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라이터
앨러산드라 토레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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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이 마구 생기는 책이다. 이 책은 한 유명 작가의 말할 수 없었던 어두운 비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3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그녀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그녀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놓는 것이다. 부와 명성을 모두 가진 베스트셀러 작가 헬레나 로스는 32살이라는 나이에 암 말기 진담과 함께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그녀는 충분히 준비가 되었을 때, 그러나 반드시 죽기 전에는 쓰려고 미뤄두었던 그녀의 마지막 소설을 더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단 3개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작품을 완성시키기란 불가능하다. 그녀는 결국 자신의 마지막 소설을 도와줄 대필 작가를 찾게 되는데.. 헬레나가 그토록 쓰고 싶어 하는, 죽기 전에 꼭 써야 한다고 생각한 지난 4년간 비밀로 간직해 온 그날의 이야기란 도대체 무엇일까?

"완벽한 아침. 완벽한 남편. 완벽한 딸. 완벽한 거짓말.(p9)"


 이 책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프롤로그 속 헬레나와 그녀의 남편 사이먼, 그리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딸 베서니와 함께 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아침의 모습들. 누구나 꿈꾸는 행복한 풍경 그 자체다. 하지만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면서부터 이야기의 분위기는 완전히 바뀐다. 

 본격적인 헬레나의 이야기는 그녀가 말기 암에 걸려 본인에게 남은 시간이 3개월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죽음 자체를 그다지 끔찍하게 생각치는 않는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보니 그동안 미뤄두었지만 반드시 써야 할 그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4년 전, 헬레나는 경찰과 그녀의 친구들 그리고 가족 앞에서 그녀 인생 최고의 거짓 이야기를 꾸며 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그녀의 이야기를 믿었다. 사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야 말로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타고난 그녀의 능력이었다. 15권의 베스트 셀러, 수백만의 팬. 부와 명성을 모두 가진 그녀는 지금 친구도 가족도 없이 홀로 죽음 앞에 서게 되었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3개월. 죽기 전에 꼭 해야만 하는, 4년이란 시간동안 회피했던 그 진실과 마주서서 이야기로 풀어내야만 한다.

 헬레나는 자신의 편집자 케이트에게 은퇴를 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집필 중인 작품도 중지하겠다고.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쓸 예정이며 그 이야기는 시놉시스도 없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꼭 쓸거라고 말이다. 헬레나의 말에 케이트는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케이트가 아무리 어떤 말을 해도 까칠하고 예민한 헬레나의 마음은 역시나 되돌려지지 않았다.


 케이트와의 전화를 끊고 나서 헬레나는 자신이 쓰고자 하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의 작업 속도로 볼때 3개월안에 이 작품을 완성 시키기란 불가능하다. 헬레나는 자신이 죽기 전에 다 완성하기 위해서는 대필작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케이트에게 대필 작가를 구해달라고 하는데, 헬레나가 요구하는 대필 작가는 헬레나의 몇 년가 서로 이메일로 비난과 공격을 서로에게 주고 받던 마르카 반틀리다. 케이트는 도무지 헬레나를 이해할 수가 없다. 하여 헬레나를 찾아가게 되는데, 그녀를 직접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헬레나 로스는 은퇴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죽어가고 있는 거라는 것을.. 그리고 얼마후 마르카 반틀리가 헬레나를 찾아온다.

 헬레나와 몇 년동안 비난과 힐난의 이메일을 주고 받았던 마르카 반틀리가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남자라니. 남자라고 해서 그녀가 대필 작가를 다른 사람으로 구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놀란 것은 마크 포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지긋하고 꼬장꼬장한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던 헬레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다가 자신의 딸보다 겨우 열살 정도밖에 많지 않은 너무나 어린 여성이었던 거다. 헬레나는 마크 포춘에게 자신의 글을 대신 써달라고 부탁을 하고 마크 포춘은 헬레나의 상태를 알아차리게 되면서 헬레나가 죽기 전에 꼭 써야 한다는 그 소설을 대필하게 된다.


 이 책은 헬레나가 죽기 전에 꼭 완성하고자 하는 소설과 4년 동안 회피했던 그 진실을 한 줄기로 하고, 또다른 줄기로는 헬레나와 마크 포춘의 우정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간이 흘를 수록 앙숙이었던 헬레나와 마크 포춘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우정을 쌓게 되는 과정들이 참 따스하여 좋다. 그리고 헬레나가 4년 동안 피하고자 했지만 죽기 전에 꼭 알리고자 했던 이야기는 그야말로 섬뜩하다. 헬레나에게 계속 연락을 취하는 샬럿 블랜튼의 정체도 그 이야기의 결말과 함께 풀리게 되는데 그야말로 반전 그 자체다.


