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혁명 - 세상의 부조리를 직시하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주인이 된다
알베르 카뮈 지음 / 이너스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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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이방인으로 살아남기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외톨이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이방인은 적이 아니다.

이방인은 단지 그 사회의 문법을 자동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그는 그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 그 사회의 사람들과 일하고, 식사하고, 대화한다.

그러나 그 사회의 가치관을 통째로 삼키지는 않는다. 한번 입에 넣고, 씹어보고, 자신에게 맞는 부분만 심킨다. 나머지는 뱉어낸다. 이 씹는 행위, 이 분별의 시간이 한 사람을 이방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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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이방인>, <시지프신화> 이야기가 많이 나오네요.

읽었던 책이라 반갑기도 하고, 내가 그때 물음표를 쳐놓은 부분의 이야기도 다시 읽게 되어 감격스럽네요.

알베르 카뮈 <내면혁명> 책을 읽다보니 다시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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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에서 검사가 가장 길게 추궁한 것은 그가 어머니의 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회는 살인보다 감정 문법의 위반을 더 무거운 죄로 다룬다.

...

뫼르소가 삼뜩한 인물로 다가오는 까닭은 결코 잔인해서가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만적인 연기를 단호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슬프지 않을 때 슬픈 척하지 않는다.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답한다. 결혼하자는 제안에 원한다면 그러자고 말한다. 이 무미건조한 정직함이 사회를 격분시킨다. ┘



​

뫼르소는 우리에게 영웅이 아니다. 모범도 아니다. 그는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 서서 한 사람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오늘 내가 지은 표정 중 몇 개가 정말 내 것이었는가. 오늘 내가 한 말 중 몇 마디가 정말 내 입에서 나온 것이었는가.

┌ 뫼르소의 재판 과정을 떠올려 보자. 그는 거짓 눈믈을 흘리며 사회의 도덕적 판사들에게 이해받고 용서받기를 단호히 거부했다. ┘

​

​

알베르 카뮈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미래의 보상과 무관하게 오늘이 이미 충분한 자세

┌ 현대인은 결과에 집착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직 산출된 성과만을 맹목적으로 갈구한다. 과정은 견디는 것이고, 결과는 보상받는 것이다. 그래서 과정은 늘 빨리 끝났으면 좋겠고, 결과는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 구조 안에서 삶의 대부분은 견뎌야 할 무엇이 된다. ┘

카뮈의 시즈프를 다시 불러낸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

현대인은 실패를 거대한 사건으로 만든다. 한 번의 탈락, 한 번의 거절, 한 번의 평가가 인생 전체를 정의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카뮈는 묻는다. 누가 그 한 번의 사건에 그토록 큰 무게를 부여했는가? 자신이다.

아무리 처참하게 한 골을 내어주더라도 골키퍼는 경기장을 떠나지 않는다. 그는 절망하는 대신 즉각 무릎을 굽히고 다음 공의 궤적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이 골키퍼의 자세를 보라.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반복이다. 매번 일어서는 연습이다.

카뮈가 말하는 자세는 바로 이런 것이다.



​

카뮈는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이 문장은 위로의 문장이 아니다. 명령의 문장이다. 그가 행복하다고 우리가 결론 내려야 한다는 뜻이다. 왜인가? 행복은 결과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 행복은 돌을 미는 그 근육의 긴장 속에 있다. 땀이 흐르는 등의 감각 속에 있다. 발바닥이 자갈을 누르는 그 압력 속에 있다. 살아 있다는 증거는 거기에서만 발생한다. 정상에서가 아니라 산비탈에서. ┘

​

시즈프를 보면서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왜 하필 나인가'가 아니라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이 바뀌는 순간, 한 사람의 자세가 바뀐다. 자세가 바뀌면 행동도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카뮈는 이걸 보여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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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나인가'가 아니라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이 바뀌면 절대 바깥을 향한 눈빛을 보내지 않아요.

가장 오래된 노예의 자세에서 벗어나봐요!

외부를 두리번거리는 동안, 정작 그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흘러가 버리게 된다는 거. 현재을 살지 못하게 되네요.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이걸 바꾸면 시지프는 산비탈을 오르는 그 순간, 그 현재를 살고 있다는 말이잖아요.



