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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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베스트셀러'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해서 읽어봤네요.

제목도 참 특이하지 않나요.

<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작가 소개란에 이렇게 나와있어요.

┌ <우리가 본 것>은 2021년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으로 선정된 소설로, 소셜 미디어의 유해 콘텐츠를 검토하고 삭제하는 이들의 세계를 생생하고도 인상적으로 묘사하며 화제를 모았다. 네덜란드에서만 65만 부가 판매된 이 작품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중국 등 14개국에 번역 소개되었으며, 현재 텔레비전 드라마를 위한 각색이 진행 중이다. ┘

드라마로 나오면 저 꼭 보려구요. ㅎㅎㅎ

시작을 이렇게 하고 있어요.

그래서, 당신이 본 게 어떤 거라고요?​



내가 이 주인공이라면 어떨까 싶었어요.

헥사를 나온 지도 벌써 십육 개월이 지났는데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물어본다면 어떨까요?

지금 현재 '나'가 처해진 상황은 잘 이해하려면 주인공 '나'를 따라 왜 헥사를 입사를 하게 되었는지, 헥사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그리고 헥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하네요.

우리 사회에도 이렇게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이 많치 않을까요?

┌ 핵사에 지원하게 된 주된 이유도 당시에 일하던 콜센터보다 20퍼센트나 더 높은 시급을 주기 때문이었죠. 구인 광고에는 시급 말고는 벌말이 없었어요. 기껏해야 간단한 요건으로, 핵사에서 찾고 있는 인재는 "품질 보증 관리자'라고 적혀 있었죠. 이게 무슨 뜻인지 그 자리에서 당장 찾아봤어야 했는테, 당시에는 20퍼센트 높은 시급에 눈이 멀어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하게 된다고 해도 아주 달갑게 받아들이리라는 생각뿐이었어요. ┘



입사는 이런 이유로 했다고 해도, 만약 이런 증상이 있다면 어떡하세요?



이전 동료들은 소송을 시작하려고 하나봐요. 그런데 주인공 '나'는 이전 동료들이 왜 소송을 하려는지 이해하지만 동참할 일이 절대 없다고 못을 박고 있어요. 왜 동참하지 않을까요? 전 이 점이 궁금했고 책을 다 읽고나서도 솔직히 이 물음에 답을 못 찾았네요.

<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제목만 보고 감히 상상할 수 없었네요. 책을 읽는 내내 '견디기 힘들텐데...' 걱정이 한가득 되더라구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하는 점이 바로 이 점이지 않을까요?

"근데 대체 어떻게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있었던 거니?"



헥사에 입사하기 전 고객 서비스 대응 일, 우리나라에도 감정노동자라고 엄청 이야기를 많이 했었잖아요. 그런 일을 하다 헥사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 며칠은 창량한 한 줄기 바람 같은 나날이었어요. 아무도 나한테 소리치지 않는다니 얼마나 굉장하고 좋았겠어요."라고 이야기하는 주인공 '나'에 입장에서는 이럴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러다가 깨닫기 시작했을 때쯤 환경에 익숙해져버린 후여서 무감각해졌다?!

제3자 바깥에서 바라보는 시선에서 "무슨 헛소리야?"라고 하지만 막상 주인공 '나'는 무감각해졌을 수도 있을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할까요.



주인공 '나'를 따라 이야기를 읽다보면 주인공 '나'는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일부러 작가가 이렇게 주인공 '나'를 설정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건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평범하지 않은 '나'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직장에서 '나'에게 일어났던 것에 초점을 맞춰야죠.

┌ 어떤 남자가 맞은편 건물 지붕에 서 있었는데, ...

누군가가 "뭐라도 해야지 않겠어?"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웅얼거리기만 할 뿐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리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

무슨 일이 생긴걸까요?

그런데 왜 헥사 유해 게시글 삭제자로 일하는 직원들은 이 남자가 뛰어내릴꺼라고 확신했을까요?!

맞은편 건물 지붕에 서 있던 어떤 남자는 수리를 하러 잠시 올라간거 뿐이었는데 말이죠.

"왜 우리는 모두 하나같이 그 남자가 뛰어내릴 작정이라고 굳게 믿었던 걸까요?

