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의 로댕 - 개정판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안상원 옮김 / 미술문화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릴케가 쓴 <로댕론>은 그 가운데 작은 하나일뿐이지만, 로댕에 대한 글일 뿐 아니라 릴케 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문헌이다.

릴케가 위대한 시인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했던 예술 이해들이 이 글을 통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릴케의 시에 대해서, 로댕의 영향을 받아 릴케가 이루어내 성과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진 않치만 분명 무명의 릴케에게 로댕의 영향을 컸다는게 느껴지네요.

<신시집> 가운데서 릴케 사물시의 대표적인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표 범

파리, 수목원에서



스물세 살의 로댕



릴케가 바라본 로댕 이야기, 특히 로댕의 작품 하나 하나에 의미들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마음속 깊은 울림이 있어요.

"이것은 로댕의 작품에서 표정의 탄생을 알려주는 것이다.

표정은 들어올린 두 팔 속에서 머뭇거리면서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팔이 아직 그렇게 무거운지 한쪽 팔의 손은 다시 머리 위에서 쉬고 있다. 하지만 손은 잠든 것이 아니라 힘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오른발에는 첫 번째 걸음이 기다리고 있다."



로댕의 작품 발 하나, 얼굴에 표정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네요.

"니콜라스 3세의 발이 울었다는 대목을 읽었을 때 로뎅은 벌써 알았던 것이다. 우는 발이 있다는 것을, ..."



"그것은 이 얼굴표정 속에 모여 있는 삶의 충만이었다."

로댕은 이 마스크를 제작할 때 평온하게 앉아 있는 사람과 평온한 얼굴 하나가 그의 앞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었으며, 철저히 관찰함으러써 그는 그 얼굴이 움직임으로 가득한 것을, 불안과 파동으로 가득한 것을 알게 되었다.



로댕은 '완전한 몰두', 바로 이것이 조각에 고요를 부여했던 것이다.

릴케는 로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책을 많이 읽었다. 늘 책 한권을 손에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을 브뤼셀의 거리에서 발견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 그는 처음으로 단테의 <신곡>을 읽었다. "

그는 서로를 물어뜯는 동물들처럼

온몸을 서로 비비고 밀착하면서

하나의 사물로 엉켜 나락으로 추락하는 육체들을 창조하였다.

얼굴처럼 귀기울이는 육신들, 팔처럼 치켜든 육신들, 사실로 엮인 육신들, 휘감기고 덩쿨진 육신들 ...



"그는 이 전체 장관의 위대함과 모든 경악을 본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로댕의 조각품을 우리는 한번쯤은 다 본 적이 있을꺼에요.

그때 표정들을 살펴보셨나요?

팔의 모양, 발 뒤꿈치는 들고 있었는지...

<릴케의 로댕> 책을 읽으면서 로댕의 조각의 표정들을 어떻게 창조했는지 알게 되어 기쁘네요.

요근래에 리움미술관 현대미술 소장품전에서 로댕의 칼레의 시민을 봤었거든요.

그래서 이 책에 칼레의 시민 조각의 표정 이야기 푹 빠져 읽었네요.

"로댕은 곧바로 이 이야기 속에 무언가 위대한 일이 일어난 순간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로댕의 조각을 보면서 황홀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는 말하고 있는 흥분된 팔을 가졌으며, 그의 걸음은 다른 한 분이 뒤이어 오실 것을 예감하는 사람의 위대한 걸음이다."

느껴지시나요?



<릴케의 로댕> 책은 릴케의 눈으로 로댕의 삶과 예술을 포착한 책이에요.

조각이나 예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어도, 릴케와 로댕을 잘 모르더라고 책의 첫 장을 펼치면 금세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네요.

꼭 읽고나서 로댕의 조각에서 표정들을 읽어보시길 바래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어가 도망쳤다 - 2025 서점대상 수상작
아오야마 미치코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어가도망쳤다

화려한 도시 속, 공허함에 지친 사람들 사이로 갑자기 나타난 인어를 찾는다는 수상한 왕자

그가 건네는 말은 마법 같았다.

상처는 조금씩, 덧없이 풀리고, 굳게 닫힌 마음은 다시 열린다.

"이건 동화가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에게도 이 수상한 왕자가 나타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보았네요.

인어공주라. 모두가 아는 안데르센의 동화다.

한눈에 반한 왕자의 사랑을 찾아,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고 가족까지 등진 채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

어리석은 사랑이었다. 왕자는 결국 이웃 나라의 공주를 선택했다.

어리석은 사랑만 있었을까요?!



나는 인어공주에게 공감하며 조심스레 말했다.

"인어는 당신이라 더 말하지 못했을 겁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은 당신이 좋아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러자 왕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크게 저었다.

"왜?"

"네?"