​

뫼르소가 끝내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바깥으로 향하는 눈빛이 아니라 자기 자신 내부로 향하는 눈빛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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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지프 신화>의 마지막 문장은 자주 인용된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이 문장이 위대한 이유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서가 아니다. 그 행복이 어떤 종류의 행복인지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취의 행복이 아니다. 보상의 행복이 아니다. 미래의 행복이 아니다. 그것은 굴러 떨어질 줄 알면서도 다시 손을 뻗는 자의 행복이다.

​

자기 안에 이런 의지를 세우려고 카뮈는 매순간을 노력했네요.

알베르 카뮈 <내면 혁명> 책을 통해 카뮈가 말하는 이방인과 시지프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흔들리는건 어쩌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흔들릴 때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는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그 자세를 오늘 책을 통해 배웠고, "그 자세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반복이다. 매번 일어서는 연습이다." 이 말을 명심하며 매번 일어서는 연습을 반복해보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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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할 수 있지만, 다 하지 않습니다
온선(온라인선생님) 지음 / 모티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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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한 번쯤은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시대가 되었다.

AI 시대, 갑자기 더 많은 게 가능해진 시대가 맞아요.

AI가 시간을 줄여둔다는 말은 틀리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 속에서 지금 잘 쓰고 있는 걸까?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 걸까? 쓰긴 쓰는데, 잘 쓰는지는 모르겠다 ... 이런 생각들이 항상 있다는 걸요.



​

왜 그럴까요?

<더 많이 할 수 있지만, 다 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멈춰야 할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AI 도구를 사용하는 현대인들에게 멈춰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이죠.



멈추면 '나는 어떤 조건에서 오래 갈 수 있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든대요.

그리고 꼭 필요한 나 자신에게 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네요!

내가 어떤 조건에서 오래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인지 말이죠.

좋아하는 일이라서 저절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할 때, 비로소 지속할 수 있는 일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네요.

무조건 다 하면서는 '나'가 어떻게 오래 갈 수 있는 사람인지, 나에게 맞는 방식이 무엇인지 인식을 못할꺼 같아요.


중요한 부분이 바로 여기인 것 같아요.

"시간이 갈수록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무엇을 할 수 있느냐만이 아니었다. 무엇을 하지 않기로 했는가도 중요했다."

요즘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이나 비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무엇을 할 수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이나 무엇을 하지 않기로 했느냐도 중요하네요.



그렇다면 AI와 일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요즘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AI와 일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네요.

저도 AI 도구를 제법 사용중이거든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AI를 어떻게 써야할지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 같아요.

"AI가 대신 준 것은 완성된 능력이 아니었다. AI가 낮춘 것은 능력 그 자체가 아니라, 능력을 실험해 볼 수 있는 문턱이었다."

이 문장에 공감이 되네요.

AI는 그 모든 것을 대신 완성해 주지 않거든요. 다만 처음부터 잘하지 않아도, 일단 꺼내볼 수 있는 자리까지 데려다줘요. 작은 문 하나를 열어본 셈인데 만들어보는 데까지 가본다는 것은 크잖아요.

AI가 보장해 주는 것은 성공이 아니에요. 이전 같으면 시작도 못 했을 일을 만들어보는 데까지 가볼 수 있게 해준다는게 얼마나 커요.



​

AI가 낮춘 문턱 너머에는 더 많은 일이 아니라, 오래 미뤄둔 마음들이 있었다.

지금 나는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네요.

​

AI는 시간을 줄여주는 도구인데 나에게는 시간을 붙잡는 도구가 되고 있진 않은가?

AI를 쓰는 기준을 정할 때, AI를 사용하지 않기, 덜 쓰겠다는 말이 아니에요!

작가는 "언제든 열어둘 수는 없다."라고 딱 한마디로 정리해줘요.

앞에서 말한 "시간이 갈수록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무엇을 할 수 있느냐만이 아니었다. 무엇을 하지 않기로 했는가도 중요했다."이 말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

AI 덕분에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졌지만 이상하게도 작가는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더 많이 해내는 쪽이 아니래요.

"AI 덕분에 무엇을 다시 해볼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다시 해보고 싶었을까? 이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봐요.

