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발견 - 상실, 그 이후의 삶을 헤아려본 과학의 응답
바버라 블래츨리 지음, 제효영 옮김 / 디플롯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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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그 이후의 삶

<슬픔의 발견>책은 아직 사별을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별을 겪은 이의 깨달은 것을 읽으면서 공유할 수 있네요.

생각을 해본적 없는 '사별' 이야기. 하지만 죽음에 관한 책은 아니에요.

상실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사랑에 관한 책에 가까워요.

​

* 당신을 잃은 날 *

"사별은 인생의 모든 면면을 바꿔놓는다. 삶의 한 부분이 달라져서 적응해야 하는 수준을 넘어 통째 바꾸는 삶에 적응해야 한다."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책 속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 변화에 적응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괴롭고,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인가 가늠이 되네요.



​

*3개월이 흐른 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을 통틀어 스트레스가 가장 극심하다."

사별 후에 겪은 솔직한 작가의 슬픔 이야기 숙연해지면서 내가 겪지 않았지만 공감이 되네요.

남편이 있던 자리가 텅 비어버린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하려고 얼마나 안감힘을 써야 할까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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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이 흐른 후*

"학생은 남자 친구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아침마다 또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무너지고 말았다. 남의 사무실에서,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그 슬픔을 아는 이는 눈물이 날꺼 같아요.

6개월이 흘렀지만 사별의 슬픔은 오래 가고, 나의 사별의 슬픔만큼 타인의 사별의 슬픔에 깊은 공감이 되지 않았을까요.



"난 지금 너무너무 슬퍼." 슬프다는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많은 학자가 인간이 언어를 쓸 수 있게 된 이후에도 계속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지금 무슨 상황인지, 무엇이 어떻게 힘든지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게 우는 것보다 자신의 상태를 훨씬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데도, 우리는 팽생 눈믈을 흘린다. 왜 그럴까?┘

인간이 왜 우는지를 설명하는 가장 오래된 이론 중 하나는 눈물을 흘리면 몸의 균형이 회복된다네요.

눈물을 흘리는 이유에는 다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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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흐른 후*

크리스가 떠나고 158일째 되던 날의 일기에는 가족의 결혼식에 갔다가 무너져버린 일이 적혀 있다.

크리스가 떠나고 324일째 되던 날의 일기에는 아이들에게 보내줄 사진을 찾다가 오래전 함께 찍은 우리 사진들을 뒤지면서, 마치 내 손이 활활 타는 불 위에 놓인 것처럼 느껴진 일이 적혀 있다.

"아파요. 아주 많이요."

저마다의 슬픔, 저마다의 고통이 다 달라요. 하지만 사별 후 느끼는 고통과 슬픔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요.



*4년이 흐른 후, 현재와 미래*

혼자 사는 것의 즐거움도 어느 정도 되찾았다.

크리스가 세상을 떠나고 처음 혼자 맞이한 여름은 암담하기만 했다.

그건 내가 겪은 변화 중 가장 좋은 것을 꼽는다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웃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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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이렇게 개인 적인 사별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슬픔의 발견

상실 이후의 삶 속에서 이 슬픔을 이야기하면서 자신도 치유되었지만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새로운 자신을 찾고 그 낯선 땅에서 다시 길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 과정은 두렵고, 부담스럽고, 힘들다."

​

세상을 떠난 사람의 빈자리는 앞으로 남은 삶에도 뻥 뜷린 구멍으로 남는다. 하지만 회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사별 후 괜찮아지는 데 걸리는 시간도 달라진다면...

┌상실을 겪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과 전혀 다른 일이다.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건 새로운 나, 이전과는 다른 나다. 사별은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사별을 겪고 나면, 새로운 나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



┌긍정심리학의 대표적인 연구 주제는 '희망'과 '낙관주의'가 우리 몸과 정신에 어떤 영향을 주는 가다.

사별의 슬픔과 애도의 측면에서, 희망과 낙관주의는 모두 원할한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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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보다 지독한 스승은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작가의 상실에 대한 슬픔 이야기, 직접 겪은 경험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에게 언젠가 닥칠 상실에 대한 슬픔의 훌륭한 스승, 나침반이 될꺼 같아요.

"사별과 상실의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내가 깨달은 것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슬픔의 발견> 작가의 애도의 기록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상실 이야기지만 공감 팍팍 되네요.

사랑이 없으면 슬픔도 없다.