"추락자들의 영상을 수도 없이 봤으니까."



책이 마지막으로 진행되면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걸까요?"라는 질문이 나에게 해봤던 것 같아요.

유해 게시글 삭제자들에게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어 가고 있는걸까요?

솔직히 읽으면서 두려웠네요.

특히나 마지막장을 읽을 땐 주인공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건지 걱정이 되더라구요.

"도저히 끝까지 볼 수가 없었어. 영상을 보면 자꾸 뭔가가 떠올랐으니까."

이 말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글 삭제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소셜 미디어의 불편한 부분을 다루는 탁월한 미스터리." 라는 이 말이 찰떡이네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네요.



"왜 우리는 모두 하나같이 그 남자가 뛰어내릴 작정이라고 굳게 믿었던 걸까요?

"추락자들의 영상을 수도 없이 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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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청춘이란? - 아픈 만큼 성숙하는 너를 위하여
헤르만 헤세 지음, 송동윤 옮김 / 스타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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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만큼 성숙하는 너를 위하여"

책 제목 <청춘이란?>처럼 청춘이란 무엇일까요?

청춘은 아마도 하나의 세계 알에서 깨어나려고 버둥거리는 게 아닐까 싶네요.

새는 알에서 깨어나려고 버둥거린다.

알은 곧 세계다.

새로 탄생하려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영혼이란 사랑이고 미래다. 영혼은 우리로 하여금 위대한 모습을 이루도록 하는 원천이다.

따라서 사랑이란 모든 것을 자신의 중심으로 이끌어들이기 때문에 시간을 극복하는 것이며 모든 교양과 지성, 그리고 비평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이다.



청춘의 낙서, 청춘의 사색, 청춘의 영혼, 청춘의 여행, 청춘의 위안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책의 맨 처음으로 이렇게 시작하네요.

┌ 지난날 체험했던 일이 낯설어지기도 하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억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사라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지난 시간의 많은 경험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



'헤르만헤세는 청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해주는 걸까?' 궁금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거든요.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헤르만헤세에게도 청춘이 있었겠지만 나에게도 청춘은 있었잖아요. ㅎ

나의 청춘은 어땠는지 다시금 기억 저편에서 나의 청춘에 대해서 생각해봤던 것 같아요.

고독만큼이나 '사색'도 좋아하는 단어거든요.

헤르만 헤세는 '사색'과 '방황'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하고 있어요.



┌ 혼자서 외롭게 길을 걸아가는 동안 결국 모든 길은 이렇게 쓸쓸하게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과 산책의 길뿐만 아니라 내 생애의 모든 사람으로 통하는 길도 이처럼 고독하게 뻗어 있는 것은 아닐지. ┘

'쓸쓸하다', '고독하게' 저도 처음에는 이런 말들이 내 삶에 필요하면 안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삶을 사는데 고독, 쓸쓸함, 사색, 방황은 꼭 필요하더라구요. 청춘의 방황 이런면에서 많이 방황해 봐야 하고, 많이 사색해봐야 하고, 많이 고독해봐야 한다는 그런 의미도 있지 않을까요?!



┌ 지나간 일들이여!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녀와의 키스도, 저녁의 산책도, 그리고 사람의 눈을 속인 사랑도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으로부터 내 마음에 흘러들어 온 힘이었다. 사랑을 위해 살고 싸우며 어떤 고통이라도 인내하게 만드는 초월된 힘이었다. 그 한순간을 위하여 자기 몸을 내던질 수도 있고, 그녀의 미소를 위해 몇 년이라도 희생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행복이었다. 나는 아직 그 행복을 잃지 않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

나는 아직 그 행복을 잃지 않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저에게 이 한 문장이 참 울림이 있더라구요.

나의 청춘, 그 속에서 지난간 일들 ... '나도 그 속에서의 행복을 아직도 잃지 않고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라는 말처럼 느껴져서 그랬나봐요.

그리고 3장 청춘의 영혼에서 '고독에 대하여', '영혼에 대하여' 이 부분이 특히 더 열심히 읽었던 것 같아요.

