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x4의 세계 - 제29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수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41
조우리 지음, 노인경 그림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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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든 세계 안에서 난 잘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린 꼭 다시 만날 거다."


<4*4의 세계>라는 독특한 제목과 표지 그림 속 두 아이의 모습, 그리고 띠지 속 문구에 마음이 끌려 읽게 된 책이다. 그 문장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 궁금했다. 두 아이가 만들어가는 '세계'란 과연 어떤 모습이며, 희망과 다시 일어섬을 이야기 하는 띠지 속 문구는 무슨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이 책은 희망으로 일어나는 두 아이의 아름다운 성장이야기를 담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피어난 노란빛 봄꽃처럼 따스하게 물들게 만드는 이 책은 감동 그 자체였다.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공모에서 고학년 동화 부문 대사을 수상한 이 책은 예상보다 더 좋았고 마음을 지릿하게 흔들어 놓았다. 이 책은 하반신 마비로 병원 생활을 이어가는 소년과 그와 교감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소녀의 이야기를 섬세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내었다. 현실의 아픔을 너무나 담담하게 직시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두 아이의 성장은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의 이야기는 주인공 호가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한 소개로 시작된다. 하반신 마비 장애로 병원에 장기 입원 중인 열두 살 호에게 병동 생활은 일상이자 현실이다. 호가 침대에 누워 천장으로 바라보면 가로 네 개, 세로 네 개의 온전한 정사각형 열여섯 개다 눈에 들어온다. 천장을 가득 채운 가로세로 약 50센티미터 크기의 네모 판때기들은 할아버지 말로는 '패널'이라고 한다. 공사판에서 일했던 할아버지가 알려준 이름을 떠올리며 호는 이 패널들을 빙고 판 삼아 빙고 게임을 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이처럼 하반신 마비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병원생활을 견뎌 나가는 호의 모습은 애잔하면서도 담담하다. 천장의 정사각형 패널 열 여섯개를 빙고 판 삼아 시간을 보내는 모습과 할아버지와 단둘이 보내는 병원에서의 생활에 너무나 적응된 호의 모습은 가슴 한구석을 저리게 만든다. 이렇듯 이 책은 아이의 시선으로 이어지는 담담한 어투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 담담하고 천진한 어투가 더 가슴을 파고들며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특히 호가 그동안 자신을 억눌렀던 슬픔과 절망을 깨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용기를 품으며 '걷지 못하더라도 다른 종류의 희망들이 남아 있을지 모른다.'라고 생각하는 장면은 호가 새롬이와의 관계를 통해 얼마나 성장하였고, 두 아이가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세상에 대해 희망을 품게 만드는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라 생각된다. 이 과정을 통해 호는 비록 걸을 수 없더라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그려 나가며 세상에 발을 내딛는 법을 배우게 되고 이러한 호가 너무 기특해서 진심을 다해 응원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삶의 무게를 견디게 해주는 사랑과 사람, 느긋한 유머의 힘을 이야기한다. 이 책 속 호와 새롬이가 서로에게 다가가고 소통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은 완벽하지 않아서 더 아름다고 더 특별하다. 병원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삶을 다시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되는 두 아이의 성장 이야기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따스하며 감동적이고, 위로와 희망을 함께 선사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집으로 돌아온 호가 새롬이와 주고받은 메모지를 벽에 붙이는 장면은 애틋하면서도 아름답다. 두 아이가 나눈 소중한 추억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살아가는 힘이자 서로에게 건네는 용기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이 두 아이의 이야기는 서로를 잊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만들며 그들의 미래를 가슴 속에 품어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에는 호와 새롬이가 있지만 그들을 감싸는 주변의 어른들의 따뜻한 사랑과 유머 또한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병실에서 함께 생활하는 보호자들, 어린이 병동의 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들, 그리고 호의 가족까지. 무거운 현실 속에서도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고 아이들을 지켜주려는 모습은 호와 새롬이의 성장에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 결국 이 책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때로는 힘들고 버거울지라도,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희망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이 책은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깊은 울림과 따스한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때로는 불완전하고 고단할 지라도 그 속에서 곁을 지키며 함께 걸어가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여전히 살아갈 가치가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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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 교양 100그램 5