인간에 대한 더없이 깊은 이해를 선물하는 작가의 상실에 대한 슬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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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리부트 - AI 시대를 압도할 미래 지능의 핵심, 뇌활용의 기술
한문화 편집부 엮음 / 한문화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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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의 노예가 될 것인가? 진화의 파트너가 될 것인가?

왜 이 책을 읽어야 할까요?

도구의 노예가 될 것인가? 진화의 파트너가 될 것인가?

중요한 부분이에요.

AI 시대를 압도할 미래 지능의 핵심, 뇌활용의 기술 <브레인 리부트> 책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지도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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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멍때리기'대회가 인기 있는 이유도 바로 다시 '인간'인가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뇌의 과도한 정보처리는 뇌 기능을 저하는 원인이 될 수 밖에 없거든요. 뇌 기능 저하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멍때리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ㅎ


이제는 인간과 기술의 공생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라는 글에 공감 200%되더라구요.

'어떤 기술을 만들 것인가' 이전에 '어떤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기술적 능력을 넘어선 인간다운 판단과 공감, 그리고 공동체적 책임감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성의 기반을 형성해야 한다고. AI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역량은 단지 기술 능력 배양이 아니다. 그 밑바탕에는 반드시 '인성 리터러시'라는 바탕이 자리해야 한다는 점!!!

​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꿀까?

이미 바꾸고 있어요!!!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이 여기에요. 이 변화의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인식하고 있나요?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통해 AI의 미래를 만들고 있는데, AI에 어떤 가치를 학습시키고 싶은가요?

내가 생산하고 소비하고 공유하는 데이터 속에서 어떤 가치를 드러내고 있는가? 그런 가치의 방향으로 기술이 진보한다면 내가 원하는 세상,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세상이 올 것인가?

AI의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있어요.

​

저도 산만함을 인정해요. 산만함의 시대, 몰입하는 뇌, 의식의 송곳을 세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뇌활용 기술을 하나 하나 이야기 하고 있어서 나에게 맞는, 내가 원하는 뇌활용 기술에 더 집중해서 읽게 되고 메모하게 되네요.

┌과학자들은 뇌가 두 가지 일에 동시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 멀티태스킹처럼 보이는 것은 실은 여러 가지 일을 왔다 갔다 하는 것에 불과하며, 이는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실수할 확률을 50%까지 높일 뿐이다.┘

'생각'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 보자. 시끄러운 세상을 조용히 움직이는 힘이네요.



집중력은 뇌의 근육이자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하네요. 쓰지 않으면 약해지고, 꾸준히 훈련하면 강해진대요.

아침 명상, 1분 주의력 집중, 디지털 단식, 독서 시간 늘리기,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기 5가지 실천법으로 주의력을 되찾아보려구요. 미래는 집중하는 사람의 것!!!



뇌 활용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면의 지혜와 연결하는 '브레인폰'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으세요?

정보를 얻거나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우리는 스마트폰에 의존하듯이 내면의 지헤와 연결하는 '브레인폰'에 의존해봐요.

브레인폰은 우리 뇌에 자연적으로 내장된 시스템으로, 우리를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에 연결해 줍니다.

브레인폰을 활성화하는 것은 스마트폰의 앱을 여는 것만큼 쉽네요. 화면을 터치하는 대신 자기 내면에 집중하면 된대요!



뇌는 외로움을 난도질로 인식한대요. 뇌의 공포 신호를 멈추는 처방전은 '공감'이에요.

혼자가 아니라는 연대감을 회복하는 법도, 외로움이라는 질병의 유일한 치료제도 바로 '사람'이네요.

인류 전체를 향한 보편적 공감 능력을 훈련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위기를 해결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앞으로도 목표이기도 하네요.

나를 넘어 지구와 호흡하는 공생관계에서 '보편적 공감 능력'은 꼭 필요해요.



그래서 AI시대에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사용하는 의식이에요.

인공지능은 인간을 위한 도구에요. 그 도구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는 인간의 지능 수준에 달려있지만 공생지능은 그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어요!



핵심은 더 현명하게 선택하는 능력 기르기가 아닐까요?

이 말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가', '인간 뇌의 가장 본질적 특성과 가치는 무엇인가'와 같은 맥락이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뇌를 긍정으로 리셋하기, 뇌 주인되기 꼭 나의 것으로 만들어보려구요.

​

AI의 미래 역시 인류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그 궤적을 그려나가겠죠. 도구의 노예가 되느냐, 진화의 파트너가 되느냐. 우리에게 달려있어요.


<브레인 리부트>책에 있는 내용들은 나만 알고 있기 넘 아까워요.