고독에 대하여 - 고독이라는 병, 고독의 아름다움, 고독의 진실, 고독에의 귀향

영혼에 대하여 - 영혼의 실체, 영혼의 대상, 영혼과의 대화, 영혼은 정신의 꽃

우리 인생은 형식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 내면에는 외적인 것에 의해 움직이거나 변화되지 않는 내면의 목소리가 있어서 우리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면의 목소리!

┌ 한 번만이라도 그들에게 귀를 기울여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면 비로소 우리들의 좁은 생각과, 작은 일에도 흥분하여 곧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 또 어린애 같은 행동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행위인가를 깨닫게 된다. ┘



내면의 목소리는 고독과 사색, 반항, 여행, 영혼, 사랑과 가깝네요.

마지막으로 이 문장을 잊지 않으려구요.

┌ 고독한 것을 슬퍼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나 자신이 다른 나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언제나 태형처럼 불타오를 자신이 있다. ┘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청춘에게 고독 그런데 이 고독이라는 것이 청춘에게만 올까요?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스무 살 때도 느꼈던 고독, 그것은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미래에도 내가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시간까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대요. 그래도 나는 살아가야 하며, 나의 인생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잖아요.

꼭 기억하세요. ^^





고독한 것을 슬퍼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나 자신이 다른 나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언제나 태형처럼 불타오를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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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그림 - 영원한 예술로 남은 화가의 순간들
이원율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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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원율 작가의 '사적이고 지적인 미술관'을 읽었네요, 이번에 <결정적 그림> 신작이 나와서 읽게 되었네요. 헤럴드경제 인기 칼럼 '후암동 미술관'이 엄선한 거장 22인의 삶과 명화 탄생의 비밀 재밌었어요!

요즘 제가 전시회 다니면서 봤던 작품과 작가들의 이야기들이 많이 보여서 더 재밌게, 작품에 대한 이해가 더 잘 되더라구요.

미켈란젤로, 젠틸레스키, 고갱, 아브라모비치, 라파엘로, 발라스케스, 알폰스 무하, 제임스 휘슬러, 드가, 에곤 실레, 르네 마그리트, 르누아르, 모딜리아니, 샤갈, 이중섭, 렘브란트, 코야, 김정희, 카미유, 뭉크, 툴루즈, 프리다 칼로 총 22인의 거장들이 나와요.

그중에서 살짝 소개 해볼께요.

<서양미술 800년展>에서 젠틸레스키의 작품 '막달라 마리아' 관람하면서 잠깐 여성 화가인 젠틸레스키에 대한 소개를 들었거든요.

이번 책을 읽으면서 자세하게 알게 되었어요!!!

┌ 타시의 목을 쥔 그림, 그놈 목을 베는 그림, 그 자식의 피가 사방에 튀는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젠틸레스키는 타시의 목을 베는 심정으로 붓질을 했다. 절규하는 타시의 머리통을 들고 있는 마음으로 색칠했다. 젠틸레스키가 유디트를 소재로 둔 작품은 최소 6점이다. 젠틸레스가 그린 유디트는 근육질의 여성이다. 힘 좋은 대장장이마냥 두 팔을 힘껏 걷어올렸다. 왼손으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쥐어뜯듯 잡고 있다. 오른손에 쥔 칼을 깊숙하게 찔러넣고 있다. 홀로페르네스는 무력하게 죽어간다. 젠틸레스키는 유디트의 심정으로 타시를 죽이도 또 죽였다. ┘

젠틸레스키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이 작품들을 보세요.

어떤가요? 젠틸레스키가 유디트의 심정으로 타시를 죽이고 또 죽이는 것 같죠~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든 유디트



체코의 대표 화가죠. 알폰스 무하의 포스터 그림을 많이 보셨을텐데...

체코의 대표적 민족주의자 알폰스 무하의 <슬라브 찬가, 인류를 위한 슬라브인>을 아시나요?

그런데 무하는 왜 숙명적으로 슬라브족의 역사를 그렸을까?

┌1899년, 무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서신을 받았다. 내년 파리 세계박람회에 선보일 실내 장식을 준비하를 의뢰였다. 사실상 강요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위해 일해야 할 처지. 이 제국의 통치 아래 고통받는 조국과 슬라브족... 무하는 작업 내내 괴로웠다. 그런 무하는 훗날 슬라브인의 한을 담은 대작을 그리기로 다짐했다. 참회하는 마음에서였다.┘

이런 이야기를 알고 나니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가 훨씬 이해가 잘 되네요.

