이들에게 딱 맞는 이야기가 가득 담긴 이 책을 통해 낯선 환경과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설레임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펑펑의 안경점을 찾은 첫 번째 손님은 바로 여행 잡지 '방방곡곡'의 스타 여행가 만국이다. 만국은 오랜 시간 세계를 누비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지만, 반복되는 여행에 흥미를 잃고 처음 여행했던 나라의 모습을 본 뒤 여행을 이제 마무리 하려고 한다. 만국의 팬이었던 펑펑은 아쉬움을 감추며 만국에게 어울리는 망원경을 만들어준다. 망원경을 통해 자신의 여행을 되돌아 본 만국은, 자신에게 있어 진정한 즐거움이 새로운 장소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경험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특히 첫 여행 중 다양한 요리에 코코넛을 넣어 만들과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었던 순간이 가장 행복했음을 떠올리며, 여행가가 아닌 요리사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게 된다.


만국이 떠난 뒤, 새롭게 발간된 방방곡곡이 안경점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 속에 실린 만국의 글은 여행기가 아니라 세계 각국의 요리를 소개하고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조리법을 전하는 내용이었다. 더욱 반가운 소식은 그의 새로운 요리의 이름을 '스피노 스파게티'로 명명한 것이다. 북극곰 스피노의 이름을 딴 이 요리를 통해 만국은 펑펑과 스피노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동시에 새로운 즐거움을 함께 나누었던 것이다. 이 글을 접한 펑펑과 스피노 역시 행복했겠지? ^^


다음으로 안경점을 찾은 손님은 전학을 앞두고 긴장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윤우였다. 안경을 통해 전학 갈 학교의 친구들을 미리 보긴 했지만, 윤우의 불안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에 펑펑과 스피노는 친구들이 좋아하는 농구를 미리 연습해 가는 방법을 제안한다. 노력 끝에 등교 첫날 멋지게 골을 성공시키며 윤우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손님 주아는 펭귄의 터전이 사라질까봐 불안해 하고 있었다. 펑펑과 스피노는 주아를 위해 펭균의 삶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마법 안경을 만들어준다. 용감하게 환경의 변화에 맞서 살아가는 펭귄들의 모습을 본 주아는 두려움 대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특히,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물과 종이를 아껴 쓰며,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작은 습관을 실천하기로 한 장면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신만의 방법을 고민해 볼 시간을 기회를 얻을 수 있을 듯하다.


새로운 환경과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누구에게나 두려운 법이다. 하비만 팥빙수 눈사람 펑펑은 현재의 나에게 집중하고 경험을 쌓는 것이 결국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이 책은 내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안경점을 찾은 손님들은 자신의 고민들과 마주하고, 느낀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곧 올바른 소통과 건강한 관계 형성의 중요한 연습이 된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펑펑과 스피노의 응원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며 한 걸음 앞으로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쭉 팥빙수 눈사람 펑펑의 이야기는 함께 될 것 같은데 다음 시리즈는 또 어떤 이야기로 우리를 찾아올 것인지,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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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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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무법자>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다. '무법자'라는 단어는 범죄와 폭력을 떠올리게 하지만, 여기에 '나의'와 '작은'이라는 수식어가 포함되니 묘한 애착과 연민이 들어가버린다. 대체 누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작은 무법자가 되어버린 사람은 과연 누굴까?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골드 대거상, 식스턴 올해의 범죄소설상, 네드 켈리 국제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일본 출간 직후 서점 대상 번역소설부분상을 수상하였고, 디즈니 + 에서 시리즈의 제작이 확정되기까지 했다고 하니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30년 전 한 사건으로 시간이 멈춰버린 작은 마을 케이브 헤이븐. 그곳에서 스스로 '무법자'가 되길 자처한 열세 살 소녀 더치스와 과거의 죄를 짊어진 채 돌아온 빈센트 킹의 만남은 운명의 소용돌이를 불러온다. 페이지마다 엄청난 서사와 깊은 사연이 깃들어 있는 이 책은 슬픔과 상처를 품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강렬한 감동을 선사하며 단숨에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깎아지른 절벽 너머로 햇살이 부서지는 작은 마을, 케이프 헤이븐. 그곳의 경철 서장 '워크'의 시계는 30년 전, 열다섯 살의 '빈센트 킹'이 '시시 래들리'라는 아이를 죽이고 살인죄로 성인 교도소로 수감된 이후로 멈춰 있다.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유일한 존재는 죽은 시시의 언니이자 그의 오랜 친구였던 스타 래들리, 그리고 그녀의 아이들 뿐이다.