하지현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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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불안이야말로 평생 우리가 안고 가야하는 감정이지만, 불안을 제대로 다루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이 책 제목, <나는 왜 이유 없이 불안할까>에 자연스럽게 끌렸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나 한번쯤 이유 모를 불안에 휩싸여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애써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을 다루는 데 어려움을 느끼며, 과연 이 감정은 어떻게 해야 덜 힘들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하지현님의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막연한 불안에 대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조언을 건네고 있다. 현대인의 일상 속 불안을 직시하고, 그 감정을 어떻게 길들일 수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하는 이 책은 단순히 불안을 없애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불안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불안을 건강하게 관리하며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저자는 불안을 단순히 극복해야 할 증상으로 보는 대신,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자연스레 가지게 된 감정으로 바라본다. 그는 불안을 없애려 애쓰기 보다는 마치 혈압처럼 정상 범위 안에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불안이란 근본적으로 우리를 보호하는 감정이며, 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수용할 때 비로소 불안과 공존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불안을 무조건 없애야 할 무언가로 여기는 태도에 대해 경계하며, 불안 자체를 감정의 한 종류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불안이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질 때 이를 증상으로 규정하게 되지만, 본질적으로 불안이라는 감정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불안'이라는 이름을 붙여 특별한 감정으로 규정할 뿐, 그 자체로도 우리를 지키기 위한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불안에 대해 겁부터 먹기보다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감정임을 인정하고 관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대 사회가 발전하고 삶이 편리해질수록 오히려 불안을 느끼는 사람은 더 많아지고 있다. 과과에 비해 생명을 위협하는 천적이나 자연재해가 줄어들었고, 안전과 쾌적함을 보장하는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는 현대에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하나의 역설로 바라본다. 사는 것이 편해진 만큼 불안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현대인들의 불편을 감내하는 역치가 지나치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참을 만했던 것들이 이제는 고통으로 느껴지며, 조금의 불편도 쉽게 불안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더운 여름에 선풍기만으로도 견디던 사람들이 지금은 에어컨 없이는 생할하기 힘들어한다. 창문이 조금만 더러줘도 불안해하며 매일 닦아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기도 한다. 삶이 깨끗하고 깔끔해질수록 불안의 문턱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불안 증가 현상을 면역과도 비유한다. 과도하고 위험을 제거하려 할수록 오히려 위험에 취약해지는 것처럼 불안을 완전히 제거하는 태도는 오히려 불안감에 더욱 민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발표된 연구에서도 땅콩을 먹인 아이들은 면역력이 강화되어 땅콩 알레르기 발생률이 낮았던 반면, 땅콩을 전혀 노출하지 않은 아이들은 알레르기 발생률이 높았다. 이처럼 적당한 불편과 불안은 오히려 정신건강을 위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불안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하기 보다는, 불안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적당한 불편을 감수하려는 태도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불안을 다루는 문턱을 높이고, 삶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불안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불안을 견디기 위해 필요한 세가지 지침을 제안하고 있다.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이를 다루는 방법을 알고 적절히 관리하면 불안을 덜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요약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지침은 정상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불안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완벽주의를 꼽는다. 완벽주의자는 항상 최고의 결과를 추구하며, 조금의 부족함도 쉽게 용납하지 못한다. 반면 만족주의자는 적당한 수준에 도달하면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저자는 모든 일에 완벽을 추구하려 하기보다는, 때로는 적당히 만족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통해 정상 범위를 넓히면 불안의 문턱이 높아져 작은 실수나 결함에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두 번째 지침은 불안을 존재론적 문제로 일반화하지 않는 것이다.