알폰스 무하 미디어아트 전시에 갔다가 슬라브 대서사시 작품 보고 엄청 놀랐었거든요.

슬라브 찬가, 인류를 위한 슬라브인



나도 사실 드가를 오해하고 있었네요.

드가의 작품을 보면 꼭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그런데 하층민 소녀들의 그 시절의 비애, 서러움이 기록하고 있었네요.

- 음침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벽에 기댄 남성, 옷이 반쯤 벗겨진 채 웅크린 여성은 대치하고 있다. 여성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듯한다. 이 그림은 곧 <실내>가 아닌 또 다른 제목이 붙었다. <강간>이었다.

- 눈처럼 새하얀 발레리나가 공연 중 절정에서 환호받는 듯하다. 하지만 드가는 굳이 그녀 목에 검은색 초크를 넣었다. 굳이 그녀 뒤에 정장 차림의 남성을 표현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이 남성의 통제를 받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 발레리나들이 수업 중 다양한 포즈를 취한다. 한가운데에는 당시 유명 안무가였던 흰 머리의 쥘 페로가 막대기를 짚고 있다. 드가는 굳이 또 오른쪽 맨 뒤에 발레복을 입지 않은 여성들을 넣었다. 발레리나들의 엄마였다. 이들은 귀족에게 자기 딸을 소개하는 등 역할을 자처했다. 이 작품 또한 당시 발레의 이면을 들추고 있다.

실내 스타 발레수업



빛의시어터 서울, 네덜란드 거장전에서 렘브란트 작품 보고 감동받고 왔거든요.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책을 읽게 되어 더 재밌게 읽었어요.

훗날 렘브란트의 가장 위대한 그림, 무대적 장치를 화폭에 끌어들인 전대미문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야경>.

하지만 이는 후세의 시선이었다. 이 그림이 렘브란트의 몰락의 도화선이었다.

야경



<야경>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었지만 렘브란트의 자화상도 빼놓을 수 없네요.

┌렘브란트는 허름한 집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그의 유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렘브란트는 그렇게 역사에서 무하게 지워졌다.┘

쌍커플이 짙은 두 눈은 당당하고, 옅은 미소, 환한 혈식에서 여유가 느껴지는 1632년 자화상이랑 제욱시스로 분장한 자화상 비교해보세요. 얼마나 노년이 힘들었었는지 보이는 것 같아요.

1632 자화상 1662-1668 제욱시스로 분장한 자화상



뭉크전 저도 보고 왔거든요. 그래서 뭉크 이야기도 재밌게 읽었어요.

이렇게 뭉크는 실패한 사랑 속 여자들을 이렇게 작품으로 남겼어요.

- 20대 초반의 풋내기 뭉크는 크로아티아 사교계 유명인사인 헤이베르그 부인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촌스러운 -뭉크만을 불장난 상대로 두기에는 너무나 자유로웠다. 그녀는 결국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났다. 뭉크는 실의를 빠졌다. 쿵크가 이 기억을 안고 그린게 문제작 <사랑과 고통>이었다.

- 뭉크는 베를린에서 또다시 사랑에 빠졌다. 소꼽친구였던 당뉘 유엘이었다. 행복은 잠시였다. 유엘은 뭉크보다 그의 동료 화가 스타니스와프 프시비솁스키를 더 사랑했다. 끝내 그녀는 떠나갔다. 뭉크는 이 남녀의 결혼 소식까지 듣고 만다. 그는 술잔을 바닥에 내던지고 엉엉 울었다. 이때 <마돈나>를 그렸다.

- 뭉크와의 결혼을 바랬던 라르센. 그래서 자살소동을 벌이지만 결국 라르센의 권총 속 총알이 뭉크의 손가락을 관통했다. 뭉크는 그 일 이후에 여자 자체를 경멸했다. 그에게 여자는 흡혈귀였다. 이쯤 그가 그린 그림이 <마라의 죽음>이었다.

사랑과 고통(흡혈귀) 마돈나 마라의 죽음



<결정적 그림>은 약 440페이지 정도거든요. 그런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거장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런지 재밌게 읽혀요. 22인의 거장과 130여점의 명화를 만날 수 있어요.