이야기는 한밤중, 긴박한 소란 속에서 시작된다.술과 약에 빠져 제대로 삶을 꾸려나가지 못하는 엄마 스타 대신 열세 살의 더치스는 다섯 살 어린 동생 로빈을 지키기 위해 나이보다 빠르게 성숙해 버렸다. 그런 그녀는 쓰러진 엄마, 스타를 구급차에 태운 채 그녀를 지켜본다. 그리고 어린 동생 로빈이 불안하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워크. 집 앞에는 한방중의 소란을 지켜보며 수군거리는 마을 사람들이 서 있다. 곧 어린 남매는 병원 대기실에서 엄마의 상태를 알지도 못한 채 불안하게 기다린다. 그리고 워크와 더치스의 이어지는 대화에서 더치스는 스스로를 무법자라 칭하고 있다. 너무나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 그리고 스스로를 무법자라 칭하며 버티는 더치스의 모습은 그동안에 이 아이가 받았을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져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면서 이야기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또 하나의 거대한 파도가 밀려온다. 바로, 살인자 빈센트 킹이 출소해 돌아온다는 소식이다. 30년 전 사건으로 모든 것이 멈춰버렸던 케이프 헤이븐에서, 그의 귀환은 어떤 파장을 일으킬까? 더치스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시 한번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빈센트 킹이 돌아와도 아이들과 스타의 삶은 괜찮은 걸까? 그런데 30년 동안 변함없이 그를 기다려온 사람이 있다. 바로 경찰 서장 워크. 그가 품어온 기다림을 들여다 보면 빈센트 킹은 그리 나쁜 사람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과연 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곳에 다시 찾아온 비극의 그림자는 과연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일까? 이 모든 질문 속에서 이 책은 강렬한 서사 속으로 자꾸만 끌어당긴다.


더치스는 집세를 내지 못하는 엄마를 위협하고 협박하는 다크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어린이다운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그녀는 다크의 가게에 불을 지르고, 안에 있던 비디오 테이프를 보험 삼아 가지고 나와 쓰레기통에 버린다. 하지만 그 작은 반항은 걷잡을 수 없는 사건의 도화선이 되고야 만다. 다크는 곧 더치스의 짓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그녀를 위협했고, 두려움에 휩싸인 더치스는 결국 엄마 스타에게 자신의 실수를 고백한다. 비록 스타는 동생 로빈의 생일을 싸그리 잊어버릴 정도로 무책임한 엄마였지만, 더치스 역시 여전히 아이였다. 그래서 그녀는 한 번쯤은 엄마에게 기대고 싶었던 거다. 그런 더치스를 보며 스타는 다정한 목소리를 말했다. "누구나 나쁜 짓을 해." 그리고 더치스에게 "내가 널 지켜줄게. 그게 엄마들이 하는 거니까."라고 말한다. 그 순간, 더치스의 마음은 흔들리고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녀였지만, 그 말에 거의 울 뻔했다. 완벽하진 않아도, 엄마는 엄마였으니까.

그리고 그 날 밤, 더치스는 엄마가 잊어버린 동생 로빈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몰래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온다. 하지만 집 앞에는 평소보다 많은 경찰이 몰려 있었고, 그들의 반응이 어딘가 이상했다. 불길하 예감이 스쳐 지나가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을 직감한 더치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엄마 스타의 싸늘한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다시, 빈센트 킹은 살인 용의자로 수감된다. 이번 죄목은 '스타 래들리 살해'이다. 더치스는 빈센트에 대한 분노와 세상을 향한 복수심을 억누르며 동생 로빈과 함께 생면부지 외할아버지 '핼'에게 맡겨진다. 낯설고 광활한 핼의 농장, 너무나 넓어서 황량하기까지 한 그곳에서 더치스는 '맞아서 시커멓게 멍든 엄마의 갈비뼈를 생각나게' 하는 허클베리를 씹으며 진정한 무법자가 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엄마의 죽음으로 더욱 깊어진 더치스의 상처와 분노에 그동안 연을 끊었던 외할아버지에 대한 원망까지 더해져 더치스의 가슴에는 분노가 끓어오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는 핼의 진심과 엄마 스타와의 이야기 속에서 점점 더치스는 핼에게 의지하고 마음을 열어가지만 더치스의 인생의 역경은 끝이 없다. 과연 더치스와 로빈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매일 끊이지 않는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는 남매의 이야기는 너무나 가슴 아프면서도 제발 그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길 가슴 졸이게 만든다.