AI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에요. 20대 딸들에게 꼭 읽어보려고 먼저 권했네요. ㅎ

무엇을 아는가보다 어떻게 쓰는가가 중요하다. AI활용 능력이 미래 경쟁력이다. 인간다움에 이르기 위한 뇌활용법까지 ^^

​

<브레인 리부트> 책을 통해 뇌활용법 많이 알았네요.

뇌활용 어렵지 않게 키우는 기술도 있어서 메모해두고 하나씩 활용해보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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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늙겠다는 다짐 - 인생 후반전을 바꾸는 노년행복학 수업
마에노 다카시.스가와라 이쿠코 지음, 송경원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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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늙겠다는 다짐> 나를 위한 책 같았어요.

전 잘 늙고 싶거든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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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인 요즘은 정년퇴직 후에도 인생 후반전이라 할 만한 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 다 아시죠. ^^

잘 늙어야 합니다.

60세 이후에도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어덯게 해야 할까

고령자는 불행하기는 커넝 중년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노년에는 또 다른 행복이 기다리고 있어요.

또 다른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 노년을 기대해보아요. ^^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행복과는 또 다른 노년의 행복학~

쉽고 이해하기 쉽게 그래프와 글로 설명해주고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나이 들 수 있을까요?

나의 희망사항은, 우리 딸들이 '나도 이렇게 나이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멋지게 늙고 싶다는 거거든요.

나이가 들면 불행하다는 건 착각이라는 걸 40넘어서부터 조금씩 느끼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더 잘 늙을 수 있을까 몰랐는데 <잘 늙겠다는 다짐>책을 읽으면서 구체적으로 배우네요.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더 오래 산다!

노년의 행복은 무엇일까요?

특히 노년의 행복은 관계에 달려있대요.



실제로 사회적 관계가 부족한 사람은 사회적 관계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보다는 약 1.4배,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보다는 약 1.8배 더 감기에 잘 걸린다는 결과가 보고 되었습니다.



관계가 행복도를 높일 수 있지만 억지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게 힘든 사람도 많다고 생각이 들어요,

이 관계가 느슨한 관계라면 어떨까요?

노년의 관계 맺기 미리 겁먹을 필요 없겠죠. ^^

1년에 한 번 연하장을 주고받는 정도의 '느슨한 관계'가 고령자의 행복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 소수만 있는 것보다, 느슨한 관계의 지인이 많은 편이 고령자의 행복도를 더 높여 줍니다.



행복을 느끼면 몸도 변하고, 행복도가 높으면 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적과 같은 말 아닌가요? ^^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할까요? 행복도가 높아지는 자세가 있다는 사실 아셨나요?



일을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며, 타인이나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아나 공부처

기분이 가라앉을 때 잠시 고개를 들고 위를 바라보세요.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가벼워질 겁니다. 실제로 고개를 드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고개를 들고 있으면 뇌가 '어? 고개를 들고 있네. 그렇다면 지금 기분이 좋고 행복한 상태인가 보군'이라는고 해석해서, 행복감을 느끼도록 몸에 명령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고령자가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은 젊은 사람들의 선입견일지도 모르겠어요.

건강 수명은 데이타, 숫자에 불구해요. 건강하다고 느끼면 실제로도 오래 산대요.

'주관적 건강' 즉, 나는 건강하다, 이만하면 괜찮은 상태다라고 느끼는 사람은 두세 가지 지병이 있더라도 오래 살 수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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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후반전을 바꾸는 실천 가이드, 행복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만 기억했으면 좋겠네요.

나에게 맞는 무언가를 찾는 과정을 두려워 하지마세요.



저는 냥이집사라서 반려동물,반려식물 기르는 거 완죤 찬성합니다. ㅎ

그리고 전 처음 하는 일, 그 설레임을 좋아해요. 가슴이 설레는가~ 느낌 아니까!!! ㅎ

나이가 들수록 두려워하지 말고 거창할 필요도 없고 한번도 가 본적 없는 곳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것만으로도 좋대요. 중요한 것은 '가슴이 설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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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학, 노년학을 알면 나이들수록 행복한 사람들의 비밀을 알 수 있네요.

늙는다는 두려움에 잡아먹히지 말고 지금 준비해보기로 해요.

<잘 늙겠다는 다짐> 준비하는 4050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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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 맞을 용기 -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지랄맞을’ 용기를 내십시오
조영훈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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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무조건적인 인내가 아닌 단단한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지랄 맞을 용기> 책에서 지랄 맞다는 말은 구제 불능의 지랄맞은 성격을 가졌다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기꺼이 지랄맞을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 꺼 같아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무해하고 착한 사람이 되는 것, 어쩌면 그것이 학교와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했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 몸으로 직접 부딪쳐 보니 어떠셨나요?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지랄맞을 용기를 내보라고 책에서 말하고 있네요.