제가 소개못한 거장들의 이야기도 하나같이 흥미롭게 재밌어요. 이 이야기를 읽고나면 조금 더 이 거장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진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요. ㅎ

그리고 요즘 좋은 전시 많이 하잖아요. <결정적 그림>과 함께 전시 속 거장들의 작품 만나보면 더 좋을꺼 같네요.








미술관에는 그림이 없다! 눈부신 생의 순간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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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은 어떤 화가들 - 근대 미술사가 지운 여성 예술가와 그림을 만나는 시간
마르틴 라카 지음, 김지현 옮김 / 페리버튼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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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잊은 어떤 화가들 > 책에서는 근대 미술사가 지운 여성 예술가와 그림을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도입부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네요.

'예술'은 남성이 하는 일이었고 '천재'도 남성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 근본적인 질문을 받게 되었다.

그동안의 미술사는 여성 예술가들을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 이분법적 구분은 오랫동안 여성에게 응용예술에서 손을 이용하는 작업을 맡긴다거나, 여성이 만든 예술품을 손기술이라는 단일한 관점으로 보면서 세심함, 정밀함, 섬세함, 열중, 인내심, 소형화, 장식성, 감성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일을 정당화해왔다. 반대에 지성을 실현하는 위대함, 힘, 독창성은 남성 예술가의 몫이었다. ┘

왜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이 그 공간에 머무르지 않았던 것처럼, 그곳에 속하지 않았던 것처럼 만드는 것일까요?

이 책은 여성 예술가들의 입장을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작품을 고찰해보고 있어요.

'그림을 그리는 여성은 늘 존재했다.'



- 눈에 띄기 그리고 인정받기

- 단 하나의 살롱에서 여러 개의 살롱으로 : 전시 공간의 분산

- 여성 출품자 : 성별과 장르의 문제

살롱전이 혁명을 겪으며 누구나 참가할 수 있게 된 시기에 출품자의 9%를 차지했던 여성 화가의 수는 1830년대 중반에 들어 20%에 달하고, 살롱전에 도전하는 여성은 19세기 내내 계속해서 증가했다고 해요.

19세기 초, 여성에게는 '선천적으로' 창조 능력이 없다는 생각, 전통적으로 여성을 아마추어 예술 또는 소예술이라는 장식적 레퍼토리에 동화시켜온 생각을 급격히 부숴주었네요.

'1791년 살롱전 참가 자격이 자유화된 이후 10년도 지나지 않아 여성 역사화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성공이라면 살롱전의 입상을 말하네요.

살롱전 참가 자격이 자유화된 이후 첫 30년 동안에는 여성 예술가가 살롱전에 상당수 참여했고, 살롱전 입상도 했어요. '잊힌 여성들'의 성공 이야기에서는 다양한 여성 화가들의 작품이 더 눈에 들어왔어요. 이 중에서 수잔 발라통 여성화가만 알아요.

루이즈-조세핀 사라쟁 드 벨몽, <가바르니 권곡 풍경>, 앙리에트 로리미에, <자화상>, 로자 보뇌르, <파리의 말 시장>, 루이즈 아베마, <온실에서의 점심식사>, 자클린 마르발, <오달리스크들>, 수잔 발라통, <아담과 이브>



요즘 그렇게 정물화가 좋거든요. 특히 꽃 그림이요.

그런데 꽃 그림에도 여성 화가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네요.

16세기 이래로 아이디어와 지적.정신적 차원을 구체화하는 데생은 남성적 장르로 여겨졌고, 색채는 여성적인 것과 연관되다고 해요.