 그리고 헬레나를 끝까지 챙겨주는 편집자 케이트와 대필작가 마크 포춘으로 인해 헬레나는 쌀쌀하고 까칠한 헬레나가 시간이 갈수록 조금 말랑해지는 것은 참 좋은데, 이 때문에 마지막 장면에서 꽤 많이 울컥해지고야 만다. 헬레나의 어두운 비밀을 하나씩 알아가지만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려하는 마크의 모습은 인간이 타인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헬레나 역시 마크에 대한 오해와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처음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라지는 이야기들과 뒤로 갈수록 밝혀지는 헬레나의 어두운 비밀은 이 책 자체의 몰입도를 완전히 높인다. 그렇기에 책을 다 읽고서도 한참을 이 책이 주는 울림과 감동에 머물러 있게 만든다. 헬레나는 인물이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받아드리는 방식은 아마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삶의 선택에서 큰 방향을 알려주고 있는 듯하다. 흡입력도 있고, 빠른 이야기 전개와 반전, 그리고 마지막에 밝혀지는 충격적이며 섬뜩한 비밀은 아마 누구라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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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의 죽음 작품 해설과 함께 읽는 작가앨범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고정순 그림, 박현섭 옮김, 이수경 해설 / 길벗어린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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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정순 작가가 그려낸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의 <관리의 죽음>을 담은 그림책이다. 처음에 고정순 작가가 체호프의 <관리의 죽음>을 그림책으로 발간한다는 소식을 듣고 도대체 어떤 그림으로 그려낼 지가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체호프 단편선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애정하는 고정순 작가가 그려낸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되고 설려였다. 책을 받고서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역시!!'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글로 읽을 때보다 더 인상적이며 인생이란 무대 위에 서 있는 불안한 영혼을 정말 제대로 그려낸 <관리의 죽음>이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는 미국의 에드거 앨런 포, 프랑스의 모파상과 함께 세계 3대 단편 작가라고 불리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다. 일반 소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전달하기로 유명한 리얼리즘의 대가인 체호프는 '하찮음 속에서 진실'을 담아내느 수많은 작품들을 집필하였다. <관리의 죽음>은 이러한 체호프 문학의 특징을 특히나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소심한 관리 이반을 죽음으로 몰은 것은 그의 아주 사소한 재채기 때문이었는데, 이 이야기가 남기는 날카로운 풍자는 보는 이들에게 웃픔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가져다 준다.

이야기는 어느 멋진 저녁, 이에 못지않게 멋진 이반 드미트리치 체르뱌코프는 객석 두 번째 줄에 앉아서 오페라글라스로 <코르네빌의 종>을 보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공연을 보면서 그는 행복의 절정에 다다른 기분이었다.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이 '그런데 갑자기' 그가 얼굴을 찡그리더니 눈을 떼고 몸을 숙인다. '그런데 갑자기'라는 표현이 소설 속에서 자주 마주치는 것에 작가들이 그러는 것도 당연하다는 말은 체호프 단편선에 그대로 있는 말이기도 하다. 원작에서도 체호프는 '그런데 갑자기'라는 표현에서 있어 인생이란 그처럼 예기치 못한 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살아가다보면 얼마나 예기치 못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지, '어느 날 갑자기'라는 표현은 바로 우리의 인생을 말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이 단어에도 공감할 수 밖에 없다.

그는 보시다시피 재채기를 한다. 세상 그 누가 재채기를 막을 수 있겠는가. 체르뱌코프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친 다음 예절 바른 사람답게 주위를 둘러 본다. 재채기 때문에 혹여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일이 생기고야 만다. 그의 앞의 첫 번째 줄에 앉아 있던 한 노인이 투덜거리며 자신의 머리와 목을 닦는 장면을 본 것이다. 게다가 그 노인은 바로 운수성에 근무하는 브리잘로프 장군이라는 것을 그는 알아차리게 된다. 그걸 깨닫는 순간부터 그는 사과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는 장군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사과를 한다. 하지만 그의 계속된 사과에 장군은 그만하고 앉으라고 한다.