불안이 느껴질 때 그것을 자신의 본질적 문제로 해석하면 불안감은 더 커진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긴장이나 변화로 인한 불안은 자연스러운 반응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내가 부족해서" 혹은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라고 일반화하면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저자는 불안을 느낄 때 상황적 요인과 몸 상태를 먼저 점검하라고 조언한다. 몸이 피곤하거나 최근 스트레스가 누적된 상태에서는 불안을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불안을 자신의 성격 문제로 규정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세 번째 지침은 자신만의 휴식 방법을 갖추는 것이다.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긴장을 줄이고 스스로에게 휴식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간단하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취미나 활동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짧게 산책을 하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만화책을 읽는 등 일상 속에서 쉽게 할 수 있는 휴식 방법을 여러 가지 준비해두면 도움이 된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활동이 혼자서, 짧게, 매일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긴장을 풀어줄 방법을 미리 마련해 두면, 불안이 찾아올 때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지침은 불안을 완전히 없애기보다는 불안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것이다. 불안을 다스리며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불안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불안을 없애야 할 증상이 아니라, 우리를 지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저자는 불안을 완전히 없애려 하기 보다는 정상 범위 안에서 관리하며 공존하는 법을 제안하고 있다. 불안을 대처하는 현실적인 세가지 지침과 함께 삶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잘 먹고 잘 자는 기본 습관을 강조한다. 이 책은 불안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준다. 불안에 쉽게 휩싸이는 현대인들에게 실질적이면서도 따뜻한 조언을 전하는 이 책은, 불안에 대한 시선을 전환하고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을 마주하도록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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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뇌 - 일상에서 발견하는 좌우 편향의 뇌과학
로린 J. 엘리아스 지음, 제효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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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인 <기울어진 뇌>를 처음 접했을 때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겨 읽게 된 책이다. 특히 띠지 속 "우리 뇌는 왜 중간을 모를까?"의 질문을 보니 일상 속에서 무심코 반복하는 행동들이 떠올랐다. 왜 항상 같은 손으로 글씨를 쓰고, 같은 발로 공을 찰까? 물건을 잡을 때조차 같은 손으로 잡곤 했던 수많은 장면들이 스쳐지나갔다. 이런 궁금증들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으며 책을 읽자마자 흥미롭게 펼쳐지는 좌우편향에 대한 이야기들은 나를 완전히 이 책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행동 신경과학계의 권위자인 로린 J. 엘리아스 교수는 인간 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현상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좌뇌와 우뇌의 기능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임을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 설명한다. 뇌의 편향성은 일상 속 행동 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시선, 운동 경기에서의 반응 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 책은 익숙한 일상을 뇌과학이란느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우리의 선택들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단순하고 반복되었던 행동 하나에도 인간 뇌의 복잡하고 정교한 매커니즘이 숨어 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인간의 행동은 겉보기엔 대칭적이지만 실제로는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우리는 주로 오른손으로 글을 쓰고, 아기를 안을 때는 왼팔을 사용하며, 셀카를 찍을 때는 왼쪽 얼굴을 내미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연인과 키스할 때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인다니. 도대체 왜 이러한 행동의 편향성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러한 현상을 좌뇌와 우뇌의 기능의 차이에서 찾고 있다. 좌뇌는 언어와 논리적 사고를 담당하며, 우뇌는 감정과 직관을 처리한다. 이로 인해 우리의 행동은 특정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말할 때는 좌뇌가 활성화되어 오른손을 더 많이 사용하고, 감정을 표현할 때는 우뇌가 작용하여 왼쪽 얼굴을 자주 내민다. 이러한 뇌의 편향성을 이해하면 예술, 광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전시 공간의 동선을 설계할 때 사람들이 주로 오른쪽으로 회전하려는 경향을 고려하거나, 광고에서 출연자의 얼굴 방향을 신경 써서 호감도를 높이게 하는 게 이러한 예에 속한다. 책은 이러한 좌우 편향의 원인과 사례를 뇌과학적 연구를 통해 아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인간의 행동은 대체로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특히 몸의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뚜렷한데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연인과의 키스에서도 이러한 우측 편향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행동 3분의 2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는 편향성이 공통적으로 관찰된다니 이 얼마나 흥미로운가. 