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외톨이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이방인은 적이 아니다.
이방인은 단지 그 사회의 문법을 자동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그는 그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 그 사회의 사람들과 일하고, 식사하고, 대화한다.
그러나 그 사회의 가치관을 통째로 삼키지는 않는다. 한번 입에 넣고, 씹어보고, 자신에게 맞는 부분만 심킨다. 나머지는 뱉어낸다. 이 씹는 행위, 이 분별의 시간이 한 사람을 이방으로 만든다.
카뮈의 <이방인>, <시지프신화> 이야기가 많이 나오네요.
읽었던 책이라 반갑기도 하고, 내가 그때 물음표를 쳐놓은 부분의 이야기도 다시 읽게 되어 감격스럽네요.
알베르 카뮈 <내면혁명> 책을 읽다보니 다시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 이방인에서 검사가 가장 길게 추궁한 것은 그가 어머니의 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회는 살인보다 감정 문법의 위반을 더 무거운 죄로 다룬다.
...
뫼르소가 삼뜩한 인물로 다가오는 까닭은 결코 잔인해서가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만적인 연기를 단호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슬프지 않을 때 슬픈 척하지 않는다.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답한다. 결혼하자는 제안에 원한다면 그러자고 말한다. 이 무미건조한 정직함이 사회를 격분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