체르뱌코프는 머쓱해져 바보 같은 미소를 짓고 다시 무대 쪽을 보지만 더이상 이전과 같은 행복을 느낄 수도 없었다. 불안감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불안감에 그는 쉬는 시간에 다시 사과를 하지만 장군은 자신은 벌써 잊었다며 그만하라고 한다. 이러한 반응에 더더욱 커지는 불안감. 과연 체르뱌코프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은 이 작품 자체가 워낙에 알려진 작품이라보니 다 알지만 이 책을 통해 꼭 다시보길 추천해본다.


고정순 작가는 체호프의 작품 중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가 가장 잘 부각되어 있는 <관리의 죽음>을 연극이라는 구조 안에 넣어서 막이 오르고 내리기까지 한 편의 연극으로 구성하고 있다. 처음 책을 펼치면 한 사람이 공연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감을 가득 안고 홀로 객석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음 장,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암전이 지난 후, 객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 사이로 체르뱌코프의 운명을 바꾸어 넣는 재채기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체르뱌코프가 장관에게 계속해서 사과를 건네는 장면들 속에 그림을 잘 살펴보면 몇몇 사람들은 책 안의 인물이 아닌 정면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장면들은 책을 보고 있는 동안 독자와 책 속 등장인물들이 눈을 맞추도록 의도된 장면으로 이를 통해 우리는 이 책 속의 이야기에서 들어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 자체에 폭 빠져들게 만드게 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장관의 외침에 충격을 받은 체르뱌코프는 죽음에 이르며 끝이 난다. 그리고 다음 장, 암전이 이어지고, 그림은 텅빈 객석을 보여줌으로써 이 이야기가 끝이 났음을 말한다. 이를 통해 책 속 인물, 체르뱌코프의 불안이 다만 책 속 이야기만은 아님을, 어쩌면 너무나 소심하고 하찮아 보이는 그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알수 없는 허무와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고정순 작가의 의도로 이야기의 구성을 연극처럼 진행하는 것과 인물을 너무나 잘 표현한 그림들은 원작을 읽는 것보다 이야기 자체를 더 극 대화시켜 <관리의 죽음>이 주는 허무와 불안감, 한 편의 블랙 코메디가 주는 효과를 더욱 극대화시킨다. 누군가에게는 겨우 재채기 하나일 뿐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도 있는 불안. 어쩌면 누군가의 삶 자체를 잠식시켜 버리는 그 불안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이 책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우리 자신에게도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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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박제
박재우 지음 / 부크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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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박제'라는 제목만으로도 이 책을 누가 썼는지, 어떤 내용인지 바로 알아채는 사람이 있을 듯 싶다. 이 책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지 1년만에 구독자 30만 명을 돌파하고, 누적 조회수 8천만을 달성한 SNS를 뒤집어 놓은 성대모사의 신이라 불리는 코미디언 박재우의 첫 농담집이다. 그의 대표적인 대사는 바로 "농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이다. '웃음 박제'라는 이름으로 SNS 뿐만 아니라 텔레비젼에서도 많은 이의 웃음을 사로잡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저자는 무려 55명의 성대모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의 성대모사를 한번 찾아보다 보면 너무 신기해서 계속 보게 된다.


책날개에 실린 저자 소개마저 박재우 답다. 이 책을 읽기도 전부터 웃음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이 책은 저자가 군생활을 하면서부터 매일 하루에 하나씩 차곡차곡 기록해서 모아 온 웃픈 순간들이 담겨져 있다. 저자는 세상을 조금 다른 각도로 바라보니 농담이 보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주 당연한 일상에서 농담을 짜내기 위해 당연하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에 대해 의문을 붙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매일을 조금씩 다른 각도로 바라보니, 저자의 현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를 괴롭히던 심각한 일들도 다른 면으로 보면 별 것 아닌 농담이 될 수도 있음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 농담은 언제나 문제의 핵심을 콕콕 건드리고 있다. 자칫 가벼워 보일수도 있지만 그의 모든 농담에는 뼈가 있다. 그래서 곱씹어 보면 깨달음을 얻게도 하고, 힘든 현실의 돌파구를 보이게 만들기도 하며, 무언가의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그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다른 각도로 새롭게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박재우식 농담에 매료되어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야 만다. 일상의 고단함에서 찾아내는 그만의 농담은 우리에게 그렇게 웃음을 가져다 주는 매력이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박재우식 농담에 매료되어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야 만다. 일상의 고단함에서 찾아내는 그만의 농담은 우리에게 그렇게 웃음을 가져다 주는 매력이 있다. 