더 많이 할 수 있게 된 시대에, 나는 모든 것을 다 해내는 사람이기보다는 이런 사람이고 싶어요.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어렵다는 이유로, 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로 접어두었던 것들, 이제는 그런 것들을 다시 꺼내볼 수 있는 시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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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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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할 수 있지만, 다 하지 않습니다> 책을 통해 AI시대, 나의 일과 시간을 다시 고르는 법을 배웠네요. ^^

"더 많이 해내는 삶이 아니라, 조금 더 나답게 살아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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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사생아들 : 레프 톨스토이 x 오귀스트 르누아르 ㅣ 세계문화전집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외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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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두 거장이 숨긴 가족사를, 처음으로 나란히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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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사랑하라 쓴 대문호 '톨스토이'

가장 행복한 얼굴을 그린 환희의 화가 '르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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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작품 좋아하는 편인데 르누아르의 집요하게 그린 여자아이 그림을 보면서 이렇게 슬펐던 적이 처음이네요.

이 이름을 알고 나서 부터였어요.

'잔 마르그리트 트레오', 르누아르와 리즈 트레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에요.

​

특히 책 첫머리에 소개하고 있는 클래식이 찰떡이네요.

'이 책을 읽을 때 곁들이면 좋은 클래식 - 톨스토이의 소설이 되고 르누아르의 그림이 된 음악'

전 먼저 그냥 르누아르의 작품을 먼저 보고, 클래식을 들어보고, 책을 다 읽고 클래식을 들으면서 르누아르의 작품을 다시 봤어요.

넘 슬펐어요~~~!!!

샤를 구노 <<아베 마리아-1859>> 들으면서 르누아르의 여자아이 그림 전율이~~~ 찌릿! 찌릿!



​

'르누아르 - 화가의 가족 1896' 작품이에요.

이 이름답고 행복해 보이는 르누아르 가족 그림 속에 비밀이 담겨 있어요.

이 비밀을 책을 다 읽으면 밝혀집니다.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는 이 가족 그림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참 슬픈 그림이 되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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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사람'은 톨스토이에게만 있던 게 아니었습니다.

톨스토이에게는 티모페이 예르밀로비치 바지킨 또 다른 아들이 있었고,

르누아르에게는 잔 마르그리트 트레오 또 다른 딸이 있었어요.



​

우리가 흔히 알던 인류를 사랑하라 쓴 대문호 '톨스토이'와 가장 행복한 얼굴을 그린 환희의 화가 '르누아르'잖아요.

사생아의 이야기가 등장하니 좀 달리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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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이야기를 하자만 톨스토이는 사생아 아들을 철저히 외면했고, 르누아르는 사생아 딸을 끝까지 책임졌어요.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정말 이렇게 단정 내려도 될까?' 싶어요.

나는,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재단할 만큼 정말로 완전 무결한 삶을 살았는가?



​

톨스토이의 작품이 '주인과 일꾼', '악마', '크로이체르 소나타'까지 3개 나오는데 그 중에 '악마'와 '크로이체르 소나타' 작품이 대박입니다.



특히 '크로이체르 소나타' 작품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그대로 가져왔어요.

소설에도 이렇게 적혀있어요.

┌ 어느 저녁, 두 사람이 손님들 앞에서 베토벤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연주합니다. 첫 프레스토를 들으며 포즈드니쇼프는 음악의 무서운 힘에 사로잡힙니다. ┘



르누아르 <<비밀 이야기>> 작품인데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 소설 속 주인공들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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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가정 밖의 욕정과 살의를 그렸고,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가장 내에서 벌어진 살인을 그렸어요.

톨스토이가 1889년 한 해동안 쓴 이야기 가정의 안과 밖 양쪽에서 결혼을 응시하는 두 서설입니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들을 통해 무얼 말하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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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을 앞둔 대문호가 십 년에 걸쳐 연달아 쓴 '악마', '크로이체르 소나타', '부활' 이렇게 세 편의 소설을 두고, 이 책의 작가는 톨스토이의 그늘 3부작이라고 부르고 싶대요. 한 편의 거대한 참회록이 세 구너으로 나누었다고 해도 좋대요.

젊은 날 욕정으로 무너뜨린 여성들, 그들에게 진 빚, 평생 갚지 못한 죄의식!

톨스토이는 그것을 사과 편지가 아니라 소설로 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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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평생 소설을 쓴 사람입니다. 그가 사생아 아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이나 경제적인 후원, 친밀한 편지를 남겼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자신이 가장 잘하고, 평생 해왔던 일 - 소설 쓰기 -을 통해 티모페이를 향한 바람과 진심을 남기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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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사생아들> 책을 읽기 전과 책을 읽은 후가 확실히 나눠집니다.