저자는 이러한 우측 편향이 단순한 문화적 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태아 시기부터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연인과의 키스와 부모와 자식간의 입맞춤은 다른 방향성을 보인다. 연구진이 인스타그램, 구글 이미지, 핀터레스트에 게시된 부모와 아이의 입맞춤 사진을 분석한 결과, 부모와 자식이 입맞춤을 할 때는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이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반면, 같은 방식으로 수집한 연인의 키스 사진에는 여전히 머리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는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입맞춤의 방향이 단순히 인간의 몸이 오른쪽으로 향하는 편향성 때문이 아니라, 입맞춤의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인과의 키스는 친밀한 애정 표현으로, 시상하부와 해마 같은 감정 관련 뇌 부위가 활성화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기울인다. 반면 , 부모와 자식간의 입맞춤은 애정 표현이긴 하나, 행동 조절과 움직임과 관련된 뇌 부위가 더 많이 관여하여 왼쪽으로 기울리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아기를 안을 때 대부분 왼쪽으로 안는 현상 역시 너무 흥미롭다. 놀라운 건 이 편향성이 인간 뿐만 아니라 원숭이와 침팬지와 같은 동물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습관이나 문화적 영향이 아니라, 진화적 관점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적응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리고 아기를 왼쪽으로 안는 경향성은 부모와 아기 사이의 애착과 긍정적 관계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아기를 왼쪽에 두면 우반구의 감정 처리 기능이 활성화되어 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우울증이 있는 엄마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부모를 아기를 왼쪽으로 안을 확률이 낮다는 점도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한다. 흥미롭게도 이 경향성은 인종적 편견에도 영향을 받는다. 이탈리아 연구에서는 흑인에 대핸 편견이 강한 백인 여성들은 흑인 인형을 안을 때 왼쪽으로 안는 비율이 낮게 나왔다고 한다. 이는 아기를 왼쪽으로 안는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애정과 긍정적인 감정을 반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아기를 왼쪽으로 안는 편향성은 진화적 유산일 뿐만 아니라 감정적 유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일상적 행동의 이면에 숨겨진 뇌의 매커니즘을 탐구하며 단순해 보이는 행동 하나에도 뇌과학적인 이유가 있음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 행동 속 편향성을 뇌과학적으로 풀어내며, 이러한 편향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진화적, 신경과헉적인 이유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25년간의 연구를 통해 다양한 사례와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의 행동이 왜 특정 방향으로 기울어지는지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책은 일상에서 무심코 반복하는 행동 속에도 뇌의 편향성이 깊이 자리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연인과의 키스, 아기를 안는 방향 등 일상 속 우리의 움직임들이 모두 좌뇌와 우뇌의 특성에서 기인하여 편향성을 띄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러한 뇌과학적 통찰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침으로도 활용가능할 것이다. 이 책으 통해 우리는 무의식적 행동의 이면에 숨겨진 뇌의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일상 속 행동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뇌 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깨닫게 만드는 이 책은 뇌과학적 시선으로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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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교육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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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 속 인물들의 서사가 호기심을 자극하여 읽게 된 책이다. 그림 속 인물들은 각각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그리고 제목이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인 이유는 또 무엇일까?


이 책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려는 인물들이 미스테리와 어우러져 흡인력 있는 서사를 펼치고 잇다. 특히 19세기, 계급과 성별이 족쇄와 낙인으로 작용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인 열여섯의 다모 설은 인천 흑산도 출신의 노비로, 한성부 포도청으로 팔려와 수사관 한도현을 모시며 살인 사건을 파헤치게 된다. 정조 승하 이후 혼란스러운 조선, 정순왕후의 수렴청정과 천주교 탄압이라는 시대적 배경속에서 설은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자신의 이름과 존재를 찾아나간다. 활을 제대로 다룰 줄 알며 똑똑하고 기개 넘치는 여성 수사관 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당대의 편견과 싸우는 용감하고도 가슴 뜨거운 역사를 담고 있어 이야기에 완전 몰입하게 만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은 1800년 정조가 승하한 직후 혼란스러운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정순왕후의 수렴 청정과 노론의 권력 장악, 남인 세력 숙청과 천주교 탄압이 뒤얽힌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조가 암살당하였다는 소문이 사실인지를 묻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한양 거리 한복판에 잔혹하게 살해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고 다모인 설은 남성 수사관을 대신해 그 여인의 시체와 마주하여 시체를 뒤집는다. 그렇게 범죄 현장 조사원으로 동원된 다모 설은 사건을 수사하는 한성부 포도청의 유능한 수사관 한도현과 함께 살인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가게 된다.