우리는 흔히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라고 말하곤 한다. 이 말에 대해 저자는 세상을 살다보면 왜 이렇게 피할 수 없는 것이 많은지 모르겠다며, 과연 이 모든 것들을 진짜 피할 수 없느냐고 묻는다. 그렇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피할 수 있지만 피하지 않는 것 뿐이다. 정말 싫어도 회사는 가야하고, 정말 싫어도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을 택하는 것이다. 이런 알 수 없는 사회적 의무감 때문에 자신의 즐거움을 망치는 건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라는 저자의 말이 망치를 한대 얻어 맞은 듯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즐길 수 없으면 피해 봐라."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래, 우리는 나 자신의 즐거움 보다 사회적 의무감을 먼저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피하고 싶은 많은 상황들이 생기는 것이다. 과연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한 것인지 한번쯤은 고민해 봐야 할 듯하다.

우리는 살면서 진짜 원하는 것을 얻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해야 하지만, 솔직히 그렇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행복은 도착지가 아니라 도착지를 향해 갈 때 보이는 풍경이라는 말에 극한 동의를 하게 된다. 어느 순간에 딱 도착했으니 이제부터 행복해야지가 아니라, 가는 순간부터 행복해지는 것, 그게 바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정말 가볍게 읽을 수 있다. 빽빽한 문장들을 이 책은 담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많은 여운을 남긴다. 삶에서의 여백이 농담인 것처럼, 이 책 속에 담긴 농담들은 먼저 우리를 웃게 만들고, 많은 여운을 남기며 행복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게 만든다. 세상을 조금 다른 각도로 보며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저자가 농담을 찾아낸 지름길이자, 바로 우리가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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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 인생 후반전에 만난 피아노를 향한 세레나데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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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할머니'라는 단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인다. 할머니라는 단어가 주는 무력감에 대항하는 이미지라서 더더욱 좋게 느껴진다고 할까. 이 책은 SBS 스페셜 '퇴사하겠습니다'의 이나가키 에미코가 전하는 즐거운 인생 후반전을 꿈꾸는 중년의 피아노 정복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퇴사 후, 53세의 나이에 어릴 적 그만 두었던 피아노를 다시 배운 뒤 그야말록 폭 빠져버렸다. 물론 그 앞에는 난관히 무수히 많이 깔려 있었다. 의욕과 마음과는 달리 따라주지 않는 몸과 머리, 매일 마주하는 실력의 한계 등. 이 책에 담긴 피아노를 배우는 매일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느낀 좌절과 슬픔을 고스란히 함께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배우는 저자의 글에는 피아노를 배움으로 느끼는 즐거움과 희열이 듬뿍 담겨져 있다. 때로는 선생님의 칭찬에 우쭐해지기도 하고, 꿈의 곡을 연주하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하며 말이다. 그런 그의 글을 따라 읽다보면 어느새 나도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피아노를 통해 깨달은 저자의 삶에 대한 통찰과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살아야겟다는 굳은 다짐들은 나에게도 앞으로의 삶에 대하여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을 읽다보면 어린 시절 방 안에 틀어박혀 지루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바이엘이나 체르니를 쳐야 했던 아이들, 한 번 연습하고 빈 사과 혹은 동그라미를 하나씩 색칠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르게 된다.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저자 역시 어릴 적 피아노와의 인연이 그리 길지 못했다. 그러다 50세에 퇴사 후, 문득 마음 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피아노를 향한 마음이 솟는다. 그렇게 용기있게 저자는 40년만에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다.


시작했지만 나이 들어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저자는 몸소 실감하게 된다. 건반의 무게에 새삼 놀라고, 이제는 암호와 같이 보이는 악보에도 다시금 놀라게 된다. 하지만 어릴 적 무시했던 손가락 번호를 필사적으로 읽으며 건반을 누르고, 노안이 찾아와 악보를 두 배로 확대 복사하는, 정말 경험한 사람만이 담을 수 있는, 웃을 수 만은 없는 저자의 에피소들은 저자만의 생생한 문체로 이 책을 담겨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어려움과 고생이 생생하게 담겨 있지만 즐거움과 희열이 곳곳에 존재한다. 어릴 적 깨닫지 못하던 어른이 되어 배웠기에 느낄 수 있는 그 희열과 즐거움은 피아노라는 상대를 아주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만든다.