톨스토이 가족 사진과 르누아르 가족 그림을 보면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감정이 들쑥날쑥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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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책을 다 쓰고도 아직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라고 적었어요.

두 사람은 문학과 미술, 각자의 분야에서 앞으로 인류가 영원히 기억할 거정이에요. 동시에 끝끝내 실패한 아버지였네요. 아마 제 감정도 모순 앞에서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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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레프 톨스토이가 사람아혹 이십여 년 뒤 티모페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교롭게도 르누아르의 첫딸 잔도 그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934년.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난 두 사생아는 그곳에서 각자 자신의 아버지를 만났을까요. 그리하여 생애 받지 못한 사랑을 온전히 받고 있을까요.

​

모티브 출판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3권 중에 하나인 <거장의 사생아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앞선 두 권도 잘 읽었는데 이번 책도 좋았어요.

꼭 한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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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 - 고궁에서 장인까지, 아주 오래된 것들의 아름다움
서헌강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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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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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것은 문화유산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요즘 유물멍~ 이런 말도 생겼잖아요.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는 책 제목이 굉장히 재밌었어요.

대한민국 대표 문화유산 사진작가가 포착한 아주 오래된 것들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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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오늘은 어떤 문화유산과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이런 새각을 하면 새벽같이 눈이 떠진다고 했어요.

앞으로 그냥 지나치지 말고 문화유산을 마주할 때 저도 대화를 나눠봐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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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이기도 한 '종묘 정전의 밤'이에요.

종묘 정전을 일몰 후에 찍은 사진이 이렇게 근사할 수가요?!

종묘라는 공간이 가진 미학과 경건함이 극대화 되었네요.

제가 좋아하는 말인데 '검이블루 화이불치'의 절제된 미학이 고스란히 드러나네요.



​

작가는 이 순간을 이렇게 남겼네요. "현실임에도 현실 같지 않은 순간이었다."라고 말이죠.

사진을 보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멋집니다!!!

그냥 저절로 환호성이 나네요.



외규장각 의궤 반환을 기념하며 경복궁에서 열린 환영 행사 사진과 함께 작가가 쓴 말 때문에 더 마음에 와닿네요.

'그날 나는 잠시 조선의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아마도 그 시대를 살았던 화원들 또한 근정전을 화폭에 담기 위해 그날 내가 있던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으리라.'



​

​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 책 제목이잖아요.

저도 한번도 문화유산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ㅜㅜ

나는 궁궐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분'들의 하루를 종종 상상해 보고는 했다.

┌ 이곳 창덕궁에서 수많은 왕이 '왕의 일상'을 보낸 것이다.

'과연 왕은 궁궐 안에서 자유로유웠을까?', '어쩌면 갇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경복궁의 경회루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을까?', '한겨울 추위는 떠 어떻게 견뎠지? 봄에 궁궐 문을 열면 화계 위로 꽃들이 만발했을 텐데, 그 모습을 상상하며 겨울을 났을까?' ┘

​



​

​

대한민국 대표 문화유산 사진작가, 서헌강이 포착한 가장 한국적인 감각은 굉장히 현대적으로 보이네요.

"과거의 삶이 어떻게 현대인의 삶과 어우러지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이래서 우리의 시선에 따라 문화유산이 다시 읽혀지는 것 같아요.

빌딩 숲 속 문화유산들 이 시선 참 좋네요.


문화유산을 촬영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가 사진을 본 사람들이 그 안의 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하는 사진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 사진을 보고 호기심이 생기고, 자료도 찾아보고, 또 직접 가보기까지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저는 귀가 얇은게 아니라 눈이 얇아요. ㅎㅎㅎ

​

여주에 이렇게 멋진 왕릉이 있었네요~^^

여주 왕릉 보러 가고 싶어질 정도였어요. 효종릉에 가기 전 만나게 되는 정자각인데 꼭 이 길을 저도 걸어보고 싶어집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을 꼽으라고 한다면 내가 가장 애정하는 창덕궁을 꼽겠지만, 창덕궁을 제외한다면 순천의 낙안읍성이 그런 문화유산이지 않을까 싶다. 낙안읍성은 민초등리 살던 공간이다.