왕자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난 그애가 그 애라서 사랑했어. 그랬는데 자기 혼자 마음대로 착각하다니 너무하잖아."



"이건 동화가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입니다."라는 말에 공감이 200% 되면서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지네요.

어릴 때 읽었던 인어공주 이야기의 여러가지 모습들이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속에 있더라구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었지만 인어공주의 눈은 틀리지 않았던 것일까요?

"난 그 애의 소중한 인생을 망쳤어."

"저기요, 왕자님,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기는 한데요. 물론 인어공주는 당신을 아주 좋아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큰 용기를 내어 전혀 모르는 세계로 오겠다고 생각한 건 아닐걸요."

"... 그 말은?"

"인어공주는 언니들로부터 지겹도록 바깥 세계 이야기를 들었을 거예요. 기대도, 희망도 상당했을 거라고요."

책을 읽다가 발견한 이 문장이 왜이렇게 위로가 되나요~!!!

"어느 쪽을 택했어도 잘못된 선택은 아닐거야."

사랑하는 왕자를 죽이지 못한 인어공주는 결국 바다에 몸을 던지고, 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대부분이 그게 이야기의 결말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안데르센 애호가들이 모은 자료에 따르면, 원작에서는 인어공주가 거품이 된 뒤 곧바로 사라지지 않고 '공기의 요정'이 되어 300년 동안 사람들에게 바람을 보내고 꽃향기를 흩뿌리며 몯두가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도와야 비로소 영원한 영혼을 얻게 된다고 한다.

나는 앞으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인어공주를 떠올르게 될 것이다.



꼭 불어오는 바람이 귓가에서 속삭일꺼 같아요.

"당신을 만나고 곁에 있으면서, 또 사랑하면서 사랑을 이루는 것 이상이 소중함을 얻었어요."라고 말이죠.



<인어가 도망쳤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가슴이 아픈 이야기일 뿐이었거든요.

배 위의 왕자는 무대에 오른 스타처럼 보였겠지. 바다라는 관객석에서 인어공주는 그저 남몰래 그를 바라만 봐도 최고의 행복을 맛보았을 것이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직접 육지로 나가 처음으로 시선을 맞춘 왕자는 그녀에게 얼마나 눈부신 존재였을까. 그녀는 왕자 곁에서 얼마나 여러 번 가슴이 미어졌을까. 그대로 바다에 있었으면 아름답고 화려한 추억을 품은 채, 평화롭게 살았을지 모르는데.


어떤 인어공주 이야기를 만나고 싶으신가요?

<인어가 도망쳤다> 책에서 꼭 만나보세요.

긴자라는 공간 곳곳에서 화제가 된 왕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다른 행동을 나서고 자신을 긍정하고 새롭게 결심하고 진실을 털어놓는 책 속 주인공들이 보여요. 동화 속 왕자를 위로하고 공명하기도 하고 때로는 반론하고 쓴소리를 늘어놓기 하면서 그 속에도 나 자신도 보이구요.

현실과 이야기가 서로 어울리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순간들이에요.

<인어가 도망쳤다> 꼭 한번 읽어보시고 그 순간을 느껴보셨음 해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택 火宅 - 폭염 시대의 불난 집과 멸종위기
윤범모 지음 / 예술시대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경에 화택(火宅) 비유가 있다. '불난 집'. 집은 활활 불타고 있는데 집안의 아이들은 놀이에 정신 팔려 밖으로 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밖에서 '불이야!' 아무리 소리쳐도 놀고 있는 아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나는 폭염 경보를 접하면서 '화택' 비유를 떠올렸다. 물론 불난 집은 지구이고, 아이들은 우리 인간동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다. 집은 불타고 있는데 집안의 아이들은 왜 딴짓만 하고 있을까.

책 표지와 책 제목이 넘 무섭게 느껴지는건 저뿐일까요?!



<화택>, 생태 환경문제에 관한 시집이라 엄청 생소했거든요.

그런데 2부_멸종위기, 3부_화택 목차를 읽으면서 넘 신박하더라구요.


이 시를 제일 먼저 읽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시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여기는 '불난 집'입니다.

...

지구는 현재 '불난 집'입니다.

집은 불타고 있는데 집안의 인간 족속들은 이를 모르고

계속 한눈팔고 있다는 점이 더 커다란 문제입니다.

화택!

활활 타오르고 있는 삼계화택입니다.

이 위기의 화택.

언제까지 방관만 하실 겁니까.

...



시 제목들이 바늘이 되어 콕콕 찌르네요.

최고 수준의 이산화탄소 농도, 온난화라는 용어와 포장 기술, 폭염으로 끓고 있는 지구, 잠잘 수 없는 밤, 아름다운 산호초가 사라지고 있다면, 사막, 폭염의 원인, 숲 파괴 생명 파괴, 쓰레기 섬





이 시에서 공통점이 있어요.

