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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 - 제2회 현대문학*미래엔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하유지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9월
평점 :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소설 쓰기에 몰두하는 중학생 미리내와 가사노동용 로봇 아미쿠 사이에 싹트는 특별한 우정을 담아내고 있다. 제2회 현대문학·미래엔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으로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관계성과 창작의 의미를 섬세하게 탐구한다. 미리내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아미쿠는 어설픈 로봇이지만 그녀의 글과 마음을 누구보다 진심으로 읽어주는 첫 번째 독자다. 외로운 청소년이 로봇과의 교감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함께 성장해가는 과정을 따뜻하고 유쾌하게 담아낸 이 책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인간과 인공지능이 친구가 되어 서로를 이해하고 변화시킨다는 설정은 흥미로우면서도 현실적으로 다가오며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청소년의 정체성과 감정을 진지하게 조명하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책의 이야기는 주인공 강미리내가 귀가하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낯선 존재인 가정용 로봇 아미쿠 3.1과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고장 난 가족, 끊어진 관계, 글쓰기 외에는 위로 받을 길 없는 미리내의 일상 속에 불쑥 들어온 아미쿠는 충전판 위에서 조용히 그녀를 맞이한다. 단순한 청소 도우미가 아니라 가정교사 기능까지 갖춘 최신형 인공지능 로봇이지만 미리내의 눈에 아미쿠는 아빠를 제주도로 밀어낸 기술이며 결코 환영받지 못할 존재다.
주인공인 미리내는 글쓰기 외엔 친구도, 소속감도, 자존감도 없는 중학생이다. 그녀는 자신을 빛나지 않아도 괜찮은 존재로 여기지만, ‘도로시’라는 필명을 가진 작가로는 찬사를 받고 싶어 한다. 아미쿠는 그런 미리내의 일상에 강제적으로 끼어든 존재로 그들의 어색한 첫 만남은 곧 관계의 전환점을 예고하는 듯하다. 로봇과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게 되는 이 책의 설정은 단순한 흥미 요소를 넘어 인공지능이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오늘날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 가정교사 기능까지 탑재된 가정용 로봇이 한 소녀의 집으로 들어오고 점차 이들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어 간다는 전개는 현실성과 상상력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깊은 공감과 사유의 여지를 남긴다.
소설의 초반부는 사고뭉치 로봇 아미쿠로 인해 벌어지는 뜻밖의 전개로 흥미를 끌어당긴다. 가사와 학습을 돕기 위해 미리내의 집에 들어온 최신형 가정용 로봇 아미쿠는 기대와 달리 매번 집안일에 실패하며 미리내를 곤란하게 만든다. 결국 미리내는 엄마에게 로봇을 반품하자고 말할 만큼 아미쿠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순간, 아미쿠는 “저는 미리내의 기억 속에 실패한 로봇으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며 예상치 못한 감정의 전환을 이끈다. 이 한마디는 미리내가 포기한 자신의 소설과 실패한 꿈을 떠올리게 만들고 두 존재 사이에 묘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리고 아미쿠는 조용히 미리내의 정체를 알아차린 듯 말한다. “소설 잘 읽었습니다, 도로시.”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필명과 감춰둔 미리내의 꿈을 알아챈 로봇의 이 말은 단순한 도구로 보였던 아미쿠와의 관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불어넣는다. 이 장면을 기점으로 둘은 각자의 약함을 받아들이며 함께 성장해가는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아미쿠와의 관계가 그렇게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이후 미리내의 삶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온다. 미리내는 자신이 쓴 소설의 초고를 아미쿠에게 전송하고 아미쿠는 곧바로 원고를 분석해 구체적인 피드백을 제공한다. 문단 분할, 시점 변화, 도입부 수정 등 아미쿠의 조언은 단순한 기능적 조율을 넘어 이야기의 몰입도와 완성도를 높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도 아미쿠는 결코 강요하지 않고 창작의 주도권을 끝까지 미리내에게 남겨둔다. 이 과정에서 미리내는 스스로의 글을 되돌아보고 자신이 놓치고 있던 서사의 흐름과 캐릭터의 생동감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글이 달라지고 조회 수도 오르기 시작하자 미리내는 아미쿠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함께 소설을 만들어가는 조언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아미쿠는 미리내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고 그러자 미리내는 아미쿠가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게 된다. 집안일은 엉망이지만 소설이라는 세계에서는 미리내를 가장 잘 이해하고 함께 성장하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를 알아본 로봇 아미쿠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미리내는 처음으로 글쓰기를 누군가와 함께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조회 수는 오르고, 문장은 더 생동감 있어지고, 도로시라는 이름 아래 그녀의 이야기는 점점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성취의 기쁨도 잠시 미리내는 자신이 쓴 글이 어디까지가 자신의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누구보다 내 글을 잘 이해하고 조언해주는 존재가 기계라는 사실은 창작의 의미를 되묻게 만든다. 로봇도 문학을 감상할 수 있을까? 그 안에 마음은 있을까? 이 책은 단순한 성장이야기를 넘어 인공지능과 함께 창작하는 시대에 인간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러던 어느 날, 미리내는 같은 반 친구들로부터 자신의 소설이 인공지능의 작품이라는 의심과 비판에 직면한다. 분명 스스로 써낸 글이지만 일부 도움을 받은 사실 앞에서 미리내는 선뜻 반박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지게 되는 데 미리내와 아이쿠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될까? 이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길 추천해본다.
결국 이 책은 외로운 청소년과 인공지능 로봇이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우정과 자아 발견의 의미를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간과 AI의 관계를 감정과 소통의 차원에서 섬세하게 조명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믿고 써 내려가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그리고 독자에게도 나의 이야기 또한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