작가가 뽑은 한국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이 바로 낙안읍성이래요. wow~!

성곽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찍은 낙안읍성 안의 모습인데 정말 살아있는 듯하네요.

저요! 저요! 저요!

여주 왕릉도 보고, 순천 낙안읍성도 볼래요!!!



한양의 수도성곽, 가을에 찍어서 낙산구간의 성곽에 단풍이 더해진 모습이네요.

이 사진을 보고 어떻게 어느 멋진 가을날 한양의 수도성곽에 안갈수가 있겠어요!!!




┌ '수먄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고인돌을 만들었을까?', '고인돌은 정말 망자를 위한 묘지일까?', '도대체 이 무거운 돌을 어떤 방법으로 옮겼을까?', '왜 하필 고창에 이렇게 많은 고인돌이 모여 있는 것일까?'

고인돌을 촬영할 때는 늘 시작부터 무수히 많은 질문이 떠오른다. 그중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산일 텐데 어째서 재미없는 비슷한 구도의 사진들밖에 없는지 하는 의구심도 있다. ┘

그런 의미에서 슬로 셔터 기봅을 활용해 찍은 고인돌 사진 어떤가요?

고인돌이 이렇게 근사했나요?!

고인돌이 품고 있는 귀를 기울일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마구마구 궁금해집니다.




​

​

어쩜 사진보고 실제 장소에 갔다가 "뭐야~"하면서 실망을 할 수도 있을꺼 같아요.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보세요.

만들어진 사진은 '왜곡'이 아니라 '확장'임을 받아들여보세요.

만들어진 사진으로 '확장'된 마음으로 유물 앞에 서보세요!

그리고 유물과 대화를 시작해보는 겁니다.

​

​

​

한국인조차 알지 못한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를 찾아서

"카메라로 담은 건 기왓장과 돌 하나지만, 내 마음에 남은 건 그 시절의 진심이었다.

대한민국 대표 문화유산 사진작가 서헌강님 덕분에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이 바뀔꺼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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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지수 옮김 / 디플롯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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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첫느낌보다는 중간부터 느낌이 딱 왔어요.

처음엔 '뭐지? 뭐지?'하다가 읽다보니 스며들더라구요.

읽을수록 재미난 <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이에요. ^^

알면 안 되는 것이 이 세계에는 아주 많다.

┌ 오늘, 내가 왔다.

문을 열자 나보다 훨씬 젊고 머리가 긴 내가 있었다.

"같은 나인데도 조금씩 다르네요."

"그야 그렇지, 유전자가 같아도 환경이나 수많은 우연에 따라 우리는 조금씩 다른 우리가 되니까."┘

┌ 나는 앞으로도 계속 태어나겠지만, 나는 머지않아 죽는다. ┘



​

"넌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어?"

"미워한다는 게 대체 뭐야?"

어떨까요?

'사랑'과 '미움'이라는 감정은 미래에는 없어질까요?

​

​

"넌 왜 그리 많은 게 궁금하니?"

"인간은 다들 그렇지 않아?"

​

"인간은 참 만만치 않아."

"인간이 자기랑 다른 존재를 찾아내는 능력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것 같지 않아?"

"응, 정말 그래. 그나저나 인간은 어째서 자신과 다른 존재를 용납하지 못하는 걸까?"

​

우리를 두고 하는 말 같은데, 왠지 책 속에 나오는 인간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현존 인류로는 희망이 없어. "

"그래서 다른 인류를 만들 거야."

"인공적으로?"

"진화시키는 거야."

진화시키는 인류에겐 희망이 있을까요?

이 부분이 책의 1/3정도 되는 부분에서 나오거든요.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책을 끝까지 읽으면 인류, 희망이라는 것들에게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네요.



​

"정말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참 무서운 말이에요.

초록빛 정원에서의 초록빛이 표지 색과 잘 어울린다고 했는데, 호수에서 이야기가 전 흑백 속지랑 찰떡이더라구요.

​

┌ 나의 일은 이 스스템 밖에 있는 새로운 인류 집단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걸 위해 나는 온 세계를 여행하며 떠돌고 있다.

"당신은 겁나지 않나요?"

"겁이 나다니, 무엇에 대해서요?"