┌ 자크린 마르발이나 에밀리 샤르미 같은 여성 예술가들은 대담한 붓질, 분명한 색채, 미완성된 표면 등을 통해 소위 '야수파' 남성 예술가들과 전혀 다르지 않고 때로는 더 뛰어난 방식으로 '꽃다발'에 접근했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꽃 그림에서 '야수'의 의미와 어울리고 모더니즘의 기준과 일치하는 과격하고 남성적인 힘의 발현을 보았음에도, 여성 예술가들의 꽃 관련 작품에서는 색채에 대한 전적으로 여성적인 감수성만 보았다. ┘

자클린 마르발, <짙은 색 꽃다발>



┌ 회화 장르 간의 모호한 경계와 여성 예술가들이 이를 능숙하게 다룬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으며, 이는 방법과 주제 면에서 성별이 미치는 영향을 상당히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인상주의와 자연주의로 대표되는 근대 에술가들이 재해석한 초상화, 풍경화, 장르화는 예술가의 성별에 따른 다른 방식으로 평가되었다. 여성이 그린 작품은 주제가 '여성 예술'에 부합하는지에 따라 사회적.도덕적 제약과의 협상이 유리하거나 불리했던 반면, 남성이 그린 작품은 전통적 도상학과 학문적 이상화를 거부할수록 환영을 받았으며 혁신적이라고 평가되었다. ┘

'예술가가 되려면 먼저 남성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마리-에드메 포, 1865년 1월 5일 일기

여성 예술가의 정당성에 대한 열망, 그리고 남성 동료들과 경쟁하고 그들과 동등하게 예술가로 자리를 잡고 싶은 의지, 이러한 열망과 의지는 20세기의 문턱에서도 왜 여성이 자신을 배제하던 체제에서 유래된 교육방식에 집착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어요.

카트린-카롤린 코니예 테브냉, <여성 회화 아카데미>



'빛나는 명성을 얻고자 편견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의 용기와 인내는 대단하다.' - 1828년 4월 12일자 '피가로'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이 책은 여성 예술가들의 입장을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작품을 고찰해보고 있다고 했잖아요. 책을 읽는 내내 여성 예술가 개개인이 생각하고 지각하고 느끼는 존재로서 각자의 독특하고 유일한 궤적을 따르면서 다른 세상의 시공간을 어떻게 탐구했는지, 그리고 한 획 한 획 붓질을 하고 한 점 한 점 그림을 그리면서 미술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어떻게 찾아갔는지를 살펴보게 되네요.

그리고 <우리가 잊은 어떤 화가들> 책에서 그간 우리가 볼 수 없었던 110점의 빼어난 작품이 풍성하게 담겨 있는데, 시대적 배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작품 해석을 읽으니 훨씬 그림을 그린 여성 예술가를 더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비록 미술사는 그들을 지웠지만, 그들 또한 진정한 화가였다!!!



‘빛나는 명성을 얻고자 편견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의 용기와 인내는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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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 - 불완전한 진화 아래 숨겨진 놀라운 자연의 질서
앤디 돕슨 지음, 정미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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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환경에 완벽하게 적용하기 위해

진화한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는 불완전한 진화 아래 숨겨진 놀라운 자연의 질서를 이야기해주고 있어요.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은 진화이지만 위대한 성공작은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어요.

진화의 함정 : 육지를 떠난지 수백만 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물속에서 숨 쉬지 못하는 고래

불멸과 노화의 경계 : 여섯 번째 이빨이 다 닿으면 일곱 번째 이빨이 나지 않아 굶어 죽어버리는 코끼리

뻐꾸기 둥지에서 날아간 것 : 둥지의 커다란 괴물을 알아보지 못해 남의 자식을 키우는 뻐꾸기의 숙주들

극단적 이타주의 : 자신의 목숨을 끊어서라도 벌집을 지키려고 하는 꿀벌

아름답고 저주받은 진화 : 쉽게 눈에 띄어 잡아먹힐지라도 화려한 꼬리를 달고 살아가는 수컷 소드테일

370페이지에 달하는 책인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위대한 성공작이 아닌 예외적인 '진화'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했던 것 같아요.

책 제목 <고래는 물에서 쉼 쉬지 않는다> 고래 이야기는 '9장 썩 괜찮은 약점'에 나오네요.

┌ 진화는 고래를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예를 들어, 고래에게는 척추에 붙어 있지 않고 이동을 위해 쓰이지도 않은 뒷다리의 아주 작은 흔적만 있다. 그리고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물속을 효율적으로 헤엄치지 좋게 몸의 모양을 매끈하게 만들어주는 엄청난 두꺼운 지방층도 있으며, 또 추진력을 위한 강력한 꼬리지느러미도 있다. 또한 깊게 공명하는 울음소리를 통해 수백 킬로미터의 바다를 가로질러 소통할 수도 있다.