염라대왕님!

이게 무슨 말입니까.


진짜 염라대왕님께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네요.

지금 불난 집이 된 한반도를 보면 염라대왕이 뭐라 말할까요? 어떤 심판을 할까요?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시에요.

찬란한 멸종

...

대왕님!

인간 대멸종의 시대입니다.

서둘러 커더란 벌을 내려 주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



인간 족속이 자초한 대멸종 시기

대왕님이시여!

하루빨리 처리하여

지상의 모든 인간 족속들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소서

윤범모 작가님은 어떤 의도로 청소라는 단어를, 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요?

인간이 자초한 대멸종 시기 맞아요.

생태 환경문제 심각한데 불 타는 집 속 어린아이처럼 인간은 왜 딴짓만 하고 있을까요?

생각하고 있다면 늦어요. 실천해야 할 때이죠!!!

<화택>책을 통해 폭염 시대의 불난 집과 멸종위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시로 되어 있어 온가족이 다함께 읽고

염라대왕님! 이게 무슨 말입니까.로 시작하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해봐야할꺼 같아요.

심각성을 시 한편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어요. 절대 지나쳐서는 안될 심각성을 말이에요.

불타는 집, 화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손으로 칠하는 마티스 컬러링북 - 명화를 감상하는 색다른 방법
김민영 지음 / 온초록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명화를 감상하는 색다른 방법

내 손으로 칠하는 마티스 컬러링북

마티스 컬러링북이라니요?!

wow~~~

보자마자 내 손으로 칠해서 작품으로 완성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어요.


컬러링북 속에 마티스의 작품이 총 24점이 있어요.

제 취향의 작품이 많네요. 앗싸!



마티스 작품 중에서 꽃그림도 좋더라구요.

데이지꽃, 뻐꾸기 파란색과 분홍색 카페, 붉은 실내 파란탁자 위의 정물 이 세 작품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어요.



제일 먼저 색칠해봤어요.

컬러링북을 하면 스트레스 해소, 정서적 안정이 되잖아요. 그야말로 힐링타임이었어요.

컬러링북은 완성해야 하는 예술이 아니라 과정 그 자체가 치유가 되는 에술이라고 책에 나와있는데 200% 공감되는 말이네요. 요즘 진짜 바빠서 정신이 없었는데 <내 손으로 칠하는 마티스 컬러링북>으로 힐링을 가져보았네요.

화려한 색감으로 꼼꼼하게 색연필로 칠했는데 넘 맘에 들더라구요.

힐링타임을 가지면서 마티스 작품에 제가 욕심을 좀 냈네요. ㅎㅎㅎ




마티스하면 색종이컷아웃 기법으로 유명하잖아요.

붓 대신 가위를 들고 마티스가 작품을 만들었는데 저도 색연필 대신 색종이와 가위로 이 작품을 꾸며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컬러링북을 하면 스트레스 해소, 두뇌 활성화, 정서적 안정 두루두루 되죠~~~

그보다 전 마티스 컬러링북이라 더! 더! 더! 좋아요.

마티스 작품을 감상하는 색다른 방법이에요.

그리고 제가 색연필로 색칠한 작품들 보셨죠~~~ 컬러링 작품도 대만족입니다!!!

그래서 <내 손으로 칠하는 마티스 컬러링북>하면서 하나의 계획을 세워봤어요.

멋진 액자는 아니어도 저의 컬러링 작품을 액자에 넣어 거실 한켠에 전시해보고 싶다는 계획 말이죠.

I CAN DO IT.


<내 손으로 칠하는 마티스 컬러링북> 저처럼 즐겨보세요.

이래저래 요즘 넘 정신없었는데 컬러링하면서 힐링타임 제대로 즐겼네요.

오롯이 나만의 시간에 푹 빠졌네요.

명화를 감상하는 색다른 방법으로 <내 손으로 칠하는 마티스 컬러링북> 추천합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픔의 틈새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한 조각


엄청 역사에 관심있는 1인도 아니지만

소설로나마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한 조각을 읽고 있어요.

슬픔의 틈새 저는 마지막 부분에서 너무 슬펐어요.

"열흘 넘게 걸렸던 길을 세 시간도 안 걸려서 왔구나."

"세 시간도 안 걸린 게 아니라 50년이나 걸린 거 아니야?"

"그러네. 50년 걸린 게 맞다."

소설 속 이 분들에게 어찌나 죄송하고 또 죄송하던지요.

그런데 슬픔의 틈색에서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찾아내고자 애쓰며 살았다는걸 기억해달라는 이 분들입니다.