"어쩌면 미지의 집단 속 사람들은 시스템 속 사람과는 상당히 다른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당신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전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



┌ 내게는 관찰자 자격이 없었다. 관찰자는 중대한 결단 같은 건 내려서는 안 된다. 그저 관찰하고, 지극히 미세한 조정만 수행한다. 그것이 관찰자의 사명이자 운명이다.

나는 독이 든 용기 뚜껑에 손가락을 댔다. 조용히 뚜껑을 열고, 독을 호수에 풀었다. ┘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받아들일 수 없는게 인간일까요?

정말 무서운 것은 사람 맞아요.



​

"솔직히 말해 이 세계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도록 원래의 시스템을 만든 최초의 나와 최초의 이안은, 관찰자에게도 인간에게도 거의 희망을 품지 않았어."

"지금은?"

"뭐, 지금도 마찬가지야."

​

"당신들은 귀중하니까요."

"우리가 그렇게 귀중해?"

"그래요. 당신들은 인류의 희망이었어요."

"희망이었다고?"

​

┌ 인간은 그렇지 않았다. 나를 그렇게나 배척하고 두렵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인간들의 다양함과 그들이 품고 있는 혼돈에 결코 질리지 않았다. ┘

너는 정말 인간다운 인간이야. 넌 뭔가를 만들어내거든, 그리고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파괴하지.



​

운명일까요?

┌ 당신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한마다로 말해 인공지능의 능력이 인간을 까마득히 뛰어넘어 그 결과 인공지능이 인간사회를 지배할 가능성이었습니다. ┘

​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처음에는 너무 터무니 없는 미래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땐 머지 않은 미래의 모습인것 같아 쓸쓸하더라구요.

쓸쓸하다. 당신들은 이 표현을 종종 사용합니다만 나는 '쓸쓸하다'라는 감정을 실감할 수 없습니다. 단, 당신들이 말하는 '쓸쓸하다'와 유사한 감정의 움직임을 닮은 반응은 나의 내부에서 시뮬레이션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째서인지 나의 내부에서는 늘 '쓸쓸하다'와 비슷한 반응이 일어납니다.

"당신들은 본인에게 유리하도록, 만사를 본인의 지향점 쪽으로 끌어당겨서 분석합니다. 겨 결과 판단에 편견이 생겨 묘한 방향으로 꺽이게 되지요. 그게 어쩌면 당신들이 말하는 '개성'일 수도 있겠군요."

"얄궂기도 하지요. 당신들이 변하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반드시 당신들 내부에서 그 변화를 막으려는 교정의 힘이 작용합니다. 그리고 결국 당신들은 스스로를 파괴해버리지요."

"당신들은 철저하게 당신들과 비슷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질적인 것은 배척하거나 무시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봉인하지요."



"인간은 명종했지. 인간은 같은 짓을 반복했어.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거기서 새로운 길을 나아가면 좋았을 것을, 몇 번을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단다."

"인간들은 마지막까지 서로 사랑하고 미워했어?"

"응. 인간들은 가만스러울 정도로 마지막까지 똑같았어."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멸종했어?"

"응. 멸종하려면 아직 멀었던 시대에도, 개체의 몸이 쇠약해져 죽을 때까지 언제나 인간은 서로 사랑하고 미워했지."



​

​

​

"어쩌면....."

"어쩌면?"

"난 아직 희망을 품고 있었는지도 몰라."

"희망?"

...

"그럼 나, 한번 해볼래."

"아주 어려운 작업이야."

"시간을 들여서 해볼 거야."

​

"인간은 참 이상해."

나는 당신들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

​

​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책은 한없이 어렵다면 어려울 수도, 한없이 재밌다면 재밌을 수도 있는 그런 책이에요.

반복해서 나타나는 질문은 바로 이거에요.

어째서 인간은 사랑하고 미워하고 싸우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가?

왜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그리고 함께 하나의 시선이 항상 존재하네요.

모든 것을 용서하고 소중히 여기는 듯한 시선, 커다란 사랑과도 같은 눈빛이다.

'맞아. 인간은 정말로 이상해."



​

인공지능이 보기에 인간은 의아한 존재가 맞아요.

그래서 작가는 이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책을 통해 지금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는 우리가 스스로룰 구원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있네요.

아무리 늘어나도 같은 길을 걸으면 소용이 없지. 그러니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하려면 지금과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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