피아노를 치며 저자는 역시 늦었구나 싶었을 때 반짝이는 성장의 순간을 맛보게 되고, 그 맛에 취할 무렵에 또 다른 고비를 맞닥뜨리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저자는 깨닫는다. 인생 후반전에 누려야 할 즐거움은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완벽한 결과에 이르지 못할 지라도 찰나가 될 매 순간 열정을 다하는 마음가짐이 앞으로의 인생을 즐겁게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삶에서 '늙음'과 '노후'라는 단어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그리고 '할머니'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더 무력함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과연 그렇게 무기력하고 무력함만 존재하는 것일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저자가 피아노를 통해 비로소 즐겁게 나이를 들어갈 수 있다고 고백한 것처럼 나이드는 것이 그렇게 슬픈 일만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오늘도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누르듯이 우리는 인생의 후반전을 향해 즐거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그 순간의 즐거움과 풋풋한 사랑을 간직하며 산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별도의 페이지를 통해 본인이 그러하였듯이 늦게 피아노를 배우려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어른의 피아노'를 시작하는 법>을 실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내 인생의 후반전을 함께 할 상대가 피아노라는 확신이 생긴다면 한번쯤은 도전해봐도 괜찮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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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별빛처럼 빛난 자들 - 20세기 한국사의 가장자리에 우뚝 선 이름들
강부원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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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다. 워낙에 역사를 좋아하는 데다가 <역사에 별빛처럼 빛난 자들>이라는 제목을 가지게 한 인물들이 궁금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스물여섯 명의 인물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띠며 평생을 살고 그랬기에 역사에 밤하늘의 별빛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사람들이다. 역사에 큰 획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남들이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시련을 꿋꿋이 견뎌내고, 약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삶을 기억하는 건 참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물들은 세상이 빛날 때는 구지 눈에 띄지 않으려 하지 않지만, 세상이 어둠에 잠겼을 때 한 줌의 빛이라도 되고자 했던 이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참기 힘든 일을 잘 견대내며, 어려운 이웃에게 손 내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20세기 한국에서는 그들을 괴짜 혹은 별종으로 불렸다. 정립된 세계 질서에서 빗겨나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지키며 미래의 시간을 앞서 살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입신양명의 가치관으로 그들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스스로의 삶을 가꾸고 정돈하면서 타인을 위해 희생과 헌신한 존재들, 척박한 길을 개척하며 수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선 자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 본인만의 빛을 내며 반짝이던 그들을 더이상 모른 체할 수 없었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나 또한 저자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이들을 다시 들여다 보길 바래본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스스로 빛난 찬란한 별들을 소개한다. 세계 최고이자 조선 제일의 무용수 최승희를 비롯하여 한국의 영원한 마돈나, 김추자. 그리고 뮤지컬계의 대모이자 영원한 피터팬, 윤복희, 새롭지 않은 걸 부끄러워하는 음악가, 김창환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2부에서는 약자들의 편에 선 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불의와 횡포에 맞선 한국 야구계의 영원한 불꽃, 최동원. 흥남부두에서 9만 8천명을 피난시킨, 현봉학,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이라 불리는 '훈맹정음'의 창시자, 박두성, 끝끝내 지켜야 할 아름다운 이름, 전태일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시련을 견뎌낸 존재들이 주를 이룬다. 조선 최고의 대부호이자 문화재 수집가, 간송 전형필, 한국 프로레슬링계의 풍운아, 김일, 현대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꾼 바둑의 신, 이창호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스물여섯 명의 인물들 중 내가 알고 있는 인물들도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인물들도 있다. 그 중 정종명에 대한 존재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게 죄송했다. 가난한 여성들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최초의 여성지도자이자, 여성들이 서로 연대하며 한 목소리를 내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배짱 넘치는 큰언니를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지금의 사회는 여성이 살기에 아직도 갈길이 멀지만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우리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정종명과 같은 여성들의 오랜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다. 

시각장애인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읽고 셈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 최우선이라 생각했던 박두성은 '훈맹정음'을 만들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 떠올린 이상과 목표를 동일하게 반영하여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은 과학적 원리를 점자 체계에 그대로 적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시각장애인의 교육과 점자 보급 활동에 전력을 하던 박두성은 말년에 접어들며 시력을 잃게 된다. 시력을 읽고서도 점자 보급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박두성. 그렇기에 그는 '시각 장애인들의 세종대왕'으로 불리우는데 평생을 걸친 그의 삶을 보면 그 명칭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일평생을 살면서 우리는 대부분 빛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빛나는 삶인지는 이 책에 담긴 스물 여섯명의 삶에서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의 일생을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용기와 위안을 받는 것은 그들의 삶 속에는 자신만의 빛이 있기 때문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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