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단순히 종교적인 아니, 종교를 위한 그런 책이 아님을 먼저 말하고 싶다. 처음에 이책을 접했을 때 나 역시 처음에는 약간의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분명 이 책의 배경은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종교와 연결이 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런 부분들보다는 한 인간에 대한, 그 인간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느낌은 분명히 종교를 떠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땐 중학교 1학년때였던 것 같다. 아는 오빠에게서 선물받아서 읽었던, 제목만으론 결코 내가 선뜻 보지않았을 책이었다. 그리고 내용도 그냥 그랬다.
한 소년이 약간은 불우했던 환경에 어찌어찌 신부가 되기위해 신학교를 가게되었고 그 곳에서 그는 불량학생(?)이 었다. 안셀림 밀리라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 기도하길 좋아하고 마치 자신이 무슨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이 자선을 베풀고 교회에서 밤새 기도하고 결국은 학생회장에 나중엔 주교가 되는 성실한 우등생(?)과 계속 비교당하고 무시당하며 살아간다. 그는 중국에 선교를 위해 가게되었고 그 곳에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지만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간다. 무료진료와 봉사로 중국사람들과 조금씩 가까워짐을 느낄때 개신교 선교를 위해 중국에 오게 된 목사부부를 만나게 된다. 처음엔 서로 거리를 두고 대했지만 결국은 친구가 되어 서로 저녁도 먹고 체스게임도 하는 그런사이이면서 동시에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고 의지할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된다. 그리고 그는 중국에 자신의 손으로 성당을 짓게 된다. 손수 진흙을 개고 벽돌을 쌓고 우여곡절 끝에 성당과 고아원을 세우고 몇명의 수녀들도 그 곳에 오게된다. 고집세고 자존심이 강한 원장수녀와 계속 대립하게 되고 세계2차대전과 돌림병으로 계속 시련의 연속이었다.
특히나 돌림병으로 죽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도와주었던 닥터 월록의 죽음은 그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 었다. 그러나 안셀림 밀리신부가 중국에 들려 그가 손수지었던 성당과 고아원을 보기 하루전에 홍수로 건물이 모두 무너져 버리고 안셀림신부는 그에게 왜 돈으로 사람들을 개종시키지 않았냐고 오히려 질책한다. 그가 돌아가고 난 뒤에 원장수녀가 울면서 오히려 치셤신부에게 왜 그 질책들을 다 받았느냐고 그리고 그동안 그에게 거리를 두고 대한 자신을 용서해 달라며 화해(?)를 청한다.
잠시동안 그에게 숨을 돌릴수 있을 정도의 평온함이 온 듯 했으나, 미사를 올리기 위해 산속 깊이 자리잡은 마을에 갔다오다가 화적떼들에게 잡히게 된다. 이유를 알수없는 고문속에 어찌어찌 탈출을 하게 된다. 그 속에서 친구처럼 지내던 목사를 잃게된다. 그리고....그는 은퇴를 당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는 이 곳에서 자기가 예전에 흠모하던(?) 여자의 사생아 앤드류를 키우며 조용한 마을에 신부로 지낸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그 작은 마을의 성당에 감사(?)가 와서 치셤신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잔소리를 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끝에는 그 감사하러 온 신부가 보고서를 찢는 것으로 끝난다. 그가 치셤신부의 생에 대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치셤신부에게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 었다.....
이 치셤신부는 그냥 소심하고 혼자있기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 특히 그를 평가하고 보고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소위 찍힌 그런 사람이다. 신자들에게 기부금을 받기위해 입에 발린 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한다는 건 생각도 할수 없고 그러느니 차라리 앤드류와 송어잡이나 하고 말 사람이다. 그런 치셤신부를 다시 보고 또 보게 된건 내 머리가 조금씩 커 가면서 문득 문득 치셤신부가 이유없이 떠오른 까닭이다.
무신론자인 자신의 친구인 닥터 월록이 천국에 갔다고 누구에게도 자랑스럽게 말하는 치셤신부를 보며 소신과 용감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 소신과 신념이 정말 지켜 졌는지... 너무나 쉽게 주변과 나 자신에 의해 변하지 않았는 지.... 지금 이 세상에서 제 가치를 찾지 못하고 너무나 쉽게 없어져 버리는 게 '소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을 탓하거나 주변의 상황때문이 었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자기자신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