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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란 말 따위 -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
아잠 아흐메드 지음, 정해영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
평점 :
제목에 끌려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한 어머니가 딸을 납치 당하는 개인적 비극에서 출발하여 국가 시스템의 부재와 조직 범죄가 만든 멕시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뉴욕타임스 국제 탐사보도 특파원인 아잠 아흐메드는 4년에 걸쳐 현장을 취재하고 수백 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직접 카르텔 조직원을 추적한 미리암 로드리게스의 삶을 치밀하게 재구성하였다. 책은 단순한 범죄 기록을 넘어 공권력의 무능과 지역사회의 침묵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정의를 실현해 나갔는 지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멕시코 북동부를 장악한 마약 카르텔 세타스와 그에 맞선 미리암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피해자가 스스로 수사관이 되어야 했던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저자는 미리암의 추적기를 통해 멕시코 현대사에 깊이 뿌리내린 조직범죄과 권력 유착, 그리고 제 기능을 상실한 법체계를 함께 드러낸다. 그리고 책은 단일 사건에 국한된 기록이 아니라 개인의 분투를 통해 사회 전체의 병리적 구조를 비판하는 문제의식으로 확장하여 깊은 울림을 남긴다.
책의 프롤로그는 국경 도시에서 미리암이 낯선 남성을 뒤쫓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단순한 감시가 아닌 구조적 한계 속에서 벌어진 사실상의 사적 수사에 가깝다. 딸을 납치당한 지 2년, 경찰과 수사당국은 아무런 실마리도 제공하지 못했고 공권력은 절차를 반복하는 데 그쳤다. 결국 미리암 로드리게스는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고 용의자들의 행방을 추적하며 마약 카르텔의 말단 조직원들까지 직접 대면하기에 이른다. 이는 한 개인의 감정적 보복만이 아니라 기존 수사 체계가 실질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조치였다. 미리암은 반복되는 형식적 대응과 무책임한 처리 과정을 확인하며 공적 시스템에 의존해서는 사건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추적 행위는 감정의 동요가 아니라, 작동하지 않는 구조를 보완하기 위한 현실적 선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미리암은 사건 이전까지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인물도, 법 제도에 익숙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딸 카렌이 납치된 이후, 가족은 범인의 요구에 따라 몸값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다. 사건 해결에 책임을 져야 할 국가 기관은 오히려 피해자 가족을 방치했고, 미리암은 제도와 절차가 오히려 현실을 가리는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미리암의 절친이 그녀를 두고 “두려움은 한낱 단어일 뿐”이라고 표현한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책 속에 등장하는 그녀의 행적과 비교해보면 이 표현이 지나치지 않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하는 딸을 잃은 평범한 어머니가 이런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떠올리면 이 문장은 단순한 인물 묘사를 넘어선 씁쓸함을 남긴다.
책의 이야기는 미리암 개인의 사건에서 출발하지만 곧 멕시코 곳곳에서 사라져간 사람들의 현실로 시선을 확장한다. 미리암은 딸이 납치된 후 가족은 요구받은 몸값까지 지불했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사실 이는 비단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공권력이 사실상 기능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반복되던 구조적 실패였다. 걸프 카르텔과 세타스가 분리되면서 폭력은 걷잡을 수 없이 증가했고, 그 여파는 시민들의 일상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특히 산페르난도를 중심으로 흔적 없이 실종되는 사람들이 급증했는데 이들은 ‘사라진 사람들(los desaparecidos)’로 불리며 마치 존재 자체가 지워진 것처럼 취급되었다. 미리암이 추적을 멈추지 못했던 이유에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인식도 자리하고 있었다.
미리암의 행동은 단순한 대응이라기보다 정보의 수집과 정리, 대상 파악과 같은 실질적 행위를 기반으로 한 체계적 움직임에 가까웠기에 더 인상적이다. 그녀의 지휘 아래 여러 용의자가 검거되거나 제거되었고, 미리암이 축적한 자료는 정식 사건기록을 방불케 할 만큼 세밀한 수준으로 쌓여갔다. 이는 국가가 맡아야 할 역할이 개인에게 떠넘겨진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카르텔 간의 충돌이 격화되고, 정부와 사법기관이 이를 통제하지 못한 사이 납치는 돈벌이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폭력의 방향은 점차 평범한 사람들에게 향했고 실종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적인 위험으로 변했다. 미리암이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고 너무나 찬혹한 현실 앞에서 할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미리암의 움직임이 복수에서 머물지 않고 연대의 형태로 확장되는 과정을 함께 조명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많은 실종 피해자 가족이 기본적인 법적 절차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리암은 직접 정리한 방대한 자료와 행정 경험을 토대로 그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는 피해자 가족 단체를 조직했고, 정부를 압박해 암매장지의 유해를 신원 확인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을 움직였다. 거대한 폭력 앞에서 국가가 비어 있는 자리에 미리암의 활동은 실종자 문제를 공적 영역으로 끌어올린 사례가 되었다. 그렇기에 이 책은 미리암의 행적에 대한 추적 그 자체보다도 사라진 사람들을 둘러싼 사회적 무관심과 제도의 공백이 어떻게 평범한 개인을 행동하게 만들었는 가에 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책에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개인적 고통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통제 장치로 기능한다는 점이 무척이나 인상 깊으면서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다. 마약 카르텔의 폭력과 국가 시스템의 무능은 시민을 침묵시키는 공포를 만들어냈고 그 구조 속에서 실종과 학살은 일상적인 사건처럼 취급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억압적 환경에서도 두려움이 절대적 기준이 되지 않는 순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미리암의 행적을 단순한 복수의 서사로만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움을 견디는 과정과 제 기능을 잃은 공권력의 공백을 메우려는 실천과 점차 다른 피해자 가족들과 연대로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행동이 사회 변화를 촉발할 수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특히 폭력의 피해자였던 이들이 스스로 기록을 축적하고 조직을 만들며 실종 문제를 공적 문제로 재정의하는 모습은 공포에 잠식된 공동체가 회복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보여주는 듯하다.
결국 이 책은 두려움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어떻게 권력의 도구로 사용되고 어떻게 시민을 무력하게 만드는 지를 정확히 짚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두려움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전환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미리암의 궤적은 그 사실을 입증하는 예로 제시되며 독자는 그녀의 생을 통해 용기가 특별한 자질이 아니라 붕괴된 구조 속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방식임을 이해하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은 폭력의 반복을 고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두려움을 넘어서는 실천이 왜 필요한지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두려움은 이미 사회 곳곳에 스며 있지만 그 감정 자체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된다. 무력감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작은 선택들이야말로 부패한 권력 구조를 흔들고 공동체의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