왜 진화는 그사이에 고래에게 아가미를 제공하지 않은 걸까 ? ┘

드류 베리모어 주연의 영화 '빅 미라클' 감동적으로 본 영화였어요. 이걸 보면서도 저는 이런 물음을 가져보지 못했네요. ㅜㅜ

고래가 수중 생물로 진화한 것은 수백만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왜 고래는 아직도 물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는가.



신기할 정도로 취약한 것은 고래류만이 아니라네요. 포유류 중에는 바다소와 듀공이 있으며, 수생 포유류만 그런 것도 아니래요. 대부분 물속에서 사는 바다뱀, 거북이, 일부 테라핀 등 아가미 없는 파충류도 취약하대요.

"생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환경에 완벽하게 적용하기 위해 진화한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고래나 거북이만 봐도 이 물음에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있겠어요.

책 속에 다양한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뻐꾸기와 꿀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뻐꾸기, 꿀벌을 보고 생각해봤을까요?

"생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환경에 완벽하게 적용하기 위해 진화한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전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거든요.

책 속에 뻐꾸기와 꿀벌 이야기 소개해볼께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 뻐꾸기 새끼는 숙주의 새끼보다 훨씬 더 클 뿐 아니라, 첫 깃털이 날 때까지 완전히 다른 털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노골적으로 숙수의 새끼를 닮지 않았음에도, 뻐꾸기 새끼들은 대개 무사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

너무 궁금하죠~.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장기적으로 보면 거부하는 것이 이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요. (책에는 굉장한 설명,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많은 이야기가 있답니다.)



극단적 이타주의의 대표주자가 바로 꿀벌이더라구요.

┌ 여왕벌 또한 군집에서 매우 제한된 역할을 하는데, 바로 번식이다. 그 외의 모든 일은 일벌이 한다. 일벌은 자신의 새끼를 낳지 않고 오로지 여왕벌을 위해 일한다(또는 관점에 따라서는 군집의 집단적 이익을 위해 일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왕벌이 다른 일벌들이 돌보는 수천 마리의 자손을 낳는 동안 모든 시중을 받는 호사스러운 삶을 선택하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자살하는 일벌도 정확히 같은 선택의 자유 아래 움직이고 있어며, 그에 따라 똑같은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



생물은 진화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해요. 하지만 책 속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중요한 교훈이 하나 있다면, 진화가 어떤 방향으로도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되려 진화는 목적이 없고, 수동적이며, 비도덕적이다. 이것은 자연 선택이 선호하는 것과 문명화된 인간으로 우리가 열망해야 할 것 사이에서 연관성을 도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럼 인간이 향해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우리가 함께 진화해온 것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말하는 '자연스러운' 또는 '부자연스러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이상한 것은 현대 사회에서 '자연스러운'이라는 단어가 너무 일반적으로 그리고 너무 당연하게 '좋은'상태와 동일시된대요.

인간의 어떤 행동이 '자연스럽다'라는 꼬리표 아래 펼쳐지는 비참하고 부조리한 일은 하고 있지 않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인간이 행해야 하는 곳은 어디일까요?"라는 답을 찾은 것 같네요.



"우리는 모두 자칭 '더 뛰어난'종의 행동 때문에 멸망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칭 '더 뛰어난'종은 인간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명백한 사실은 우리가 유일한 생명 유지수단, 지구를 파괴하는 과정이 있고 그 결과 이미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거든요.

그래서 바로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말하는 '자연스러운' 또는 '부자연스러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인간의 어떤 행동이 '자연스럽다'라는 꼬리표 아래 펼쳐지는 비참하고 부조리한 일은 하지 않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앞으로 우리가 향해야 하는 곳은 어디일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지 멸망하지 않을꺼 같네요!!

<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에요.

과학이야기인데 흥미진진한 이야기 덕분인지 흥미롭게 잘 읽은 것 같아요. 그런데 아마 어렵게 느끼는 분도 있을꺼에요. 근데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게 뭔지 꼭 알았으면 좋겠네요.

우리는 모두 자칭 '더 뛰어난'종의 행동 때문에 멸망할 것이다.









​생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환경에 완벽하게 적용하기 위해

진화한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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