욕 좀 먹으면 어떤가요. 타인의 시선에 질질 끌려다니는 삶보다, 역사에 남을 정도로 기꺼이 지랄맞게 내 갈길을 가는 편이 훨씬 더 나다운 삶이라고 이야기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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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앞에서도 지랄맞을 용기, 밥줄 앞에서도 지랄맞을 용기, 억까 앞에서도 지랄맞을 용기, 권력 앞에서도 지랄맞을 용기, 세상 앞에서도 지랄맞을 용기, 운명 앞에서도 지랄맞을 용기

차례처럼 이렇게 지랄맞을 용기를 내어보고 싶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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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아는 위인전 속 인물들이 나와요.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그 인물의 이야기 의외의 지랄맞을 용기를 소개해보고 싶네요. ^^

​

┌우리는 흔히 모차르트를 자유롭게 피아노를 치며 아름다운 선율을 써 내려간 낭만적인 예술가로 상상합니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의 음악가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지우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천재 음악가가 권력자의 하수인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며 길거리로 쫓겨난 이 시간. 겉으로 보기에는 씻을 수 없는 굴욕이자 비참한 장면이었을 겁니다. 안정적인 돈도, 든든한 후원자도 모두 사라진 순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엉덩이를 걷어차인 모차르트는 이 굴욕에만 메달리지 않았습니다. 이후 빈에서 새로운 삶을 개쳑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나의 존엄과 영혼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굴욕적인 복종을 걷어찬 모차르트의 자존감도 지랄맞을 용기가 분명하네요.^^



모차르트가 부렸던 이 지랄맞음은 단순히 성질을 이기지 못한 일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사람으로 속해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대신, 내 삶과재능의 주도권을 온전히 내가 쥐겠다는 결연한 선언이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지랄맞을 이 용기에 박수를 보내게 되네요!!!



┌수백만 달러의 재산과 평생의 업적이 불타오르는 현장에서 가족을 불러 모아 불구경을 하겠다는 이 가상천외한 반응. 찰스는 아버지가 충격으로 정신을 놓아버렸다고 생각햇습니다. 하지만 에디슨은 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절망이라는 뻔한 함정에 빠지는 대신, 사고회로를 완전히 다른 방향을 특어버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에디슨은 기어코 명언을 남깁니다.

"재난이라는 것에도 참 큰 가치가 있더군. 우리가 그동안 저질렀던 모든 실수와 오류들이 저 불길 속에서 깨끗하게 타버렸어. 신에게 감사헥도, 우리는 이제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 시작할 수 있게 된 거야.┘

이것은 단순히 무한 긍정이나 정신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에디슨은 불타버린 공장을 보며 내가 잃어버린 과거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대신 그 잿더미를 과거의 잘못된 시행착오를 한 번에 청산해 버린 왕벽한 초기화로 재구정한 것입니다.



사실 에디슨 하면 어릴 때 알을 품고, 전기를 발명한 99%의 노력가로 잘 알려져있는데 이 지랄맞을 용기 몰랐네요.

"망했다"라고 선언하는 대신 인식을 재구성하는 순간, 끔찍했던 불행은 새롭게 도약하게 만드는 첫걸음이 되네요!



파블로 피카소 이야기를 해볼께요.

영원히 쳇바퀴를 돌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들이 만들어 놓은 트랙 위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달리려 애쓰는 대신, 아예 기존의 판 자체를 뒤엎어버리고 나만의 새로운 판을 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파블로 피카소가 천재이기에 가능했을까요? 아니요. 피카소는 자기확신이 있었어요.

피카소의 내면에는 타인의 잣대 따위는 가볍게 삼킬 수 있는 압도적인 자기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끝날 일인데 발버둥 쳐서 뭐 해?라며 남은 에너지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스티브 호킹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고, 스스로 침조차 삼킬 수 없는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우주의 기운을 풀어냈습니다.

세상이나 운명이 당신에게 "너는 한계에 부딪혔다". "시간이 없다", "더는 무리다"라고 정하려 들 때, 그 선고를 단순히 체념하고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오히려 호킹처럼 기꺼이 한계를 틀어쥐고 이어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스티브 호킹의 지랄맞을 용기는 꼭 20대 딸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더라구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음이들에게 말이죠.^^



​

​

책을 다 읽고나니 이 문장이 이해가 갑니다.