"사할린 한인들의 삶을 전할 때 우리가 모진 운명 속에서도 사람다움을 잃지 않고, 슬픔의 틈새에서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찾아내고자 애쓰며 살았다는 것 또한 함께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오."

멀쩡한 조선 애를 왜 집에서까정....

덕춘은 꿋꿋이 해자라고 불렀다. 특별히 애국심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학교 선생님들이 하는 이야기는 어른들 말과 많이 달랐다. 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은 시간 날 때마다 핏대를 올리며 일본과 군대를 찬양했다.

"엄니, 해방됐으니 우리도 집으로 가야 하지 않아유?"

...

해방 후 조선은 반으로 나뉘었다. 남쪽은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을, 북쪽은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일제강점기 때 사할린으로 끌려온 사람들은 거의 대한민국에 속하는 남쪽 사람들이었다. 사할린의 조선인들은 대한민국 수립에 따라 조선을 한국으로, 자신들을 한인으로 명명했다. 사람들은 이제 조국이 당당하게 있으니 일본 귀환선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보낸 귀국선으로 타고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겨진 모두가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우리도 돌아갈 수 있도록 해줍서. 조국에 우리 실상을 알려줍서."



어찌 내가 덕춘 엄니를 1/10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환갑도 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덕춘엄니. 여덟 명의 자식을 낳았지만 둘은 이름을 얻기도 전에 죽었다. 두 명의 자식과는 20년 넘게 헤어져 지냈고, 또 한 자식은 몇 년째 소식이 끊겼다. 남편과도 함께 산 세월보다 떨어져 산 세월이 훨씬 길었다.

덕춘엄니의 딸 단옥은 나날이 더 희미해지는 기억들이 아예 사라질까봐 겁내며 틈날 때마다 고향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일기는 언젠가 만날 고향의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자신들이 사할린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말해주고 싶었다.

단옥이 고향 이야기를 기록하고, 일기를 쓰는 이 마음 넘 이해가 가니까 진짜 이 부분에서 코끝이 찡했어요.



<슬픔의 틈새> 책은 소제목 아래에 년도가 표시되어 있어요.

1943년에서 시작해요. 1943년, 44년, 45년, 46년, 49년, 51년, 57년, 60년, 61년, 63년, 64년, 66년 ... 이렇게 이어나가요.

그러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야기가 나와요.

내가 아는 시기잖아요 그런데 사할린에 남겨진 분들의 시점에서 읽으니 무언가가 가슴에서 올라오더라구요.

"35년간 일본의 진재블 받고 전쟁까지 치렀던 나라에서 올림픽을 하다니. 무엇보다 40년 넘게 금단의 땅이었던 고국에서 열리는 개막식과 경기를 텔레비젼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아직도 믿지지 않았다."



1966년 소련의 무인 탐사선이 세계 최초로 달에 착륙했다. 정부에서는 그 사실을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한인들은 달나라도 가는 세상에 자신들은 어째서 고향에 가지 못하는지, 더 큰 박탈감과 상실감을 느꼈다.

사할린 한인 1세대들은 조국을 그리워하면서 원망했고, 미워하면서 절절히 사랑했다.



"열흘 넘게 걸렸던 길을 세 시간도 안 걸려서 왔구나."

"세 시간도 안 걸린 게 아니라 50년이나 걸린 거 아니야?"

"그러네. 50년 걸린 게 맞다."

50년 걸려서 한국에 온 단옥이네 가족이에요.

단옥의 남편 진수가 이런 사람이었나요? 얼마나 그만큼 고향, 가족들에게 대한 그림움이 있었을까요?

단옥은 진수가 이곳에서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게 느껴졌다. 단옥이 지금까지 봐온 남편은 사할린의 겨울 풍경처럼 무채색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고향에 와선 겨울에도 주황빛 감굴과 빨간 동백꽃, 푸르른 보리밭과 노란 유채밭이 펼쳐진 제주처럼 다채로운 빛깔을 지닌 사람으로 바뀌었다. 혈육의 아낌없는 환대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주었다.



<슬픔의 틈새> 책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슬프고 슬프고 또 슬펐어요.

그런데 단옥의 이 청 때문에 슬픔의 틈새에서 있었던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찾아내려고 한 사할린의 그 분들이 마지막으로 제 머리속에 새겨졌어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우리의 기구한 운명과 불행, 고통, 슬픔을 듣고 그 이야기를 세상에 전했고, ...

앞으로는 사할린 한인들의 삶을 전할 때 우리가 모진 운명 속에서도 사람다움을 잃지 않고, 슬픔의 틈색에서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찾아내고자 애쓰며 살았다는 것 또한 함께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소."

<슬픔의 틈새> 책은 일제강점기 한인 여성의 디아스포라라는주제를 품고 있거든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의 한 조각입니다.

궁금하시면 꼭 읽어보세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