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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읽기 - 날씨와 기후 변화,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공기에 숨겨진 과학
사이먼 클라크 지음, 이주원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1월
평점 :
기후위기가 전 세계적인 과제로 떠오른 지금, 이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 책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대기를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바라보며 그 구조와 작동 원리를 체계적이면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인 사이먼 클라크는 대기 물리학자로서의 전문성과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전달력을 바탕으로 기상학의 역사부터 대류권, 성층권, 제트기류, 엘니뇨 등의 다양한 개념을 물리학적 틀 안에서 정리하여 설명한다.
이 책은 단순히 날씨와 기후를 설명하는 수준을 넘어 지구를 둘러싼 대기를 하나의 유기적 생명 시스템처럼 바라보는 데 이러한 관점이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오며 흥미를 유발시킨다. 그리고 과학 용어와 모델링을 바탕으로 복잡한 현상을 풀어내며 독자에게 기후 현상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과학적 내용을 충실히 담아내면서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기후 변화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부터 배경지식을 가진 이들까지 다양한 독자들에게 유익한 관점을 제시한다.
책의 프롤로그는 대기 과학의 출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젊은 과학자가 외딴 숲속에서 유리 플라스크에 대기 샘플을 채취하는 장면은 단순한 실험을 넘어 우리가 매일 접하는 공기 속에 얼마나 많은 과학적 의미와 탐구의 가능성이 숨어 있는 지를 시사한다. 이 장면은 대기 과학이 세밀한 관측에서 시작해, 지구 규모의 복합적 시스템을 이해하는 학문으로 확장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저자는 우리가 생존에 의존하는 대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구성 성분이나 움직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이해는 놀라울 만큼 낮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기의 역할은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구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 연결망으로 작동시키는 데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기의 작용 원리를 설명하지 못하며 기후 변화와 관련된 단편적인 이슈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인식의 한계를 짚고, 보다 근본적인 이해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또한, 저자는 사람들이 대기를 날씨 변화나 기후 위기의 수단으로만 이해하는 좁은 관점에서 벗어나 이를 하나의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자연 시스템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생명 유지의 기반이 되는 대기층은 단순한 보호막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의 현상까지 연결하는 복잡한 상호작용의 장이다. 프롤로그는 이러한 대기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지구과학과 물리학을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함을 역설하며 기후 변화라는 주제가 오랜 시간 축적된 대기 과학 지식 위에 놓여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책의 이야기는 대기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초기 탐사의 극적인 사례로 시작된다. 1862년,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글레이셔와 조종사 헨리 콕스웰은 열기구 매머드를 타고 3만 피트 이상의 고도로 상승하면서 인간이 대기를 실제로 관측하고 측정하려는 시도의 한계를 시험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저산소 환경 속에서 이들이 시도한 고도 측정은 이후 대기가 단일한 층이 아니라 복잡한 구조를 지닌 여러 층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1장에서는 또한 온도계와 기압계의 발명 과정을 통해 대기 과학이 어떻게 계측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보해 왔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갈릴레오의 열팽창 실험, 토리첼리의 진공 실험, 파스칼의 고도에 따른 대기압 측정 실험 등은 대기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수치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대 문명과 고대 그리스의 기상 관측 사례,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상학>, 르네상스 이후의 기술적 진보는 대기에 대한 인식이 초자연적 설명에서 점차 물리학적 설명으로 이동해온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렇게 책의 1장은 과학적 탐구의 진보가 대기 이해에 어떻게 결정적 역할을 했는 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기후 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책은 대기 과학을 이루는 핵심 개념과 현상을 설명하는 동시에, 지금의 지식을 가능하게 한 수많은 과학자의 발자취를 함께 조명하고 있다. 다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특정 분야의 엘리트 과학자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게 인상적이다. 최초의 온도 측정기를 제작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부터 방정식 하나 없이 지구물리유체역학의 토대를 놓은 윌리엄 페렐, 대학 수위로 일하다 빙하기 알베도 피드백 개념을 발전시킨 제임스 크롤, 그리고 지구 대기의 적외선 흡수를 입증하고도 여성 과학자라는 이유로 가려졌던 유니스 푸트에 이르기까지 대기를 이해하려는 인류의 여정은 다양한 배경과 환경을 지닌 인물들의 시도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그들의 성취뿐 아니라 주목받지 못했던 노력과 좌절까지도 세심하게 그리며 대기 과학이 쌓여 온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 역사적 서사들은 결국 하나의 사실로 수렴하고 있다. 인간이 대기에 남긴 흔적은 이제 자연적인 변동성의 범주를 벗어났다. 스웨덴의 지질학자 아르비드 회그봄이 인간의 탄소 배출량이 자연적 배출 수준에 근접한다는 계산을 처음 제시했을 때, 그것은 당시로서는 과감한 가설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는 이후 관측된 대기 중 CO₂ 증가와 정확히 이어지며 현대 기후 과학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오늘날 측정된 414ppm의 CO₂ 농도는 자연 주기나 지질학적 탄소 순환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인간 활동이 지구 시스템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분석을 다시 한 번 데이터 중심으로 되짚는다. 그는 이 책에 담긴 모든 지식이 엄격한 검증과 관측 자료에 기반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이러한 정보를 무시할 경우 위험해지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인간 자신임을 강조한다. 지구는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거대한 시스템이지만 인류는 그 속에서 훨씬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 결국 기후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는 과학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과학자들은 이미 필요한 원리를 밝히고 데이터를 제시했다. 이제 남은 것은 독자들이 이 거대한 대기 시스템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결정하는 일이다.
결국 이 책은 대기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일이 단지 날씨를 예측하는 수준을 넘어 기후 변화와 극한 기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인류 생존을 위한 실질적 대응의 토대를 마련하는 일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대기의 구조와 운동, 상태 방정식, 카오스 이론 등 물리학적 원리를 통해 대기 시스템의 복잡성을 설명하며 두려움이 아니라 과학적 이해를 기반으로 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하늘을 읽는 것은 기후 위기를 이해하고 대비하는 실천의 시작점이며 이는 과학 지식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