우리가 불렀던 '지랄', 사실은 가장 온전한 나를 지켜려는 다정함이었다는 것을요.

결국 세상이 말하는 '지랄맞음'이란, 그저 입맛대로 조정하기 까다로운 사람에게 붙이는 편파적인 꼬리표일 뿐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배웠네요. '지랄맞을 용기'는 세상의 억악으로부터 내 영혼이 병들지 않도록 스스로를 꽉 끌어안는, 내 삶을 향한 가장 깊고 다정한 애착인 것이라는 것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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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늘 둥글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지랄맞을 용기를 내보세요.

구제 불능의 지랄맞은 성격을 가졌다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기꺼이 지랄맞을 수 있는 용기를 갖겠다!

꼭 기억하세요. ^^

저도 기꺼이 지랄맞을 용기를 가지고 내 인생을 살아가야겠네요.

가족들에게도 이 지랄맞을 용기를 가지라고 함께 읽자고 권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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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
이지윤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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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 책은 권력, 돈, 시대의 욕망은 어떻게 미술의 가치를 바꾸왔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걸장은 세 번 태어난다.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미술시장에서 그리고 컬렉터의 손에서.

미술의 가치를 알면 비지니스가 보입니다.


그럼 미술 생태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진화하는 21세기 미술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어요.

​

미술 생태계는 1300년부터 20세기까지 발전을 거듭하며 구조와 프레임을 만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21세기 미술은, 기존의 미술 생태계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다른 차원의 미술로 대전환을 시작한 듯 보입니다.

​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 <클라우드 게이트> 소개하고 있어요.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맥락은 오목하고 볼록한 스테인리스스틸 표면이 만들어내는 반사성에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 에너지가 들어왔다 나가며 한순간도 쉬지 않고 변화하는 것을 보여주는게 핵심이었죠.┘

보통 우리가 아는 미술은 작가의 손끝에서 작품이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이 작품은 매일 매일 변하는 시간과 그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소통합니다.



저도 리움미술관에서 이불 작가의 작품을 보고 왔었는데

21세기 미술은 보는 미술에서 경험하는 미술로 변화하고 있네요.



​

시대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미술 생태계는 어떨까요?

순수한 미술은 애초에 없었다. 이 말에 시대의 눈이라는 필터를 끼워 읽으면 더 재밌네요.

시대 + 권력과 돈 그리고 미술 이 공식이 맞을까요?

특히 21세기 미술에는 이 공식이 맞질 않네요.

미술에는 정답이 없네요.



상품으로 거래되기 시작한 미술은 '시대가 작품의 값을 매긴다'이 말처럼 시대가 아주 중요해요.

시대에 따라 평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품을 통해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시장의 가치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겠겠네요.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한 작가의 작품을 단순히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뮤지엄이 국가의 전략이 되었다 할 정도잖아요.

영국이 대표적인 문화강국이 될 수 있었던 건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과 자국민에 대한 교육체서 찾을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어요. 그만큼 미술은 국가 전략으로 수립했다고 보고 싶네요.

"영국 작가를 키워야 합니다. 프랑스에 퐁피두 미술관이 개관했습니다. 영국도 미래의 미술관을 준비하고 영국 작가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요즘 한국에서도 한국 신진작가들의 소개전 많이 열려서 좋더라구요.

국가의 전략이 필요한만큼 한국미술도 국가의 전략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해요.



​

책을 읽다보면 그럼 모든 작품은 순수하지 않다?!

권력, 돈, 시대의 욕망들이 미술의 가치를 바꾸었다는 사실은 알면 알수록 묘해요.

그런데 지금도 이럴까요?

조금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MZ세대가 연 새로운 미술시장도 변화하고 있는 미술시장이라고 볼 수 있어요.

더 이상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니에요. 기존 갤러리나 옥션의 문턱이 없는 온라인 거래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객관성과 투명성이 개선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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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미술은 없다> 책에서 미술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맥락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그리고 미술이 어떤 유통 과정을 거치며 자본이 되었는지 알면 알수록 어렵지만 흥미로웠어요.

좋은 작품의 정의이란 뭘까요?

┌ 순수한 미술은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 불순함 속에서, 우리는 매 시대 새로운 방식으로 아름다움과 가치를 합의해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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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데이터가 붓을 쥐는 시대네요.

과거, 현재 보다 미래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넓은 문을 열고 들어설꺼 같네요.

시대의 철학과 철학과 가치를 반영하는 미술, '순수한 미술은 없다' 굉장히 매력있어요.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읽으니 흥미로운 이야기 술술 잘 넘어가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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