노비 신분으로 한양에 온지 얼마되지 않은 열여섯 살의 소녀 설은 넘치는 호기심과 잔꾀, 날카로운 추리력 덕분에 한도현의 수사에 없어서는 안될 조력자가 되어간다. 설과 한도현이 여인의 시체를 마주하고 사건의 전말을 추적해가는 과정은 당대의 복잡한 정치상황과 사회적 갈등을 배경으로 숨가쁘게 펼쳐지고,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설이라는 인물은 단순한 수사관의 조력자가 아닌,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강인한 의지를 가진 주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노비로 태어나 팔천에 속한 설은 가장 낮은 신분으로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면 살아왔다. 그러나 그런 비참한 삶 속에서도 설은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그 억압을 깨부수기 위해 발버둥친다.


하지만 수사의 과정은 어린 여자 노비인 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얼굴 한 쪽에는 '계집종'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고, 찾상을 나르거나 마당을 쓰라는 무시와 면박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설은 또박또박 힘주어 말한다. "내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요? 활을 제대로 들 줄 아는 여자요. 본인이 표적을 맞힐 능력이 없다고 나를 탓하지 마세요.(p119)"라는 이 당찬 말에서 설이라는 인물이 가진 용기와 당당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범인이 시체에 남긴 잔인한 표식에 분노하며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설의 집념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다. 무장한 악인들에게 맞서 몸을 던지고, 심지어 호랑이와 맞닥뜨리는 위기의 순간에도 설은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다. 목숨을 걸고 타인을 구하려는 그녀의 모습은 행동으로 신념을 증명하는 '행동파' 주인공의 면모를 보여주며, 기존의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이러한 설의 독보적인 캐릭터는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으로 작용한다. 단순한 살인 사건의 미스테리를 파헤치는 수사물이 주인공을 넘어, 그 시대의 여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설의 모습은 이 책 자체에 완전히 빠져들게 만든다.


그러던 중 설은 위기의 순간에 한 종사관의 목숨을 구하게 되고, 그 은혜를 잊지 않은 한 종사관은 사건이 해결되면 설이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점점 더 복잡하게 얽혀가는 사건의 실마리들은 설을 혼란에 빠뜨린다. 증거들이 가리키는 방향과 의심스러운 인물들 속에서 설은 한 종사관을 향한 중심과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자신을 믿어주는 한 종사관에게 끝까지 충심을 다하겠다고 맹세한 설은 눈 앞에 나타나는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한 종사관을 끝까지 믿고 따를 수 있을까?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길 추천해본다.


이 책은 단순한 미스테리 소설을 넘어 역사 속 억압과 차별을 딛고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려는 약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인 다모 설의 용기와 신념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이 보여주는 연대와 공감은 시대와 계층을 넘어서는 깊은 울림을 전한다.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정순왕후와 강완숙, 주문모 신부 등의 등장 또한 작품에 현실감을 더하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혼란과 억압의 시기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나아가야 할 용기와 연대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운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넘어 우리에게 옳은 길을 걸으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이 책은 오랫도록 기억 속에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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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이 발견한 반 고흐의 시간 - 고흐의 별밤이 우리에게 닿기까지, 천문학자가 포착한 그림 속 빛의 순간들
김정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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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 시선으로 반 고흐의 그림을 바라본다는 독특한 접근 방식이 너무 신선하게 다가와서 읽게 된 책이다. 그렇기에 제목과 소제목에서 느껴지는 신선함과 탐구 정신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역시나 반 고흐의 그림 속 밤하늘을 천문학자의 시선으로 분석해가는 내용들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이 책은 반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별이 빛나는 밤>을 비롯해 그의 여러 작품 속 밤하늘을 분석하며, 그림이 그려진 시점과 당시 밤하늘의 모습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기존 연구를 뒤집는 새로운 시각과 천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불멸의 화가' 반 고흐를 한층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과정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이 책은 반 고흐의 대표작인 <별이 빛나는 밤>이 언제 그려졌고, 그림 속에 그려진 별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천문학적 시선으로 탐구하는 책이다. 특히, 그림 속 밤하늘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서 그동안 정설로 여겨졌던 사실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는 과정은 흥미를 자아낸다.