 

이 책은 저자의 말처럼 단순한 범죄소설만은 아니다. 저자는 더치스의 거친 성장기를 통해 선택과 운명, 복수와 용서에 대한 깊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책장을 넘길 수록 이 소녀의 삶에 점점 더 몰입하게 되고, 그녀가 과연 이 잔혹한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애태우며 지켜보게 된다. 이 소설은 저자의 말처럼 "실수에 관한 이야기, 다시 일어나 한 걸음씩 발을 내딛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서 이 책은 더 깊은 여운과 울림을 남긴다. 6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하나도 길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휘몰아치는 사건들 속에 눈을 뗄 수 없엇고, 절대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으며, 울컥하고 올라하는 복잡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더치스를 통해 삶과 용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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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의 필요 청색지시선 11
김지윤 지음 / 청색종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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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의 필요>, 이 독특한 제목이 먼저 나를 끌어당겼다. 피로가 필요하다니, 역설적인 이 말 속에 과연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을까.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피로는 대채 떨쳐내야할 대상이지만 시인은 오히려 그 피로를 들여다보며 무엇이 우리를 지치게 하고, 또 그 안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는 듯하다.

이 시집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지윤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다. 지난 2012년 <수인반점 왕선생> 이후 13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집으로, 긴 시간 동안의 사유와 문학적 탐구가 담긴 시편들로 채워져 있다. 등단 이후 깊이 있는 시선과 절제된 언어로 주목받아온 시인은 시와 비평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문학적 자리를 공고히 해왔다. 이번 시집에서 더욱 확장된 사유와 밀도 높은 감각은 한 편 한 편 오랫동안 시집 안에 머물게 만든다.


표제시 <피로의 필요>에서 '피로'는 단순히 삶의 부산물이 아니라 멈추어야 할 순간을 가르쳐 주고,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하게 하며 삶의 방향성을 다시 묻는 자리로 확장된다. 롤러코스터의 무한한 궤도를 따라 달려가던 우리는 결국 엔진 없는 열차처럼 멈출 수 밖에 없고, 그 순간에야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내면을 마주하게 된다. 이 시에서 피로는 존재의 내면을 파고드는 성찰의 도구이며 고통스럽지만 불가피한 진실을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김지윤 시은은 "피로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하고 사색을 위한 어두운 방을 제공하며, 삶의 다른 국면을 열어주는 중요한 고비, 생의 문장 속에서 계속 등장하는 쉼표, 그리고 질문의 시작점과 같은 거죠"라고 말한다. 이처럼 <피로의 필요>는 피로가 만들어 준 여백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본질적인 물음을 던지게 된다. 무엇을 원하는가,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피로는 단순한 소진이 아니라, 다시금 방향을 찾고자 하는 몸과 마음의 신호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리고 <헛묘>는 제주 4.3 사건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불러내며, 잊힌 존재에 대한 애도의 의미를 묻는다. 시작 화자는 여행책자나 역사책, 심지어 국립현충원과 전쟁기념관에서도 자신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공식적인 기억에서 배제도 4.3 희생자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화산송이 흙, 까마귀 울음, 바람등칡 꽃과 마삭풀 덩굴처럼 제주 속에 스며있다. 그렇기에 시인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진정한 애도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존재를 기억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발한다. "부디 눈을 뜨고 / 오랫동안 귀 기울여 주세요"라는 간절한 호소는 역사를 바로 보고 우리가 기억할 것들은 기억해야 함을 깨닫게 만든다. 그렇기에 이 시는 단순한 과거의 회상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드는 시다.

<실수>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우리가 저지리는 실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기름을 쏟고 그것을 닦으려 애쓸수록 얼룩이 번지고 바닥이 더 미끄러워지듯 우리의 실수도 지우려 할수록 다 큰 흔적을 남기곤 한다. 시인은 담담한 언어로 실수의 본질을 조용히 들어댜 보게 하며, 때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전한다. 단순한 경험 속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포착하는 이 시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실수와 마주하는 방식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 시집은 잊힌 기억과 존재를 불러내어 역사와 삶의 깊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분단과 4.3 사건과 같은 역사적 비극을 현재로 소환하며, 애도하지 못한 존재들을 시적 언어로 복원한다. 또한 고정된 틀을 거부하고 모순과 역설 속에서 다층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만든다. 이 시집은 기억과 사유, 애도와 시작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시선을 열어준다. 그렇기에 이 시집을 읽으며 머무는 시간동안 잊혀진 삶의 조각을 되찾고, 사유의 여백 속에서 '다음 시작'을 향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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