1984년 미술사학자 앨버트 보임이 <별이 빛나는 밤>의 작화 시점을 1889년 6월 18일에서 19일로 제안했고, 이후 연구자 얀 휠스케르에 의해 '6월 19일'로 확정되어 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반 고흐 연구자들을 놀라게 할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며, 그동안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작화 시기에 대해 의문을 제시한다. 천문학적 분석을 통해 저자는 그림 속 별자리가 기존 연구에서 주장된 '양자리'가 아닐 가능성을 제기하고, 작화 시점 또한 6월 19일이 아닐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직접 답사를 통해 현지를 촬영하고, 그림 속별자리를 분석하기 위해 LMT 시건 변환과 1888년 9월 27일로 변환한 시간을 정리한 후, 이를 상세한 설명화 함께 비교해가면서 자신의 주장을 하나씩 밝혀나가는 과정이다. 그동안 학계의 정설로 굳어져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던 사실들이 하나둘 뒤집히는 과정은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다.이 과정을 하나씩 따라가며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천문학자의 시선이 이토록 세심하고 과학적이다는 점이 놀라웠다. 밤하늘과 별자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현지의 실제 풍경과 대조하며 반고흐가 그린 별과 달의 위치를 하나씩 검증해 가는 과정은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듯한 쾌감까지 느끼게 하였다. 이러한 접근 덕분에 반 고흐의 작품들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고, 기존의 상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해석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와 함께 하나씩 별과 밤하늘의 비밀을 밝혀가다 보니 <별이 빛나는 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감상적으로만 다가왔던 반 고흐의 별빛이 사실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고, 그 속에 담긴 천체의 배치와 시간의 비밀이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그림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저자는 별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무려 6년에 걸쳐 검증을 거듭한 끝에, 그림 속 별자리가 기존 정설처럼 '양자리'가 아닐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에 따라 그림을 그린 날짜도 학계가 정설로 받아들였던 6월 19일 아닌, 7월 하순경일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논증한다. 이러한 과정은 <별이 빛나는 밤> 뿐만 아니라 반 고흐의 다른 작품들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며, 발상의 전환을 이끌어 내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책을 읽어가며 느낀 것은 반 고흐를 단순히 '광기의 천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편협했는가 하는 점이앋. 저자는 반고흐가 남긴 2000여 점의 그림과 903통의 편지를 비롯해, 전세계에 흩어진 수많은 자료를 면밀히 분석하며 천문학적 관점에서 그림을 해석해나간다. 이 과정에서 반 고흐는 그저 감상적 화가가 아니라, 별과 밤하늘을 집요하게 관찰하여 이를 화폭에 담으려 했던 탐구자로 다시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반고흐와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 110여 점과 우주를 담은 천체사진, 다양한 그림 자료 60여 컷이 포함되어 있어 독자가 직접 밤하늘과 실제 하늘을 직접 비교할 수 있도록 돕는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빈센트의 시야를 재현하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진짜 밤하늘을 보여주는 부분은 단순한 미술 감상을 넘어 과학적 사실로 이어진다. 다양한 시각 자료를 활용하여 거장의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천문학적 기본기를 쌓을 수 있도록 구성한 저자의 세심함은 이 책의 또하나의 매력이다.


이 채은 반 고흐의 그림을 천문학적 시선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흥미로운 여정을 담고 있다. 저자는 반 고흐 작품 속 태양과 달, 별과 행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일상 속 천문학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내었다. <론강의 별밤>, <밤의 카페테라스>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계절별 별자리 찾기, 북극성의 위치, 달의 상식 등을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며, 독자들이 직접 천체 관측을 할 수 있는 팁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한국 독자들을 위해 <별이 빛나는 밤> 속 하늘과 같은 풍경을 우리나라에서 언제 볼 수 있는지를 알려주기까지 한다. 과학적 탐구를 통해 반 고흐의 작품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이 책은, 예술과 과학이 만나는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다. 반 고흐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 그리고 하늘의 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이 책을 강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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